저희 부모님은 아직 인간이 덜 되고 철이 덜 든 채로 부모가 된 탓에 부모로서 책임도 모르고 자신들만 알고 사시는 분들이십니다.
어린 시절의 제 기억의 대부분은 엄마와 아빠의 싸우는 장면과 엄마가 쓰러져있는 모습들입니다.
보통의 부부싸움과는 사뭇 다르게 엄마가 칼을 들고 죽겠다 난리치고 아빠가 만류하였던 기억입니다.
엄마가 쓰러지는 경우 저와 저보다 3살 어린 남동생은 쓰러진 엄마를 저희의 힘으로 침대로, 소파로 옮기고 엄마를 돌보는 일을 했었고. 아빠는 집에 계시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얼마 전 날 학교 갔다 집에 오니 친할아버지가 와계시더군요. 그대로 저희 남매는 친가에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셨던 겁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제 부모님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볼 수 없는 생활을 견뎌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친할아버지께서 엄마 욕을 하는 것도 견뎌내기 힘들었고요. 엄마가 바람을 폈다, 원래 못됐었다는 이야기는 제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빠가 바람을 폈다는 이야기라면 믿겠지만 제가 아는 엄마는 그럴 사람이 못되었거든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업이며 뭐며 다른 일을 하겠다며 집에 한 푼의 돈도 가져다주지 않는 아빠 대신 자신의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저희 교육을 시키느라 저를 픽업하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던 엄마가 바람이라니.. 그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는 엄마에게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친가에서 2년가량을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저는 친할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혼이 났습니다. 엄마와 만나온걸 들켰거든요. 저는 엄마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꾸준히 엄마와 연락을 해왔습니다.
죽을 만큼 혼이 나고 전 친가와 연을 끓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엄마의 딸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딸이기도 하였기에 아빠를 닮은 부분에선 엄마와 항상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모녀간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지만 저희 엄마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약한 사람이라 자기를 최우선으로 위해주지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딸을 감당하지 못하고 저와 심하게 다툰 제가 중1이 된 4월의 어느 날 집밖에 나와 있는 저를 두고 출장을 가버렸습니다. 저는 집 열쇠도 아무것도 손에 든 거 없이 그대로 집밖에 혼자 남았습니다. 울며 아빠에게 전화했고 전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그대로 휴학이 되었고요.
당시 아빠는 피시방을 운영 중이셨고 그곳에서 1년이 채 못 되는 시간동안 있었습니다. 학교는 가지 않은 채였습니다. 그해 겨울쯤 아빠의 피시방이 있던 그 건물을 부수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빠는 출장으로 다른 곳에 가셨고 저 혼자만이 그곳이 있던 차였습니다. 당황한 저는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그냥 거기 얌전히 있으라는 말만 하셨습니다. 무서워진 저는 그 지역에 외갓집이 있기에 외할머니께 전화를 했고 그대로 외갓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 품에서 중학교를 다시 들어갔고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내내 방학에는 아빠의 집에서 동생과 함께 하였고 엄마는 1~2주에 한 번씩은 꼭 보았습니다. 아빠의 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저리 지내는 동안 동생을 초등학교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을 바로 갔고, 그곳에서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저랑은 MSN을 통해 매일같이 채팅을 하고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중학교 다니면서도 제겐 고비가 많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약한 정신을 단련한다고 어떤 운동? 같은 것의 공부를 시작해서 사범자격증을 따셨고, 그 와중에도 혼자 계시며 외롭거나 필요할 땐 항상 저를 부르셨습니다. 학교 다니는 중이 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엄마가 아프거나 힘들면 저는 학교에 있다가도 조퇴를 하고 결석을 하고 엄마에게 달려가야 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당시 엄마가 계시던 전라도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사범 자격증을 따고 도장을 내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이 힘들면 일을 다 때려치우고 집안에서 술만 마시고 계셨고 결국 도장을 정리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저와 함께 살게 되셨습니다.
원룸에서 엄마와 둘이 사는 것은 이번에도 길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야자를 끝내고 집에 오면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엄마와 난장판이 되어있는 집……. 엄마를 이불위로 옮기고 집을 치우고 그런 생활을 몇 달을 하다 결국 저는 또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몇 주째 술에만 취해있고, 집에 대소변도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해놓고 저 역시 지쳐만 갔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남지 않은 집에서 그래도 용돈으로, 엄마한테 있는 돈으로, 아빠한테 보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저렇게 엄마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버텼습니다.
그리고 엄마와는 다시 헤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아빠의 집에 갔고, 홀로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아빠에게 몇날 며칠을 조르고 졸라서 검정고시 책을 샀고 겨우겨우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이 귀국했습니다. 학업을 모두 관둔 채 아빠의 집에 온 것입니다. 물론 아빠가 부른 것입니다. 동생은 그대로 집에서 내내 컴퓨터로 게임만하는 폐인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다시 외갓집에 왔습니다.
제가 20살 때 외할머니 품에서 재수학원을 다니며 수능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수능직후 저는 제 몸이 안 좋아 수술을 받아야했고 원서를 쓰는 기간 동안 누워만 있던 터라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새로 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저는 동생의 검정고시 공부를 시킬 겸 외갓집에 데려왔습니다. 무책임한 아빠 품에서 동생은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한 채 지내는 게 누나로서 맘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수능공부를 하던 21살 여름, 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재혼을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엄마와 저는 1~2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보고 살았고 저는 외갓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재혼한지 3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는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자식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재혼을 하신 겁니다.
저는 그대로 모든 걸 뒤로한 채 아빠에게 갔습니다.
아빠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아빠에게도 여자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빠는 저희가 친가에 있을 때도 여자 분이 있던 지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빠는 그 여자 분의 집에 가서 지낸다. 뭐한다 하며 집에서 자식들이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시는 무책임한 분이신 게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빠가 집에 오면 마트에 가자 뭐 사자하며 생활을 해왔습니다.
제가 22살이 되던 어느 날 엄마가 매우 아프다고 저만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너무 간절히 말하던 지라 저는 결국 다시 외갓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동생은 검정고시도 붙고 외갓집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했더군요. 엄마는 여전히 자신이 힘들거나 하면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고 저는 다시 그걸 감당해야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동생은 혼자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냉정한 편이라 자신의 일이 아닌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 탓에 저는 엄마의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엄마의 술주정은 감당하기 힘든 편입니다. 죽겠다고 칼을 들고 난리를 친다거나,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집밖에 나가거나,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고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다른 식구들은 다 내버려두면서 오직 저만 찾습니다. 저는 그럼 엄마가 술 마시는 동안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엄마의 수발을 다 들고, 제가 아파도 상관없이 엄마의 주정을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제가 한번 열이 너무 심해서 약을 먹고 잠을 자는 동안 할머니께 부탁드렸으나 할머니 역시 감당 하지 못하신다 하시더군요. 저는 그런 엄마를 20년을 감당해왔는데……. 다른 식구들은 제가 아파서 누워있는 그 몇 십 분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마의 술주정은 질이 나쁜 편입니다.
여전히 제 생활은 엄마위주입니다. 엄마는 자기를 무조건 우선해야한다 하고, 제가 학교에 가야하던 뭔가 약속이 있던 상관없이 엄마 곁에 있어야한다고 우기시는 분입니다. 네, 다른 식구들 아무에게도 그러지 않으면서 제게만 그러십니다.
얼마 전에 제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동생에게 엄마를 부탁했고, 동생이 화가나 엄마에게 부모노릇은 못해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하지 않냐 라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가 동생에게 자기 집에서 나가라 했다더군요.
네, 저희 엄마지만 너무 자기 밖에 모르는 분입니다. 제가 기가 막히더군요.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사촌동생이 오늘 그러더군요. 언니 제발 병신 같은 짓 그만해 언니는 화도 안나? 언니 외롭지 않아? 맨날 고모한테 이용만 당하는 거잖아 필요하면 왔다가 또 필요 없어지면 버리고 가버리잖아 라고 말입니다. 네. 저 병신같이 착한편입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착하다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날 몇 번을 버렸든 배신했든 나는 그러지 못하고 항상 엄마 곁으로 돌아왔고, 엄마를 돌봐왔습니다.
저도 화도 내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힘들다 소리도 쳐봤지만 집안 어른들은 제게 네가 다 이해하고 받아드리라 하십니다. 제게 오직 희생만을 강요하시죠.
어디다 이런 이야기를 한번 털어 놓은 적도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혼자 이 가슴에만 묻고 살았습니다. 이글에 다 말하지 못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여러 번 미칠 것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바보같이 내 부모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사촌동생의 의견대로 제 부모와의 연을 끊어야할까요?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할까요? 다른 제 3자 분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조언을 해주세요..
저는 20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제 사촌동생의 조언 때문입니다.
언니가 너무 병신 같다며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하더군요.
이야기의 시작은 제 어린 시절입니다. 제 부모님은 정말 한숨이 나오는 분들이십니다.
저희 부모님은 아직 인간이 덜 되고 철이 덜 든 채로 부모가 된 탓에 부모로서 책임도 모르고 자신들만 알고 사시는 분들이십니다.
어린 시절의 제 기억의 대부분은 엄마와 아빠의 싸우는 장면과 엄마가 쓰러져있는 모습들입니다.
보통의 부부싸움과는 사뭇 다르게 엄마가 칼을 들고 죽겠다 난리치고 아빠가 만류하였던 기억입니다.
엄마가 쓰러지는 경우 저와 저보다 3살 어린 남동생은 쓰러진 엄마를 저희의 힘으로 침대로, 소파로 옮기고 엄마를 돌보는 일을 했었고. 아빠는 집에 계시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얼마 전 날 학교 갔다 집에 오니 친할아버지가 와계시더군요. 그대로 저희 남매는 친가에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셨던 겁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제 부모님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볼 수 없는 생활을 견뎌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친할아버지께서 엄마 욕을 하는 것도 견뎌내기 힘들었고요. 엄마가 바람을 폈다, 원래 못됐었다는 이야기는 제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빠가 바람을 폈다는 이야기라면 믿겠지만 제가 아는 엄마는 그럴 사람이 못되었거든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업이며 뭐며 다른 일을 하겠다며 집에 한 푼의 돈도 가져다주지 않는 아빠 대신 자신의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저희 교육을 시키느라 저를 픽업하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던 엄마가 바람이라니.. 그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는 엄마에게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친가에서 2년가량을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저는 친할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혼이 났습니다. 엄마와 만나온걸 들켰거든요. 저는 엄마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꾸준히 엄마와 연락을 해왔습니다.
죽을 만큼 혼이 나고 전 친가와 연을 끓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엄마의 딸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딸이기도 하였기에 아빠를 닮은 부분에선 엄마와 항상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모녀간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지만 저희 엄마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약한 사람이라 자기를 최우선으로 위해주지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딸을 감당하지 못하고 저와 심하게 다툰 제가 중1이 된 4월의 어느 날 집밖에 나와 있는 저를 두고 출장을 가버렸습니다. 저는 집 열쇠도 아무것도 손에 든 거 없이 그대로 집밖에 혼자 남았습니다. 울며 아빠에게 전화했고 전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그대로 휴학이 되었고요.
당시 아빠는 피시방을 운영 중이셨고 그곳에서 1년이 채 못 되는 시간동안 있었습니다. 학교는 가지 않은 채였습니다. 그해 겨울쯤 아빠의 피시방이 있던 그 건물을 부수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빠는 출장으로 다른 곳에 가셨고 저 혼자만이 그곳이 있던 차였습니다. 당황한 저는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그냥 거기 얌전히 있으라는 말만 하셨습니다. 무서워진 저는 그 지역에 외갓집이 있기에 외할머니께 전화를 했고 그대로 외갓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 품에서 중학교를 다시 들어갔고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내내 방학에는 아빠의 집에서 동생과 함께 하였고 엄마는 1~2주에 한 번씩은 꼭 보았습니다. 아빠의 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저리 지내는 동안 동생을 초등학교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을 바로 갔고, 그곳에서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저랑은 MSN을 통해 매일같이 채팅을 하고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중학교 다니면서도 제겐 고비가 많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약한 정신을 단련한다고 어떤 운동? 같은 것의 공부를 시작해서 사범자격증을 따셨고, 그 와중에도 혼자 계시며 외롭거나 필요할 땐 항상 저를 부르셨습니다. 학교 다니는 중이 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엄마가 아프거나 힘들면 저는 학교에 있다가도 조퇴를 하고 결석을 하고 엄마에게 달려가야 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당시 엄마가 계시던 전라도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사범 자격증을 따고 도장을 내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이 힘들면 일을 다 때려치우고 집안에서 술만 마시고 계셨고 결국 도장을 정리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저와 함께 살게 되셨습니다.
원룸에서 엄마와 둘이 사는 것은 이번에도 길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야자를 끝내고 집에 오면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엄마와 난장판이 되어있는 집……. 엄마를 이불위로 옮기고 집을 치우고 그런 생활을 몇 달을 하다 결국 저는 또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몇 주째 술에만 취해있고, 집에 대소변도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해놓고 저 역시 지쳐만 갔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남지 않은 집에서 그래도 용돈으로, 엄마한테 있는 돈으로, 아빠한테 보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저렇게 엄마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버텼습니다.
그리고 엄마와는 다시 헤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아빠의 집에 갔고, 홀로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아빠에게 몇날 며칠을 조르고 졸라서 검정고시 책을 샀고 겨우겨우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이 귀국했습니다. 학업을 모두 관둔 채 아빠의 집에 온 것입니다. 물론 아빠가 부른 것입니다. 동생은 그대로 집에서 내내 컴퓨터로 게임만하는 폐인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다시 외갓집에 왔습니다.
제가 20살 때 외할머니 품에서 재수학원을 다니며 수능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수능직후 저는 제 몸이 안 좋아 수술을 받아야했고 원서를 쓰는 기간 동안 누워만 있던 터라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새로 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저는 동생의 검정고시 공부를 시킬 겸 외갓집에 데려왔습니다. 무책임한 아빠 품에서 동생은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한 채 지내는 게 누나로서 맘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수능공부를 하던 21살 여름, 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재혼을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엄마와 저는 1~2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보고 살았고 저는 외갓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재혼한지 3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는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자식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재혼을 하신 겁니다.
저는 그대로 모든 걸 뒤로한 채 아빠에게 갔습니다.
아빠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아빠에게도 여자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빠는 저희가 친가에 있을 때도 여자 분이 있던 지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빠는 그 여자 분의 집에 가서 지낸다. 뭐한다 하며 집에서 자식들이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시는 무책임한 분이신 게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빠가 집에 오면 마트에 가자 뭐 사자하며 생활을 해왔습니다.
제가 22살이 되던 어느 날 엄마가 매우 아프다고 저만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너무 간절히 말하던 지라 저는 결국 다시 외갓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동생은 검정고시도 붙고 외갓집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했더군요. 엄마는 여전히 자신이 힘들거나 하면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고 저는 다시 그걸 감당해야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동생은 혼자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냉정한 편이라 자신의 일이 아닌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 탓에 저는 엄마의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엄마의 술주정은 감당하기 힘든 편입니다. 죽겠다고 칼을 들고 난리를 친다거나,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집밖에 나가거나,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고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다른 식구들은 다 내버려두면서 오직 저만 찾습니다. 저는 그럼 엄마가 술 마시는 동안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엄마의 수발을 다 들고, 제가 아파도 상관없이 엄마의 주정을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제가 한번 열이 너무 심해서 약을 먹고 잠을 자는 동안 할머니께 부탁드렸으나 할머니 역시 감당 하지 못하신다 하시더군요. 저는 그런 엄마를 20년을 감당해왔는데……. 다른 식구들은 제가 아파서 누워있는 그 몇 십 분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마의 술주정은 질이 나쁜 편입니다.
여전히 제 생활은 엄마위주입니다. 엄마는 자기를 무조건 우선해야한다 하고, 제가 학교에 가야하던 뭔가 약속이 있던 상관없이 엄마 곁에 있어야한다고 우기시는 분입니다. 네, 다른 식구들 아무에게도 그러지 않으면서 제게만 그러십니다.
얼마 전에 제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동생에게 엄마를 부탁했고, 동생이 화가나 엄마에게 부모노릇은 못해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하지 않냐 라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가 동생에게 자기 집에서 나가라 했다더군요.
네, 저희 엄마지만 너무 자기 밖에 모르는 분입니다. 제가 기가 막히더군요.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사촌동생이 오늘 그러더군요. 언니 제발 병신 같은 짓 그만해 언니는 화도 안나? 언니 외롭지 않아? 맨날 고모한테 이용만 당하는 거잖아 필요하면 왔다가 또 필요 없어지면 버리고 가버리잖아 라고 말입니다. 네. 저 병신같이 착한편입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착하다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날 몇 번을 버렸든 배신했든 나는 그러지 못하고 항상 엄마 곁으로 돌아왔고, 엄마를 돌봐왔습니다.
저도 화도 내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힘들다 소리도 쳐봤지만 집안 어른들은 제게 네가 다 이해하고 받아드리라 하십니다. 제게 오직 희생만을 강요하시죠.
어디다 이런 이야기를 한번 털어 놓은 적도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혼자 이 가슴에만 묻고 살았습니다. 이글에 다 말하지 못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여러 번 미칠 것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바보같이 내 부모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사촌동생의 의견대로 제 부모와의 연을 끊어야할까요?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할까요? 다른 제 3자 분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