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다시 ‘친일파’를 비판해야 하는 서글픔

참의부201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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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의 뿌리, 김무성이 오늘의 김무성일 수 있는 조건들

 

교학사 교과서 문제 때문에 김무성이 새누리당에게 교학사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는 보도를 보면서 서글픔을 느껴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제 부친이 연좌제의 피해자이므로 연좌제라는 말 자체까지 싫어합니다. 그러함에도 김무성의 행위를 보면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무성의 뿌리, 김무성이 오늘의 김무성일 수 있는 조건들이 바로 조선임전보국단 대구지부 상임이사였던 그의 부친에게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임전보국단'… 이 단체는 일제강점기인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9월에 윤치호 계열이 설립한 흥아보국단과 최린 김동환 계열이 설립한 임전대책협의회가 통합되어 설립된 단체입니다. 그리고 이 단체의 성향은 설립취지문 일부와 강령으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한 대목만 인용합니다.

 

["반도민중은 특별지원병 외에 병역에 복무할 명예를 가지지 못하므로 무한한 황은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국민운동의 강력한 하나의 기관으로서의 단체를 설립한다." - 조선임전보국단 설립취지문 중 일부-

 

- 조선임전보국단 강령 -

 

황도정신 선양과 사상의 통일
전시체제의 국민생활 쇄신
국민 모두의 노동보국
국가우선의 원칙하에 저축, 생산, 공출 등에 협력
국방사상의 보급


(여기서 국가란 일본을 말하며 우리나라를 '반도'로 호칭하고 우리 만족을 '반도민중'이라고 비하합니다. 또 일제에의 추종을'황도정신 선양', '황은 보답' 등으로 표현합니다. -배알도 없는 인간들-)]

 

조선임전부국단은 1941년 9월, 앞서 기슬한대로 흥아보국단과 임전대책협의회 통합을 결의하고 10월 22일 부민관 대강당에서 조선임전보국단 출범식을 열었습니다. 이 출범식에서 "2천4백만 반도민 모두 일치결속하여 성전완수를 통해 황국의 흥융을 기할 것을 맹세하자"는 선서도 낭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약 1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이듬해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 단체의 주동자는 최린, 김동환, 윤치호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최린이나 김동환도 소개하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윤치호만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왜일까요? 윤치호의 손자 윤영구가 조선일보 故 방일영 회장의 장인이기 때문입니다. 즉 윤치호의 증손녀가 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모친입니다. 그럼 윤치호란 누군가요?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으나 간단하게 그의 사상을 정리하면 '힘을 가진 자에게는 대항하면 안 되며, 그 힘에 종속되어야 살기가 편하다.'는 사상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그리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민족 지도자로 평가를 받으면서도 3.1운동에 반대했습니다.

 

[3.1 운동에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는 이렇다. 조선 문제는 파리강화회의에 상정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나라도 조선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는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강자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 1919년 3월 6일 윤치호 -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 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지만, 만약 약자가 강자에 대해서 무턱대고 대든다면 강자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약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된다. 그런 뜻에서도 조선은 내지에 대해서 그저 덮어 놓고 불온한 언동을 부리는 것은 이로운 일이 못된다. - 1919년 3월 7일 윤치호 -]

 

세간에는 김무성의 모친이 온양방씨란 것 때문에 방상훈의 고모라고 하는 주장들이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공개된 기록에도 김무성 모친과 방상훈을 연결시킬 고리는 없습니다. 단지 김무성 부친 김용주의 처에 대한 기록으로 '온양방씨'라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무성 모친이 방상훈의 고모인지 아닌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추하건데 이 설은 아닐 개연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연결고리로 김무성을 공격하면 안 됩니다. 되도록이면 사실적 기록만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들의 수법상 나중에 어떤 뒤통수를 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방상훈의 부친인 방일영은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의 손자입니다. 친손자가 아니라 양손자, 즉 방일영의 부친인 방재윤이 방응모의 양자였습니다. 그런데 방재윤의 생부, 즉 방응모의 형인 방응곤에 대한 가계는 그가 방응모의 형이라는 것 외에 많이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김무성의 모친인 온양방씨가 방응곤 계보의 소생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방일영의 누나나 동생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 할아버지인 방재윤은 슬하에 아들 방일영과 방우영 형제를 두고 1940년 서른 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니다. 김무성 모친인 온양방씨가 방상훈의 고모라면 방일영 방우영과 남매여야 하므로 방재윤의 소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방재윤 계보에 딸이 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따라서 무리하게 김무성과 조선일보를 친일파 연결고리와 혈족 연결고리까지 묶어서 연계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현재 김무성과 조선일보의 행태를 선대들의 친일행적에 비춰 비판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이는 연좌제가 아닙니다. 연좌제란 본인의 사상과 선친이나 가족들의 사상이 다름에도 단지 혈족으로 연결된다고 하여 '그럴 것이다'라는 추정으로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후손이 선친이나 혈족과 같은 사상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연좌제에 의한 비판이 아니라 본인의 행동과 선친의 행동 모두를 비판하면서 그 비판을 '혈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김무성의 부친 김용주, 일본이름 가네다 류슈…

 

이 양반 일제 강점기에 경북도회 의원(지금의 도의원)도 하신분이고, 해방 후 기업인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박정희 시대에는 경총회장까지 역임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대구지부 상임이사로 이 단체 결성식에서 "황군들에게 위문 전보를 보내자"고 제안, 단체 위문전보도 보내게 한 사람입니다. 조선임전보국단에 대한 서두의 설명은 그래서 필요했습니다.

 

지금 교학사가 펴내서 일본 우익들에게도 칭송을 받는 한국사 교과서가 나라의 여론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교과서를 펴내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공주대 이명희 교수는 이 교과서에 대한 바판이 거세지자 추석 귀성객들에게 서울역에서 직접 홍보물을 나눠주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교과서의 내용을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과서가 이승만 박정희 미화를 넘어, 일제강점기 경제부흥론, 더 나아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일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기술이 있다면 이는 대한민국 교과서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무성은 다르더군요."교학사에서 긍정적 사관에 의한 교과서를 발행하는 과정"이라며 일제강점기를 미화한 사관을 '긍정적 사관'이라고 했습니다. 또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건전한 사고를 가진, 잘 해보겠다는 국민, 기업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과서가 발행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연장선에서 김무성은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될 때까지 '우파'들이 집권해야 한다며, 국민을 배부른 돼지로 비하했습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 그렇게 되면 아! 이제 부자 나라이니 우리가 빠져도 나라가 잘 살겠구나 하고 빠지겠다고요? 참 웃기는 소리를 웃지도 않고 하는 김무성의 두꺼운 얼굴이 부럽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런 김무성을 비판하는 글에 조선일보를 왜 끌어다 붙였을까요?

 

지난 2003년 8월 모일,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일영이 그 다사다난한 생을 마쳤습니다. 앞서 거론했지만 방일영은 조부 방응모의 양손입니다. 부인 둘을 얻었으나 딸 하나만 얻고 아들이 없던 방응모는 형 방응곤의 둘째아들 방재윤을 양자로 입적시켜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셋째부인에게서 아들 방재선을 포함하여 셋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방응모의 적자인 방재선은 호적상 방응모의 차남입니다. 그런데 이 방재선의 다섯살 무렵인 한국전쟁 당시 방응모는 납북되어 끌려가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미 조카이지만 성인이이었던 방일영이 장악했으니 아버지를 잃은 꼬맹이 방재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성인이 된 뒤 조카들과 유산상속에 대한 법적 분쟁을 벌이는 등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방일영이 그의 삶을 마친 것입니다. 이 상가에 이복이지만 호적상 고인의 숙부인 방재선이 조문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상주 방상훈이 종조부 방재선의 조문을 막았습니다. 그 이유가 방재선이 그의 아버지 방응모의 친일행위를 인정했다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자가 종조부에게 "조문을 하려면 친일을 인정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방재선은 "친일 한 것은 사실인데 왜 사과하나?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옥신각신끝에 방재선은 손자에 밀려 조카의 상가에 조문을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재선의 부인이 상가를 경비한 장정들에게 밀려 실신했다고도 합니다.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36년의 왜놈들 강압통치를 이겨내고 독립한 나라의 역사가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시간이 갈수록 왜놈들의 침략과 강제수탈 등의 강압통치를 옹호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큰소리를 치는 세상… 그리고 이런 더러운 회바름을 '애국' '우파'라고 하는 세상...

 

1945년, 해방 된 뒤 이 땅은 친일파 청산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습니다. 그래서 친일행위를 했던 자들은 숨거나 자기미화에 나서거나 미군정에 투항하거나 하는 등 살길을 찾기에 바빴습니다.

 

그해 10월 20일, 윤치호(방상훈의 외 증조부)는 이승만과 김구, 미국 군정청에게 각각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서 윤치영은 그리고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자신들이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가 독립운동을 해서 독립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독립이 달성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일본의 신민으로서 '조선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들에게 일본 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는 어떤 대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아들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딸들을 공장에 보내야만 했는데, 무슨 수로 군국주의자들의 명령과 요구를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중략)… 그러므로 누군가는 일본의 신민으로서 한 일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중략)…사소한 개인적 야심과 당파적인 음모와 지역간의 증오심일랑 묻어두고,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나라의 공익을 위해 다 함께 협력하여야 합니다. …(중략)…마치 자기들의 힘과 용맹성을 가지고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조선을 구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어딜 가든 으스대며 다니는, 자칭 구세주들의 꼴이란 참으로 가관입니다. …(중략)… 이른바 그 '해방'이란, 단지 연합군의 승리의 한 부분으로 우리에게 온 것 뿐입니다.…하락…]

 

하지만 윤치호가 이 편지대로 단지 힘에 순응하여 죽지못해 협조하고 목숨을 연명했나요? 그는 1941년 태평양 전쟁 전시결전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에 참가하여 ‘우리는 황국신민으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함’이라는 결의문을 낭독했습니다. 또 마나미 지로 총독에게 찾아가서 "저는 내선일체를 완성하는 수단으로 조선인들의 창씨개명을 찬성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해방직전인 1945년 2월 광복 직전에는 귀족원 의원에 선임된 사람입니다. 이런 자신의 행위를 "일본 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는 어떤 대안이 있었겠느냐?"고 미화한 것이지요. 지금 김무성이나 조선일보가 친일을 미화하고 우익으로 포장하며, 반대파를 '좌파'라는 낙인으로 몰아가는 짓들이 이와 전혀 다르지 않은 행태입니다.

 

그래서입니다. 제발…제발…언필칭 진보라는 이름을 쓰는 언론들이라든지, 또는 오피니언 리더그룹들. 더 나아가 '일개 네티즌'들이라도 김무성을 '유력한 차기주자'로 부르지 말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런 자가 나라의 대표가 되겠다고 '후보' 운운하고 나선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다시는 '정의'니 '민족정기'니를 말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도 시끄럽고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이런 글을 써야 하는 저 마음이 괴롭습니다.



▷ 임두만 네이션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