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민족주의사학(韓國近代民族主義史學)의 시조(始祖)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13. 외국위체사건으로 피체 ⑵
참의부201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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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피로 쓴 글
단재는「조선혁명선언」을 쓴 5년 뒤에 다시 이「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선언문」을 썼다. 앞의「조선혁명선언」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욱 강력하고 단호한 대일선전문을 집필한 것이다. 무강권·무전제·무착취·부특권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피 한 방울 한 방울을 뽑아 쓴 ‘피로 쓴’ 글이다. 니체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하라”고 절규하였다. 벤야민은 “사고(思考)의 실현으로서의 글쓰기”를 주장하였다.
단재의 혁명사상의 주체는 ‘민중’이다. 민중의 힘, 민중의 궐기를 통해 일제는 물론 모든 특권지배계급을 타도하자는 혁명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렇다고 공산주의식 인민혁명론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단재 신채호가 말한 민중은 식민지 시대 민족사 발전의 주체적 역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시달리기만 하는 민중이 아니라 당연히 식민지 통치와 자본주의적 수탈에 저항하기 위해 의식이 높아지고 투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민중이다.”
단재에 따르면,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성’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이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절규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불합리한 민중 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 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 각오의 제일이니라.˝ -『개정전집』下, 41쪽~42쪽.
단재는 민중의 의식화는 신인이나 성인이 아닌 민중 스스로가 그 발전을 위해 일체의 저해 요인을 제거하는 데서 이루어지며, 그것은 ‘선각된 민중’의 선구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단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계층을 민중으로 보았을까?
〃신채호는 민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계층을 포함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식민지통치 아래서 민족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계급의식·민족의식이 급격히 높아져 가고 있는 노동자 도시빈곤층·소작농민·농업노동자·자소작층 등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소부르주아와 자각농층·지식인층까지 포함하는 적극적 항일세력 전체를 가르키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식민지 시대의 민족 구성원 중에서 식민지배에 타협하는 세력은 물론, 비록 독립운동세력이었다 해도 적극 투쟁론 측에 서지 않은 일부까지를 제외한 식민지배에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지식인·식민지 지배정책의 피해를 직접 받는 소생산자층·소상인층·자소작농·소작농·노동자 그리고 그 자신과 같이 적극 투쟁론을 실천하고 있는 독립운동세력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신채호는 이들이야말로 식민지 시대 민족사의 주체세력, 즉 민족해방운동의 주체세력이며 그가 말하는 민중직접혁명의 주체세력이라 인식한 것이라 할 것이다.〃- 강만길,「신채호의 영웅·국민·민중주의」,『신채호의 사상과 민족독립운동』, 320쪽.
● 잡지 발행 자금 마련 위해 거사
단재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의 결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우선 잡지 발행 자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북경 우편관리국 외국위체계(爲替係)에 근무하는 대만인 아나키스트 임병문과 협의하여 외국위체(外國爲替)를 위조·인쇄하기로 하였다.
〃외국위체 2백매를 위조·인쇄하여 액면 총계 6만 4천원을 일본·대만·한국·관동주 등의 중요한 32개소의 우편국에 유치위체(留置爲替)로 발송한 후 이를 찾아 쓰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이 자금을 찾는 데는 지역을 바꾸어 임병문이 광동주와 조선을 담당하고, 또 다른 동지 이필현은 일본, 단재는 대만을 맡기로 하였다.
임병문은 1928년 4월 25일에 대련은행에서 위체 2천원을 대련화복물산공사 직원 장동화(張同華)라 칭하고 찾아서 북경의 이필현에게 부치는 데 성공한 다음, 그는 계속해서 일본 문사(門司)를 거쳐 신호(神戶)에 도착해서 신호일본은행에서 2천원을 찾으려다가 먼저 경찰에 체포되었다.
단재는 1928년 5월 8일에 유병택(柳炳澤)이라는 가명으로 책임액 1만 2천원을 찾기 위하여 일본 문사를 거쳐 환춘환(桓春丸)으로 대만 기륭항에 도착해서 상륙하려다가 기율에서 일본 수상(水上) 서원에게 체포되었다.〃- 신용하,「한국 근대 민족사학의 선구자인 독립투사 신채호」,『한국 근대의 선구자와 민족운동』, 205쪽~206쪽, 집문당.
1910년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지 18년, 중국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직접혁명’을 실천하고자 신문·잡지를 발간하고, 일제 관공서를 폭파하기 위한 폭탄제조소를 설치하기 위해 단재는 자금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망명자들에게는 그런 자금을 마련하는 방도가 없었다.
단재와 그의 동지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외국위체를 위조하기로 결정하고, 마침내 이의 실행에 나섰다가 불행하게도 일본 수상 서원에게 피체되고 말았다.
망명자 신채호……당시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그들은 그 옛적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어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은 건 아닐까?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에 지친 학의 무리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는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더불어
나는 회청색의 그 어스름 속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 둔 그대를 모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부르면서〃- 감자토프,『백학』, 16쪽~17쪽, 정태언 옮김, 가리온, 1995년.
러시아의 국민 시인 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의 시「백학(원제:학들)」이 아직 씌어지지 않은 때였지만, 단재의 심경이 혹 이러하지는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험난한 항일전선에서 피흘리며 죽어간 사람들, 즉 하얀 학들은 바로 단재의 친구요 혈육이며 같은 전선에 선 민중이었다. 학의 울음소리는 단재와 감자토프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듣는 민족어와 유사성을 지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근대 민족주의사학(韓國近代民族主義史學)의 시조(始祖)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13. 외국위체사건으로 피체 ⑵
●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피로 쓴 글
단재는「조선혁명선언」을 쓴 5년 뒤에 다시 이「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선언문」을 썼다. 앞의「조선혁명선언」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욱 강력하고 단호한 대일선전문을 집필한 것이다. 무강권·무전제·무착취·부특권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피 한 방울 한 방울을 뽑아 쓴 ‘피로 쓴’ 글이다. 니체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하라”고 절규하였다. 벤야민은 “사고(思考)의 실현으로서의 글쓰기”를 주장하였다.
단재의 혁명사상의 주체는 ‘민중’이다. 민중의 힘, 민중의 궐기를 통해 일제는 물론 모든 특권지배계급을 타도하자는 혁명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렇다고 공산주의식 인민혁명론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단재 신채호가 말한 민중은 식민지 시대 민족사 발전의 주체적 역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시달리기만 하는 민중이 아니라 당연히 식민지 통치와 자본주의적 수탈에 저항하기 위해 의식이 높아지고 투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민중이다.”
단재에 따르면,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성’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이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절규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불합리한 민중 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 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 각오의 제일이니라.˝ -『개정전집』下, 41쪽~42쪽.
단재는 민중의 의식화는 신인이나 성인이 아닌 민중 스스로가 그 발전을 위해 일체의 저해 요인을 제거하는 데서 이루어지며, 그것은 ‘선각된 민중’의 선구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단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계층을 민중으로 보았을까?
〃신채호는 민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계층을 포함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식민지통치 아래서 민족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계급의식·민족의식이 급격히 높아져 가고 있는 노동자 도시빈곤층·소작농민·농업노동자·자소작층 등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소부르주아와 자각농층·지식인층까지 포함하는 적극적 항일세력 전체를 가르키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식민지 시대의 민족 구성원 중에서 식민지배에 타협하는 세력은 물론, 비록 독립운동세력이었다 해도 적극 투쟁론 측에 서지 않은 일부까지를 제외한 식민지배에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지식인·식민지 지배정책의 피해를 직접 받는 소생산자층·소상인층·자소작농·소작농·노동자 그리고 그 자신과 같이 적극 투쟁론을 실천하고 있는 독립운동세력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신채호는 이들이야말로 식민지 시대 민족사의 주체세력, 즉 민족해방운동의 주체세력이며 그가 말하는 민중직접혁명의 주체세력이라 인식한 것이라 할 것이다.〃- 강만길,「신채호의 영웅·국민·민중주의」,『신채호의 사상과 민족독립운동』, 320쪽.
● 잡지 발행 자금 마련 위해 거사
단재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의 결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우선 잡지 발행 자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북경 우편관리국 외국위체계(爲替係)에 근무하는 대만인 아나키스트 임병문과 협의하여 외국위체(外國爲替)를 위조·인쇄하기로 하였다.
〃외국위체 2백매를 위조·인쇄하여 액면 총계 6만 4천원을 일본·대만·한국·관동주 등의 중요한 32개소의 우편국에 유치위체(留置爲替)로 발송한 후 이를 찾아 쓰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이 자금을 찾는 데는 지역을 바꾸어 임병문이 광동주와 조선을 담당하고, 또 다른 동지 이필현은 일본, 단재는 대만을 맡기로 하였다.
임병문은 1928년 4월 25일에 대련은행에서 위체 2천원을 대련화복물산공사 직원 장동화(張同華)라 칭하고 찾아서 북경의 이필현에게 부치는 데 성공한 다음, 그는 계속해서 일본 문사(門司)를 거쳐 신호(神戶)에 도착해서 신호일본은행에서 2천원을 찾으려다가 먼저 경찰에 체포되었다.
단재는 1928년 5월 8일에 유병택(柳炳澤)이라는 가명으로 책임액 1만 2천원을 찾기 위하여 일본 문사를 거쳐 환춘환(桓春丸)으로 대만 기륭항에 도착해서 상륙하려다가 기율에서 일본 수상(水上) 서원에게 체포되었다.〃- 신용하,「한국 근대 민족사학의 선구자인 독립투사 신채호」,『한국 근대의 선구자와 민족운동』, 205쪽~206쪽, 집문당.
1910년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지 18년, 중국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직접혁명’을 실천하고자 신문·잡지를 발간하고, 일제 관공서를 폭파하기 위한 폭탄제조소를 설치하기 위해 단재는 자금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망명자들에게는 그런 자금을 마련하는 방도가 없었다.
단재와 그의 동지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외국위체를 위조하기로 결정하고, 마침내 이의 실행에 나섰다가 불행하게도 일본 수상 서원에게 피체되고 말았다.
망명자 신채호……당시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그들은 그 옛적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어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은 건 아닐까?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에 지친 학의 무리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는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더불어
나는 회청색의 그 어스름 속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 둔 그대를 모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부르면서〃- 감자토프,『백학』, 16쪽~17쪽, 정태언 옮김, 가리온, 1995년.
러시아의 국민 시인 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의 시「백학(원제:학들)」이 아직 씌어지지 않은 때였지만, 단재의 심경이 혹 이러하지는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험난한 항일전선에서 피흘리며 죽어간 사람들, 즉 하얀 학들은 바로 단재의 친구요 혈육이며 같은 전선에 선 민중이었다. 학의 울음소리는 단재와 감자토프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듣는 민족어와 유사성을 지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저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