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키우자더니..

2013.09.30
조회4,152

 

 

어찌보면 참 사소한 일로 다퉜는데

꼭 싸우길 바란 사람처럼 덤벼들줄 몰랐네요.

 

평소에도

가만히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거나

혹은 햇빛이 너무 강해서, 또는 어딘가 아파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면

왜 그러냐며 짜증내던 사람이였어요.

전화하다가도 뜬금없이 너 왜 짜증내냐고 화를 내고

전 웃으면서 잘 통화 하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놀래면

짜증부렸다고 되려 저한테 짜증을 내고 전화를 끊고요.

 

 

사소하게, 또는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에도

그 짜증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였네요.

본인은 저한테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부리며

앞에서 씨*이란 욕을 달고 살며 난리를 쳐도

전 그냥 아무말 없이 그 짜증 다 받아줬어요.

근데 그 사람한테 제 짜증은 절대 용납할수 없는 금기의 행동이예요.

당신도 이러이러해서 나한테 짜증 부릴때 내가 단 한마디라도 했냐

난 그저 당신 옆에서 가만히 앉아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는데

내가 지금 이거 짜증투로 말했다고 이렇게 큰일 날 일처럼

사람을 몰아세울수가 있느냐 라고 하면

건방지답니다.

건방지게 어디 말대꾸를 하냐고요.

저 스물 일곱, 그 사람과 10살차이예요.

한참 어리겠죠.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 그 사람은 항상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나봅니다.

물론 제가 그 사람만큼 돈을 잘벌거나 인맥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사람 밑이여야할 이유가 없잖아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란건 알았지만,

나이차이까지 나고 나니 절 더 아래로 보는 것 같더라구요.

 

 

 

 

아무튼..

이런 사람이 제가 1년 반을 넘게 만난 남자친구예요.

남자친구였었죠.

과거형이 되었네요 어제부로

 

8월말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됬어요.

남자친구에게 사실을 알리고, 5주가 넘었단다 라는 얘길 했더니

생각 좀 해보자 하더군요.

제가 아무리 피임 하자고 노래를 부르고 붙잡고 잠깐만 기다리라고

피임 하자고 어떻게 난리를 쳐도

어차피 결혼 할거 임신하면 혼수 되고 좋지 않냐는 말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임신 사실을 알자 3주 정도를 생각만 하더라구요.

이렇다 저렇다 말 없이, 그냥 생각중이다. 라고요.

더 묻거나 더 진지한 얘길 할 낌새가 보이면 인상부터 찡그리고

이미 짜증이 나있는 상태라

전 아예 애초에 그 사람과의 대화를 포기합니다.

 

그러다 도저히 숨이 막히고 미칠것 같다고 울면서

아이를 낳던 지우던 정하자고, 대체 당신은 뭐때문에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는거냐고

무슨 이유로 고민을 하는건지 터놓고 얘길 해야 서로 의지하며 대화를 할거 아니냐 해도

기다리랍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추석이 다가오고

명절엔 늘 멀어서(땅끝쪽) 못가던 자기집에 다녀오겠답니다.

다녀온후에 허락을 받은건지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온건지

와서는 아이 예쁘게 키우자 라고 하더군요.

 

돌아온 그날 저희 집에도 그 사람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식사를 하다 제가 없는 틈을 타 제 임신 사실을 알렸고

제 핸드폰을 가져가 제 친구들에게도

나 임신했다~~~ 니들도 얼른 혼수 준비하삼

이라는 식으로 카톡을 주고 받았더군요.

나중엔 제가 저런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닌줄 아는 친구들이

남자친구라는걸 알았지만,

 

그 전에 제가 혹시나 친구들에게 얘기 하려거든 하지마라

내가 직접 얼굴 보고 할테니 절대 하지마라 고 했지만

제 입장은 싹 무시한채

참 장난처럼 보내놨더군요..

그걸 확인하고 화를 내봤지만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았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큰 사건인데

이런 일을 이렇게 카톡으로 성의 없이 보내고 싶지 않았고

친한만큼 얼굴 보고 직접 만나 얘길 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내가 지금 화가 나는거다.

왜 내 말을 무시하고 이렇게 장난식으로 얘길 해버렸느냐고 하면

넌 니 친구가 중요해? 나랑 결혼 하는게 중요해? 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얘길 해도 못알아 듣는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를 하는건지 돌아오는 대답은 저 말뿐이였어요.

이때 접었어야 하는건데... 제가 참 모지랐네요.

 

 

 

그렇게 멍청하게 한고비를 넘기고

한동안은 참 행복했습니다.

호르몬 영향때문인지 회사에서 계속 스트레스 받아

더 예민해지고 심하진 않지만 입덧까지 와서

피곤하고 힘들긴 했지만 틈틈히 초음파 사진도 보며

병원에도 가서 아기 자라는 모습도 보고

태명도 지어 불러주며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워낙에 애정표현도 별로 없이 무뚝뚝한 성격에

장난도 많이 치는 편인데,

어느날 뭘 물어봐도 어.  이 대답만 하면서 또 장난을 걸더라구요.

그래서

나 사랑해요?? 하니까

아니. 이게 지금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그런거에 넘어갈거 같냐?

하더라구요..

 

 

평소에도 서운할텐데 임신까지 하고 예민한데

나 사랑 안하면서 결혼 왜 하려고 하냐니

물러줄수 있냐더라구요.

그래서 물르고 싶으면 빨리 말해라, 물러주겠다 했더니

넌 뭘 믿고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냐녜요.

제가 그 사람 아니면 결혼도 못하고 거지처럼 살것 같아 보였나봐요.

아이가 생겼으니 너랑 살아준다 라고 선심쓰듯 결혼 하는건데 제가 눈치가 없었나봐요.

또 자기는 장난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서 화를 내고 ..

하도 서운해서 그런다고

사랑한단 말 겨우겨우 졸라야 한번 해주나,

들은적이나 있는지 기억도 안난다고 하면

일이나 해라 하고는 제가 먼저 연락 할때까지 연락도 안합니다.

 

 

 

 

그리고는 일요일에 참 별것도 아닌 일로

갑자기 전화해서 화를 내며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며 욕을 퍼붓길래

하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나는 말도 못하고 사느냐고

당신처럼 쌍욕을 하는것도 아니고 나쁜 말을 담은것도 아닌데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느냐고

내가 당신한테 욕이라도 했냐고

오히려 당신이 지금 날 얼마나 만만하게 생각하면 이런 일로

나한테 다짜고짜 전활해 이 난리를 치냐니까

야 끊어 하고선

카톡으로 둘다 다시 생각좀하자 라더군요.

뭘 생각 하냐, 아이 키우는거 다시 생각 하자는거냐 했더니

전부다 라고 하더라구요.

생각 좀 하자면서 또 일,이주씩 시간끌어가다가

아이 지울 시기 놓치면 그때 울면서 어쩔 수 없이 키울거냐니까

야 그냥 지워 라고 왔네요.

그말 후회 안하죠? 라니

그려

하고 오고는 연락 한통 없습니다.

 

 

 

저도 참 미친년이라지만

저렇게 지 새끼 아무렇지도 않게 지우라고 하는 놈도 멀쩡한건 아닌것 같아

참 소름이 끼치더라구요.

아무리 화가 많이 나고 눈 앞에 뵈는게 없을지라도

해선 안 될말과 해도 될 말이 있다 생각하는데

그 정도를 넘은것 같아서 원망스럽네요.

 

 

나를 귀히여겨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나도, 이 뱃속의 아이도 전혀 귀하게 여겨주질 않네요.

천륜이라더니 그 천륜 어디서 갉아먹고 왔는지

이렇게 쉽게 끊어질거였으면 진작에 고민도 하지 말고 지우라고 하지

태아 팔 다리 뽈록 튀어나온것까지 보고 심장소리까지 들은 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네요.

병원 한번도 같이 가준적 없이 초음파 사진 딱 한번 보고

무슨 느낌이 들까 싶겠지만요..

 

어제 오늘 가만히 생각을 해봤지만

도저히 그 사람과 다시 엮이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나 혼자 이 아이를 낳는다쳐도

그 사람과 닮은 얼굴과 성격을 지켜볼 자신이 없네요.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쳐요..

그 인간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히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닮은 아이가 날 보며 웃고 얘기 한다는게 .................

애는 또 무슨 죄예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지금 10주까지 함께 있던 이 아이를 이렇게 지우자니

사실 눈물부터 납니다.

가만히 있어도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지고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파요.

차라리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요.

 

어떻게 키울까, 남자아일까 여자아일까

남자아이면 이렇게 여자아이면 이렇게 키워야지

날 더 닮아주면 좋을텐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등등

하루하루 설레며 건강하게 뱃속에서 잘 크고 있을까

내 뱃속에 아주 작지만 커다란 존재가 있다니

신비하고 벅차고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는데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어요..

 

 

제일 잔인하고 치가 떨리게 무서운건 바로 저예요

아가를 제일 가까이에서 느끼고 함께 했던 내가

콩닥콩닥콩닥 뛰는 심장소리까지 들은 내가

예쁜 태명까지 지어주고 불러주고 했던 내가

이 아이를 이젠 지우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게

제일 무섭고 치가 떨릴만큼 소름끼치네요

 

 

욕하실거 알아요..

욕 먹어도 싸요 괜찮아요.

그냥 어디에도 넋풀이 할곳이 없어

이렇게 익명의 힘이라도 빌려 주절주절 써보네요

다른 사람 만나 낙태녀와 결혼 하게 하는 일은 없을거예요.

이젠 무섭네요..

남자도 저도 다 무섭고 이게 다 무슨 소용있나 싶어요.

사랑이고 뭐고간에 다 아무 소용 없네요.

오늘 하루 눈뜬 제 현실이 이렇게 원망스러울줄이야..

갑자기 눈먼 사람이 차로 날 치고 가버렸음 좋겠고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이대로 휩쓸려가고 싶어요.

끝까지 이기적이게 지 스스로 목숨 끊을 자신이 없어서

이런 생각만 하고 있네요..

한심하고 참 더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