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시가행진, 역사는 40년 전으로 후퇴했다.

참의부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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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체를 저는 대한민국 해병대 요원으로 보냈습니다. 특별히 국가관이 투철하여 장기복무를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지금도 그런 군인들이 많겠으나 당시 저의 상황은 군대가 생계를 해결했던 직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거의 매년 7~9월이 되면 아주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하사관시절 DI교육이란 걸 받았습니다. 이 교육은 신병교육대나 하사관학교, 또는 방위병, 실역미필자들에게 군인 기본교육을 시키는 교관이 되는 교육입니다.

 

선생님이 되려면 사범대를 나오고도 교생실습을 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사관이 되기 위한 모든 교육을 다 받았음에도 다시 교관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군대생활 상당시간을 교육대 교관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력 때문에 저는 매년 10월 1일에 있는 국군의날 시가행진 대원으로 선발된 군인들 교육도 시켰습니다. 교육만 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시가행진 대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7.8월… 올해 여름은 뉴스에도 계속 보도된 대로 유례없는 더위에다 유례없는 열대야 기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잠 못 드는 여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군대생활을 했던 70년대라고 달랐겠습니까? 여의도 5.16광장… 지금은 여의도 공원이지요. 그곳을 공원이 되기 전에 잠시 (박정희 죽은 뒤) 그냥 여의도 광장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박정희 시절에는 5.16광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5.16광장이 국군의날 시가행진에 나서는 군인들의 훈련장이요. 숙소였습니다. 7.8월 더위에 아스팔트가 끝없이 깔린 광장… 하늘에선 햇볕이 찌는 듯이 내리고 바닥에선 아스팔트에서 반사되는 복사열이 불타는 곳, 그곳에서 하루 8시간 내내 시가행진 연습 제식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바닥이 햇볕에 달궈져 뜨거워진 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훈련 중에 가장 하기 싫은 훈련이 제식훈련임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기억을 더듬으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신병도 아니고 실무에서 근무 중인 군인들이 7월 15일 경에 소집되어 10월 1일 행사를 마칠 때까지 무려 80일 가까이를 하루 8시간 행진을 위한 제식훈련만 내리 한다는 것...그런 고생의 결과를 내보이는 것은 단 하루입니다. 행사 당일 대통령 앞에서 하는 열병과 분열, 그리고 시가행진 서너 시간… 이걸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면 포상휴가 열흘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1970년대 제가 겪었던 고생들을 했을 군인들을 보았습니다.

 

'퇴행의 역사'라는 말들을 하는데 2013년 10월 1일 해가 지는 지금, 저는 우리역사가 무려 40년을 퇴행했구나 하는 것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우리 젊었을 때 군인들은 가난하고 못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집이나 군대나 다 같이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군대 말로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어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모두가 귀하디 귀한 애들입니다. 아들 하나 아니면 둘인 금쪽같은 애들입니다. 배곯아본 적 없고, 맞아본 적 없는 애들입니다. 그런 애들이 지난 7.8월 그 된더위에 했을 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요즘도 텔레비젼을 통해 북한 군인들의 열병이나 분열행사를 종종 봅니다. 하지만 그걸 볼 때마다 '아! 아직도 저러고 사는구나'하고 혀를 찹니다.

 

이는 이렇게 공개적 행사를 통해 무력시위를 하는 나라일수록 내적인 힘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약한 힘을 외부에라도 강하게 보이려고 온갖 무기들 다 동원하고 장병들 동원하여 '우린 이런 힘이 있다'고 시위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는 우리도 그랬습니다. 당시는 북한과 극한대치를 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에게 '우리에게 이런 힘이 있으니 까불지 마라'라는 시위용 열병행사가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우리나라는 이런 공개적 무력시위를 하지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하지 않아도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 군대강국임이 전 세계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피츠나 발발이 같은 몸집이 작은 개는 낯선 사람이나 물체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며 죽어라고 짖습니다. 하지만 불독이나 세퍼트 같은 개는 웬만하면 짖지 않습니다.

 

개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기기 힘든 적이라고 생각하면 더 크게 짖습니다. '나도 이렇게 힘이 있어'를 내보이고 싶은 본능입니다. 불독이나 세퍼트는 웬만한 적은 다 물리칠 수 있으므로 자기에게 직접적 해를 끼칠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짖지 않는데 스피츠나 발발이 같은 개는 자기보다 큰 동물이나 사람, 물체가 다 자기를 해칠 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짖는 것이죠.

 

북한이 지금도 1년이면 여러차례 공개적 열병행사를 통해 무력시위를 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전 세계가 거의 적으로 둘러싸인 나라, 우방이라곤 중국 러시아… 거기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서 국민들의 삶이 궁핍합니다. 이런 나라는 필연적으로 국민 일체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군인들을 동원, 공개적 무력시위를 하며 국민일체화를 노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하던 시기가 그랬죠. 내적으로는 국민 통제의 수단을 법과 제도가 아니라 사찰과 강압이라는 무력으로, 외적으로는 공개적 무력시위를 통해… 그렇게 국민들의 일체화를 노렸습니다. 전형적인 경찰국가 시스템으로 통치제도가 작동한 것입니다. 그랬던 나라가 민주화가 정착되고, 정착된 민주화 제도 아래에서 각자가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배가되어 오늘의 사회를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우리나라가 다시 예전의 경찰국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검찰총장이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자행한 사찰을 통해 모가지가 날아가고, 이런 현실을 홍위병들을 통해 정당화하더니 군인들을 시가지에 내보내 열병과 분열, 행진을 하게 함으로 대외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는 나라… 2013년 대한민국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군인들이 시가행진을 하는 도로변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환호하는 국민들… 이들 중 자진하여 나온 인원이 얼마나 될까요?

 

서울신문은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도하며 <국군의날 시가행진 지켜보는 내내 ‘뭉클’>이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정말로 가슴이 뭉클했습니까? '쯧쯧'하고 혀를 차지는 않으셨습니까? 평소에도 차가 막혀 하루종일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도심거리를 모든 차량을 막고 걸어가는 군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첨병으로 자랑스럽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아! 오늘이면 이 지겨운 훈련도 끝나는구나 했을까요?

 

국민이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정부가 들어선 지 25년… 우리에게 지난 25년은 이제 정말 잃어버린 25년이 되었습니다. 이 25년을 다시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국민을 강압으로 통치하려는 세력에게 다시는 권력이라는 힘을 쥐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저 시가행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됩니다.

 

▷ 임두만〈네이션코리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