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1. “속으로 격렬한 진실 때문에” ‘역사의 사람’이 된 노무현 ⑴

참의부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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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한 세력의 두려움과 사회적 모순구조가 부른 참극

 

세상의 모든 철학·종교·문학·사상·예술·정치·경제 등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있을 터이다. 사람이 주인인 인간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은 모두의 꿈이고 이상이다. 인류의 문명화 과정은 바로 이 가치의 구현을 위한 줄기찬 진보이자 투쟁의 역사였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불리하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볅은 늘 너무 높고 비정했다. 야만적이기까지 했다. 영악하게 처신하여 현실적인 성공을 거둔 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바보로 치부하고 비웃는다. 하지만 민중은 그리고 역사는 그들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모름지기 선진국, 아니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지고 특히 정치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 재벌권력 같은 권력집단의 탈법성이 사라져야 한다.

 

명색이 민주공화국이라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전직 대통령이 평화적 정권교체에 따라 권력을 넘겨주고 귀향한 지 1년여만에 후임 권력의 야만적인 정치보복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면, 그런 사회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본질인 민주공화제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욱이 노무현(盧武鉉)이 대통령 재임시 권력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찾아주기 위해 고삐와 제갈을 모두 풀어주었던 검찰·세무·언론권력이 합작하여 그의 정적의 사주를 받아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니! 서양 중세에 왕권과 교황권이 합작하여 자행한 마녀사냥의 복사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며칠 뒤 한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9퍼센트가 “노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을 당했다” 했고, 이 비극의 가장 큰 책임은 검찰(56.3퍼센트), 언론(49.1퍼센트)에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56퍼센트에 이르렀다. 이는 공권력과 언론권력이 합작하여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여기는 민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야만사회, 전제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난 것이다.

 

이승만 정권하에서의 백범(白凡) 김구(金九) 암살과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사법살인 그리고 4·19민중혁명 당시의 시민·학생 학살,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장준하(張俊河) 암살, 김대중(金大中) 납치 살해 미수, 인민혁명당사건(人民革命黨事件) 조작으로 무고한 시민들 처형, 전두환 정권하에서의 광주시민학살과 박종철·이한열 살해, 노태우 정권하에서의 학생·노동자들의 분신·투신자살에 이르기까지 숱한 독립운동지사, 민주화운동지사들이 참변을 당했다. 이명박 정권에 와서는 급기야 역대 대통령 가운대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던(2007년 압승했다는 이명박의 득표도 200년 노무현의 득표보다 50만표가 적었다) 전임 대통령이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린 참사는 우리 나라의 사회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가를 말해준다. 이는 민주공화정의 심각한 위기이자 왜곡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출한 민족의 지도자 대부분이 탐욕스럽고 타락한 수구권력에 의해 타살되거나 비운의 생을 접었다. 최제우(崔濟愚)·전봉준(全琫準)·여운형(呂運亨)·김구(金九)·조봉암(曺奉岩)·장준하(張俊河)·조용수(趙鏞壽)·김용원(金鏞元)·서도원(徐道源)·박관현(朴寬鉉)·노무현(盧武鉉)이 그들이다. 이들의 죽음에는 사건에 따라 사주자와 하수인이 없지도 않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사회의 ‘구조’에 있다. 조선왕조 인조반정(仁祖反正) 이래 지배권을 형성해온 노론(老論)계열의 수구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도전자들과 저항세력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억누르고 제거해왔다. 한국사회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모순 ‘구조’가 이들의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한 심리학자가 ‘악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과정을 묘사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노무현이 활짝 웃는 그 순간부터(퇴임 뒤 봉하마을 거주 ㅡ 필자) 노무현이 행복한 표정을 지은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한 순례행진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그의 부활을 막기 위한 공격은 시작되었다.

노무현의 부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파렴치범으로 모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그 어떤 공격을 받고도 불사조처럼 되살아나는 노무현을 영원히 끝장낼 수 있었으며, 도무지 희망을 포기할 줄 모르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시들게 할 수 있었다. 만일 그것이 성공한다면 ‘권력을 쥐면 누구나 부패한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치란 어차피 그런 것이니 속편하게 관심을 꺼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영영 접은 채 각자의 이익만을 탐욕스럽게 쫓을 테니, 기득권세력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었다.

먼지 하나까지 샅샅이 훑고 털어라! 비리사건이 아니어도 좋다. 단지 비리사건으로 몰아갈 수만 있으면 된다.

반격할 틈을 주지 말고 압박해라! 그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괴롭히면 거짓자백이라도 할 지 모른다.

망신을 줘서 창피하게 하라! 그는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여론몰이로 파렴치범이라는 낙인만 찍을 수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누가 알겠는가.

봉하마을의 노무현 저택을 아방궁이라고 왜곡함으로써 포문을 연 수구보수 세력은 2008년 6월 경부터는 본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은 노무현이 무단으로 국가 기록물을 가져갔다면서 그를 도둑놈처럼 묘사했고,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검찰 조사에 착수했다.〃- 김태형,『심리학자의 눈으로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210쪽~211쪽, 예담, 2009년.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었을 것이다. 마치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사나운 독수리에게 생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아픔을 여러 날 겪었다. 영욕의 아픔보다 이제껏 지켜온 삶의 가치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아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5·18광주학살을 자행하여 권력을 탈취한 자들, IMF외환위기를 불러온 자들, 대통령 선거에서 수천억원의 불법자금을 거래한 자들이 여전히 건재한 나라에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전임 대통령이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방식’에 의해 갖은 핍박과 수모를 당하게 되자 벼랑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면면한 한국현대사의 모순구조가 다시 작동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가해진 정치보복의 양상은 야만의 극치였다. 그 본질 역시 어디까지나 한국사회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모순구조에 있었다. 김대중·노무현에 이은 또 다른 민주진보정권의 탄생은, 잃어버릴 것이 많은 저들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몽일 터였다. 하루 수백 수천명씩 퇴임 대통령을 만나보려고 몰려드는 ‘봉하마을 현상’은 저들로서는 두려움을 넘어 공포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치명적인 현상이라고 느꼈을 것이고,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깊은 상실감과 원한도 작용했을 것이다. 저들은 2008년 여름의 ‘촛불항쟁’과 진원지를 엉뚱하게 봉하마을로 지목하던 터였다.

 

● 운명(運命)과 운명(殞命) 사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2008년 5월 22일 밤,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은 노무현은 만감이 엇갈렸을 터이다. 가족과 동지들을 향한 미안함, 국민들을 향한 안타까움, 못다 나눈 사랑에 대한 미련…. 유서에 “아무것도 원망하지 마라” 했으니 자신 역시 원망이나 분노 따위는 버렷을 것이다. 그날 밤, 그는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은” 햄릿의 심정이었을까?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노도처럼 밀려오는 고난에 맞서 싸워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남은 것이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잠들면서 인간의 오만 숙명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최상의 것이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아마도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괴롭다.〃-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위대한 패배자』, 390쪽, 을유문화사, 2006년. 

 

조선 인조(仁祖) 재위 5년인 1627년, 후금(後金)이 침입한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뒷날 북벌이 추진될 당시 최효일(崔孝一)은 기개 높은 선비였다. 그는 북벌군이 진공할 당시 현지에서 봉기하고자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잠입할 것을 자원했다. 최효일은 출발하기 전날 밤에 시 한 수를 읊었다.

 

˝萬古爲長夜
何時日月明
男兒一掬淚
不獨爲金行

만고에 기나 긴 밤인데
어느 때에나 해와 달이 밝을 것인가
남아가 한번 눈물을 훔친 뜻은
금일의 행차를 위함만은 아닐세.˝

 

그날 밤 노무현의 심사(心事)가 이렇지 않았을까?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면서 최후의 눈물을 훔치며, 짧은 그러나 깊은 의미가 담긴 유서를 쓰지 않았을까? 아니면 대통령 후보경선의 밤과 대선 개표 날밤에도 태연하게 잠을 잤다는 걸로 봐서 그 밤도 그냥 푹 잤을지 모른다. 아니면 죽음의 공포와 삶의 허망함이 중첩되어 한동안 망설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운명’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운명’은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의 집합이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의 후예로서 형제들의 모든 재산을 털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생애를 조국독립에 바친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이 평생의 지기이며 열렬한 독립운동가인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의 비보를 듣고 “운(運)이며, 명(命)이여” 하며 긴 밤을 지새웠듯이, 그날 밤 노무현도 자신에게 닥친 운명 앞에 이러지 않았을까?

 

그는 운명을 ‘체념(諦念)’하고 있었다. “도리를 깨닫는 마음”의 체념 말이다. 그에게 운명은 ‘자연의 한 조각’으로 표현되는 생과 사의 그네뛰기 방식을 넘어선다. 항상 정직한 그러나 힘겨운 길, 원칙과 소신의 가시밭길을 택했던 그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명예이고 자존이었다. 명예와 자존은 노무현이 지키고자 했던 최후의 보루였다. 이것을 운명이라 여겼고 마침내 체념의 길로 들어섰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