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장정훈201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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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뉴욕도 아니고, 런던도 아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그것부터 참신하다. 게다가 우리가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 그 도시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을 논하는 영화라니. 영화보기 전 전문가들의 한줄평을 봤다. 씨네21의 송효정씨는 '아르헨티나판 건축학개론'이라고 했다. 오호라. 그렇구나. 그래서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이다....

 

오랫만에 극장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코를 골았으면 어쩌지. 창피한데. 여하간 그만큼 이 영화는 물흐르듯이 흘러흘러가는 소소한 영화다. 건축학개론이라는 말을 차라리 듣지 않았어야 하는데. 영화를 보기 전 갖는 기대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랄까. 영화야. 니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된 기대가 문제였지.

 

여튼, 영화자체는 말한 것처럼 참으로 소소하다. 처음에 부에노스아이레스라고 말하며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이 도시는 '우리의 서울'과 크게 차이가 없다. 온통 회색의 도시. 피곤한 사람들. 팍팍한 도시의 삶. 아무도 보지 않는 건물의 측면에다 불법으로 창문을 내고, 도시의 삶을 구경한다. 나만의 월리를 찾는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영화 마지막에는 그 회색빛의 도시가 총천연색의 컬러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변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색채가 덧입혀지면서, 회색의 도시는 낭만의 도시로 변모했다. 단절된 삶 속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소통. 그리고 실패의 흔적들을 치워내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사랑. 분명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다.

 

건물 시멘트벽을 보면서 답답한 기분을 느꼈다면, 퇴근길 지하철에서 콩나물처럼 들어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막막하다면, 이 영화를 볼지어다. 다만 나처럼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보지는 마시길. 그리고 생각보단 많이 소소하고, 생각보다 러닝타임이 길다는 것도 충분히 감안을 하고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