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없는 과잉된 공권력과 그 이면의 불편한 진실들...

무식과단순한자가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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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부터 광화문 외 서울 도심지역을 보면 마치 장벽처럼 길가에 나열된 경찰버스차량들을 보게 된다. 분명 현행 법 상, 5분 이상 차가 도로에 정지되어 있으면 주차로 간주된다. 그리고 도심 지역에서 주차는 불법이다. 경찰은 공무집행이라는 명목하에 불법적으로 버스를 주차하는 것을 마다 하지 않는다. 법을 지키고 준수하고 집행해야 하는 치안기관이 이렇다면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모습은 여전히 불편한 전 근대적인 행정사고이다. 여전히 국민을 신민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공공력의 행사면 시민의 권리나 법적인 약속 따위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저급한 사고. 하기사 현행 6공화국(공화국은 헌법개정에 의해 세워지는 순서대로 넘버링하는데, 현재 정권은 87년 민주화 이후 마지막으로 개정된 6공화국 헌법에 의해 세워졌고, 김영삼 정부 부터 정부지칭을 공화국이라 표현하지 않게 되었음) 이전의 헌법이 불과 30여년 동안 9차례 개정되었다고 해서 헌법학자들은 자조섞인 말로 "누더기 헌법"이라고 한다. 이러니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할까?

 

 시위에 대한 법적 절차가 있듯이, 반대편에서 시위진압 및 라인설정을 위해 출동하는 경찰 역시 적법한 절차와 현행법에 의거해서 그리고 적어도 시민들의 보행권 및 안전하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권리를 박탈하지 않는 선에서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시위봉쇄가 되었든 이를 대기하기 위해서 시위 몇시간 전부터 장사진을 친 버스들이 도로에 주차되어 있다 보니, 거기서 버스를 타는 시민들은 죽을 맛이다. 법적으로 도로에 나와서 버스를 태워주는 건 불법인데 이렇다보니 어쩔 수 없이 버스기사와 시민들은 법을 어겨야 하는 웃지 못할 참극이 지속된다. 그렇다면 경찰은 불법 주정차 단속을 어떤 이유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본을 보이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불법까지 행하게 하는 건 과잉이란 생각을 하진 않는가?

 

 이건 그저 하나의 작은 단면 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사고가 대한민국 전역에 만연해 있다. 표면적으로는 근대적인 모습이 갖추어 진 듯 보이지만, 실재로 아직 우리가 제대로된 근대화된 민주사회를 이룩한 건 체 30년이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연령 대로 이른바 "전후세대 또는 기성세대"위로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시민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은 근대적 민주사회에서 그 주체로써 자율적인 권리와 사회에서 각자의 책임을 동시에 부여 받는다. 그 책임은 바로 준법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정부라면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준법을 할 수 있도록 되도록 공권력을 과잉되지 않게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근대적인 민주시민사회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민주화 이후 권위적인 사고가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준법정신에 대한 의식은 확대되었지만 고령화로 인하여 여전히 전근대적인 농촌사회에서의 윗 어른에 대한 공경과 순종에 익숙한 세대들에겐 스스로 자립적인 사고와 책임의식이라는 건 설명하기도 이를 체험하게 하기가 무척 어렵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념갈등이라는 것에서 이념은 허상이고, 실제로는 근대적 사고와 전근대적 사고의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째든 이런 상황이 그리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만은 사실이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좀더 근본적인 불편한 진실이 여기에 숨겨져 있다. 바로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느끼지도 못하지만 이미 우리 깊숙히 들어온 "분단"의 부작용이다. 즉 여전히 정부가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통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은 "안보"뿐이다. 사실 "안보"라는게 관념적인 생각이지 한번도 법적으로 이것이 어떤 의미와 함의를 지니는지, 그리고 이런 개념에 대해서 어떤 정부도 시민사회와 제대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끈 적이 없었다.

  그저 "안보"의 아젠다는 정부가 틀어 쥐고 있을 뿐, 시민은 수동적으로 그것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이렇다 보니 그것이 권위정부든 아니든 간에 "전가의 보도"와 같이 매우 매력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실패와 여론무마용으로써 "북한"이란 "안보"카드는 너무나 적절하다. 그러써 근대적인 사고도, 절차도 모조리 무시해도 될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않은가? 결국 분단의 해소 없이는 우리는 30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여전히 현실로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이른바 "보수정권"이라 할 수 있는 이명박정권과 현 박근혜정권 시기는 "분단"의 부작용이 얼마나 우리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가라는 것을 철저하게 일깨워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버스는 도로주변에 주차되어 있을 것이고, 시민들은 제대로 된 권리행사 없이 불법을 행하며 버스를 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찰력을 투입하면 도데체 그 많은 유괴 또는 행방불명된 아이들 및 사람들은 어찌 찾을 것이며, 미제된 사건은 언제 풀 수 있을까? 10년전 "살인의 추억"에도 나왔듯이 80년대 시위와 등화관제 등으로 경찰력이 최고의 과잉을 보일 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요즘 갑자기 증가하는 강력사건들을 보면서 이에 대한 오마주는 아닌지 섬뜩할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