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일지) *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irish15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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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파스칼)라고 했다. 효율성과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지구 전체가 광속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이 현란한 디지털 시대에 ‘느림’이 삶의 화두다.

 

우리는 ‘빠름’을 강조하며 살다가 그 ‘빠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소용돌이에 자기의 본성과 누려 마땅할 한가로움과 여유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효율성과 속도를 섬기는 현대의 삶이 과연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던가? 우리는 그 현기증 나는 빠름 속에 인생의 가치를 놓치고 방향 없이 표류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빠름은 더 빠름을 부르고 그 빠름의 부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 어느덧 제 삶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노예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가? (-)

 

숨막히게 질주하는 삶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보자. 그리고 빈 공간, 틈새, 여유, 한가함, 일정한 거리감, 느긋함, 고요함, 부드러움, 안식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껴보자.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

 

배달초기에는 무척 바쁘게 뛰어 다녔다. 시간도 단축되고 아무 생각없이 몸의 행위에 몰입하는 쾌감이 있었다. 항상 서둘렀고 단조롭던 날들이었다. 길에서 잠시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조차 아까워 정신없이 배달에만 집중했다. 주위를 살펴볼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아낀 시간들을 따로 요긴하게 쓰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습관적인 것일 뿐이었다.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때때로 이런저런 실수와 아찔한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육체적인 피로도 컸다. 이런 단순한 일과가 반복되자 점차 지루하고 지치기 시작했다.

어느날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한 동료가 외쳤다. “형! 왜 그렇게 바빠!? 그게 좋아?..”

 

주말이면 동료들과 의례 술자리를 가져야 한 주의 일과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것은 문장의 마침표와도 같았다. 주말이 가까워오면 서둘러 약속을 했고 한 주라도 그냥 지나칠라치면 왠지모를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있었지만 여유롭지 않았던, 딱히 바쁜 일 없이 늘 시간에 쫓기는 듯한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이었다.

어느날 문득 생각했다.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해도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도, 글이 써지지도 않았다. 매일 새벽 마주치는 풍경을 바라보되 주의깊게 살피지 못했고, 경험하되 오롯이 느끼거나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글은 책상에 앉았을 때부터 써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여유없음은 시간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2

 

그 이후 속도를 버리고 습관적인 일상에 변화를 주었다.

속도를 버리자 배달 중에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의미들이 새삼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그때그때 메모를 하고 책상에 앉아 생각해 놓았던 것들을 정리해 써나가기 시작했다. “글은 생각이 시작될 때 쓰기 시작하는 것이고, 책상에 앉아서는 그것을 정리해 나가는 것” 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주말에는 특별한 일 외엔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았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을 하고 산책을 했다. 생활에 여백을 가지니 마음 속에 충만감이 느껴졌다.

 

 

#3

 

지금은 바쁘게 움직이는 동료들을 볼때면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든다. 단순반복적인 일에서 오는 지루함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동료들과의 짧은 대화는 물론,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실 여유없이 숨가쁘게 서두르는 모습들은 바로 지난 날의 나의 모습이었다.

 

지금 나는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고, 커피를 여러 잔 마셔도 배달시간이 결코 늦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작은 설렘이 있고 익숙한 풍경들에서 매번 또다른 새로움을 발견하곤 한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이다..

 

 

 

 

 

* 배달 중에 어느 길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스마트폰이었다. 근래들어 자주 줍는다. 벌써 4개째다. 파출소에 갖다 주려는데 마침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처에서 만나 직접 전해주었다.

“..저기 연락처라도.. 사례라도 해 드려야...”

“됐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앞으론 간수 잘 하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

제법 쌀쌀한 날씨에 둥근 달만 휘영청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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