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후회(後悔) - 1화

용용이2013.10.18
조회1,038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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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後悔) 

by 용용형제 (Copyright MoonS All Right Reserved)

 

 

 

프롤로그

 

언제나 그렇듯 삶이라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과거에 얽매여 있거나, 혹은 미래를 지향하거나,
어찌됐건, 우리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 목을 메고 시간이란 주인에게 개처럼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여기 ‘김준식’ 역시.
그를 다른 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럭저럭 성공해 보일지도 모른다.

적당하게 유복한 집에서
적당하게 공부하여
적당한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나름 대기업이라 하는 ‘대한무역’에 입사하여 10년째 수입 통관 업무를 담당해오고 있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건가?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행복했던 가정은, 부모의 황혼 이혼으로 금이 갔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두뇌는 사회와 담배에 찌들어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 마냥 버벅 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적성과 안 맞는 직업을 택해서 아둥바둥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왔지만,

글쎄,
결과는 승진을 2년이나 누락했다.
그래,
결과는 삶의 회의감에 찌들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뿐이다.

 

맞아.
행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라고?

 

역시 글쎄,
행복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깐,
삶의 후회에 대한 결과 역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깐,
준식, 그 자신이 불행하다고 하면

그는
불행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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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어느 추운 12월 31일

 

 

`대한무역’ 이라 적혀있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사무실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는 김준식.
그의 동료 송호영(35), 다가와서 준식을 툭 치며 말을 건다.

 

[준식! 축하해!]
[뭐가?…]

 

준식,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게시판 못 봤어? 이번에는 승진 했두만….한 턱 쏴라….]
[지.랄…..놀리려면 가라….]

 

호영, 개의치 않고 준식 곁에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면서

 

[그건 그렇고…그 멕시코 수입물품 세관 통과됐냐?…고객사에서 난리다…난리…빨리 확인 좀 해줘..]
[고객사 어디?]
[어디긴 어디야….멕시코 옥수수캔! 헹가래 유통 이잖아…]
[아….옥수수 캔…..헹가래…..]

 

준식, 귀찮은 듯 마우스를 클릭 클릭 하고는

 

[3일전에 내가 이미 처리 했구만… 왜 난리야….]
[그래?…..근데 왜 아직 못 받았다고 하지?…]
[아…씨…..연말이라 밀리나 보지….좀 기다리라 그래….]

 

호영,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쪽으로 걸어가다가 준식을 다시 돌아본다.

 

[아 맞다….이따 동기 회식 올 거지?]
[몰라…]

 

준식은 동기회식 따위 영 관심 없는 듯 하다.

 

[꼭 와라….니 승진축하 겸해서 모이는 거니깐…]

 

준식은 귀찮은 듯 가라고 손을 휙휙 내젓는다.
호영은 멀리 자신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간다.
준식은 걸어가는 호영을 잠깐 바라보다가 여전히 일에 집중 못한 듯 책상에 놓여진 달력을 본다.

 

<2013년 12월 31일 – 동기회식>

 

준식, 한참 허공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짓는다.

 

‘언제부턴가….뭔가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나는….나는….사는게….재미없다….시간이 나에게만 멈춰있다….’

 

준식의 귓가에 굉장히 느린 시계초침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째….깍…..째….깍….째….깍….째…깍

.

.

.

- 밤, 양재동 고깃집

 

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 목소리로 시끄럽다.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길게 이어 붙이고 두런두런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한다.
대부분 검정색 하의에 흰색 와이셔츠. 전형적인 직장인들. 전형적인 회식 자리 모습.
준식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취한 듯 고개를 숙이고 소주잔을 들이킨다.
이 자리에서 겉도는 느낌이다.
이 때, 테이블의 중간쯤에 앉아 있던 준식의 직장 동기회장, 비틀비틀 일어나서, 박수를 두어 번 치고 이목을 집중시킨다.
준식도 고개를 돌려 회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항상 웃는 낯으로…뭐가 저렇게 즐겁지? 가식인가? 하긴…완벽하게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으니까….’

 

동기회장은 웃는 표정으로 계속 박수를 친다. '여길 좀 봐봐! 얘들아!'라고 말하는 듯, 뭔가 즐거운 듯.
준식은 무시하듯 고개를 돌려 다시 소주를 들이킨다.

 

‘뭐가 그렇게 즐겁냐? 나도 좀 알려줘라....’

 

[야야! 주목! 술잔들 들어주시고~ 이 동기 회장이 한 말씀 하겠습니다. 흠흠 일단, 올해도 무사히 넘겨준 대 28기 동기 여러분들 축하 드리면서~ 흠, 오늘 이 자리는 트~윽~별히! 2013년 송년회 겸! 드디어! 정말 드디어 승진한 우리 동기......그...]

 

동기회장의 말이 갑자기 끊기자, 다들 술잔을 든 채로 물끄러미 준식을 바라본다.

 

[그…아...취했나?.....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나머지 동기들은 ‘준식이….준식이…’ 하며 작은 소리로 동기회장에게 알려준다.

 

[아....준식이....우리 이준식이!]

 

준식은 순간 인상이 구겨지며, 앞에 놓여있는 물수건을 동기회장에게 던진다.

 

[김준식! 김준식....! 이 자식아!…]

 

나머지 동기들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웃는다.

 

[알지~ 김준식... 장난친 거고! 암튼! 우리 이준식이 아닌! 김준식 동기께서 드디어 승진한 날 이기도 합니다. 자자... 비록 좀 늦긴 했지만,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

 

능글맞게 넘어가는 동기회장의 외침에 다같이 ‘건배!’ 라고 외치고, 웅성웅성 준식에게 '축하한다' 라는 말을 전한다.
준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썩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축하를 받아준다.
다시 삼삼오오 서로의 얘기로 산만해지는 분위기.
준식은 홀로 소주를 들이키며, 옆에 앉은 친구이자 회사동료 호영에게 말을 건다.

 

[호영아....내가....그렇게 존재감이 없냐?.....]
[왜 갑자기 존재감 타령이여...]
[아....씨...발...동기회장이라는 게 내 이름도 모르고.....또....]
[또 뭐?…]
[...... 니들보다 2년이나 늦게 승진하고.….]
[이 년이 또 2년 타령이네....덜 취했냐?.....술이나 마셔.....]

 

호영은 위로하듯 준식에게 소주를 따라주고, 준식은 단 숨에 들이킨다.

 

[크.....나의 존재감에 대해 묻잖냐... 애기 좀 해봐...나는! 나는! 씨...발....10년 동안 회사에서 존...나게 쳇바퀴 돌려줬는데....나는! 씨....발.........대체 뭐 한거냐...?]

 

술을 마실 때마다 반복되는 준식의 신세한탄.
호영은 솔직히 좀 귀찮고 지겹다.
뭔가 따끔한 조언이 필요하다.

 

[휴....하긴 니가 회사에서 존재감이 없긴 하지.....뭐랄까....좀 체 나서질 않으니깐...임마...그러니깐....너무 일만 하지 말고, 좀 나서서 얼굴도 알리고 해.... 새꺄... 니 대학 때는 존재감 확실했잖아...]
[대학 때....?]
[2분 벤치.....말야....애들이 니 이름은 몰라도....2분 벤치는 알았잖냐....경영대 퀸카 이하진을 꼬신 그 2분 벤치.....]

 

준식은 갑자기 대학 때 모습이 떠오른 듯, 입을 삐죽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래...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하진아… 네가 나한테 물었었지? 후회하냐고? …’

.

.

.

.

15년 전, 어느 봄 날

 

햇살이 따뜻한 어느 봄 날의 대학 교정.
뒤로 제법 큰 경영대 건물이 보이고, 그 앞 잔디밭에 일정하게 간격을 둔 벤치가 있다.
다른 벤치는 모두 비었고, 가운데 한 벤치에만 대학시절 준식과 ‘경영대 퀸카’ 라고 불리던 ‘이하진’이 조금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아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하진과 그런 하진을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는 준식. 그런 준식의 눈길이 이상했던지, 하진은 책을 보다 힐끔힐끔 준식을 의식한다. 예쁘다.
준식은 개의치 않고 하진을 계속 쳐다보다가, 하진이 이따금 시선을 의식하면 태연한 척 책을 보는 시늉을 한다.
한 동안 그렇게 둘은 앉아 있다가,
하진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옆에 다른 벤치들은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려고 한다.

준식도 따라서 황급히 일어난다.

 

[잠깐만요!]

 

하진은 음악소리 때문에 준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준식은 다가가서 하진의 어깨를 툭툭 친다.
하진은 조금 놀란 듯 돌아본다. 이어폰에서 계속 들려오는 사랑노래.
준식은 입 모양을 크게 해서 '잠.깐.만.요' 라고 말해준다.
하진은 그제서야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고,

 

[네?]
[축하합니다~ 2분을 버티셨어요!]

 

참으로 능청스럽게 말하며 박수를 치는 준식.
하진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준식을 바라본다. ‘뭐지? 이사람?’

 

[사회대...심리학과 1학년 김준식이라고 합니다. 무례인줄 알지만, 그 쪽한테 심리실험을 좀 했는데요...일단 죄송합니다.]
[심리실험이요?]

 

심리실험이라는 말에 관심이 생기는 하진.
준식은 당당하게,

 

[개인영역에 대한 실험인데요....제가 그쪽의 개인영역에 이 벤치... 일부러 침범했거든요....]
[네....그런데요?…]
[근데 그 쪽이 2분이나 버텨주었어요...지금까지 가장 오래 버텨준 사람이 되셨습니다.]

 

준식은 웃으며 다시 한번 박수를 치고는 들고 있던 책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하진에게 들이민다.

 

[2분 시간 내주신 김에,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세요. 이거 설문지 인데요....]

 

하진은 준식이 건넨 종이를 건네받고 살펴본다.

 

[이거 그냥 백지 인데.. 뭘 적어달라는 건지...]
[이름하고....전화번호 좀....]

 

준식은 아무렇지 않게 하진의 눈 앞에 펜을 들이민다.

 

[네?]

 

그런 준식의 행동이 하진은 좀 어이가 없는 듯,
준식은 이 또한 개의치 않고 들고 있던 책을 펼쳐 하진 앞에 들이민다.

 

[저희 과 전공책 인데요..심리학개론.....여기 한번 보세요....]

 

하진은 조금 흥미로운 듯 준식이 들이민 책을 도도하게 쳐다본다.
준식은 책의 한 구절을 펜으로 줄을 치며 소리내어 읽어준다.

 

[자신의 개인영역에 다른 사람이 침범했을 때, 허용되는 시간은 최대 2분 정도이다. 만약 이 시간이 넘는다면, 그건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거나, 호.감.이 가.는 이.성 인 경우 뿐이다.]

 

잠시, 정적.
준식은 하진을 빤히 바라보며,

 

[저는 그 쪽과 관계 있는 사람 인가요?]
[아니요..]
[아~그럼 저한테 호감이 있으신 거군요. 하하하....]
[네?]
 
계속해서 준식의 페이스로 넘어가는 듯 어이없는 하진.

 

[근데....... 저도 그 쪽한테 매우! 호감이 있거든요....그러니깐.....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준식은 참 능글맞다. 
그런 준식이 하진도 싫지는 않은 듯 살짝 웃어보인다.
하진과 준식의 뒤로 바람에 벚꽃 잎이 휘날린다.
그리고 하진의 귓가에 울리던 사랑노래가 들려온다.

.

.

.

.

그렇게 추억은 항상 현실를 잡고 흔들고 또 흔든다.

.

.

.

준식은 한 겨울 차가운 바람을 뚫고 나온 듯, 몸을 연신 떨어대며 비틀비틀 양재역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정말 춥다 추워. 

코트에 목도리까지 둘렀지만, 많이 추워 보인다.
준식은 역사 안 벤치에 털썩 앉아,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얼굴은 술기운에 붉어졌고 넋이 나간 채, 살짝 웃는다.

 

'2분 벤치라….지금 생각해보니 좀 유치하네….'

 

옛 연인 하진의 해맑은 미소가 불연듯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넌 어떻게 살고 있니? 너도 나처럼 꼬인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겠지?...'

 

다시 한번, 끈질긴 스토커처럼 회의감이 밀려들어올 때,

 

띠리리리리


 

열차가 들어오는 신호가 썰렁한 역사 안에 울려 펴진다.
준식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처벅 처벅 스크린 도어 쪽으로 걸어간다.
술 취한 직장인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년의 아줌마. 교복을 입은 학생들.

한 명, 한 명 준식에 눈에 들어온다.

 

'나만 이렇게 사는 건지…인생 이란 게 다 이런 건지…'

 

열차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준식 안으로 들어간다.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에 사람이 별로 없다.
준식은 들어오자 마자 문 옆 가장자리 자리에 털썩 앉는다.
맞은편에 보이는 젊은 커플. 색깔만 다른 같은 목도리를 하고 핸드폰 게임을 하며 장난을 치고 있다.
준식은 부러운 듯,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순간,

준식의 머리속에서 맞은편 커플의 모습이 예전 자신과 하진으로 대치된다.
똑같이 지하철에 앉아 장난을 치던 예전의 하진과 준식의 행복했던 모습.
준식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

.

.

 

5!
4!
3!
2!
1!
땡!

.

.

.

 

젊은 여자의 카운트 소리,

 

'땡!'

 

하는 소리에 맞춰
준식은 화들짝 잠에서 깬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커플,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

 

[동수야...해피 뉴 이어! 드디어 새해 구나! 새해 복 많이 받거라!....]

 

앞자리 커플 중 여자가 자신의 연인을 사랑스럽게 쓰담쓰담 하며 새해 인사를 건넨다.
남자 역시, 그런 연인을 보며 따뜻한 웃음을 짓는다. 그의 눈웃음이 참 인상적이다.
준식, 코트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본다.

 

12시,
날짜가 1월 1일로 넘어간다.

 

이 때, 지하철 문이 열린다.
지하철 밖 표지판에 '수' 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온다.

 

[아…약수역....!]

 

준식은 후다닥, 막 닫히려는 문을 향해 뛰어나가고, 아슬아슬 하게 빠져나간다.
지하철을 허겁지겁 빠져나오자

 

<옥수역>

 

이라 적힌 표지판 전체가 화면에 들어온다.
준식은 순간 표정이 구겨진다.

 

[아..젠장......뭐야…잘못 내렸네...]

 

준식은 허무한 듯 돌아서서 천정을 보며 터벅터벅 걷는다.

 

[새해부터 되는 일이 없구....]

 

라고 혼잣말이 끝나기도 전에,

 

'쿵!'

 

맞은편 걸어오던 사람과 부딪힌다.

 

[아...죄…죄송합니다.....괜찮…?]

 

"아...아니 예요..." 하며 고개를 드는 여자.

 

근데, 분명,
이 여자 하진이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정적.
아니


챠챠챠챠챠챠챠


귓가 들리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

마치, 쳇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같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12월 31일


아니
1월 1일의 어느 추운 날.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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