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추악한 탐욕과 반인륜적 만행:주색잡기로 찌든 독재자의 밤 ④

참의부201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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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행정부와 새누리당, 더 정확하게는 서남수 교육부장관과 박승춘 보훈처장, 그리고 뉴라이트교과서포럼에 의해 조직된 한국현대사학회가 찬양·칭송·미화하기 위해 왜곡·날조·은폐시키려 하는 18년 장기집권 박정희 독재권력의 어두운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김재홍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의 최신 저서《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저자의 직접적 경험과 치밀한 취재를 통해 친일파의 후예, 군사정변 세력이 조작한 잘못된 신화와 삐뚤어진 우상을 깨고 우리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다!

 

◆ 표현과 일상의 자유마저 짓밟은 ‘가위질 정권’

 

박정희 군사정권은 이른바 ‘장발족’들을 한낮 대로에 줄 세워놓고 가위질을 해대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미니스커트가 짧아 보이면 무릎 위 몇 센티미터인가를 자로 재서 허용치가 넘으면 과태료를 물렸다.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치고 퇴폐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경찰관들이 나서서 경범죄 위반행위를 단속했다.

 

소설과 영화에 대한 심의에서는 사회윤리와 풍기문란을 엄격하게 따져 삭제했다. 시는 체제비판이나 허무주의 내용이 담기면 출판을 금지했다. 심지어 불신풍조나 퇴폐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1965년 이후 민주화정부 이전까지 32년 동안 금지곡으로 묶어놓은 대중가요가 840여곡에 이르렀다. 문화적 자유보다는 정권의 주관적 가치에 바탕을 둔 획일적 잣대로 선을 긋는 식의 통제가 횡행하던 시대였다. 국민들의 생각과 문화 양태를 자신의 주관에 따라 획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독재자의 발상이 사회를 옥죄었다. 자율과 다양성이 창의를 만들어낸다는 철학은 없고 오로지 통치자의 생각대로 다스린다는 ‘교도민주주의(敎導民主主義)’만 횡행했다.

 

그렇게 국민들에게 미풍양속을 강요하며 억압했던 박정희 정권의 권력자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는가? 그들의 사생활은 참으로 추잡하기 짝이 없었다. 공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은 고사하고 일반인의 기본윤리에도 못미친 패륜 그 자체였다. 최고 권력자 박정희뿐 아니라 그의 측근 부하들이 요정 호스티스 등을 상대로 벌인 섹스 탐닉은 단순한 스캔들 이상이었다. 그것은 사생활 문란이고 방탕이었다.

 

박정희가 10·26궁정동총격사건으로 최후를 맞았을 때 연예계의 여인 둘이 동석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탄식했다. 그 동안 그렇게 박정희의 술자리에 다니던 여인들이 2백명도 넘으며 일류 여배우와 모델·탤런트만 수십 명에 이른다는 얘기들이 나오자 많은 국민이 경악했다. 그야말로 주지육림과 황음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까지 말아먹은 부패권력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런 박정희 정권이 유달리 장발과 미니스커트까지 단속하고 대중가요까지 건전성을 내세워 자의로 규제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아예 똥통 속에 빠진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⑴ 송창식의〈왜 불러〉는 장발단속을 조롱한 죄

 

특히 인기가요 중에서 금지곡을 정해 ‘철창’에 가둔 죄목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고 코미디다.

 

1970년대 초반 국민가수 반열에 오른 송창식이 부른〈왜 불러〉는 장발단속에 저항하고 조롱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엇다. 당시 장발단속을 맡은 경찰은 요즘의 음주운전단속처럼 대로를 막은 채 머리가 긴 젊은이들이 지나가면 붙들어다 줄 세워놓고 가위질을 해댔다. 이런 풍경이 외신을 타고 해외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과연 일본 제국주의 군대 장교 출신다운 획일주의적 발상이다.

 

장발이 유행하던 당시 젊은이들은 길을 가다가 단속 경찰을 발견하면 그냥 돌아서서 내빼곤 했다. 그런데 경찰관들은 돌아서서 가는 장발을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단속 경찰은 노랫말에 있는 것처럼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대는지 모를 일이었다. 강제구인이 아닌 바에야 돌아서서 가는 사람이 오라고 한대서 갈 리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노래가 그런 장면을 희화하고 저항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것은 그 시대에나 가능한 코미디였다.

 

당시 젊은 세대의 우상이던 양희은이 부른〈아침이슬〉도 금지곡 선고를 받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가 늘 문제였다. 당시 철학적 대중음악인으로 인기가 높은 김민기가 작사·작곡한〈아침이슬〉은 가사 중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가 단속에 걸렸다.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것이다. 묘지는 남한이고 태양은 북한 주석 김일성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또 “긴 밤 지새우고”는 마치 기존체제를 들어 엎는 ‘혁명 전야’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정말 작사자가 그런 의미를 담았는지 진의를 밝힌 적도 없는데 검열당국의 해석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살아나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학박사들의 해설을 들으면 기절초풍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원작자는 생각지도 않은 상상력을 발동해서 기가 막힌 이유를 뽑아내 빨간딱지를 붙이니 이런 것도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김민기가 작사한 노래는 공안당국의 의심을 많이 받았는데 그가 운동권과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늙은 군인의 노래〉도 금지곡으로 묶였다.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이 1971년 10월 전국 대학가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학생운동 간부들을 붙잡아다가 고문하고 학교에서 제적시킨 후 강제징집한 ‘71동지회’ 회원들과 친구였다. 군대에 강제징집되었다가 돌아온 이들은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서 반독재학생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었다. ‘늙은 군인’이란 그때 군에 강제징집되었다가 전역해서 돌아온 학생운동 간부들을 상징했다. 거기에 가사도 뭔가 모르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고 어언 사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이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굳이 짚어본다면 무욕과 달관 그리고 유토피아를 꿈꾸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이 내 청춘”을 허무주의적 항변으로, 그리고 “금강산 구경”은 친북성향쯤으로 간주하는 것이 검열당국의 자의적 잣대였다.

 

⑵ “잠 못 이루는 밤”도 죄가 된 이장희의〈그건 너〉

 

양희은이 불러 젊은이들의 18번이 된〈작은 연못〉도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목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이 노래의 가사는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열강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분단된 남북한이 서로 싸워 공멸하는 것을 은유한다는 것이다. 가사에서 ‘작은 연못’은 한반도를,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는 남북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 한들 그것이 금지해야 할 만한 불온사상이란 말인가? 우리가 겪는 약소국의 비극을 알려주는 노랫말이 누구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인가? 정부가 미국·일본 같은 빅 브라더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민족주의 감정을 노래하면 안 된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또 이장희가 부른〈그건 너〉를 두고는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시비를 걸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잠을 못 이루는 그 이유가 “너 때문이야”라고 돼 있는데도 그것이 독재정권 때문이라고 불만을 외치는 것 아니냐면서 금지시켰다.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마저도 제발이 저린 나머지 빨간딱지를 갖다 붙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도 많았다. 이미자의〈동백 아가씨〉와〈섬마을 선생님〉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그리워하느냐며 금지 딱지를 붙였다. 특히〈섬마을 선생님〉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대목에 시비를 걸었다. 아마도 “빨갛게 멍이 들었소”가 문제가 됐을 것이다. 빨간색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무조건 반체제와 동일시했던 것이다.

 

한대수의〈행복한 나라〉도 비슷한 이유로 금지됐다. 행복한 나라가 어디냐, 박정희의 통치 아래서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냐, 어떤 유토피아를 노래하는 것이냐는 시비였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 말고 괴상한 억지로 금지시킨 곡도 적잖았는데,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모를 코미디였다.

 

코미디성 시비를 당한 대표적인 노래가 김추자의〈거짓말이야〉이다. “거짓말이야!”를 외쳐서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참 소가 웃을 일이다. 배호가 부른〈0시의 이별〉은, 통행금지 시간이 0시인데 그 시각에 이별해도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다그치면서 금지곡으로 묶었다. 1980년대 심수봉이 부른〈순자의 가을〉은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금지곡이 된 황당한 경우다.

 

요즘 인터넷 문화가 재미있다. 그런 기준으로 오늘날의 대중가요 가운데 금지곡을 뽑는다면 백지영의〈사랑 안 해〉는 심각한 사회문제인 ‘저출산’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Wonder Girls의〈So Hot〉은 세계적 난제인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선정의 영예를 안을 것이라고들 한다.

 

시와 소설, 대중가요와 영화, 심지어 머리와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독재정권이 사회문화 통제를 감행하면서 들이댄 통제 사유를 보면 하나같이 그 의미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문화의 적은 획일성이고 자유의 적은 통제다.

 

핀란드의 국민기업으로 세계적 휴대폰 생산업체인 노키아의 현관에 들어서면 벽에 사시(社是)가 걸려 있는데 ‘총화단결(總和團結)’이나 ‘조기달성(早期達成)’ 따위가 아니라 “서로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ly)”는 것이다. 아하, 이것이 바로 인구 530만도 안 되는 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부국이 된 바탕이구나 하고 금방 깨달을 수 있다. 그처럼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받는 사회 환경에서 가치 창조의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랜 개발독재 통제 정권 아래서 찌든 우리의 사고와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 김재홍 著,『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株)책으로보는세상 編, 2012년 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