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언급되는 반면 판에는 왜곡에 대한 논란의 내용은 없는 것 같아 위키백과 + 네이버 캐스트를
활용하여 왜곡의 논점이 되는 부분과 해당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인터뷰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다소 개인적인 주관이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사실만 보고싶으시면 붉은색 글씨만 보실 것을 권합니다.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역사 왜곡 논란의 포인트를 알아보자
1. 남자 주인공 왕유 ( 충혜왕에서 발표 전날 바꾸면서 가상 인물로 설정 )
: 악덕한 인물로 드라마화(미화)를 해서는 안될 인물
위는 공식 홈페이지 왕유의 설정, 아래는 원래 설정이었던 충혜왕의 지식백과 결과
간단히만 봐도 답이 안나오는(...) 왕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위키 백과의 요약글을 보자면
1330년충숙왕이 원나라에게 폐위되자 즉위했지만, 1332년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충숙왕이 복위되어 다시 원나라로 갔다. 1339년 충숙왕이 죽자 심양왕 왕고를 왕으로 세우려는 조적 등의 반란이 있었으나 실패하고 충혜왕이 즉위했다. 즉위 후에 사치와 항락, 사냥을 일삼았으며, 흉흉한 민심과 소문이 돌았다.
1339년 5월에는 부왕의 후비인 수비 권씨를 강간하였고, 8월에는 역시 부왕의 후비인 경화공주를 강간하였다. 충혜왕은 서모인 권씨나 경화공주 뿐만 아니라, 외숙 홍융(洪戎)의 처까지 얼굴이 예쁘면 근친관계, 혼인 여부, 신분 등에 상관 없이 닥치는대로 사람을 시켜 빼앗아 강간하는 등 행동에 절제가 전혀 없고 패륜을 일삼았다. 그는 항상 정력이 강해지는 열약을 복용했는데, 강간과 음행을 일삼아 그와 관계를 가지는 여자들은 임질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장인인 홍탁의 후처 황씨도 임질에 걸렸는데, 충혜왕은 승려 복산을 시켜 그녀의 임질을 치료토록 하였다.
음탕한 행위를 많이 한 것으로 <<고려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충혜왕은 결국 원나라에 의해 다시 폐위되어 원나라 게양현으로 유배를 가다가 악양현에서 죽었다. 독주를 마셨다고도 하고, 귤을 먹고 죽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충혜왕은 음란하고 방종하며 무도하였지만, 재리(財利)를 계산하는 데 세밀한 것까지 잘 따지는 영특하고 날카로운 자질도 갖고 있었다. 그는 고려왕으로 복위를 하거나, 원나라 세도가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유흥을 위해서 무엇보다 자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자금줄인 고려 왕실의 재정을 튼튼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했다.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붙이는 사족이나 이런걸로 악덕한 행동을 엎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확실.
요약 : 주색,방탕의 왕. 패륜아. = 드라마에서의 설정처럼 권력견제를 위해
망나니인척한 흥선대원군을 -_- 모방한 컨셉은 왜곡임
2. 여주인공 기황후
: 낯선 이국의 황실에서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운명적인 사랑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한 여인으로 드라마에서 표현한다는데 실제로는 고려를 침략하기도함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고려를 침략하는건가 (...)
( ★ 외모를 왜곡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황후는 공녀로 뽑혀 1333년 고려 출신 환관이던 고용보(高龍普)의 주선으로 원왕실의 궁녀가 되었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배경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녀는 그녀는 황후 직속 기관인 휘정원을 자정원으로 개편하여 고용보를 자정원사(資政院使)에 앉히고 왕실 재정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1353년 자신의 아들인 아유르시리다라[愛猷識里達獵]를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동향(同鄕) 출신의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군사 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삼아 군사권도 장악하였다. 이렇듯 기황후가 원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원(元) 나라에서는 고려의 풍속이 크게 유행하였다. 한편, 고려에서는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奇轍, ?~1356)을 필두로 한 기씨(奇氏) 일족이 기황후의 배경을 믿고 권세를 휘두르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책으로 주살되었다. 그러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 원 나라에 있던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삼기 위해 1364년 고려 출신인 최유(崔濡)로 하여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려를 공격케 하였다. 그러나 최유는 고려의 명장인 최영(崔瑩)에게 대패하였다.
기황후는 1365년 제1황후이던 바얀 후투그가 죽은 후 제2황후라는 딱지를 떼고 원나라의 제1황후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녀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나라 중앙 정부의 정치가 문란해지자 그동안 몽고족의 지배에 반감을 품었던 한족들이 홍건적이 되어 일어나면서 원나라는 수습할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게 되었다.
1368년 마침내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 대군이 원나라 수도 대로를 점령하자 원나라 왕실은 피난길에 올랐다. 기황후도 이때 남편 순제와 아들 아이유시리다라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을 떠나면서 기황후는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는 고려를 원망했다고 한다. 원나라 왕실은 응창부로 수도를 옮겼다가 카라코룸까지 피난했다. 피난 와중에 순제는 죽고 그 자리를 기황후의 아들 아이유시리다라가 이어 북원의 소종이 되었다. 대도를 떠나 응창부까지 가는 동안의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기황후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배우 하지원이 드라마 ‘기황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기황후가 지금의 한류처럼 고려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한 인물이라서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하지원은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제작발표회에서 그동안 출연했던 사극 ‘다모’, ‘황진이’와 다른 점을 묻는 질문에 “기황후라는 여성 자체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전략을 이용해서 그녀 자신이 황후의 자리를 일궈내는 인물이다”고 운을 뗐다.
그는 “심리싸움과 정치적인 계략이 재밌을 것 같다. 단순한 여성의 암투가 아니라 흥미롭고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또한 하지원은 “기황후는 고려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한 인물이라고 들었다”면서 “때문에 지금의 한류를 일으킨 여인이다. 그래서 출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드라마 찍을 거면 다큐를 찍지 왜 드라마를 찍겠느냐’ 발언만 촛점을 맞춘 기사인데 이 기사에서만 반농담으로 했다는 의도가 나와서 이 기사를 퍼옴
주진모는 “배우는 맡은 역할만 열심히 하면 된다. 배우로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것은 연기력 논란”이라며 “사실 어떤 게 왜곡인지 알아본 뒤 대본과 차이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인물에 충실히 빠져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드린다면 시청자도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속상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 속상할 겨를이 없이 바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눈뜨면 촬영장에서 리허설 하고 있더라. 상황에 맞게 대사를 수정하고 이런 식으로 촬영하다 보니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주진모는 “사실 작가, 감독에게 반 농담으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드라마 찍을 거면 다큐를 찍지 왜 드라마를 찍겠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배우 입장에서 캐릭터에 충실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기황후 역사 왜곡 및 주연배우 하지원,주진모,제작진의 인터뷰
새로운 mbc 월화 드라마 기황후가 나오면서 주인공들의 연기력,드라마의 화려함은
많이 언급되는 반면 판에는 왜곡에 대한 논란의 내용은 없는 것 같아 위키백과 + 네이버 캐스트를
활용하여 왜곡의 논점이 되는 부분과 해당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인터뷰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다소 개인적인 주관이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사실만 보고싶으시면 붉은색 글씨만 보실 것을 권합니다.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역사 왜곡 논란의 포인트를 알아보자
1. 남자 주인공 왕유 ( 충혜왕에서 발표 전날 바꾸면서 가상 인물로 설정 )
: 악덕한 인물로 드라마화(미화)를 해서는 안될 인물
위는 공식 홈페이지 왕유의 설정, 아래는 원래 설정이었던 충혜왕의 지식백과 결과
간단히만 봐도 답이 안나오는(...) 왕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위키 백과의 요약글을 보자면
1330년 충숙왕이 원나라에게 폐위되자 즉위했지만, 1332년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충숙왕이 복위되어 다시 원나라로 갔다. 1339년 충숙왕이 죽자 심양왕 왕고를 왕으로 세우려는 조적 등의 반란이 있었으나 실패하고 충혜왕이 즉위했다. 즉위 후에 사치와 항락, 사냥을 일삼았으며, 흉흉한 민심과 소문이 돌았다.
1339년 5월에는 부왕의 후비인 수비 권씨를 강간하였고, 8월에는 역시 부왕의 후비인 경화공주를 강간하였다. 충혜왕은 서모인 권씨나 경화공주 뿐만 아니라, 외숙 홍융(洪戎)의 처까지 얼굴이 예쁘면 근친관계, 혼인 여부, 신분 등에 상관 없이 닥치는대로 사람을 시켜 빼앗아 강간하는 등 행동에 절제가 전혀 없고 패륜을 일삼았다. 그는 항상 정력이 강해지는 열약을 복용했는데, 강간과 음행을 일삼아 그와 관계를 가지는 여자들은 임질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장인인 홍탁의 후처 황씨도 임질에 걸렸는데, 충혜왕은 승려 복산을 시켜 그녀의 임질을 치료토록 하였다.
음탕한 행위를 많이 한 것으로 <<고려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충혜왕은 결국 원나라에 의해 다시 폐위되어 원나라 게양현으로 유배를 가다가 악양현에서 죽었다. 독주를 마셨다고도 하고, 귤을 먹고 죽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 공주가 저항하자 수하들에게 사족을 붙잡게해 일을 치루었다고한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C%B6%A9%ED%98%9C%EC%99%95
충혜왕은 음란하고 방종하며 무도하였지만, 재리(財利)를 계산하는 데 세밀한 것까지 잘 따지는 영특하고 날카로운 자질도 갖고 있었다. 그는 고려왕으로 복위를 하거나, 원나라 세도가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유흥을 위해서 무엇보다 자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자금줄인 고려 왕실의 재정을 튼튼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했다.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39751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붙이는 사족이나 이런걸로 악덕한 행동을 엎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확실.
요약 : 주색,방탕의 왕. 패륜아. = 드라마에서의 설정처럼 권력견제를 위해
망나니인척한 흥선대원군을 -_- 모방한 컨셉은 왜곡임
2. 여주인공 기황후
: 낯선 이국의 황실에서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운명적인 사랑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한 여인으로 드라마에서 표현한다는데 실제로는 고려를 침략하기도함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고려를 침략하는건가 (...)
( ★ 외모를 왜곡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황후는 공녀로 뽑혀 1333년 고려 출신 환관이던 고용보(高龍普)의 주선으로 원왕실의 궁녀가 되었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배경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녀는 그녀는 황후 직속 기관인 휘정원을 자정원으로 개편하여 고용보를 자정원사(資政院使)에 앉히고 왕실 재정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1353년 자신의 아들인 아유르시리다라[愛猷識里達獵]를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동향(同鄕) 출신의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군사 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삼아 군사권도 장악하였다. 이렇듯 기황후가 원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원(元) 나라에서는 고려의 풍속이 크게 유행하였다.
한편, 고려에서는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奇轍, ?~1356)을 필두로 한 기씨(奇氏) 일족이 기황후의 배경을 믿고 권세를 휘두르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책으로 주살되었다. 그러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 원 나라에 있던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삼기 위해 1364년 고려 출신인 최유(崔濡)로 하여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려를 공격케 하였다. 그러나 최유는 고려의 명장인 최영(崔瑩)에게 대패하였다.
기황후는 1365년 제1황후이던 바얀 후투그가 죽은 후 제2황후라는 딱지를 떼고 원나라의 제1황후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녀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나라 중앙 정부의 정치가 문란해지자 그동안 몽고족의 지배에 반감을 품었던 한족들이 홍건적이 되어 일어나면서 원나라는 수습할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게 되었다.
1368년 마침내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 대군이 원나라 수도 대로를 점령하자 원나라 왕실은 피난길에 올랐다. 기황후도 이때 남편 순제와 아들 아이유시리다라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을 떠나면서 기황후는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는 고려를 원망했다고 한다. 원나라 왕실은 응창부로 수도를 옮겼다가 카라코룸까지 피난했다. 피난 와중에 순제는 죽고 그 자리를 기황후의 아들 아이유시리다라가 이어 북원의 소종이 되었다. 대도를 떠나 응창부까지 가는 동안의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기황후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A%B8%B0%ED%99%A9%ED%9B%84
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5730#comment_focus
( 위 두 글을 짜집기)
요약 : 고려 공녀 출신으로 혜종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낳고 2황후를 거쳐
1황후까지 올라간 여성. 정권,재정권,군사권 다 쥐고 원나라를 흔듬
원나라 황후권력으로 고려 간섭,일족이 고려의 정권을 잡고 망침.
고려측에서 일족을 죽이자 고려 침공,실패
정권을 잃고 피난길에 오르자 도와주지않는 고려를 원망(..)
드라마처럼 고려의 자긍심을 가지고,정치의 계략을 가진 뛰어난 인
물로 묘사하기에는 너무 탐욕스럽고 화날땐 고려를 침략하고 아쉬
울땐 도움을 원하는 모호한 인물
하지원 기황후 인터뷰 :
배우 하지원이 드라마 ‘기황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기황후가 지금의 한류처럼 고려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한 인물이라서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하지원은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제작발표회에서 그동안 출연했던 사극 ‘다모’, ‘황진이’와 다른 점을 묻는 질문에 “기황후라는 여성 자체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전략을 이용해서 그녀 자신이 황후의 자리를 일궈내는 인물이다”고 운을 뗐다.
그는 “심리싸움과 정치적인 계략이 재밌을 것 같다. 단순한 여성의 암투가 아니라 흥미롭고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또한 하지원은 “기황후는 고려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한 인물이라고 들었다”면서 “때문에 지금의 한류를 일으킨 여인이다. 그래서 출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9&aid=0002643747
주진모 기황후 인터뷰 :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드라마 찍을 거면 다큐를 찍지 왜 드라마를 찍겠느냐’ 발언만 촛점을 맞춘 기사인데 이 기사에서만 반농담으로 했다는 의도가 나와서 이 기사를 퍼옴
주진모는 “배우는 맡은 역할만 열심히 하면 된다. 배우로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것은 연기력 논란”이라며 “사실 어떤 게 왜곡인지 알아본 뒤 대본과 차이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인물에 충실히 빠져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드린다면 시청자도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속상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 속상할 겨를이 없이 바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눈뜨면 촬영장에서 리허설 하고 있더라. 상황에 맞게 대사를 수정하고 이런 식으로 촬영하다 보니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주진모는 “사실 작가, 감독에게 반 농담으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드라마 찍을 거면 다큐를 찍지 왜 드라마를 찍겠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배우 입장에서 캐릭터에 충실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출처 : http://www.interview365.com/news/65752
두 주연배우의 인터뷰의 잘못된 점에 관한 코멘트는 달 가치도 못 느껴서 이만 글을
마무리하고 구석으로 짜집니다.
재밌으면 되지 ~ 라는 생각보다 역사가 무엇인지,대중 매개체로 역사를 논할 때 왜 왜곡이 있어서는 안되는지,사실에 치중해야하는지 중요성을 한분이라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런걸 느껴야지하는지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사족을 붙여보자면
기황후 드라마 왜곡에 대한 네티즌의 대부분의 반응이자 베스트 코멘트는 "불꽃청년 이완용" 드라마도 제작 하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