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행정부와 새누리당, 더 정확하게는 서남수 교육부장관과 박승춘 보훈처장, 그리고 뉴라이트교과서포럼에 의해 조직된 한국현대사학회가 찬양·칭송·미화하기 위해 왜곡·날조·은폐시키려 하는 18년 장기집권 박정희 독재권력의 어두운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김재홍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의 최신 저서《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저자의 직접적 경험과 치밀한 취재를 통해 친일파의 후예, 군사정변 세력이 조작한 잘못된 신화와 삐뚤어진 우상을 깨고 우리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다!
◆ 이틀 걸러 사흘마다 벌어진 밤의 ‘향연’
박정희 독재권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왜 술과 여자 같은 사생활 문제를 들추어내느냐는 비판적 지적도 있다.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 수호 같은 거룩한(?) 의제를 중심으로 따져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부분 그 측근의 후예들이거나 과장된 신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만큼 먹고 살게 해놓은 사람이 누군데 그런 공로는 말하지 않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냐고 항변한다. 이는 마치 박정희 장기집권시대 권력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남자의 배꼽 아래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나 똑같다.
대통령이 술을 자주 마시고 그 자리에 젊은 여자가 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대통령도 색욕을 추구하는 보통 사내들처럼 예쁜 여자를 데려와 같이 침실에 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을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해왔다면 그것이 과연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인가? 더구나 박정희의 그런 술자리와 침실 여자는 중앙정보부의 의전과장이 연예계와 요정 마담들을 동원해 조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정보부는 그가 항상 내세우는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일반에게 베일에 가려진 기밀부서다. 그런 허울 좋은 비밀보호 명분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린 채 대통령의 은밀한 술자리와 성욕 해소 치레를 무분별하게 벌인 것이다.
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
어느 현대사 전공 역사학자는 역사적 시각으로 박정희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 논란을 가볍게 제압한 바 있다. 그에 기대어 박정희의 술과 여자 얘기를 좀 더 이어나가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가 최고권력자였던 시대는 불행하게도 그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표정과 기분까지도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지닌 시대였다. 그의 사생활이 평범한 개인의 사생활처럼 보호받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사생활은 이미 권력게임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가 측근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는 권력의 풍향계였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되어 민주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라면 그의 공적 활동과 사생활은 엄격히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유신헌법 강제 제정이라는 친위 쿠데타를 통해 다시 한 번 헌법의 가치와 질서를 짓밟고 절대권력자가 되었을 때 공(公)과 사(私)의 경계는 무너지고 말았다. 권력의 사유화, 인격화가 이루어지고,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의 의전과장이 여자를 조달해야 하는 불행한 시대에 독재자의 사생활은 더 이상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었다.”
유신독재정권 말기, 박정희의 비밀요정 행사는 지나치게 잦았다. 대통령이 혼자서 하는 소행사나 측근 권력자 서너 명이 함께하는 대행사가 한 달이면 열 차례씩이나 열렸다. 그러니까 사흘에 한 번 꼴로 주연을 벌엿다는 얘기다. 그때마다 외부에서 술시중 드는 여자들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주연 담당이던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휴일도 없을 만큼 하루도 쉴 수가 없었다.
유신독재정권이 황혼녘에 들어선 1979년 가을 어느 날, 박선호와 비밀연회장 담당 사무관 남효주는 은밀하게 탄식을 주고받았다. 명색이 공직자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한심스럽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국정 최고책임자의 행실이 못마땅해 보였던 것이다.
1979년 12월 11일 보통군법회의 4회 공판. 강신옥 변호사는 박선호에게 계속 ‘양심선언’을 유도했다.
“피고인은 이제 말한 소행사·대행사의 빈도가 하도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
그러자 담당 검찰관이 급히 강 변호사의 말을 막은 채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본건 변호인은 본건 공소사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제한해주십시오.”
그러나 재판부의 법무사는 “사건과 관련 있는 건 신문해주십시오”라며 변호인을 직접 제한하지 않았다. 법무사는 그 대신 박선호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상 비밀 등에 대해서는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
이어 강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소행사·대행사 빈도가 너무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주고받았다는데……?”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강 변호사는 박선호가 교도소에서 접견할 때 얘기하던 것과 달리 재판부가 주입한 대로 진술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어 변호사의 “…있죠?” 하는 물음과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숨바꼭질하듯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러나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 항소심인 고등군법회의에서 박선호의 태도는 달라졌다. 약간의 심정 변화를 보인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술자리·침실 여인들에 대해 조금씩 운을 떼기 시작했다.
⑵ “화대는 100만원~200만원, 반강제 ‘차출’도 허다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술시중 여자들에게 주는 화대(花代)는 지금 돈 가치로 쳐서 보통의 경우 100만원 정도였고 유명세를 계산해 더 보태는 경우 200만원이었다.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보다는 꽤 짠 편이었다. 재벌이나 국회의원들이 요정에서 이름 있는 모델이나 연예인들에게 뿌리는 팁에 비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물론 권력의 힘도 작용했겠지만 시중의 유명한 ‘마담’들이 거느리는 화류계 여인 중엔 대통령의 술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 자원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런 자원자들을 골라 보내주는 장충동 모 요정의 ‘김 마담’이 있었다. 특히 연예계에서 스타로 뜨기 전인 2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신참들은 김 마담으로부터 은밀한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쾌히 응낙했다. 이들은 그 자리에 갔다 온 ‘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것으로써 연예계의 정상에 한 발 다가간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박선호는 급할 때 종종 김 마담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10·26궁정동총격사건이 터진 이듬해 1월 23일, 고등군법회의에서 2회 공판이 열렸다.
변호인 “피고인은 1심에서 변호인이 당일 여자 두 사람을 인솔해온 데 대해 물었을 때 대답을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피고인 “그 문제는 제가 답변하게 되면(지금 시내에서 일류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는데)역효과가 나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또 고인을 욕되게 하므로 피했습니다.”
(이 답변에 강신옥 변호사는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피고인에게서 비밀을 지키려는 직업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직답보다는 우회적이라도 대통령의 술자리에 시중드는 여인들이 동원됐었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하기로 했다.)
변호인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피고인 “지금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변호인 “이번에 한 행동의 숨은 동기 중 혹시 그런 사정이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피고인 “…저는 동기라든가 이런 것보다는 존경하는 부장님의 지시면 무조건 한다는 것 외에는 없고, 만약 그때 다른 짓을 했어도 응했을 것입니다.”
변호인 “만찬에 참석한 여자 둘을 몇 시에 보냈나요?”
피고인 “11시경에….”
변호인 “거사가 끝난 뒤였나요? 돈도 주고 보냈죠?”
박선호 “돈도 다 계산해서 보냈습니다.”
술자리 여자를 최종 심사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요정에 소속돼 있는 여자들은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고위층과 함께 하는 술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연예계 지망생이 가장 무난한 대상이었다. 그 중엔 유수한 대학의 연예계 관련 학과 재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칙으로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들여보내지 않았다. 단골을 만들면 보안상이나 기타 부담스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반강제 차출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산 영화를 시사관람하거나 TV 연예프로그램 등을 보다가 마음에 든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큰 물의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개 불러왔다. 다만 유부녀로서 본인이 거절하면 강제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런 궁정동 연회 차출 지시로 배우의 영화나 TV 프로그램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의 힘 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로 한두 차례씩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서약과 함께 그날의 접대법을 엄격하게 사전 교육을 받았다. 우선 이 자리에 왔던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인사들의 대화 내용에 관심을 표하지 말 것, 특히 대통령이 말을 걸어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응석을 부리지 말 것 등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생활 부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증인인 박선호는 결국 김재규 등 다른 5명의 피고인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형장에서 그의 마지막 표정은 의연했다. 이런 의연함은 이미 그의 최후진술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 상상을 초월한 박정희의 술과 여자
⑴ 200명 이상의 여자들, 톱 탤런트도 수십 명
1980년 1월 24일, 고등군법회의 3회 결심공판에서 박정희의 ‘채홍사’ 박선호가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그의 ‘비화’를 기다리는 법정은 바깥의 한겨울 날씨와도 같이 스산했다. 재판정에서의 마지막 진술에서 박선호는 김재규 부장의 명령에 따랐던 배경과 박정희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들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지금 여기에서 최후 진술을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 존경하는 김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아직까지 원망이나 비판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금 저희가 거기서 근무하면서 부장님께 구국을 위해, 민주를 위해 수시로 청와대에 들락날락하시면서 간혹 저희에게 숨통이 막히는 절박한 상황을 전달해주시고, 저로 하여금 일깨워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고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되도록 길러주신 데 대해서 제가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그가 대통령의 연회에 대해 운을 떼자 법정은 파란이 일었다. 방청객들이 숨마저 죽인 채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재판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피고인 “어제 여기에서 검찰관께서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도 받았습니다만,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건물은 대여섯 개가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건물로서…….”
법무사 “피고인!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박선호는 순간 멈칫했다. 최후진술조차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 그는 그러나 할 말을 이었다.)
피고인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 시민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법무사 “범죄 사실에 관해서만….”
피고인 “예?”
법무사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진술하시오.”
박선호 “예. 그래서 제가 연중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고 상관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그는 너무 쉽게 할 말을 줄여버렸다. 마치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재판부가 한 마디만 하면 움츠러들곤 했다. 이는 박선호만이 아니라 확신범인 김재규의 경우 더 눈에 띄었다. 변호인들은 그것이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믿었다.
보통군법회의가 끝난 뒤 1980년 1월 중순부터 변호인들은 박정희의 술자리와 침실 파트너로 시중에 나도는 일류 여배우들의 이름을 은밀하기 확인하기 시작했다.
법정진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일절 함구하던 김재규는 어느 날 변호인 중 한 사람을 보자고 하더니 상당한 비화를 털어놓았다. 궁정동 안가를 거쳐 간 은막의 스타들에서부터 대통령 자녀에 대한 얘기까지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박정희의 비밀요정에 다녀간 외부 여자가 어림잡아 200명 이상에 이른다는 얘기였다.
김재규는 또 자신이 박정희로부터 신임을 잃기 시작한 이유가 박근혜와 박지만 등 대통령 자녀들 문제에 대해 직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박근혜-최태민 종합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아직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박선호의 전임 중정의전과장들로부터 사담 형식을 빌려 이 얘기들을 검증했다.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 입을 벌릴 만한 TV 드라마와 은막의 스타들까지 거쳐 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박정희의 주색잡기는 부인 육영수가 총살된 뒤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이미 1973년부터 중앙정보부가 대통령의 그런 뒤치다꺼리를 맡았다.
⑵ 대통령 전용병실의 간호장교 낙태사건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은 반드시 복수 추천으로 양 옆에 앉혔다. 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진 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 연예계 지망 신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술이 취하면 이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차지철 경호실장과 궁정동 안가의 담당자만이 아는 사항이었다.
그 중 한 은막의 스타는 대통령의 후처가 되겠다고 나서느 바람에 박선호와 궁정동 안가 요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한번 궁정동 행사에 참석하고 나간 뒤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된 어느 스타는 그 후 행사에 연속출연을 요구했다. 물론 중정은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이를 잘랐다. 그러자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박선호 의전과장을 찾아왔다.
“각하께서 우리 아이를 좋아하시는데 당신들이 가운데서 차단시켜도 되는 겁니까?”
딸이 대통령의 연심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 스타의 어머니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큰소리를 칠 만큼 기세등등했다. 이 밖에도 대통령의 술자리나 침실에 다녀간 연예계 지망생의 부모가 사후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해와 돈으로 해결한 일, 대통령의 전용병실이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의 간호장교 임신중절 사건 등이 옛 궁궐 속의 비밀처럼 묻혀 있었다. 박선호는 법정진술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마음에 걸려 김재규 부장에게 ‘이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두어 번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절대권력의 타락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짐작케 하는 토로였다.
▶ 김재홍 著,『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株)책으로보는세상 編, 2012년 版.
박정희 군사정권…추악한 탐욕과 반인륜적 만행:주색잡기로 찌든 독재자의 밤 ⑦
☞ 박근혜 행정부와 새누리당, 더 정확하게는 서남수 교육부장관과 박승춘 보훈처장, 그리고 뉴라이트교과서포럼에 의해 조직된 한국현대사학회가 찬양·칭송·미화하기 위해 왜곡·날조·은폐시키려 하는 18년 장기집권 박정희 독재권력의 어두운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김재홍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의 최신 저서《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저자의 직접적 경험과 치밀한 취재를 통해 친일파의 후예, 군사정변 세력이 조작한 잘못된 신화와 삐뚤어진 우상을 깨고 우리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다!
◆ 이틀 걸러 사흘마다 벌어진 밤의 ‘향연’
박정희 독재권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왜 술과 여자 같은 사생활 문제를 들추어내느냐는 비판적 지적도 있다.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 수호 같은 거룩한(?) 의제를 중심으로 따져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부분 그 측근의 후예들이거나 과장된 신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만큼 먹고 살게 해놓은 사람이 누군데 그런 공로는 말하지 않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냐고 항변한다. 이는 마치 박정희 장기집권시대 권력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남자의 배꼽 아래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나 똑같다.
대통령이 술을 자주 마시고 그 자리에 젊은 여자가 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대통령도 색욕을 추구하는 보통 사내들처럼 예쁜 여자를 데려와 같이 침실에 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을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해왔다면 그것이 과연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인가? 더구나 박정희의 그런 술자리와 침실 여자는 중앙정보부의 의전과장이 연예계와 요정 마담들을 동원해 조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정보부는 그가 항상 내세우는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일반에게 베일에 가려진 기밀부서다. 그런 허울 좋은 비밀보호 명분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린 채 대통령의 은밀한 술자리와 성욕 해소 치레를 무분별하게 벌인 것이다.
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
어느 현대사 전공 역사학자는 역사적 시각으로 박정희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 논란을 가볍게 제압한 바 있다. 그에 기대어 박정희의 술과 여자 얘기를 좀 더 이어나가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가 최고권력자였던 시대는 불행하게도 그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표정과 기분까지도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지닌 시대였다. 그의 사생활이 평범한 개인의 사생활처럼 보호받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사생활은 이미 권력게임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가 측근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는 권력의 풍향계였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되어 민주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라면 그의 공적 활동과 사생활은 엄격히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유신헌법 강제 제정이라는 친위 쿠데타를 통해 다시 한 번 헌법의 가치와 질서를 짓밟고 절대권력자가 되었을 때 공(公)과 사(私)의 경계는 무너지고 말았다. 권력의 사유화, 인격화가 이루어지고,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의 의전과장이 여자를 조달해야 하는 불행한 시대에 독재자의 사생활은 더 이상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었다.”
유신독재정권 말기, 박정희의 비밀요정 행사는 지나치게 잦았다. 대통령이 혼자서 하는 소행사나 측근 권력자 서너 명이 함께하는 대행사가 한 달이면 열 차례씩이나 열렸다. 그러니까 사흘에 한 번 꼴로 주연을 벌엿다는 얘기다. 그때마다 외부에서 술시중 드는 여자들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주연 담당이던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휴일도 없을 만큼 하루도 쉴 수가 없었다.
유신독재정권이 황혼녘에 들어선 1979년 가을 어느 날, 박선호와 비밀연회장 담당 사무관 남효주는 은밀하게 탄식을 주고받았다. 명색이 공직자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한심스럽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국정 최고책임자의 행실이 못마땅해 보였던 것이다.
1979년 12월 11일 보통군법회의 4회 공판. 강신옥 변호사는 박선호에게 계속 ‘양심선언’을 유도했다.
“피고인은 이제 말한 소행사·대행사의 빈도가 하도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
그러자 담당 검찰관이 급히 강 변호사의 말을 막은 채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본건 변호인은 본건 공소사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제한해주십시오.”
그러나 재판부의 법무사는 “사건과 관련 있는 건 신문해주십시오”라며 변호인을 직접 제한하지 않았다. 법무사는 그 대신 박선호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상 비밀 등에 대해서는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
이어 강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소행사·대행사 빈도가 너무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주고받았다는데……?”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강 변호사는 박선호가 교도소에서 접견할 때 얘기하던 것과 달리 재판부가 주입한 대로 진술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어 변호사의 “…있죠?” 하는 물음과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숨바꼭질하듯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러나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 항소심인 고등군법회의에서 박선호의 태도는 달라졌다. 약간의 심정 변화를 보인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술자리·침실 여인들에 대해 조금씩 운을 떼기 시작했다.
⑵ “화대는 100만원~200만원, 반강제 ‘차출’도 허다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술시중 여자들에게 주는 화대(花代)는 지금 돈 가치로 쳐서 보통의 경우 100만원 정도였고 유명세를 계산해 더 보태는 경우 200만원이었다.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보다는 꽤 짠 편이었다. 재벌이나 국회의원들이 요정에서 이름 있는 모델이나 연예인들에게 뿌리는 팁에 비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물론 권력의 힘도 작용했겠지만 시중의 유명한 ‘마담’들이 거느리는 화류계 여인 중엔 대통령의 술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 자원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런 자원자들을 골라 보내주는 장충동 모 요정의 ‘김 마담’이 있었다. 특히 연예계에서 스타로 뜨기 전인 2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신참들은 김 마담으로부터 은밀한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쾌히 응낙했다. 이들은 그 자리에 갔다 온 ‘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것으로써 연예계의 정상에 한 발 다가간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박선호는 급할 때 종종 김 마담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10·26궁정동총격사건이 터진 이듬해 1월 23일, 고등군법회의에서 2회 공판이 열렸다.
변호인 “피고인은 1심에서 변호인이 당일 여자 두 사람을 인솔해온 데 대해 물었을 때 대답을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피고인 “그 문제는 제가 답변하게 되면(지금 시내에서 일류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는데)역효과가 나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또 고인을 욕되게 하므로 피했습니다.”
(이 답변에 강신옥 변호사는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피고인에게서 비밀을 지키려는 직업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직답보다는 우회적이라도 대통령의 술자리에 시중드는 여인들이 동원됐었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하기로 했다.)
변호인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피고인 “지금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변호인 “이번에 한 행동의 숨은 동기 중 혹시 그런 사정이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피고인 “…저는 동기라든가 이런 것보다는 존경하는 부장님의 지시면 무조건 한다는 것 외에는 없고, 만약 그때 다른 짓을 했어도 응했을 것입니다.”
변호인 “만찬에 참석한 여자 둘을 몇 시에 보냈나요?”
피고인 “11시경에….”
변호인 “거사가 끝난 뒤였나요? 돈도 주고 보냈죠?”
박선호 “돈도 다 계산해서 보냈습니다.”
술자리 여자를 최종 심사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요정에 소속돼 있는 여자들은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고위층과 함께 하는 술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연예계 지망생이 가장 무난한 대상이었다. 그 중엔 유수한 대학의 연예계 관련 학과 재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칙으로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들여보내지 않았다. 단골을 만들면 보안상이나 기타 부담스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반강제 차출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산 영화를 시사관람하거나 TV 연예프로그램 등을 보다가 마음에 든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큰 물의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개 불러왔다. 다만 유부녀로서 본인이 거절하면 강제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런 궁정동 연회 차출 지시로 배우의 영화나 TV 프로그램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의 힘 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로 한두 차례씩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서약과 함께 그날의 접대법을 엄격하게 사전 교육을 받았다. 우선 이 자리에 왔던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인사들의 대화 내용에 관심을 표하지 말 것, 특히 대통령이 말을 걸어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응석을 부리지 말 것 등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생활 부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증인인 박선호는 결국 김재규 등 다른 5명의 피고인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형장에서 그의 마지막 표정은 의연했다. 이런 의연함은 이미 그의 최후진술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 상상을 초월한 박정희의 술과 여자
⑴ 200명 이상의 여자들, 톱 탤런트도 수십 명
1980년 1월 24일, 고등군법회의 3회 결심공판에서 박정희의 ‘채홍사’ 박선호가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그의 ‘비화’를 기다리는 법정은 바깥의 한겨울 날씨와도 같이 스산했다. 재판정에서의 마지막 진술에서 박선호는 김재규 부장의 명령에 따랐던 배경과 박정희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들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지금 여기에서 최후 진술을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 존경하는 김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아직까지 원망이나 비판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금 저희가 거기서 근무하면서 부장님께 구국을 위해, 민주를 위해 수시로 청와대에 들락날락하시면서 간혹 저희에게 숨통이 막히는 절박한 상황을 전달해주시고, 저로 하여금 일깨워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고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되도록 길러주신 데 대해서 제가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그가 대통령의 연회에 대해 운을 떼자 법정은 파란이 일었다. 방청객들이 숨마저 죽인 채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재판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피고인 “어제 여기에서 검찰관께서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도 받았습니다만,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건물은 대여섯 개가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건물로서…….”
법무사 “피고인!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박선호는 순간 멈칫했다. 최후진술조차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 그는 그러나 할 말을 이었다.)
피고인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 시민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법무사 “범죄 사실에 관해서만….”
피고인 “예?”
법무사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진술하시오.”
박선호 “예. 그래서 제가 연중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고 상관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그는 너무 쉽게 할 말을 줄여버렸다. 마치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재판부가 한 마디만 하면 움츠러들곤 했다. 이는 박선호만이 아니라 확신범인 김재규의 경우 더 눈에 띄었다. 변호인들은 그것이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믿었다.
보통군법회의가 끝난 뒤 1980년 1월 중순부터 변호인들은 박정희의 술자리와 침실 파트너로 시중에 나도는 일류 여배우들의 이름을 은밀하기 확인하기 시작했다.
법정진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일절 함구하던 김재규는 어느 날 변호인 중 한 사람을 보자고 하더니 상당한 비화를 털어놓았다. 궁정동 안가를 거쳐 간 은막의 스타들에서부터 대통령 자녀에 대한 얘기까지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박정희의 비밀요정에 다녀간 외부 여자가 어림잡아 200명 이상에 이른다는 얘기였다.
김재규는 또 자신이 박정희로부터 신임을 잃기 시작한 이유가 박근혜와 박지만 등 대통령 자녀들 문제에 대해 직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박근혜-최태민 종합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아직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박선호의 전임 중정의전과장들로부터 사담 형식을 빌려 이 얘기들을 검증했다.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 입을 벌릴 만한 TV 드라마와 은막의 스타들까지 거쳐 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박정희의 주색잡기는 부인 육영수가 총살된 뒤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이미 1973년부터 중앙정보부가 대통령의 그런 뒤치다꺼리를 맡았다.
⑵ 대통령 전용병실의 간호장교 낙태사건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은 반드시 복수 추천으로 양 옆에 앉혔다. 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진 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 연예계 지망 신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술이 취하면 이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차지철 경호실장과 궁정동 안가의 담당자만이 아는 사항이었다.
그 중 한 은막의 스타는 대통령의 후처가 되겠다고 나서느 바람에 박선호와 궁정동 안가 요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한번 궁정동 행사에 참석하고 나간 뒤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된 어느 스타는 그 후 행사에 연속출연을 요구했다. 물론 중정은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이를 잘랐다. 그러자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박선호 의전과장을 찾아왔다.
“각하께서 우리 아이를 좋아하시는데 당신들이 가운데서 차단시켜도 되는 겁니까?”
딸이 대통령의 연심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 스타의 어머니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큰소리를 칠 만큼 기세등등했다. 이 밖에도 대통령의 술자리나 침실에 다녀간 연예계 지망생의 부모가 사후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해와 돈으로 해결한 일, 대통령의 전용병실이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의 간호장교 임신중절 사건 등이 옛 궁궐 속의 비밀처럼 묻혀 있었다. 박선호는 법정진술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마음에 걸려 김재규 부장에게 ‘이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두어 번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절대권력의 타락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짐작케 하는 토로였다.
▶ 김재홍 著,『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株)책으로보는세상 編, 2012년 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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