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내려놓다.

늦가을201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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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만에 두친구 녀석을 만나 술한잔하며 사는

얘기들을하다 한녀석이 조심스레 말을꺼낸다.

딸아이의 친모... 전처 얘기를..

이미 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와 친구들속에

그녀가 살아있다는것에 나는 사뭇 놀라고말았다.

친구는 경남 김해의 모 유명아울렛 의류매장의 매니저다

그녀석이 조심스레 꺼낸 말은 얼마전 그곳에 그녀가

왔단다. 서너살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나와 그녀는 부산 남포동에서 처음 만났다.

1997년 11월 월급날 동료들과 회식후 분위기에

이끌려 노래방이란곳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상하리만치 그녀에게 자꾸만 끌렸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굳이

왜 만나려하냐며 날 말렸다. 하지만 자꾸만 나를

밀어내는 그녀에게 나는 점점 빠져들고말았다

그리고 그런 내가 전혀 싫지만은 않았는지 그녀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린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된후 내여자를 그런곳에

일하게 둘순없었다. 남포동 근처의 오래된 빌라에서

세들어 살던 그녀를 집으로 들어가게 하고 남아있는

약간의 카드빚을 갚아주고 그녀의 생활을 바로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내 근무지가 제주도로 바뀌면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됐다. 돈도 돈이지만 서로에게 정말 힘든일이었다.

전화로 싸움도 잦아지고 점점 서로에게 지쳐가고있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이쯤에서 끝낼지 아니면 함께 있을지..

서로 사랑하고있었기에 차마 헤어질순없었다.

그래서 낯선 제주땅에서 그녀와 나는 혼인신고를하고

부족하지만 행복했던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냥 같이있는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집에 돌아오면

사랑하는 그녀가 반가이 맞아주고 사랑하는 그녀를

내품에 안을수있고 그녀의 숨결을 느끼며 그녀 가슴에

기대어 잠들수있어서 행복했다.

제주시 탑동해변길도 거닐고 이마트에서 장도 같이

보며 동문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옥돔 사다가 구워먹고

그녀가 좋아하는 세검정 갈비집에서 고기도 구워먹으며

우린 그렇게 행복했다.

작지만 아늑한 아파트로 이사도하고 거기에서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소중한 큰딸아이도 가질수있었다.

그러다 6년간의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육지로

근무지를 옮기며 그간 모은 약간의 돈과 대출등으로

창원의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딸 그리고 우리집, 낡았지만

우리가족을 싣고 씽씽 잘달려주던 우리차.

그리고 안정된 직장. 나는 이미 모든것을 이뤘다는

자만심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샴페인을 너무일찍 터트려버렸다.

이제 네살이되어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시작하자

그녀는 낮에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고 무료한 일상을

해소하기위해 집근처 볼링장을 다니기시작했다.

원체 무엇 한가지에 오래 매달리지못하던 그녀가

정말 열심히 다니고 실력도 나날이 늘어가는걸보면서

왜 진작 해주지 못했나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위해 퇴근후 피곤한몸을 이끌고 그녀가

경기하는동안 딸아이를 보며 그곳의 그녀지인들과도

친분을 쌓아보려 나름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월요일. 비가오면 일이없던터라

잠깐 나와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 집에 들렸다.

물론 그녀는 딸아이보내놓고 볼링장갔는지 집은

비어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려서 보니

베개밑에 그녀의 전화가있었다. 잊어버리고

놔두고 갔나보다해서 가는길에 주고가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문자가 한통와있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문자를 열었다.

"당신 몸이 안좋다하니 나도 마음이 아프네.

몸조리 잘하고 내일봐 사랑해.. 여보야."

입력되있는 번호도 아니었고 처음엔 잘못온

문자인줄만알았다. 그러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 옆에서 들리는 볼링핀

쓰러지는 소리들...

그는 그녀가 다니던 볼링장의 강사겸 용품점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털털하고 사교성있고

이것저것 나와 집사람에게 잘 챙겨주던 사람이었다.

잘챙겨줬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것이었다.

그길로 그는 나를 피해 도망가고 그녀와 나는 집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모든걸 채념한듯 무표정하게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분노한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손찌검을하고 말았다.

예전에 그녀가 가끔 나에게 이런일이 혹시라도 생기면

당신은 어떻게할거냐고 묻곤했다.

그럴때마다 농담으로 생각한 나는 볼것도없이

이혼할거라고 으름장을 놓곤했으나 정작 이게 현실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나 나는 그럴수없었다.

아버지 없이자란 내가 내 딸에게 또 그런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진않았다. 그래서 용서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는 그녀의 말을 바보같이

믿었다. 비겁하게도 사랑한다던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고

도망간 그를 만나기위해어렵사리 함안까지가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를통해 듣게된 또다른 진실.

그녀를 사랑했는데 그녀가 자기아닌 또 다른 남자를

쳐다보고있어서 자신도 마음 아팠다면서 이렇게 된것이

다 자기 책임만은 아니란다... 할말이 없었다.

그를 찔러버리기위해 품안에 갈무리해갔던 칼의 서늘한

날을 수도없이 만지작거리며 나는 갈등했다.

고작 내아내가 이토록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놈에게

농락당한거였나...

찌를 가치도없다고 느꼈다. 아니 용기가 없었음이리라..

그녀의 또다른 남자. 그랬다 언젠가 그녀의 핸드폰에

몇번 찍혀있던 그녀보다 두살어린 볼링 클럽 동생이었다.

그놈을 만나러갔다. 볼링장앞에서 그놈은 두놈의

친구사이에서 거들먹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냥 친한

누나일뿐이라고.. 그래 어차피 너한테 내가 당신

마누라의 애인이다란 소릴 듣고자한건 아니었지..

놈은 비웃음을 흘리며 유유히 지 친구놈들과 함께

사라졌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걸까..

도대체 저 양아치같은 놈 어디가 좋아서 나한테 이런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수없었다.

그러다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꼬락서니를 보고선...

그렇구나...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초췌한 몰골에

목 늘어난 면티셔츠에 마누라 차타고다니라고

운동삼아 자전거타고 출퇴근할거라며 입었던

무릅나온 츄리닝에 때묻은 운동화...

그런 내가 거기 초라하게 서있었다.

그녀는 나와 싸운후 처음엔 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으나 몇일후 어떤 결심을했는지

잠든 아이를 새벽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나에게

떠맏기고 가버렸다.

그후 석달간 나는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딸아이와 함께 미국의 처형집에 가기로 되어있던

전날밤에 불현듯 나타나선 다음날 일찍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났다.

공항에서 그녀와 딸아이를 싣고 멀어져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이게 끝이 아님을 알기에...

나의 기나긴 고통의 시작임을 너무도 잘알기에

목놓아 울었다.

함께 배웅나왔던 장모님께서 아침으로 사주신

설렁탕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은후 나는 이제 대체 무얼해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않았다.

그렇게 그녀와 딸을 미국으로 보내고 거의

넉달동안 나는 내가 어떻게살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않는다.

내삶에서 그기간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하루에 담배는 세갑이 기본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내손엔 담배가 들려져있었고

못먹던술도 많이 늘었다. 안주따윈 사치였다.

그렇게 나를 혹사하고 싶었다.

수없는 자살의 충동을 억누르며 멍하니 아파트

8층 베란다에서 담배와 술만 마셔댔다.

일따윈 손에 잡힐리 없었다.

나는 그저 살아 숨쉬는 시체일뿐이었다.

한달만에 체중이 17킬로 빠져버렸다.

69~71킬로를 왔다갔다하던 몸무게가

단 4주만에 54킬로가 되버렸다.

거의 먹지도 자지도 못한것같다.

사람 목숨이 이리 모질게 질기다는걸 그때

처음알았다.

그녀는 그와중에도 미국에서 쓸돈으로 한달에

50만원씩을 요구했다. 그래 보내줘야지..

우리딸 맛난거 좋은옷 좋은데 데리고 가야지..

디즈니랜드도 가고 그랜드캐년도 가보고

메이져 리그도 보러가서 찍은 딸아이의 사진들을

싸이에서 보고 그나마 위안이되었다.

늦은밤 샌디에고에서 걸려오는 딸아이의 전화를

기다리는건 어느새 내 하루일과의 가장 중요한일이

되버렸다.

잘알아들을순없지만 "아빠!"라고 부르는 딸아이의

해맑은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간신히 잠을 이룰수있었다.

넉달후 귀국한 그녀와 나는 별 망설임없이 이혼했다.

딸아이의 친권, 양육권 포기 각서에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날.

다른아이들은 한껏 멋을낸 엄마 손잡고 입학식에 왔는데

내딸은 삶에 찌들어 초췌한 아빠와 할머니 손잡고

그아이들 틈에 섞여 입학식을 치뤘다.

내심 영화에서처럼 그녀가 나타나주길 간절히

바랬지만 그건 영화나 드라마일뿐..

나와 내딸에게 현실은 그랬다.

이제 벌써 우리딸 5학년이고 내년이면 6학년이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세월만큼 좋은 치료약은 없다고 했거늘 늘상

내 마음한구석에 가시처럼 박혀 따끔거리던 알수없는

아픔이 이제서야 치유된듯한 기분이다.

나와 사랑한 10년동안 참 많이도 그녀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었던것같다.

내 지랄맞은 성격을 일일이 다 받아주며 숨막혀했을

그녀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미안할따름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녀는 자신의 삶만을 위해

모든것을 버리고 떠났고 나는 내 딸아이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이 비루하고 남루한 삶을 택했을뿐이다.

후회는 하지않는다.

그녀가 나와 딸아이의 삶을 짖밟으면서까지

갈구했던 그 삶이...

부디 지금의 네 삶이길 바라며 이제 그녀와 내가

앞으로 짊어지고 살아가야할 각자의 삶의 무게에

충실했으면한다.

다만 한가지 정말 궁금한건 그런 삶을 찾아 떠난

그녀가 진정 바라던것을 이루고 살고있는지..

그것만은 알고싶다.

이제 이쯤에서 우리들의 인연은 내려놓고 가려한다.

나는... 이제 다시 뒤돌아보는 어리석은짓은

하지않으려한다.

그래도 한때는 내삶의 전부였던...

내가 사는 이유였던... 내겐 신앙이었고...

나의 빛이었으며, 나의 모든것이었던 그녀...

부디 지금의 그사람과, 그아이와 예쁘게 사랑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서

살아주길 간절히 바란다.

나는 여기서 그만 당신을 내려놓으려한다.

부디 그녀의 남은 삶이 아름답고, 평온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