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안티를 시작할 때, 목사들이며, 논리적인 신도들이 많이 보였다.. 그 들은 인터넷을 통한 전도에 열심이었고, 자신들의 타당성을 주장하려 무척 애를 쓰며, 안티분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대화자를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인터넷 용사를 양성하겠다던 목사도 조용해졌고 치졸한 방법으로 안티들의 논리를 게시판에서 지워가며 막는 쪽으로 돌아섰고, 변증으로 기독교를 변론하겠다던 목사도 안티들과의 대화를 멈추었다.. 물론 그들이 핑계를 댄 것은, 안티들의 무례함이라 말하지만.. 이 말은, 야훼/예수/성령에 대한 믿음의 의지로도 극복하지 못할 일이라 자인하는 비겁만 말 밖에 되지를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이 사회의 진리화 되어 교육되고, 지식과 상식이 되어 있는 과학의 현실을 극복할 수 없고, 각각이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는 인간간의 협력과 배려 그리고 합의적인 윤리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자각에 그 이유가 있다 생각한다.. 즉,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러한 사회상에 대응하는 기독교를 위한 변론이나 반론이 바닥을 보인다는 것을 최소한의 양심으로 자각하고 자인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첫번째는, 기독교의 기본 골격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일인데, 사회는 창조설과 관계없이 자기 노력으로 창조설에 반하는 진화학을 비롯한 과학들이 교육이 되고, 지식 상식화 되어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조설을 구렁텅이로 모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이제는 어느 부모라도, 세계 전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화석의 설명 앞에선, 자기 자식이.. “저건 사람과 같이 살았고, 방주에 함께 실었어..” 라고 말해 주변에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즉, 창조설의 몰락은, 창조과정에서 발생한 원죄설을 엉터리로 만들고, 원죄설의 몰락은 예수의 구원을 사기로 만들며, 구원의 몰락은 천국지옥설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에 대한 결과는, 요즘 제법 논리에 자신있다는 자들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두번째는, 인권의 동등성이다. 인간은 종교의 자유와 함께 누가 토속신앙을 믿던, 불교를 믿던, 기독교를 믿던 종교성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어떤 종교가 유일신을 믿던 어쩌던 조용하다면야 누구도 관여할 권한은 가지지 않으나, 그런 유일신 종교성으로 사회에 나와 떠들 때가 문제가 된다.. 이미, 이성이 발달한 사회는 자신의 권한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독선의 종교, 유일신으로 동등한 인권을 가진 타인의 권한을 침해하고, 타 종교를 마귀라 칭하며 비난하고 파괴하고, 유일신 사상의 병적 산물인 예천불지를 밖으로 떠드는 한, 다양한 종교와 사상과 각 개인이 권한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는, 그 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기에, 설자리를 잃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 현실이다.. 세번째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사회는 빈부의 차이, 학벌의 차이, 종교의 차이, 성별의 차이, 정체성의 차이등을 모두 포용하고 아우르는 법과 도덕과 질서에 바탕을 둔 윤리가 존재하며,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불문율로 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남녀 차별적 윤리, 인간간의 불평등이 만연한 기독교의 기울어진 윤리가 통할 사회가 아니다. 네번째는 범죄에 대한 대응문제다.. 자성과 자정이 없는 조직은 외압을 맞게 되어 있다.. 종교의 사회의 법적 도덕적 죄악의 모습에 대한 자정의 모습, 즉 천주교에서 신부 몇 명의 잘못이 생기면 그 해당자는 징벌하고, 교단 전체가 공동의 일인양 자숙하고 반성하는 흉내라도 내는 모습이나, 불교에서도 겉으로는 파문등 징계와 함께 성명등을 통해 사과와 공동책임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는 공동체적인 반성이나 의식도 없다.. 서로를 비난 하 듯, “그 사람들은 이단이라서 그래.., 마귀가 씌어서 그래.., 그 목사도 인간이니 그런 죄도 질 수 있지 뭐.., 그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어서 그래.., 그 사람은 기독교인도 아냐.., 등등..” 그러나 이들 모두 개신교라는 이름 하에, 야훼/예수를 믿고 바이블을 들고 말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의식의 자기 반성은 없이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의해 또 그 들을 중심으로 쪼개진 서로 경쟁적인 모습으로, 공통적으로 말하는 개신교라는 말과 공통적으로 믿는 야훼/예수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집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는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자성이나 자정이 없기에, 외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사회는 기독교편이 아니기에, 제법 논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다는 자만적 사고의 목사나 신도들은 안티분들과의 토론 사이트에서 떠나 버렸고, 이제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은 오로지 길거리에서 무례하게 타인의 말이나 불쾌감을 모른척하는 사람들처럼, 그저 예천불지를 외치는 행위를 보이는 사람이나, 논리없는 비아냥, 그리고 논리적인 토론을 거부한 일방적이고 선언적인 주장과 저주와 비난과 비방으로, 또 종교와 관계없는 쓸데없는 말장난과 그에 따른 어린 자존심으로, 점차 기독교는 처참한 수준을 보이고, 그 종교의 한계를 한껏 들어내며, 서서히 자멸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다.. 51
대화
몇 년 전에 안티를 시작할 때, 목사들이며, 논리적인 신도들이 많이 보였다..
그 들은 인터넷을 통한 전도에 열심이었고, 자신들의 타당성을 주장하려 무척 애를 쓰며,
안티분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대화자를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인터넷 용사를 양성하겠다던 목사도 조용해졌고 치졸한 방법으로 안티들의 논리를
게시판에서 지워가며 막는 쪽으로 돌아섰고, 변증으로 기독교를 변론하겠다던 목사도
안티들과의 대화를 멈추었다..
물론 그들이 핑계를 댄 것은, 안티들의 무례함이라 말하지만..
이 말은, 야훼/예수/성령에 대한 믿음의 의지로도 극복하지 못할 일이라 자인하는 비겁만
말 밖에 되지를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이 사회의 진리화 되어 교육되고, 지식과 상식이 되어 있는
과학의 현실을 극복할 수 없고,
각각이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는 인간간의 협력과 배려 그리고 합의적인 윤리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자각에 그 이유가 있다 생각한다..
즉,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러한 사회상에 대응하는 기독교를 위한 변론이나
반론이 바닥을 보인다는 것을 최소한의 양심으로 자각하고 자인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첫번째는, 기독교의 기본 골격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일인데,
사회는 창조설과 관계없이 자기 노력으로 창조설에 반하는 진화학을 비롯한 과학들이
교육이 되고, 지식 상식화 되어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조설을 구렁텅이로 모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이제는 어느 부모라도, 세계 전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화석의 설명 앞에선, 자기 자식이..
“저건 사람과 같이 살았고, 방주에 함께 실었어..”
라고 말해 주변에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즉, 창조설의 몰락은, 창조과정에서 발생한 원죄설을 엉터리로 만들고,
원죄설의 몰락은 예수의 구원을 사기로 만들며,
구원의 몰락은 천국지옥설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에 대한 결과는, 요즘 제법 논리에 자신있다는 자들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두번째는, 인권의 동등성이다.
인간은 종교의 자유와 함께 누가 토속신앙을 믿던, 불교를 믿던,
기독교를 믿던 종교성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어떤 종교가 유일신을 믿던 어쩌던 조용하다면야 누구도 관여할 권한은
가지지 않으나, 그런 유일신 종교성으로 사회에 나와 떠들 때가 문제가 된다..
이미, 이성이 발달한 사회는 자신의 권한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독선의 종교, 유일신으로 동등한 인권을 가진 타인의 권한을 침해하고, 타 종교를 마귀라
칭하며 비난하고 파괴하고, 유일신 사상의 병적 산물인 예천불지를 밖으로 떠드는 한,
다양한 종교와 사상과 각 개인이 권한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는, 그 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기에, 설자리를 잃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 현실이다..
세번째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사회는 빈부의 차이, 학벌의 차이, 종교의 차이, 성별의 차이, 정체성의 차이등을
모두 포용하고 아우르는 법과 도덕과 질서에 바탕을 둔 윤리가 존재하며,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불문율로 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남녀 차별적 윤리, 인간간의 불평등이 만연한 기독교의 기울어진
윤리가 통할 사회가 아니다.
네번째는 범죄에 대한 대응문제다..
자성과 자정이 없는 조직은 외압을 맞게 되어 있다..
종교의 사회의 법적 도덕적 죄악의 모습에 대한 자정의 모습,
즉 천주교에서 신부 몇 명의 잘못이 생기면 그 해당자는 징벌하고,
교단 전체가 공동의 일인양 자숙하고 반성하는 흉내라도 내는 모습이나,
불교에서도 겉으로는 파문등 징계와 함께 성명등을 통해 사과와 공동책임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는 공동체적인 반성이나 의식도 없다..
서로를 비난 하 듯,
“그 사람들은 이단이라서 그래.., 마귀가 씌어서 그래.., 그 목사도 인간이니
그런 죄도 질 수 있지 뭐.., 그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어서 그래..,
그 사람은 기독교인도 아냐.., 등등..”
그러나 이들 모두 개신교라는 이름 하에, 야훼/예수를 믿고 바이블을 들고 말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의식의 자기 반성은 없이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의해 또 그 들을 중심으로
쪼개진 서로 경쟁적인 모습으로,
공통적으로 말하는 개신교라는 말과 공통적으로 믿는 야훼/예수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집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는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자성이나 자정이 없기에, 외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사회는 기독교편이 아니기에, 제법 논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다는
자만적 사고의 목사나 신도들은 안티분들과의 토론 사이트에서 떠나 버렸고,
이제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은
오로지 길거리에서 무례하게 타인의 말이나 불쾌감을 모른척하는 사람들처럼,
그저 예천불지를 외치는 행위를 보이는 사람이나,
논리없는 비아냥, 그리고 논리적인 토론을 거부한 일방적이고 선언적인 주장과
저주와 비난과 비방으로,
또 종교와 관계없는 쓸데없는 말장난과 그에 따른 어린 자존심으로,
점차 기독교는 처참한 수준을 보이고,
그 종교의 한계를 한껏 들어내며, 서서히 자멸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