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웃대 - 후잉후이잉 님
건방진꼬맹이님을 위해 복원합니다.
“그 아저씨 삼베 옷 사이로 비치는 왼쪽 어깨에 문신을요”
下
‘쏴아아아’
빗줄기가 좀 전보다 더 굵어졌다. 이제는 아예 자동차 지붕에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차 안은 무거운 침묵이 가득하다 못해 터져버릴 기세였다.
‘왼쪽 어깨에 문신을요’
그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머리를 스쳤다. 우선 결론은 났다.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살인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정상참착은 될 만한 사유였다. 그렇다면 그는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담당 형사에게 일일이 열거하여 자신의 형량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했던 걸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결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정적인 이야기 후로 침묵을 유지하는 그의 자세는 나로 하여금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가 고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밖은 어두컴컴했다. 네비게이션 화면 속으로 가까운 곳에 주유소가 붙어있는 작은 휴게소가 보였다. 기름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 수 없는 불편함과 차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혀 그곳으로 진입했다.
“음료수 뭐 좋아하냐?”
“딸기 라떼요”
“어? 우리 와이프도 그거 좋아하던데. 새끼. 비싼 건 알아가지고”
그는 대답 대신 미소를 띄었다. 휴게소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 때문에 곳곳에 강이 불고 둑이 터졌다는 기사였다. 나는 딸기라떼와 커피를 계산대 위에 올려두고 돈을 꺼냈다. 그때 내 무릎 높이의 진열대에 놓여있는 작은 책의 표지가 보였다.
‘개와 고양이’
문득 그가 내게 처음 건네던 말이 생각났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때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서 아세요?’
뭔가 알 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 머릿속의 기억들이 서로간의 심리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저기요. 손님”
고개를 들자, 계산대의 직원이 별 희안한 사람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아, 네”
거스름 돈을 받은 나는 잠시 복잡해진 생각을 떨쳐내고 곧장 차로 향했다.
‘쏴아아아’
‘덜컥! 탁!’
“와, 비가 장난이 아니네. 자 딸기 뭐시기”
나는 옷을 털고는 그에게 딸기 라떼를 건넸다. 성인 주먹 반만한 넓이의 창살 사이로 음료수를 넘겨줬다. 나는 담배를 태우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습관처럼 창문을 내리려던 찰나, 나는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는 물었던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나 시발! 짜증나네 진짜”
‘덜컥! 탁!’
다시 휴게실 입구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차피 다시 돌아가는 길에 옷과 몸이 젖을 것을 생각하니 물을 털어내기도 귀찮았다. 차 안을 바라보니, 그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괜스레 방금 전의 행동이 민망해져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비 때문에 내 미소가 차 안까지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도로로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그는 내가 사준 음료수에 입도 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탔어. 임마”
“그게 아니에요”
그의 말에 나는 ‘그럼 뭐냐?’ 라는 표정으로 룸 미러를 쳐다봤다.
“열두 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요?”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07 : 32’
차를 꽤 오래 몰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서울까지 3분에 1도 가지 못했다. 약간의 조바심에 엑셀을 조금 더 밟기 시작했다.
“야. 근대, 네가 아까 했던 이야기는 이해가 가는데, 그 다음에 피해자 집까지는 어떻게 간 거야?”
나는 이전보다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아, 그거요. 문신을 보고 한참을 멍하게 서 있는데, 갑자기 어떤 빛이 제 머리를 스치는 거에요”
“빛?”
“제가 아주 오랫동안 꿈꾸고 계획했던 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확신이요”
“확신이라..”
“네”
“그래서?”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기다렸던지 첫 사랑과 마주한 듯 심장이 뛰어댔다. 그리고 조용히 건빵 주머니에 있는 녹음기의 고무 버튼을 눌렀다. ‘삐’ 하고 소리가 났지만, 간간이 고장 난 블랙박스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울려왔기 때문인지 그는 그 소리를 무시하는 듯 했다.
“곧장 폰 번호를 물어봤어요.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죄송한 마음에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죠. 원래 자기과시욕이 심한 사람들이 대접 받는 걸 당연시 여기거든요. 그런 인간들은 칼 대접을 한번 받아봐야 정신을 차릴 텐데. 역시 예상대로 번호를 주더라구요. 다음 날 바로 찾아갔어요. 주택이라서 CCTV 에 찍힐 일도 없었고, 날이 너무 더워서 길에 사람도 없었어요. 선물을 사 갔었는데 엄청 좋아했어요. 역겨워서 토 나오는걸 겨우 참았죠. 문신이 멋있다고 어느 나라 글자냐고 조심스레 물었어요. 한문이래요. 그때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미친 듯이 쿵쾅거리던 제 심장도 이상하리만치 식어버리는 것을 느꼈어요”
“어, 말 끊어서 미안하다. 근대 방금 말한 그 선물이라는 게..”
“그게..”
“괜찮아. 말해봐”
“약물인데요, 음..두려움이든 기쁨이든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극대화 시키는 거에요. 원래 마약이란 게 그렇지만, 이건 신종 마약이고 아직 국내에서는 마약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걸 인삼뿌리에 듬뿍 적셔서 인삼 차를 끓여갔어요. 한잔 하라 길래, 저는 실컷 먹어서 괜찮다고 했죠. 역시나 그 쓰레기는 지 것만 달랑 들고 오더라구요.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혼자 살더라구요. 잘됐다 싶었죠.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아시는 바와 같이 살인 미수 전과가 있다고. 그랬더니 저한테 그거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과거에 그런 살인미수에 버금가는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미친 쓰레기 새끼. 사람을 죽여놓고. 그리고 그 쓰레기는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셨어요”
말 끝마다 쓰레기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그보다 더한 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쓰레기가 싱크대에 컵을 내려놓을 때쯤 뒤에서 제가 소곤 거리 듯 시작해서 고함을 쳤어요"
그는 두 눈을 번득이며 그 당시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재연했다.
“천해동 213-6번지. 천해동 213-6번지. 천해동 213-6번지. 천해동 213-6번지. 천해동 213-6번지!”
읊조리듯 시작된 그의 목소리가 비명에 다다랐을 때, 나는 어깨와 등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그 순간에 두 눈에서 내뿜는 살기라는 것이 아마 저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에어컨의 온도를 2도 정도 올렸다. 마치 무대에서 열연하는 연극 배우처럼 그는 실제로 아주 많이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조용히 호흡이 잦아들었다.
“약 기운 때문에 아주 효과적이었을 거에요. 드디어 약발이 들기 시작했나 봐요. 쓰레기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저를 뒤돌아 보는데, 그거 있잖아요. 공포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아주 천천히 자신 뒤에 있는 귀신을 쳐다볼 때 움직임이요!”
그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리고 저는 히죽 히죽거리며 웃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갈색 면바지에 버클이 은색인 검은 벨트! 녹색 카라 티에 검은색 모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냐? 뒤질 때까지 아무도 모를 줄 알았냐?’ 제가 그렇게 미친놈처럼 소리치니까 갑자기 쓰레기가 벌벌 떨면서 바닥을 기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침까지 흘리면서 말을 더듬더라구요. 준비해온 회 뜨는 칼을 들고, 보통 사시미라고 하죠? 하튼 천천히 다가갔어요. 이제 제가 누군지 대충 감이 잡혔는지, 살려달라고 애새끼처럼 울고 불고 지랄병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는 뭐라더라? 이제 와서 복수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막 소리를 지르는 거에요. 우선 저는 뒤에서 그 새끼 머리통을 잡고 칼로 입을 찢었어요. 사람의 피부를 도려내는 느낌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웠어요. 그렇게 한쪽 입을 귀까지 올렸어요. 피가 사방으로 튀더라구요”
나는 다시 한번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제가 말했어요. 그럼 복수 안 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간신히 붙은 한쪽 아가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죽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살려두고 매일매일 아주 천천히 갈기갈기 찢어 죽였어야 됐는데, 죽여버리고 나니까 허무했거든요”
룸 미러를 통해 보이는 그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서 말도 안 되는 깊은 연민을 느껴야 했다.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채로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더라구요. 이대로는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잡히겠다 싶어서 한번 더 소리 지르면 칼로 성대를 후벼버릴 거라고 하니까 으 으 거리면서 온 몸을 부들부들 떨더라구요. 제가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아니면 생존본능 때문인가? 베란다에 노끈이 있길래 팔 다리를 꽁꽁 묶고 칼로 바지랑 팬티를 도려냈어요.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테이프로 입을 막고는 벌겋게 충혈된 그 새끼 눈가에 대고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지? 기분이 어때?’ 하고 물어봤어요. 그제서야 알았는데 제가 울고 있더라구요. 그 새끼도 울고 있었어요. 미친 새끼. 그 나이 처먹고 아프다고 울긴 왜 우는지. 사람 마음 약해지게. 그런 새끼가 일말의 양심과 자책감을 느낀다는 것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자체가 화가 났거든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엄마를 죽일 때처럼 그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랬는데..”
잠시 그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생각보다 피가 너무 많이 솟구쳤어요. 성기 부분은 조그만 자극으로도 피가 잘 몰린다고 들었는데, 잘라내고 나서는 정말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어요. 그리고는 그 새끼 목을 졸랐어요. 아주 천천히 강하게 압박했어요. 눈에 흰자가 보이면 다시 풀어주고, 졸랐다가 흰자가 보이면 다시 풀어줬어요.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나니까,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전신이 파랗게 변하면서 부들부들 떨어댔어요. 그래서 제가 소리쳤죠. 죽지 말라고. 아직 죽으면 안되니까 기다리라고. 죽으면 고통도 끝나고 다 끝나니까. 그때 처음 후회했어요. 아랫도리 잘라낸 걸 후회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미친 짓이었다고 느껴지네요. 다시 칼을 집어 들고는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 같은 게 들었어요. 닥치는 대로 찔렀어요. 칼이 방바닥에 꽂히는 게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찔렀어요. 사방 팔방에 피와 피부 껍데기가 튀어 올랐어요. 얼마나 쑤셨는지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새끼는 전혀 미동이 없었어요. 완벽하게 죽어 있었죠. 칼을 던져놓고 주변을 둘러봤어요. 그 뒤로 몇 분 간 계속해서 토를 했어요. 속에 있는 걸 모조리 다 비워냈어요”
그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리는지 침을 삼키며 수갑을 찬 두 손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렇게 거기서 한참을 대성통곡 했어요. 허무하기도 했고,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가슴 아프기도 했어요.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10년이 넘도록 참아왔던 그리움 이라는 본능이 고개를 들었어요. 저는 부모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절에 부모를 잃었어요. 평생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어요. 가슴에 사무치도록 밤새 울면서 불러봐도 이 세상 어디에도 그 분들은 없었어요. 그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수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잠시 고개를 숙인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제 부모의 원수를 죽이고도 이렇게 쇠고랑을 차고 감옥신세를 져야 하는 이 세상이 참 우습네요. 거짓과 위선 뿐인 더럽고 성기 같은 세상이에요. 내가 너무 아프고 너무 힘들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상상조차 하지 않아요. 물론, 극한이 존재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애써 그 이상의 상상을 한다는 게 사치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럴 듯 하게 공감하는 척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반복되는 상대의 아픔에 대해 지겨워 하고 ‘그 정도면 됐으니’ 아니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식으로 최대한 빨리 자신들과 동화되기를 원하죠. 그게 뭔지 아세요? 이제 더 이상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으니, 그대로 살던지 아니면 도와줄 때 못 이긴 척 넘어 오라는 거에요.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시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골목에 두 사람이 있는데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지나친다면 별 문제될 게 없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향하는데, 저 혼자 왼쪽으로 향하는 그 순간 저는 의도치 않게 특수화가 되어 버리는 거에요. 있잖아요. 세상에는 온통 살인자들 밖에 없어요. 법이 어떻다, 정치가 어떻다, 다들 입으로만 떠들어 대지만, 실제로 그들이 하는 게 있나요? 모두 더럽고 치사한 방관자일 뿐이에요.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방관할 뿐이에요. 자신이 나약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의식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여전히 오른쪽으로 걸어가고 있죠. 인터넷의 수많은 뉴스기사에는 죽일 듯이 댓글을 달아대면서 실제 청와대나 국회 앞에서 그만한 수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나요? 억울한 살인사건과 범인의 말도 안 되는 형량에 대한 기사에 판사를 죽일 듯이 올라오는 수천 개의 의견들 중에 당장 내일이라도 실천에 옮기자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거에요. 그리고 참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픔이 드러났을 때, 그것이 자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주 밖에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손가락질 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누군가가 사소하게 자신을 무시한 일에 대해서는 몇 날 몇 일을 상상 속에서 찢어 죽이고 밟아 죽이면서 말이에요. 저는 제 아픔을 통해서 세상에 눈을 떴고, 세상에 눈을 뜨면서 진실을 알게 됐어요”
나는 순간 그렇지 않다고 반문할 뻔 했다. 이 세상의 생명 중에 완전하게 똑같은 건 아무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개인마다 의견의 차이가 분분하고, 같은 행동에도 수많은 다른 의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이 세상을 바라보는 두 눈을 마비시켰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물론, 내가 그와 같은 입장이라면 지금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끔찍한 살인의 현장에서 자신이 뱉어낸 토사물 위에 앉아 그리움에 사무쳐 대성통곡을 한다는 그 자체가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로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것은 해결과 개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그를 체포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만약 오늘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제 2의, 제 3의 피해자가 속출했을 것이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네 자신만의 생각이라고 느끼지 않냐? 네 입장에서는 내가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 또한 마찬가지로 내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걸로 보이거든. 그냥 그렇다는 거야”
“일종의 고정관념을 이야기하시는 거 같네요”
“고정관념을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그 자체도 고정관념이 될 수 있어”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다시 무의미한 침묵의 시간이 이어질까봐 무심결에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 나하고 만날 일 없었으면 또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냐?”
“체포될 걸 알고 있었어요”
“일부러 신고가 들어가게 했다는 말처럼 들리네”
“정확하시네요”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는 웃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열변을 토하다가 화제가 바뀌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짓는 게 가능이나 한 것일까? 생각이 이쯤 와서야 나는 그의 말들이 거짓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왜 한번도 그의 이야기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전제를 두지 않았던 걸까?
“그러니까, 체포되지 않았다고 가정을 해보자고”
“네”
“또 사람을 죽였을 거 같아?”
“사람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어요”
“뭐?”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제가 그 새끼를 죽이고 나서 제일 화가 났던 게 뭔지 아세요?”
“방금 했던 말. 내가 다시 묻잖아 새끼야!”
나도 모르게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 새끼가 잃을 사람도, 그 새끼를 잃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다는 거에요! 저는 세상의 모든 걸 빼앗겼는데! 그 강아지는 그 이후로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무 탈없이 혼자 살아왔고, 그 덕분에 저는 쓰레기를 처리하고도 아무런 성취감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또 죽였냐? 어?”
나는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룸 미러로 그를 노려봤다. 잠시 동안 거울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나는 서로를 쏘아봤다.
“지금 이미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요”
“어딘지 말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왠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아 불쾌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에 반해 나는 빙산의 일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짜증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대로 서울로 가서는 안될 거라는 형사로써의 촉이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새로운 사건을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점점 더 급해졌다.
“흥분하지 마세요. 감정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에요”
나는 그의 말 속에서 아주 잠시 동안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 감정적으로 다가가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정상인의 범주에 속해있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이번엔 어디야?”
“궁금하세요?”
“직접 말할래? 아니면 말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줘?”
“강진혁 형사님”
나는 그의 말과 동시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야 이 강아지야.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언제부터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차 안은 심하게 습하고 후덥지근했다.
“너 뭐야! 너 누구야!”
“제 담당 형사님의 성함도 몰라서 되겠어요? 예의가 아니죠. 지금부터 형사님이 잘하는 거 하나 해볼까요?”
이제 그는 아예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름 강 진 혁. 나이 서른 넷. 2남 1녀 중 막내. 본적 경기도 양주 시, 태현동 184-6번지. 태현 병설 초등학교 졸업. 태현 중고등학교 졸업.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 포기”
핸들을 잡고 있던 내 팔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지원으로 군 입대. 6사단 근무. 제대 후, 누군가의 입김으로 강력계 형사로 취직. 지난 12년 간, 어중이떠중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감방에 쑤셔 넣은 괴물 형사. 28살이 되던 해 결혼. 아내 이 지은. 나이 스물 여섯. 그리..”
“강아지야..너 누구야..”
나는 떨리는 몸을 최대한 억지로 가누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차를 세우면 넌 죽는다”
“형사님은 절대 저를 죽일 수 없습니다”
“죽이면?”
“형사님은 자신의 분노 때문에 소중한 것을 포기할 만큼 멍청한 분이 아니니까요”
‘끼익!’
내 발목은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고 있었다. 그 때문에 뒷좌석에 있던 그는 창살에 얼굴을 박았다.
“이 시발 놈이 오냐 오냐 하고 이야기 들어주니까 눈까리에 뵈는 게 없지?”
“형사님도 참, 저한테 이렇게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관심을 주시는 분이신데.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저를 잡아 넣으려고만 하시니까, 형사님도 좀 아셔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전에 조사 좀 했죠. 사건 현장에서 속으로 이런 생각 안 하셨어요? 나는 김 진우다, 나는 김 진우다, 여기서 쑤시고 저기서 찌르고 나는 김 진우다, 그 다음은 어떻게 했을까? 라구요. 정말 제가 되고 싶으시면 같은 입장이 되어 보셔야 하니까요. 백문이 불여일견”
차를 세운 나는 와이퍼를 껐다. 빗물이 강물처럼 전면 유리창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한참을 바라봤다. 순간 머릿속으로 여러 화면들이 지나갔다.
‘음료수 뭐 좋아하냐?’
‘딸기 라떼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때,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서 아세요?’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몰라 그런거’
‘그 새끼가 잃을 사람도, 그 새끼를 잃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다는 거에요. 저는 세상의 모든 걸 빼앗겼는데’
‘아빠, 이 책 좀 읽어줘’
‘개와 고양이’
‘아빠 지금 자야 돼. 나중에 집에 오면 읽어줄게’
‘강아지가 막 꼬리 흔드는데 고양이는 발톱을 세운데 아빠’
‘아빠 자야 돼요. 여보. 은정이 책 좀 읽어줘’
‘여보, 오늘은 집에 올 거지? 올 때 딸기 라떼 하나 사와’
‘진혁아. 네가 중요한 일로 지방에 가 있는 건 알겠다만, 지금 용의자 잡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냐? 거기다가 지금 너보고 잡으러 와달라는 것처럼 아다리가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데. 너 안 갈 거야? 내가 볼 때 이건 백 프로 하늘이 도운 거다”
‘덜컥’
나는 반사적으로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나와 이 시발 강아지야”
‘퍽’
말과 동시에 그의 얼굴 정면에 주먹을 내리 꽂았다. 그의 머리는 힘없는 보리처럼 젖혀졌다.
“큭큭큭”
“그래, 웃음이 나오지? 언제까지 웃을 수 있겠냐? 면상이 똑바로 붙어 있을 때 실컷 웃어라”
“저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단지 형사님 가족한테 위협되는 말 몇 마디 했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드시네요. 저는 제 가족을 죽인 새끼를 쳐죽이고도 빵에 가야 되고, 참 세상 성기같이 굴러 가네요. 그쵸?”
“지랄하네”
나는 그를 흙탕물에 집어 던지고는 미친 듯이 밟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땅에 박혀있는 돌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나는 곧장 다시 일어서서 그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목을 양손으로 감싸고 힘을 줬다. 그는 뭐라고 소리쳤지만, 빗소리와 천둥 번개 소리 때문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그가 진실을 말할 때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빗물이 금방 그의 입을 가득 채웠다. 그는 빗물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했다.
“히! 히! 힌! 트!”
어렴풋이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내 자신이 너무 강하게 그의 목을 압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저만치 떨어졌다. 그동안 느꼈던 알 수 없는 압박감들과 불안감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폭우 때문에 그의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달빛마저 가리는 강력한 폭우였다.
“켁! 켁! 콜록! 콜록! 후! 힌트를..콜록! 준다니까요! 시발! 캬악! 퉤! 왜 사람 말을 안 들어요?”
“말해. 마지막이다”
“잠시만요! 콜록!”
“말해! 어디야!”
나는 온 몸을 쥐어 짜내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