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마지막 거래下(완결)

나요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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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대 - 후잉후이잉 님

 

건방진꼬맹이님을 위해 복원합니다.

 

 

下 – 이야기의 끝







“말해, 마지막이다”

“잠시만요! 콜록!”

“말해! 어디야!”

나는 온 몸을 쥐어 짜내어 소리쳤다. 주변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 뿐이었다. 가끔 번쩍이는 번개 빛으로 간간이 서로의 얼굴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형사님”

“개 수작 부리면 죽는다”

“거래 하시죠”

“덜 맞았냐?”

“형사님의 가족을 걸고요”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 목이 막혀 버렸다.

“믿고 안 믿고는 형사님 마음이지만, 일은 이미 시작됐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PM 4 : 00. 강진혁의 집]


“은정아. 옷 다 입었어?”

“응! 엄마. 근대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아빠 만나러 갈 거야. 우리 은정이 장화 신자”

“응 그런데~ 아빠 밥은 먹었대?”

“어이구, 우리 은정이 다 컸네. 아빠 만나서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안 먹었다고 하면 엄마랑 같이 혼내주자!”

“응!”

두 사람은 한 통의 휴대폰 메시지를 받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PM 8 : 00. 7번 국도 도로변]


“내가 네 제안을 받아들이면 나한테 좋은 게 뭐지? 만약 네가 거짓말 하는 거라면? 제안을 하기 전에 널 믿을만한 껀덕지가 없잖아”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고를 떠나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형사님의 가족 문제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해도 확인할 방법은 없어요”

그의 말에 내가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핸드폰 켜는 그 순간, 경찰청에서 위치추적 할 게 뻔해요. 그럼 따로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아도 개떼처럼 몰려오겠죠. 그렇게 되면 형사님이 제게서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맞는 말이었다. 경찰청에서 따로 지시가 있었다면 위치추적 할 필요도 없이 우린 벌써 잡혔을 것이다.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걸 보면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도로 달리면서 차를 한 대라도 본 적 있으세요? 이런 미친 날씨에 괜히 사람 하나 더 내보냈다가 사고나 문제라도 생기면 언론에서 까대는 걸 피할 수 없을 텐데요. 제가 경찰청장 정도 되는 머리를 가졌다면 분명히 기다릴 거에요”

“거절하면?”

“거절할 수 없어요”

그의 일방적인 말투에 난 잠시 할말을 잃었다.

“만약 형사님이 거절할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제 말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겠죠. 아마 저는 지금쯤 실컷 두드려 맞고 뒷좌석에서 딸기라떼나 빨고 있었을 거에요. 그렇게 친다면 굳이 비를 쫄딱 맞아가면서 바쁜 시간 쪼개어 저와 진지하게 대화를 하실 필요가 없지 않나요? 제 말이 틀렸나요?”

“신발..”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원하는 게 뭐야?”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 가족이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써 외면함으로써 최대한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일종의 자기최면을 하려 노력했다.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 할게요”

그의 말에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 녹음기부터 주시죠”

“뭐?”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그 정도 소리는 구분할 수 있어요”

나는 그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난 건빵 주머니에 들어있던 녹음기를 멀리 산 속으로 던져 버렸다.

“됐냐?”

“네. 그리고 차에 타면 뒷좌석으로 열쇠 좀 던져주세요”

“그건 안돼”

“어차피 제가 거기서 문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도 그건 안돼”

“은정이가 올해 몇 살이죠?”

“야 이 강아지야!”

“열쇠 주시는 걸로 하시죠”

참기로 했다.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내가 그를 체포하고 있다가 이제는 역으로 그가 나를 체포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다시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동을 걸고 뒷좌석으로 열쇠를 던졌다. 그는 혼자서 이래 저래 끙끙 거리다가 수갑을 풀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외로 수갑을 풀고 나서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몇 번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하자 운이 좋게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 차 안은 지독하다 할 정도로 찝찝했다. 높은 습도와 찌는 듯한 더위에 몸에 남아 있던 빗물이 땀과 함께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장소를 말해”

나는 정말 필요한 말만 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상황에 그와 말을 섞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14번 국도로 갈아타야 돼요. 형사님이 제가 생각했던 루트와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가시더라구요”

찜질 방 같은 차 안에서 이질적인 한기가 등을 타고 흘렀다. 나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그에게 이용당하고 철저하게 우롱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와 허탈감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우선, 지은이와 은정이의 안전을 보장 받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는 전제하에 나도 조건이 있다”

“말씀 하세요”

“구체적으로 내 가족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지 알고 싶은데”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어요. 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밖에는..”

‘끼익!’

그는 다시 한번 철창에 부딧쳤다.

“장담하는데, 내가 네 조건을 다 들어주는 대신에 이 부분에 대해서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내 가족을 포기하고라도 널 죽여버릴 거다”

“앞으로 두 시간 십 분. 제가 드릴 대답은 이게 끝이에요. 저도 마지막 경고입니다. 많은 시간 같지만, 지체할 새가 없다는 점 명심하세요”

‘덜컥! 탁!’

“아아아아악!!”

나는 차에서 내려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빗물과 눈물이 함께 섞여 흘렀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그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헉, 헉”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몇 분이 지나자 목이 아주 쉬어버렸다. 갑자기 몸에 냉기가 느껴졌다. 소름이 돋으면서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기가 오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도 나약한 인간 이었던가. 나름대로 흉악한 범죄자들과 1선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살아온 지 어느덧 12년.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범죄자라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내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겨우 이정도 상황에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해 올 정도로 나약해지는 내 신체와 정신력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무기력. 그래. 이것이 그가 느꼈던 것이리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나는 나를 위해서 그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자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시 차에 탔을 때 그는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사색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형사님이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은 시작일 뿐입니다”

나는 대답 없이 시동을 걸고 속력을 올렸다. 빗길이라 위험은 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빗길이나 빙판 길에서 바퀴가 헛돌거나, 미끄러지기 직전에 내장형 컴퓨터가 각 바퀴에 제동력을 독립적으로 제어해줍니다’

원래 나는 자동차 기능을 믿지 않는 편이었다. 연초에 차를 구매할 당시 영업사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번 의지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운전이라면 자신 있었기에, 나는 엑셀을 밟는 발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폭우 속에서 위험천만한 고속 질주가 시작됐다. 길목마다 과속 카메라가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속력을 올렸다. 그는 동요하지 않는 듯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했다. 단순히 내 가족의 목숨을 노리는 것, 그 이상의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 상태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동질감을 얻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마저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나를 노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나를 위협해올까? 이런 상황에서 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나는 내 가족을 잃는 것도, 가족들이 나를 잃는 것도 싫었다. 내가 없으면 내 가족도 없다. 나는 내 자신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고 타일렀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끝나버리면 그것은 실제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종교도 없고, 신도 믿지 않는 나에게 죽음은 곧 끝일 뿐이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날씨였지만, 도로 양쪽에 늘어선 흐릿해진 가로등 불빛과 네비게이션 화면에 의지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은 채로 수십 분이 흘렀을 때였다.

“좌회전 하세요”

“여기서 무슨 좌회전을 해”

“기계가 사람보다 정확할 수는 없어요”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좌회전을 하자, 자동차 한 대가 꼭 들어갈 정도의 너비를 가진 작은 시골 길이 흐릿하게 보였다.

“길 따라 쭉 가시면 됩니다”

나는 마치 택시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길가에 나무가 늘어났다.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들어가자 예상대로 울창한 숲이 나왔다. 그곳에서 나는 꼬박 몇 시간 만에 깨끗하게 확보된 시야를 느낄 수 있었다. 이파리가 거대한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엄청난 폭우를 막아주고 있었다. 나는 이 와중에도 작년 식목일이 떠올랐다. 지은이가 은정이를 데리고 묘목을 심으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 날 잠복 근무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미안함과 함께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못해줬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직업 상, 상황 상 어쩔 수 없다고 싸우면서도 끝까지 내 입장만을 고집하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몇 번이고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새삼 느껴지는 소중함에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짐했다. 두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는 그 순간, 그를 가만두지 않으리라고. 체포는 물론이겠거니와 온 몸에 뼈를 다 부러뜨리겠노라고 다짐했다.

“여기 차를 세우세요”

나는 말 없이 차를 세웠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주세요. 두 사람은 지금 지하에 갇혀 있어요. 옛날에는 사람이 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로 남아 있어요. 이 산에는 그런 건물이 몇 개 정도 있거든요. 지하는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고, 산소가 부족해요. 그래서 제가 4시간 가량 버틸 수 있는 산소통을 넣어뒀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손목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열 시까지 한 시간 남았네요. 제게 자유를 주시는 조건으로 동행해드릴게요”

“하나만 이야기 하자”

“말씀 하세요”

“지은이하고 은정이 생사 알게 되는 순간에 네가 내 옆에 없기를 바란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다시 차에 탄 후로 무섭도록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의 말을 믿으면서 경계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고문하고 때려서 입을 열 인간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트렁크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그와 나는 어두운 산길을 손전등에 의지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옆구리에서 허전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방에 넣어 둔 권총이 생각났다. 하마터면 아! 라고 소리칠 뻔 했다.

“너무 어두워서 길을 찾기가 힘드네요. 잠시만 여기 계세요”

“잠깐”

“제가 가는 곳을 전등으로 비추시면 되잖아요”

내가 뭐라 답을 할 새도 없이 그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손전등으로 그를 비추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내 시야에서 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나는 뒤늦게 손전등을 좌우로 휘저으며 뛰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들이 내는 거대한 합주곡과 천둥 번개 소리만이 천지를 메울 뿐.


[PM 7 : 32. 지은과 은정]


“엄마!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으흑흑..엄마 어디 갔어”

방에는 잠에서 깬 은정의 울음 소리만 울려 퍼지고,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같은 시각, 바깥에서 지은은 그녀대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이 오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 있을 은정이 행여나 자신을 찾지는 않을까 마음이 급해졌다.

“어디 있더라, 어디 있더라”

그녀는 정신 없이 중얼거리며 자동차 안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PM 9 : 00. 14번 국도 변 산기슭]


“지은아! 은정아!”

나는 이 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은 온통 어두컴컴해서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들었다. 빗물이 계속해서 이마를 타고 흘러 시야를 방해했다. 처음부터 그의 말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를 제압하고 포박했어야 했다. 지독한 심리전에 끌려 다니면서 내가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할 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처음 그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짧게 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애초에 피할 수 없는 거래였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달리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처음 지방청을 지나칠 때 차를 세웠더라면 지은과 은정이 사라졌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전화를 안 받아도 왜 받지 않는 지에 대한 불만만 품었을 것이다. 이게 내 모습이었다. 지금까지의 결혼 생활에서 단 한차례도 내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올 때 지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겠냐는 말에 ‘피곤하게 왜이래’ 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했다. 이제서야 알았다. 오늘은 그녀와 나의 결혼 기념일 이었다. 첩첩 산중에 대한 두려움과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그의 존재, 그리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가족에 대한 절실함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를 흘려가며 계속해서 산을 헤매고 있었다. 온 몸이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몸살 기운에 삭신이 쑤셨고, 머리에서는 가마솥 끓듯 열이 끓어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지은이와 사랑하는 내 딸을 찾아야 했다. 그때, 내 손전등의 빛이 도달하는 끝 부분에 나무로 된 무언가가 보였다. 내 발걸음은 빨라졌다.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곳에는 나무로 된 제법 큰 가옥이 있었다. 여기 저기 파손된 흔적으로 보아 꽤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어두컴컴한 산 속에 있는 폐가.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망설이지 않고 손전등을 비추며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걸을 때마다 마루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빠”

나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한, 하지만 이 건물 내부에서 들리는 음성을 들었다. 분명히 은정이의 목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나무 바닥 아래에서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벌어진 복도 틈새로 손을 집어넣고 나무로 된 마루를 통째로 들어올리며 마구잡이로 부수기 시작했다. 손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방금 전에 들었던 은정이의 목소리 뿐이었다. 한참을 뜯어내었을 때야 비로소 내가 들었던 음성이 환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고, 동시에 지나치게 나약한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 곧바로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계단이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달려 나오던 나는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바위에 이마를 때려 박았다. 머리 전체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힘겹게 눈을 떴을 때, 빗물과 함께 뜨거운 혈액이 내 눈 위로 흘렀다. 그 즉시 나는 고통에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태어나서 이렇게 큰 고통은 처음이었다. 조직 폭력배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야구 방망이로 여기 저기를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거울이 없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이마가 상당 부분 찢어진 게 확실했다. 잠시 후 고통이 무뎌질 때쯤 나는 다시 일어섰다.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PM 9 : 25’

“지은아! 은정아!”

좀 더 기운을 내기로 했다. 이마가 두근거리고 아려서 미칠 것 같았지만, 내게는 이조차 사치였다. 가옥에서 오른쪽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손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손전등 마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면 내가 이 산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제발, 제발, 제발’

마음 속으로 애원하듯 수 없이 외쳐댔다.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불빛 때문에 건물이 보였다 말았다 를 반복했다. 그때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번쩍거림과 동시에 거대한 폐허가 된 공장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한밤 중에 이런 건물을 보고 좋아서 날뛰는 인간은 나 뿐일 것이다. 나는 그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문이랄 것이 따로 없었다. 건물 전면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통째로 뜯겨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과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진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가 나를 감쌌다.

‘삐! 삐!’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에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자, 작은 열쇠뭉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얼마나 기뻤던지 입이 귀에 걸릴 듯이 미소가 지어졌다.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살피려는 찰나, 손전등의 불이 꺼졌다. 몇 번을 바닥에 치고 손바닥에 때려봐도 불은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문이 이 건물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대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1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 무사히 내 가족들 되찾을 수만 있다면, 지난 날의 과오를 잊고 새로운 남편, 새로운 아빠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갑자기 이마의 통증이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두려움에 떨며 나만 기다리고 있을 두 여자를 생각하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때, 내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돌아봤다. 순간 번개 불이 번쩍이며 밖으로 뛰어 나가는 형체가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김 진우!”

잠깐 본 기억으로 그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잡아야만 했다. 어둠 속에서 순수하게 방향 감각 만으로 달려 나갔다. 주변을 살피자, 가까운 곳에서 손전등 불빛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에는 이미 불빛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헉..헉..나와 이 강아지야! 이게 네가 말한 거래라는 거냐? 비겁한 새끼. 넌 살아오면서 그런 취급 받아도 싼 새끼야! 널 욕하는 사람들을 원망만 해왔지. 정작 문제가 너한테 있다는 건 모르는 불쌍한 새끼. 잠시나마 널 안타깝게 바라봤던 내가 병신이다. 나와라! 나와서 여기서 깨끗하게 다 정리하자!”

있는 힘껏 악을 질렀지만, 내 목소리는 금새 폭우 소리와 천둥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나는 천천히 내가 나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간간이 터지는 플래쉬 같은 번개 불 덕분에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지독한 날씨였다. 온 몸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처럼 흙 덩어리들이 여기 저기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 건물 안쪽에 밝은 빛이 보였다. 손전등 이었다. 이것이 그의 꾀임에 넘어가는 것이라는걸 알면서도 내가 손전등을 챙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계획에 치가 떨리지도 않았다. 다시 제대로 앞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상자를 찾은 왼편에 내리막으로 된 계단이 있었다.

‘삐걱, 삐걱’

위태롭게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나는 내가 찾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확신이 섰다. 완전히 지하에 들어섰을 때 1층에서 발소리가 났다. 이리 저리 뛰고 있었다. 순간, 그가 입구를 봉쇄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보다 아내와 딸의 얼굴이 내 판단을 막아섰다. 잠시 후 나는 커다란 철문에 가로막혔다. 조심스레 열쇠를 꺼냈다. 첫 번째 열쇠를 넣었다. 맞지 않았다. 두 번째 열쇠를 넣었다. 그 또한 맞지 않았다. 세 번째 열쇠를 넣었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점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네 번째 열쇠가 실패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지막 다섯 번째 열쇠의 이가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PM 9 : 42. 지은과 은정]


엄마와 딸은 바닥에 누운 채 전혀 미동이 없다. 지은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힘이 없는 듯 움직임이 없었고, 은정은 반듯하게 눈을 감은 채 움직임이 없었다. 지은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은정을 바라봤다. 은정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그녀 또한 조금씩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PM 9 : 50. 산기슭 공장 건물 지하]


내 머리는 움직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마에서 시작된 갑작스러운 통증이 전신을 싸고 돌았다. 희미하게 시야가 흐려졌다. 손목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시간은 5분도 남지 않았다. 짐승처럼 네발로 기었다. 마지막 집념이었다. 내가 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계단을 손바닥으로 짚고 일어섰다.

“으..으..”

전신이 아려왔다. 다시 눈물이 났다. 미치도록 서러웠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내가 이렇게 어이없게 가족을 잃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간, 일을 핑계 삼아 가정을 보살피지 못했다는 것의 대가가 이리도 크다는 말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로지 진급을 향해서 미친 듯이 뛰고 또 뛰어왔다.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가정의 기둥으로써 실질적인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표현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잘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었다. 단순히 그냥 보고 싶다는 생각 이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몇 분 뒤면 이제 나는 그들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내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만나고 싶었다. 다시 마주할 수만 있다면 죽도록 껴안아 줄 텐데. 갑자기 밖이 조용해졌다. 비가 그친 게 아니라면 내 귀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침까지 흘리며 온 힘을 다해 일어섰다. 1층에 올라서자 영롱한 달빛이 건물 안을 비췄다.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일기예보는 틀려야 제 맛이라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었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커다란 보름 달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자연 빛인가? 시선을 거두던 중 약 30m 가량 거리에 서 있는 그가 보였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다. 덜덜 떨리는 두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한 채 걷다시피 그를 향해 뛰어갔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죽여야 한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절대 살려둘 수 없다. 지은이와 은정이를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이겨낼 수 없는 슬픔으로 내 얼굴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뚜둑!’

갑자기 내 시야가 아래로 쏠렸다.

“아악!!!!!!!!!”

탈진 상태로 달려가던 나는 물 웅덩이에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발목이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아!!!!!!!!!!!!!아악!!!!!!!!!!!!!!강아지야..죽여버릴거다..절대 감빵에서 썩지 못하게 할거라고!! 아악!!!!!!!!!”

나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으흐흑..흑흑..여보..은정아..”

이성을 잃은 채 흙에 얼굴을 파묻고 서럽게 울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사지가 풀린 채로 드러누워 다가오는 그에게 흙과 돌을 던졌다. 그것은 던지는 것이라기 보다 허공에 흩날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대로 세상이 무너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환청도 지겨웠다.

“김 진우! 엎드려! 엎드리지 않으면 쏜다!”

“진혁아! 진혁아! 정신차려! 이 새끼야!”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나는 어렵게 눈을 떴다. 박 경호 선배였다.

“혀, 형. 지은이랑 은정이가..”

“아무 말 하지 말고! 정신부터 차리자. 일어설 수 있겠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반쯤 떠진 눈으로 확보한 시야에는 그가 엎드려 체포 당하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알고 온 걸까.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누워있었다. 잠시 멍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스쳤다. 나는 맨손으로 링겔 바늘을 뽑았다. 피가 튀었지만 손바닥으로 누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통기부스가 된 발목에서 통증이 밀려왔지만, 목발을 짚고 걸어 나갔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와서 나를 말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경호 선배도 달려와서 나를 붙들었다.

“진혁아. 왜 이래! 일단 누워있어”

“형, 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 새끼가..그 새끼가 지은이랑 은정이를 죽였어..흑흑..형 나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돼..내가 뭘 잘했다고.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안돼..시신이라도 수습해야지..”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울며 힘 없이 속삭였다.

“무슨 소리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이게 진짜 미쳤나. 재수씨하고 은정이 지금 팬션에서 너 기다리고 있어. 이 새끼. 너 이야기 들어보니까 뭐 결혼 기념일 모른 척 하고는 팬션 잡아서 이벤트 해주려고 했다며. 내가 의사한테 물어볼 테니까 외출 된다고 하면 옷 입고 가자. 내가 아직 너 다쳤다고 이야기 안 했다. 둘이 말이 다르면 안되니까. 간호사님. 혹시 이마 박아도 사람이 이상해지나요?”

경호 선배는 장난 끼 어린 표정으로 간호사를 보며 말했고, 간호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뭘 무슨 소리야. 새끼야. 아 이거 완전 정신 줄 놨나 보네. 너 세게 박았냐? 어디? 어디? 보자”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며 내 이마를 살피는 선배의 행동은 장난 그 자체였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두 눈을 감고 크게 소리쳤다.

“아 그러니까 둘 다 살아있다고? 확실하지! 이 시발 거짓말이면 형 뒤진다 나한테!!”

“아 놀래라! 이 새끼가 왜 욕을 하고 지랄이야 무섭게. 그래! 안 죽었다! 빨랑 옷 입어! 형이 의사한테 잘 이야기 해볼게”

선배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것보다 우선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마 내가 평생 동안 쏟아낸 눈물보다 어제, 오늘 쏟아낸 눈물의 양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옷을 갈아입고 경호 선배의 차에 올라탔다.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저 멀리 팬션 한 채가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설레었다. 이토록 나를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인가. 경호 선배가 큰 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다. 창문으로 밖을 보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를 보고 미소 짓다가 이마에 붙은 커다란 반창고를 봤는지 놀란 얼굴로 은정이와 함께 달려 나왔다. 나는 차에서 내렸지만, 기부스 때문에 그대로 넘어졌다. 내 꼴을 보고 놀란 두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사랑스러운 딸은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았다. 세상 하나 뿐인 아내는 놀란 눈으로 나와 경호 선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때 알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왜 살아가는지. 왜 살아있는지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정답을 깨달았다. 선배의 부축으로 목발을 짚고, 팬션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대충 사건 도중 넘어져서 다쳤다고 둘러댄 뒤, 파티를 시작했다. 온 몸이 쓰라리고 아팠지만 그런 건 아무렴 상관 없었다. 케이크를 자르던 은정이 뭔가가 떠올랐는지 플라스틱 칼을 내려놓고 내게 말했다.

“아빠! 아빠! 엄마가 나 자는 동안 장보러 가서 나 혼자 막 울고 그랬어! 엄마 혼내줘!”

은정의 말에 나와 아내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 왜 웃어! 혼내달라니까! 아빠도 나빠!”

“대신 엄마가 시체놀이도 같이 해줬잖아. 벌써 잊었어?”

“치, 그건 아빠랑 해야 더 재밌단 말이야. 아빠는 진짜 시체처럼 계단에 매달리고 그런다고!”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불현듯 그가 생각이 났다. 모든 이야기의 열쇠는 그가 쥐고 있으리라.

[3일 뒤. AM 11 : 00. 서울 청사]


“충성!”

“충성. 쉬어”

“쉬어, 열중 쉬어!”

제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은 이 성훈 경찰 청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앞에 서 있는 강진혁 형사의 왼쪽 가슴에 금빛 훈장을 직접 달아주었다. 동시에 강당 전체에 박수 소리와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다 청장님 덕분입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청장은 미소로 화답했다.


[PM 3 : 00. 조사실]

“형. 마이크 꺼줘. 안쪽 녹음기도 꺼주고”

“괜찮겠어?”

“괜찮아. 나 못 믿어?”

“저 새끼를 못 믿겠다”

나는 웃으며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사각형 탁자 앞에 반가운 얼굴이 앉아 있었다. 한때는 정말 지독하게도 죽이고 싶었던 대상이자, 깊은 연민의 대상이었던 그가 앉아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그래. 덕분에 잘 지냈다. 들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도 일어서서 내 악수를 받아줬다.

“어이구 다리 봐. 그러게 좀 앞을 보면서 뛰어오셨어야죠. 두드려 맞을 준비 제대로 하고 있었는데”

“참나, 어차피 도착했어도 때리다가 내 풀에 내가 꺾여 쓰러질 판이었어”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어떤 부분에서는 울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웃기도 했고, 서로 껴안기도 했다. 그의 가족 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처음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가슴이 아팠다. 조사는 전체적으로 마무리가 됐고, 다음 달 1일에 1차 공판이 열린다. 나는 담당 형사이자, 증인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이야기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에이! 아니라니까요 글쎄. 처음부터 모든 게 다 계획적이었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무슨 천재에요? 국도 갈아탈 때마다 저 나름대로 얼마나 긴장 한 지 아세요? 뭐 어쨌든 변수도 많았지만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서 다행이었어요. 형사님 다리가 부러진 것만 빼면요. 그건 진짜 계획에 없던 거에요. 그리고 그때 있잖아요. 형사님 휴게소 들어갔을 때요. 그때 제가 형사님 폰으로 본부랑 청사 직원들한테 문자 다 보내놨어요. 밤 10시 쯤에 그쪽으로 지원요청 부탁한다구요. 그전에 나타나면 일을 망치니까 절대 오지 마라고 보냈어요. 아, 근대 형사들은 막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무식하고 서로 말 안 듣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칼 같이 지키더라구요. 그리고 형수님이라고 해야 하나? 하튼 형수님하고 따님한테는 형사님이 저 잡으러 오시기 1시간 전에 이미 문자를 날려놨었어요. 폰이 꺼져서 이 번호로 문자 보낸다고 했거든요. 팬션도 물론 제가 잡아 놨구요. 결제는 하셨어요? 그거 겨우 사정사정해서 후불로 된 건데. 하하. 에이 형사님! 남자가 그렇게 눈물이 많아서 되겠어요? 저요. 형사님이 그렇게 다 깨우치고 제대로 느낄 사람이란 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타겟이 된 거구요. 일부러 부산까지 내려가서 잡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말이에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형사님, 잘 들으세요. 형사님이 가진, 형사님한테는 과분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마세요. 당연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과분하다는 걸 아셔야 해요. 언제든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시길 바래요. 불안과 긴장이 사라지면 우리는 소중함을 잃게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기본적인 것들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세요. 말과 돈이 아닌 마음으로요. 저는 제 인생에서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내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서요. 살인에 대한 죄값은 죽을 때까지 치를 거에요. 하지만 제 2의 김진우는 없어야 해요. 저 같은 괴물이 또 세상에 생겨서는 안되니까요. 처음에 제가 이야기했던 개와 고양이 기억 나시죠? 누군가를 내 자신과 통하지 않을 거라 단정 짓고 선입견으로 마음에 문을 닫은 채 상대를 바라보면, 웃는 모습도 화내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뜻이에요. 저는 모두에게 피해자에요. 휴, 제가 너무 아파서요. 형사님. 제가 너무 아프니까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더라구요. 그런 사람이 되어 주세요. 힘들고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세요.”

울먹이던 그는 내 두 손을 감쌌다.

“형사님을 믿습니다. 짧았지만, 제게 보여줬던 진심 어린 동정과 연민이 제 상처를 안아줬습니다”

나도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형사님! 준비 되셨어요?”

“뭘?”

나는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도 마찬가지로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의 웃음소리가 천지를 요동치는 것처럼 울렸다. 덩달아 내 목소리도 조금씩 끊기고 있었다. 벽이 무너지더니 하늘에서 쏟아지는 커다란 빛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눈을 감기 직전에 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으악!”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꿈을 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가며 하늘을 때리고 있었다. 손전등을 들고 주변을 비춰보니,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나무 가옥에서 달려 나오다가 넘어지면서 부딧힌 것 같았다. 거울이 없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이마가 상당 부분 찢어진 게 확실했다. 잠시 후 고통이 무뎌질 때쯤 나는 다시 일어섰다.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PM 9 : 25’









댓글 11

오래 전

숨도 안쉬고 스크롤 내리면서 상중하 다 봤네여...!! 우앙 진짜 재밌다 엽호판 보면서 댓글다는거 처음이에여>< 재밌게 보고있어용!!

파랑파랑오래 전

ㅋㅋ이거 접때 핫뇽님이 퍼오셨던건뎅 ㅋㅋㅋㅋ 완전 재밌게 읽었죠 끝에서 헐 대박!!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

콩순이오래 전

와'재밌게 읽엇다~

연우숑오래 전

기절해서 꿈꾼거예요 아직 자기딸과 아내는 위험한거죠

오래 전

저도 이해가안되네요....

살랑살랑오래 전

너...누구냐 ㅜㅜ

오래 전

이해가안되ㅜㅜ누가해석좀

굴비녀오래 전

.........................슬프다요 ㅠ_ㅠ..............난정말 가족얘기가 너무슬픈거같아요.. 왜 꿈이냐ㅠ_ㅠ.......... 아막 상상하면서 읽는데 진짜 영화인거가틈 ㅠ_ㅠ 내머리속에서 한편의 영화를 상영하게 해줘서 고마워용♥ ㅠ_ㅠ근데넘슬퍼힝..

희융오래 전

으어ㅠㅠ 낮에봐서 다행이다ㅜㅠ.....에휴ㅜㅜ 안타까우네용ㅠ

건방진꼬맹이오래 전

안자고 엽호판 기웃거린 보람이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반전이 식스센스급이네요. 후아.. 완전 잼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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