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나미 방수로 토막 살인사건

별이빛나는201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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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오늘 처음 글써보는 별이빛나는 입니다.

 

 

1952년 5월 10일 오후 2시경, 동경의 아다치 구에 아라나미 방수로 입구 (보통 히노마루 풀이라 불렸다.) 에 신문지와 기름종이에 쌓인 사람의 동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5일 후 머리부분이 현장부근에서 흘러 가는 것이 발견되었다.

시체는 몽타쥬 사진 등을 통하여 행방불명된 이타바시 경찰서의 이토 타다오 순사(27세)로 밝혀졌다. 같은 날 긴급 체포된 이토 순사의 내연녀이자 초등학교 교사 우노 토미코(당시 26세)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다. 시체 손상에는 토미코 외 토미코의 어머니 시즈(당시 51세)가 가담한 사실도 밝혀졌다.

 

<아라나미 방수로를 흐르는남자>

 

1952년 5월 10일 오후 12시 반경, 아다치 구의 아라나미 방수로 입구에 신문지와 기름종이에 쌓인 동체 부분이 강가를 흐르는 것을 한 소녀가 발견, "귀신이 있다"라며 울면서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강가로 가서 확인한 후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시체는 20-30세 정도의 남성으로 추정되었으며. 시체를 싸고 있던 10장의 신문지 날짜가 4월 26일에서 5월 4일자인 것으로 보아 죽은 지 1주일 이내로 추정하였다.

수사 본부에서는 발견 현장에 시체의 남은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아 일대 주변 약 300m하류까지 수색한 결과, 박스 하나만이 발견되었다.

 

이 엽기적인 사건이 보도진에 알려지게 되자 세상은 발칵 뒤집어 졌다. 전국의 행방 불명 상태의 친인척들이 혹시나 잎어 연락이 왔고, 범인으로 추정된다는 장난전화 섞인 신고 전화도 빗발쳤다.

경찰 또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방 불명ㅈ자나 신고 전화를 일일이 대응 하였느데, 이때 행방불명 상태인 이토 순사 또한 그 대상이기도 하였다. 이토 순사의 내연녀인 시무라 제 3 초등학교 교사인 우노 토미코(당시 26세)는 경찰서에 협조하여 "(이토)부모에게도 전보를 보냈지만,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빚 문제 아니면 여자 문제 때문에 가출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증언도 하였다.

 

5월 15일 오전 9시 50분경, 시체의 머리 부분이 첫 발견 장소의 반대편 강 상류 약 1Km부근에서 흘러 가는 것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였다. 머리 부분은 오랫동안 수중에 있던 관계로 형태가 많이 일그러져 있었기에 숫ㄱ 본부는 몽타쥬를 작성하여 피해자 신원을 밝히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당일 날 바로 시무라 서에서 그 시체는 바로 시무러 서 순사인 이토 타다오(당시 27세)로 판명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음 날 16일에는 양쪽 팔이 발견, 지문 조회 결과 이토 순사임이 확정되었다.

토미코는 긴급 살인 용의로 같은 날 저녁에 체포, 토미코의 집을 가택 수사한 경찰은 2층 방 옷장에서 혈흔을 발견하였다. 이에 대해 토미코는 침착하게

"저는 교육자 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혐의를 씌우다니 매우 불편하군요. 어떠한 증거로 체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헌법에서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 저에게 있는 것인가요? 형사님.

일단 그 유도 몇 단이라는 남자를 이토록 체구가 작은 제가 어떻게 죽일 수 있다는 건가요?" 라며 자신은 무죄라는 분명한 시선으로 증언하였기에 형사들도 그만 그녀의 말에 납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7일 정오 부부 간의 얘기를 들은 형사는 토미코를 불쌍히 여기기 시작했다. 이토의 불성실함은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였고, 이에 대해 토미코에게 응원의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토미코는 사람들의 동정에 그만 눈물을 흘리며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라며 범행을 자백, 어머니 시즈(당시 51세)도 시체손상 용의로 체포되었다.

 

 

<경찰관과 여교사>

 

"현직 경관이 살해되어 그 시체가 토막 난 채 강에 버려졌다. 범인은 초등학교 여교사와 그 어머니"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엽기 사건에 신문 및 뉴스 등 보도진은 대대적으로 사건을 알려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우노 토미코는 오사카 출신으로 5남매 중 장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종업원 20명 정도의 실크 가공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바교적 유복한 가정의 따님으로 자라났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가업도 점점 더 기울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토미코는 늘 학업정적이 우수하여 피난지인 야마가타현에서 교대를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 자격등을 따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오사카에 배임을 받아, 이전 살던 집은 이미 타 버리고 없어졌지만 그 부근에서 방을 빌려 월 수입 7.000엔을 받아 가족들에게 매월 2.000엔을 보내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같은 초등학교 직원인 연하의 교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상대방에게는 이미 부모가 정해놓은 약혼자가 있는 바람에 결국 그녀는 실연을 하고 만다.

이 때 토미코는 심한 상처를 받아, 공허한 마음을 이토 타다오에게 쏟기 시작했다.

 

이토 타다오. 그는 야마가타 현 태생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만 나온 후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 후 동경으로 상경한 후 일본광학공장에서 일을 시작하였지만, 전쟁에 소집되어 중국으로 출정을 가게 되었다. 귀국 후 야마가타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토미코와 만나게 되었다.

이토의 계모는 토미코의 어머니 시즈의 여동생으로, 호적 상 둘은 이종사촌으로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한동안 두 사람이 서로의 집을 오가는 사이에 잠깐 사촌끼리 교제를 하기는 하였으나, 토미코가 오사카 발령을 받는 바람에 그 교체는 일단 끝나는 듯 하였다.

1948년 2월, 이토는 경시청 순사가 되어 동경 이타바시 구 시무라 서의 배치가 되었다.

유도 3단에 큰 체격이었지만 근무 태도는 매우 불성실하였으며, 1951년에는 배부된 권총을 분실하는 실수도 범하였다. 게다가 그는 술을 좋아하고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판명된 것만 해도 그에게는 술 값으로 갚아야 하는 돈이 58.700엔이나 되었다.

 

이토와 토미코는 1949년 여름부터 다시 교제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편지로 교제를 하였지만, 이토가 오사카에 여행을 간 순간부터 두 사람은 남녀 관계가 되고 말았다.

당시 연하의 교사와 실연을 하여 공허한 마음의 토미코는 동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꿈꾸기 시작했다.

1951년 4월, 드디어 토미코는 동경으로 와 이타바시 구의 시무라 제 3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 내 평판은 매우 좋았으며 아동들도 그녀를 매우 따랐다고 한다.

토미코는 이토와 결혼할 마음으로 상경을 한 것이었지만, 동경에서의 이토의 생활을 보는 순간 경악을 하게 된다. 이토는 안정된 경찰관이면서도 늘 빚에 쪼달렸고, 집 또한 기숙사에서 살고있다가 토미코가 구한 방에 마음대로 들어와 같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토는 같이 살면서 호적에 올리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빚덩이인 이토에게 있어 결혼식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이기는 했다.

곧이어 자신이 돌봐야 하는 어머니와 남동생(당시 14세)도 상경하였기에, 토미코는 이토에게 헤어져 달라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토는 "남자가 어떻게 여자한테 차일 수 있느냐. 그토록 헤어지다 생각하면 내가 일을 그만두고도 널 따라 다닐 것이다." 라며 협박까지 해 왔다.

이후 토미코는 실망과 고민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그런 토미코에 대해 어머니는 시즈는 "딸을 고생시킬 수 없다." 라며 1952년 4월 일단 돌아가기는 하였으나, 동경에 남겨둔 딸이 걱정되어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의 은폐>

 

1952년 5월 7일 오후 9시경,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이토는 토미코의 잔소리를 듣고는 그녀를 짓누르고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보통 때의 이토는 토미코에게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는데 이날 처음으로 토미코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토는 그녀를 때린 후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사죄를 하여 이때는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이토가 술에 취해 잠꼬대를 하는 것을 톰코가 듣게 된다.

"버리기에는 아깝군. 팔면 돈이 되지..."

 

이 잠꼬대에 토미코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토는 자신을 매춘부로 팔아 버리려 한다." 라고 느낀 것이다.

이전 이토는 토미코에게 아는 도박꾼이 승부에서 져서 아내를 빼앗긴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분명 자신도 팔아버리려는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이 때 토미코는 이토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8일 새벽, 토미코는 이토의 경찰 봉 끝에 줄을 묶어 창문 밖으로 내 놓은 후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끈을 이토 목에 둘러 힘껏 당겼다. 남젼의 "자경"(경시청기관지)에서 힌트를 얻은 방법으로, 이에 이토는 바로 즉사했다고 한다. 이 때 어머니 시즈는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토미코가 이토를 살해하는 동안은 자고 있는 척 하였다. 나중에 시즈는 이토의 시체앞에서 쓰러지며 울었지만 바로 딸에게 "토막을 내서 시체를 버리자' 라고 제안을 하였다.

해가 밝아오자 토미코는 남동생을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에게 맡긴 후 어머니와 함께 옷장에 숨긴 이토의 시체를 끌고 나와 금속 대야에 피를 받아가며 토막을 내 갔다.

 

9일 오후 7시경 토미코는 초등학교에서 빌려 온 자전거에 동체 부분을 태운 후 자택에서 나겄다.

시즈는 머리와 양 팔을 가지고 버스를 탄 후 신 아라카와다리에 내려 서로를 기다렸다.

그 곳에서 시체를 방수로에 버린 것이다.

이 때 "풍덩"하고 시체들이 가라 앉는 소리가 계속해서 토미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취조가 일단락한 6월 9일, 토미코는 형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사람들은 저에 대해 이상성격이라 얘기할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토에 대해 전혀 죄송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대로 살아갔다면 둘 중 하나가 죽었겠지요. 저는 남편을 죽인 순간 정말 안심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날 두렵게 한 존재가 없어져서 이젠 괜찮구나 하는 안신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예기치 못하게 나쁜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재판>

 

1952년 12월, 동경 법원은 토미코에게 징역 12년, 시즈에게는 4년의 판결을 내렸다.

두 모녀는 같은 토치기 형무소에 복역하였으니 시즈는 다음 해 옥중에서 병으로 죽었다.

토미코는 형무소의 배려로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간병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