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다. 공부가 제일 재밌고 쉬웠으며 유일한 벗이자 낙이었다. 덕분에 반에서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주변에 변변한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아이들 밖에는.
그러나 난 그런 것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텔레비전 속에서 나오는 진실 된 사랑이라든가 우정 같은 것 따위는 모두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여겼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과거 내 성적을 시기해 의도적으로 검은 속내를 숨기고 순진한 척 다가왔던 몇몇 아이들에게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어찌됐건 그렇게 난 명문 고등학교에 쉽게 진학할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과 진로에 대해서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은 편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그날 역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라는 위세에 걸맞게 학교 측은 수시로 학생들의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행하였고 이번 엔 교내의 모든 사물함의 물갈이가 그 대상이었다. 덕분에 아직 쓸 만했던 멀쩡한 사물함은 마른 장작 더미마냥 학교 뒤편에 갈기갈기 뜯겨져 쌓여가고 있었다.
공사는 일주일 동안 이어졌고 졸지에 사물함이 없어져 버리자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과서와 참고서를 비롯해 10권이 넘는 책을 가방에 쑤셔 넣고 다니느라 어깨가 휘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같이 무거운 가방을 들쳐 메고 다니기를 어느덧 일주일. 약속대로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자 교실 뒤편에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사물함이 일사분란하게 진열된 채 나를 반겨 주었다.
“후. 이제 고생은 끝이군.”
한결 마음까지 가벼워지자 공부가 요 근래 일주일간 보다 더욱 잘 되는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공부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토록 몰입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이었음에도 마치 몇 년 동안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나 반에는 나 혼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고등학교 3학년. 즉, 수험생의 길은 멀었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인지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 했고, 그 소수 중에서도 저녁 8시를 넘기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기에 별로 신기한 광경도 아니었다.
나머지 마무리는 집에 가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서둘러 책상 속에서 책들을 꺼내 가방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 한권이라는 책을 가방에 모두 담았을 때 난 스스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맞다. 이제 사물함 쓸 수 있었지 참.”
괜스레 머쓱하게 쓴 웃음을 짓던 나는 가방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던 책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대충 집에서 훑어볼 두 권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물함에 넣어두고 나서야 난 종종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교문을 빠져나와 약간은 으스스한 밤거리를 걸으며 난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유일하게 공부 외에 좋아하는 게 있다고 한다면 바로 등하교 길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하는 것 정도일 것이었다. 하루 종일 책만 들여다보았던 눈의 피로를 은은한 달빛에 달래주며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이어폰에서는 한창 ‘쥐와 드래곤’ 의 ‘삐딱하고 티껍게’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일 오가는 길이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짙은 스산함이 느껴지는 것이 영 꺼림칙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평소 귀신 등의 미신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나였기에 금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때문에 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성한 가로등 하나 없는 으슥한 골목길을 빠져 나왔을 때 절묘하게도 MP3의 노래 역시 때맞춰 끝을 맞이했다. 졸지에 고요한 적막과 어둠만을 마주하게 된 셈이었다. 괜히 기분이 나빠진 나는 MP3의 셔플 버튼을 마구 눌러대며 애꿎은 MP3에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무거운 가방 때문에 어깨도 아파 죽겠는데 괜히 기분까지 나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쥐와 드래곤’의 ‘삐딱하고 티껍게’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흘러나오며 귀를 간지럽혔다.
약간은 반항적이면서도 신나는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조금 전의 기분 나쁜 꺼림칙함은 까맣게 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린다.
‘사탕 발린 위로 따윈 집어쳐! 오늘 밤은 삐딱하게♬’
“사탕 발륀 위로 따윈 집어쳐엇! 오늘 봠은 쀠딱하게에!!”
한껏 흥에 겨운 채 입을 놀리며 멜로디에 몸을 맡기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음에도 발걸음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오늘 봠은 쀠딱하게에!! 아, 진짜 이 부분 너무 맘에 든다. 후후.”
약간은 푼수처럼 제 흥에 겨워 너털웃음을 흘리던 나는 때마침 끝나버린 멜로디에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덕분에 다시 찾아온 정적과도 같은 고요함. 난 다시금 MP3의 버튼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렇게 MP3의 Play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 문득 간과했던 한 가지 어이없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고, 그 순간 온 몸이 굳어지는 듯 한 섬뜩한 오한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가방은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웠었지…?’
난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 삐걱 소리가 날 정도로 힘겹고 어색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 스산한 한기로 미루어 볼 때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것 보다 주차 되어있는 차창으로 비춰 보는 편이 훨씬 덜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귀신 따윈 없어. 그런 건 없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되 뇌이며 힘겹게 차창에 비춰진 내 모습을 확인 한 순간. 난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단편]삐딱하게
그러나 난 그런 것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텔레비전 속에서 나오는 진실 된 사랑이라든가 우정 같은 것 따위는 모두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여겼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과거 내 성적을 시기해 의도적으로 검은 속내를 숨기고 순진한 척 다가왔던 몇몇 아이들에게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어찌됐건 그렇게 난 명문 고등학교에 쉽게 진학할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과 진로에 대해서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은 편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그날 역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라는 위세에 걸맞게 학교 측은 수시로 학생들의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행하였고 이번 엔 교내의 모든 사물함의 물갈이가 그 대상이었다. 덕분에 아직 쓸 만했던 멀쩡한 사물함은 마른 장작 더미마냥 학교 뒤편에 갈기갈기 뜯겨져 쌓여가고 있었다.
공사는 일주일 동안 이어졌고 졸지에 사물함이 없어져 버리자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과서와 참고서를 비롯해 10권이 넘는 책을 가방에 쑤셔 넣고 다니느라 어깨가 휘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같이 무거운 가방을 들쳐 메고 다니기를 어느덧 일주일. 약속대로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자 교실 뒤편에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사물함이 일사분란하게 진열된 채 나를 반겨 주었다.
“후. 이제 고생은 끝이군.”
한결 마음까지 가벼워지자 공부가 요 근래 일주일간 보다 더욱 잘 되는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공부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토록 몰입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이었음에도 마치 몇 년 동안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나 반에는 나 혼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고등학교 3학년. 즉, 수험생의 길은 멀었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인지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 했고, 그 소수 중에서도 저녁 8시를 넘기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기에 별로 신기한 광경도 아니었다.
나머지 마무리는 집에 가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서둘러 책상 속에서 책들을 꺼내 가방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 한권이라는 책을 가방에 모두 담았을 때 난 스스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맞다. 이제 사물함 쓸 수 있었지 참.”
괜스레 머쓱하게 쓴 웃음을 짓던 나는 가방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던 책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대충 집에서 훑어볼 두 권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물함에 넣어두고 나서야 난 종종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교문을 빠져나와 약간은 으스스한 밤거리를 걸으며 난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유일하게 공부 외에 좋아하는 게 있다고 한다면 바로 등하교 길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하는 것 정도일 것이었다. 하루 종일 책만 들여다보았던 눈의 피로를 은은한 달빛에 달래주며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이어폰에서는 한창 ‘쥐와 드래곤’ 의 ‘삐딱하고 티껍게’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일 오가는 길이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짙은 스산함이 느껴지는 것이 영 꺼림칙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평소 귀신 등의 미신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나였기에 금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때문에 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성한 가로등 하나 없는 으슥한 골목길을 빠져 나왔을 때 절묘하게도 MP3의 노래 역시 때맞춰 끝을 맞이했다. 졸지에 고요한 적막과 어둠만을 마주하게 된 셈이었다. 괜히 기분이 나빠진 나는 MP3의 셔플 버튼을 마구 눌러대며 애꿎은 MP3에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무거운 가방 때문에 어깨도 아파 죽겠는데 괜히 기분까지 나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쥐와 드래곤’의 ‘삐딱하고 티껍게’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흘러나오며 귀를 간지럽혔다.
약간은 반항적이면서도 신나는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조금 전의 기분 나쁜 꺼림칙함은 까맣게 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린다.
‘사탕 발린 위로 따윈 집어쳐! 오늘 밤은 삐딱하게♬’
“사탕 발륀 위로 따윈 집어쳐엇! 오늘 봠은 쀠딱하게에!!”
한껏 흥에 겨운 채 입을 놀리며 멜로디에 몸을 맡기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음에도 발걸음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오늘 봠은 쀠딱하게에!! 아, 진짜 이 부분 너무 맘에 든다. 후후.”
약간은 푼수처럼 제 흥에 겨워 너털웃음을 흘리던 나는 때마침 끝나버린 멜로디에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덕분에 다시 찾아온 정적과도 같은 고요함. 난 다시금 MP3의 버튼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렇게 MP3의 Play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 문득 간과했던 한 가지 어이없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고, 그 순간 온 몸이 굳어지는 듯 한 섬뜩한 오한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가방은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웠었지…?’
난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 삐걱 소리가 날 정도로 힘겹고 어색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 스산한 한기로 미루어 볼 때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것 보다 주차 되어있는 차창으로 비춰 보는 편이 훨씬 덜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귀신 따윈 없어. 그런 건 없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되 뇌이며 힘겹게 차창에 비춰진 내 모습을 확인 한 순간. 난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차창 속에는,
긴 머리의 희끄무리한 여성이 내 어깨에 매달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꺽. 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