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辰)의단편] 찾아라, 드래곤볼!

나요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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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대 - 히피히피 님

 

맛점들 하셨나요?

 

 

 


엄청난 꿈을 꿨다.
너무나 놀라서 빠져버린 혼이 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여보.”
“왜?”
“나 태몽 꾼 것 같아.”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정말?!”
“어⋯⋯.”


내가 꾼 꿈은 이러했다.
백옥 같은 빛방울들이 아른아른 춤을 추고, 갑자기 번쩍하고서는 한데 모여서 커다아란 은빛 떼구름이 나타나 살며시 입김을 ‘후우-’, 하고 부는 바람에 눈을 한번 깜빡였더니 구름은 어디로 가고 없고 빌딩만한 용이 떡하니!


“근데, 여의주가 없더라고.”
“여의주?”
“응. 입에 여의주가 있어야 완벽한 용인 거 아냐?”
“그런가.”
“이무기도 여의주가 없어서⋯⋯.”
“태몽은 얼어 죽을 개꿈이야. 가서 밥이나 먹고 회사나 가!”
“알겠어.”


괜한 이야기를 했나보다.
그냥 이무기니 뭐니 이야기하지도 말고 엄청난 꿈을 꾼 것 마냥 생각하고 길조가 틀림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할걸 그랬다.
마누라 앞에서 괜히 주둥이를 나불거렸다가 혼나기만 하고 영 찝찝하다.


결국 오늘 하루도 된탕 얻어터지기만 했다.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거기다 후배한테 까지.
왜 이렇게 오늘은 이상하게 실수투성인지, 분명히 그건 이무기였을 거다.
그러니까 이런 흉조가 나타나지.


“나왔어.”
“여보여보여보여보!”
“왜 그래 갑자기. 나 힘들어⋯⋯.”
“들어봐, 들어봐!”


기도 죽고, 배도 죽고 곧 뇌도 죽어버릴 거 같은데 마누라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천방지축 왈가닥처럼 온 동네를 휘어잡을 듯이 방방 뛰어다녔다.
당장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입술이 어찌나 간지러워 보이던지 내가 당장에 긁어주지 않으면 홍수가 날 것만 같았다.
적당히 방류시키고 자야겠다.


“왜 그러는데.”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옷을 벗는 일과 귀를 여는 일.
마찬가지로 아내도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다.
내 옷을 받아 챙기며 참새마냥 쉴 새 없이 쪼잘대는 일.


“내가, 내가 있잖아. 오늘 친구 따라서 용하다는⋯”
“뭐, 또 점 봤어? 내가 그거 좀 제발!”


아내는 풀이 죽고서는 입을 삐쭉대고서는 내말을 자르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점본 게 아니라, 당신 꿈이 궁금해서 그랬단 말이야.”


사실 아내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되었지만 나이와는 반대로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귀엽고 동안스러운 외모를 가졌다.
그런 출중한 외견 탓에 조금이라도 앙탈이나 애교를 부리면 나는 끔뻑 넘어가곤 했다.
남자가 다 그렇지 뭐⋯.


“아이고, 그랬어요?”
“안 궁금해?”
“궁금해. 근데 나 좀 일단 씻고 밥 먹으면서 하자.”
“그래그래그래!”


씻는 동안 마음을 다시 잡았다.
내가 이렇게 욕먹어 가면서 일을 하는 이유는 지금처럼 단란한 가정을 위해서야.
곧 생겨날 아가에게 비포장도로보다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로 인도하기 위해서야.
나는 그럴 의무가 있고, 온 힘을 다해서 가정을 지켜야해.
이렇게 화목한 가정이 나의 ‘꿈’이었으니까.


오늘의 메인디쉬는 꽃게탕.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다. 역시나 환심을 사기위해서, 요 귀여운 녀석.


“무당이 뭐래?”
“잘 들어봐. 글쎄 그 꿈이 사실이래!”
“뭐? 그럼 내가 이무기라는 거야?”
“응, 응!”


나 참 이무기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 홍조를 띄며 난리법석인지.
이무기라 함은 상상속의 동물로, 나잇살을 굉장히 먹은 구렁이를 보고 이무기라고도 한다.
인간세상에서 천년을 살면 용이 되어 승천하는 이야기도 있고, 여의주를 구하면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하는 이야기도 있다.
꿈속의 내가 전자에 해당할지 후자에 해당할지는 모르겠다만, 이무기라니 왠지 꺼림칙하다.


“어찌됐든 뱀이잖아. 용이 아니라. 뱀!”
“그게, 당신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대.”
“뭐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무슨 초인이라도 된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야. 나보고 있잖아 유능한 재력가의 내조 여왕의 마누라가 되고 싶으면 당장에 달려가서 여의주를 찾으래. 그래서 당신의 입에 그 ‘여의주’를 물리기만 하면 게임오버. 그대로 유유자적하게 살기만 하면 된대.”


유유자적이라.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게 된 이상 속세에 속박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입 밖으로 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저렇게 맑은 눈망울과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 저런 말을 하는데, 어찌 찬물을 화악 끼얹을 수가 있을까.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여의주는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구해다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조용하게 말이다.
아내에게 모닝 입맞춤을 한 뒤 순간 문득 잊고 있던 여의주가 떠올라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근데, 여의주는?”
“아직⋯⋯.”
“알았어. 기다릴게.”
“응. 자기야.”


역시나.
속으로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아내에게 실망을 주기가 싫어 내색하지 않았다.


나의 예상으로는 말이다, 처음 이무기 꿈에 대한 해몽에 대하여 준 돈이 자그마치 십 만원.
그리고 여의주를 물어야 한다는 해결책에서 십오 만원.
마지막으로 여의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서 삼십 만원이 될 텐데, 이때까지 여의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삼십 만원 까지는 가지 않았나 보다.
아내도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겠지.
어차피 아내는 귀가 얇기 때문에 친구가 귓바람을 솔솔 불어준 탓이 결정적이었을 거다.
이러려고 열심히 일하는 건 아니지만 답답한 건 사실이다.


“이, 이거 물어봐!”
“뭐? 이걸 물라고?”


아내가 대뜸 내민 것은.
제 삼대 일본만화 중의 하나인 ‘드래곤볼’, 거기다 만화책.
나는 아내의 엉뚱함과 익살스러운 그 귀여움에 오랜만에 한껏 웃어보였다.


“아하하! 여보. 아니. 아, 정말 웃겨서 눈물이 다나온다.”
“피⋯⋯. 내 마음도 모르면서.”
“알지, 하하하. 왜 몰라. 알았어 물어볼게. 자 문다?”


나는 입으로 ‘앙!’ 소리를 크게 내며 아내에게 일부러 큰 행동을 취해보였다.
아내는 눈을 질끈 감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3초정도가 지나서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나는 입에서 만화책을 뱉어냈다.


“왜 그래?”
“소원 빌었어.”
“내가 무슨 용신도 아니고⋯⋯.”
“내일 출근하면서 로또 한번 사봐.”
“알았어.”


역시 너무 귀여운 아내다. 그만큼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뭐야 번호가 하나도 안 맞잖아!”


아내는 내가 산 로또를 보며 TV에 대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안 맞지. 그건 여의주가 아니니까 말이야.


“여보. 이제 그만해. 그깟 여의주 없이도 우리는 잘 살잖아. 행복하잖아 안 그래?”
“흥! 됐어!”


삐쳤나보다.
나는 TV를 끄고 귀여운 아내를 달래주기 위해 뒤따라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짜증을 내며 몸을 비비꼬고 있었다.
어찌나 귀엽던지, 순간 장난기가 돋아나서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아아, 지금 생각해도 그건 엄청 몹쓸 짓이었어.


“자기야.”
“왜!”
“사실은 말이야⋯⋯.”
“뭐!”
“나, 정리해고 당했어.”


나는 힘없이 축 쳐진 얼굴을 하고서는 살짝 눈알을 굴려 아내를 쳐다봤다.
삐적대던 아내의 몸짓이 갑자기 멈추더니 알 수없는 무거운 기류가 온 집안을 휘감았다.
순간 장난이 너무 심했나 싶어 되돌리려고 했지만 아내는 말도 없이 문을 박차고서 나가 버렸다.


“여보! 여보! 자, 장난⋯.”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대로 내려가 버렸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급한 나머지 계단으로 따라 내려가려니 걸리적거리는 슬리퍼가 속도를 늦추기만 했다.


“에이씨!”


나는 슬리퍼를 벗어던지며 아내와 똑같은 모양새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아내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저, 저기 장모님?”
“어, 그래 우리 사위. 웬일이야? 이 밤에.”
“혹시, 우리 혜경이 그리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모님은 버럭 화를 내셨다.


“뭐야? 싸웠어?! 부부 싸움했지?! 내가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타일렀는데! 우리 혜경이가 마음이 얼마나 약한데 그걸 알면서 아이고⋯⋯.”
“아, 아니 장모님 그게 아니라요.”


나는 결국 일일이 해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모님은 알았다는 듯이 어렸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곧 돌아 올 거라고 말씀하시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고서는 그녀의 친구들한테나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들도 내리 못 봤다는 말만.
그녀의 전화는 내가 받을 수밖에 없다. 휴대폰을 그대로 나두고 갔기 때문에.


밤새도록 그녀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의 취미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구나.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하게 대했구나.
지난날을 반성했다.


아내가 자주 들리는 마트도 어딘지 모른다.
아내가 자주 먹는 과자의 이름도, 바로 옆에서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에 넣은 적이 없다.
물어 본적이 없다.
같은 맛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 입에 넣은 적이 없다.


“내 잘못이야⋯⋯.”


눈물이 흘렀다.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는 결국 아파트 공원 벤치에서 지친 몸을 가누며 잠이 들고 말았다.


‘톡-’


‘톡-’


“아, 앗 차가워.”


벌써 날이 밝았나보다. 나뭇잎의 이슬이 내 얼굴에 떨어지는 걸보면.
어, 어, 왜 이슬이 빨갛지?


“피, 피다!”


나는 그 자리에서 놀라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벤치와 같이 나뒹굴고 말았다.
머리를 부딪쳤는지 뒤통수가 쓰라리다.


“아, 아 머리야.”


그나저나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확인하면서 누군가 내 앞에 있는 걸 분명히 본거 같은데.
나는 정신을 추스르며 일어나 피의 근원지를 확인하려했다.
아내였다.


“여, 여보! 여보 어디 갔었던 거야!”


그녀는 뭔가를 내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팔이었다.
사람의 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잘린 팔.
그곳에서 피가 톡, 톡.


“으악! 뭐, 뭐야 이게!”
“여의주.”


여의주라고?
당신 결국 내가 정리해고 당했다는 농담 때문에 밤새도록 여의주를 찾아서 헤맨 거야?
이 무서운 밤거리를?
근데 왜 잘린 팔을 들고 있는 걸까.


“그, 그 팔이 어, 어째서 여의주야!”


아내는 퀭한 눈으로 잘린 팔의 가리켰다.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팔이었다. 잘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그리고 문신이, 용의 목이 잘렸다.
팔꿈치 부분에 용의 목이, 그리고 입에는 여의주가.
이걸 나보고 지금 입에 물라고?
말도 안 되지. 그건 절대 말도 안 되는 거야.


“여, 여보. 이 여의주는 이미 용이 물고 있잖아⋯⋯.”


그때 아내의 표정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곧 죽을 것처럼 퀭한 눈이 온 세상을 다 집어 삼킬 듯이 커다랗게 변하고서는, 블랙홀처럼 내 눈을 곧장 쏘아댈 듯이 째려보고서 입을 ‘쩍’하니 벌렸던,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는 그 표정.


그 뒤로 나는 아내를 볼 수가 없다.
난 아직도 그 팔의 주인을 모른다.
설마 여의주를 찾아 사방팔방을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