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 있을 수 있고 다소 내용이 진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스크롤 주의!
유명세만 익히 들어 그동안 보기를 미뤄왔던 영화다. 무언가 휴먼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제목과 익살스러운 포스터가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접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세 얼간이는 구조적으로 과거로의 회귀, 현재와의 만남을 지향한다. 결과(란초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비행기를 돌리고, 바지도 입지 않은 채 뛰쳐나가는 친구들)에서 그 결과가 있게 한 원인을 과거로부터 찾는 회상의 형식이다.
큰 사건의 얼개는 란초와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총장과 세 친구의 이야기, 란초와 그의 사랑 피아와의 이야기, 영화가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인 자칭 라이벌(?) 차투르와의 이야기, 총 4가지의 이야기들이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를 이룬다.
물론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고 영화의 구성을 분석할 수는 있지만 영화의 내용이 무척 길며, 개별적인 사건을 일일이 타임라인에 올려놓으면 그 분량이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필자는 이 영화에서 얻어갈 점들만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자, 그렇다면 세 얼간이가 우리에게 던진 '숨겨진 것'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당신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영화의 가장 큰 이야기는 역시 란초다스 찬차르의 이야기다. 인도 최고의 명문 공대, ICE에 들어와 수석졸업의 영광을 맞는 인물. 그러나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엘리트의 상식을 거부하는 행동을 일삼는다. 사실 이 비상식적이고 일탈적인 인물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들. 그런데 왜 그의 이야기가 끌리는 것일까?
란초는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신념에 의거해 교수를 농락하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상적인 신입생환영회에서 그는 선배에게 복종(전통)하기보다는 저항하기를 선택한다(진보).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어가면서까지 물질에 예속된 자로부터 끝내 그의 연인이 될 피아를 구출(?)하기도 하고, 시험 전 날 친구의 아버지를 병원까지 스쿠터를 타고 데려가는 등 자신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만사도 제칠 수 있는 의지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행보가 이루는 공통점은 결국 하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심지어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본인까지도 희생시키는 인물이다. 타인의 이름을 빌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그들의 세상을 열 수 있도록 자신의 신념을 투영시킨다. 그들도 종래에는 란초에게 물들어 또 하나의 '란초'가 되어버린다.
그의 이상은 진정한 교육에 대한 가치를 설파한다. 사실 바이러스로 불리는 총장의 말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틀린 것이 없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암기대왕 '차투르'의 방식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명문 ICE공대(우리나라로 치면 포항공대가 적절할까?)를 졸업하면 기업에 무난히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모든 이들이 훌륭한 직장만을 가지기 위해 탄생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돌잔치 때 집은 물건대로 삶을 살게 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혹은 초등학교 때 써낸 장래희망을 이룩한 사람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살면서 점점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재능도 드러나게 되어있는 법이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개인이 가진 능력을 사회의 힘으로 극단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엄청난 인력의 낭비다. 극중에서 란초가 좌절하는 파르한을 설득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만약에 마이클 잭슨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복싱을 배웠다면 어떻게 될까? 무하마드 알 리가 복싱을 배우지 않고 노래를 배웠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나게 끔찍한 일 아니야?”
어쩌면 마이클 잭슨이 무하마드 알리를 능가하는 복서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무하마드 알 리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재능을 살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헌데, 그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2. 아름다운 동화로 끝나지 않는, 진정한 꿈 찾기.
영화에서 말하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은 사실 진부하다 못해 다 기울어져 가는 폐가의 먼지같이 텁텁한 이야기일 뿐이다. 누구나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세 얼간이는 이 비수를 절묘하게 잘 피해갔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려한다. 단지 그럴 상황이 안 될 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미화시키지 않고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것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열쇠가 된다.
란초라는 인물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대부분은 란초와 같이 천재적이지도 않고 이상주의자이거나 확고한 신념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를 대변한 모습은 란초의 계시를 받는 두 얼간이, 라주와 파르한의 이야기가 더욱 적합할 것이다.
두 인물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라주는 극단의 가난 속에서, 오직 가계를 일으켜야 된다는 일념하나로 최고의 공대에 들어와 취업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파르한은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지만, 부모와 일가친척이 그가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기대를 온 몸으로 받고 자랐다. 오직 타인과 상황에 의해 그들의 삶이 지배되었다. 아마 이들처럼 우리를 옥죄는 것은 가난, 사회적 기대와 같은 것이 지배적일 것이다. 주춧돌도 없는데 기둥을 올릴 수 없는 노릇이고, 기둥을 올릴 수 있다 한들, 설계도면과 다르게 마음대로 쉽게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을 이용해서, 전통적 제도에 반기를 드는 혁명가 란초가 이 제도에 편승한 이들을 물들이려 하자 총장은 란초와 그들의 ‘근본적 다름’을 무기로 이간질시킨다. 이 뒤흔들기는 과연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라주와 파르한이 거기서 무너져 내렸다고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 너무나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버릴 것들이 의식하는 이상으로 커다랗고,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조차 안 되기 때문이다. 모두는 그 좋은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 뿐이다. 란초가 라주와 파르한과 한 내기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두 얼간이가 약속한 벌칙을 쉽게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신념까지 저버리도록 무참히 주저앉게 만드는 것일까? 별로 와 닿지도 않는 재미없는 교과서를 억지로 읽으며 취업을 향해 달리는 수많은 청춘들은 왜 달갑지도 않은 일을 자청하고 있는가? 영화는 여기에 대한 해답도 내놓았다.
3. 모든 것은 가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뉴스 아닌 뉴스가 하나 새로 생겼다. 수능이 가까워 질 때마다 투신하는 아이들. 내년에도 반드시 수능 때 누군가 죽거나 자살기도를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 식상할 정도로 느껴진다. 전교 1등인 아이가 전교 10등이 되었다고 자살하는 비슷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들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다음은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총장 : “달에 최초로 착륙한 우주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
학생들 : “닐 암스트롱입니다.”
총장 : “좋아 두 번째로 착륙한 사람은 누구지?” 학생들 : “.......”
총장 : “대답할 필요 없어. 두 번째로 착륙한 사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세상은 첫 번째만을 기억한다.”
우리도 이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쉽게 생각해서 우리의 금메달리스트를 떠올리면 쉽게 몇몇 사람이 떠오르겠지만, 은메달리스트를 떠올리라 한다면 잘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동메달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지닌 시선이다. 최고만을 갈망하고, 특별한 것만을 기억한다. 이는 편견의 문제로 이어진다.
또 다른 문제를 놓고 보자.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거액연봉을 받으며 뛰는 축구선수와 등단해서 유명한 시를 쓴 사람을 나란히 놓고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는가를 평가할 때 많은 사람들은 축구선수를 지목할 것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의 삶을 살고, 물질가치가 우선시 되는 이 사회에서는 축구선수의 삶이 더 뛰어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개중에는 시인의 삶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신적 가치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삶과 시인의 삶, 어느 것이 우월하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모두가 가치 있고 훌륭한 일이다, 라는 것이 진정 옳은 시각이다.
무엇을 하든 간에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과 사람들이 필요하고, 모든 것은 제각각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기계를 사랑하고 공학을 좋아하는 란초는 예술과 인문학을 조롱하는 교수를 향해 이런 말을 던진다.
“예술과 인문학도 모두 가치 있는 학문인데요?”
비단 예술과 인문학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가치가 있다. 우리가 매일 버리는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 가야하고, 아침저녁으로 먹은 밥을 위해 누군가는 벼를 키워야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 있다. 란초는 파르한에게 사진작가가 되어 꿈을 이루라면서도, 자신은 기계를 좋아하기 때문에 ICE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수학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다. 아무래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자신의 일에 몰두할 환경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가급적이면 풍요로운 쪽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이 와전되면서 풍요만이 강조되다 보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이 생략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는 그래서 풍요만을 갈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본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풍요를 필요로 했는데, 풍요를 이루려다보니 원하는 것이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풍요를 보장하는 직업이나 일은 한정적이고, 모두가 그것을 원하다보니 그것을 변별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등수가 매겨지고, 점점 몰려드는 인파에 더욱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사람의 열정과 능력이 한 곳에만 치중되니 그것은 자연히 발전하게 되고, 다른 것은 쇠퇴하게 된다. 사람들이 뒤늦게 다른 것을 찾아보려 해도 이미 좋고 나쁨이 정해져있는 세상이 되었다. 쇠락한 것은 가치절하 되었고, 융성한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가치가 올라갔다.
수능 때 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그런 식으로 정해진 세상의 가치가 그들이 배운 모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특히 한국은 한국전쟁과 가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풍요에 대한 굶주림이 극에 달했고, 일의 가치를 분류하면서 그 우선순위가 최고로 올라가게 되었다. 먹고사는 일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면 버려도 좋을 것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우리의 교육은 그런 식으로 맞춰져 왔고, 한번 굳어진 쇳물처럼 뒤엎기도 힘든 지경에 놓여 버렸다.
4.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가?
세 얼간이는 자신의 꿈을 신념을 가지고 지켜라는 내용도 강렬하지만 모든 일이 가치가 있다는 것 또한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심지어 암기 위주 입시교육의 폐해(?)로 나온 차투르도 그리 실패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그 마저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교육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고, 그 이전에 모든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연극배우도 판사나 의사와 같이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이들이 연극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혹은 그 길을 두려워 걷지 못했던 이들이 용기내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교육은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두고 있는 가치의 무게를 모든 일로 분산시킨다면, 모든 일이 진보할 것이다. 해당하는 일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알아서 기량을 마음껏 발산할 것이다. 평생 쓰지 않을 학문을 배우느라 능력을 소진하는 나라가 바로 이곳 아니었던가.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이면서 그 행복지수는 최저를 달리는 우리나라가 꼭 봐야할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 란초의 개인적인 성공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와 잘못된 교육의 폐해에 허우적대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을 깔끔하게 지적했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원인을 들추어 낸 점이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영화에서 딱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어 평점 하나를 깎아먹는다.
비록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알고 보니 재능이 아닌 경우에는 그 손실을 뒷감당할 그 어떤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흠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능을 확인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비록 영화 속에서 파르한의 사진을 칭찬하는 란초의 모습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체험을 해보고, 그것이 정말 와 닿을 때 모든 역량을 쏟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우리가 모든 가치를 순수한 가치로 인정한다는 가정 하에서 벌어질 일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을 조금도 손상시키지는 못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영화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소신을 지킬 이들을 응원할 높은 포용력을 지닐 준비가 되어있는가. 자살공화국 한국의 현주소에서 몇 번이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다시 보면 좋을 영화 100선 - 1. 세 얼간이
평소 톡을 즐겨보는 평범한 25세 대학생입니다.
요즘 톡에 영 좋은 글도 없고 제가 좋아하던 길빵미님의 글도 잘 올라오지 않아
제가 쓰던 영화 리뷰를 올립니다.
다시 보면 좋을 영화 100선이라는 주제로 100가지 영화를 여러분께 추천하려 합니다.
영화관련 카테고리가 없어 즐겨보는 카테고리에 올립니다..
첫 시작은 '세얼간이'로 하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읽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약간의 스포일러 있을 수 있고 다소 내용이 진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스크롤 주의!
유명세만 익히 들어 그동안 보기를 미뤄왔던 영화다. 무언가 휴먼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제목과 익살스러운 포스터가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접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세 얼간이는 구조적으로 과거로의 회귀, 현재와의 만남을 지향한다. 결과(란초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비행기를 돌리고, 바지도 입지 않은 채 뛰쳐나가는 친구들)에서 그 결과가 있게 한 원인을 과거로부터 찾는 회상의 형식이다.
큰 사건의 얼개는 란초와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총장과 세 친구의 이야기, 란초와 그의 사랑 피아와의 이야기, 영화가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인 자칭 라이벌(?) 차투르와의 이야기, 총 4가지의 이야기들이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를 이룬다.
물론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고 영화의 구성을 분석할 수는 있지만 영화의 내용이 무척 길며, 개별적인 사건을 일일이 타임라인에 올려놓으면 그 분량이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필자는 이 영화에서 얻어갈 점들만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자, 그렇다면 세 얼간이가 우리에게 던진 '숨겨진 것'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당신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영화의 가장 큰 이야기는 역시 란초다스 찬차르의 이야기다. 인도 최고의 명문 공대, ICE에 들어와 수석졸업의 영광을 맞는 인물. 그러나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엘리트의 상식을 거부하는 행동을 일삼는다. 사실 이 비상식적이고 일탈적인 인물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들. 그런데 왜 그의 이야기가 끌리는 것일까?
란초는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신념에 의거해 교수를 농락하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상적인 신입생환영회에서 그는 선배에게 복종(전통)하기보다는 저항하기를 선택한다(진보).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어가면서까지 물질에 예속된 자로부터 끝내 그의 연인이 될 피아를 구출(?)하기도 하고, 시험 전 날 친구의 아버지를 병원까지 스쿠터를 타고 데려가는 등 자신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만사도 제칠 수 있는 의지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행보가 이루는 공통점은 결국 하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심지어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본인까지도 희생시키는 인물이다. 타인의 이름을 빌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그들의 세상을 열 수 있도록 자신의 신념을 투영시킨다. 그들도 종래에는 란초에게 물들어 또 하나의 '란초'가 되어버린다.
그의 이상은 진정한 교육에 대한 가치를 설파한다. 사실 바이러스로 불리는 총장의 말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틀린 것이 없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암기대왕 '차투르'의 방식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명문 ICE공대(우리나라로 치면 포항공대가 적절할까?)를 졸업하면 기업에 무난히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모든 이들이 훌륭한 직장만을 가지기 위해 탄생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돌잔치 때 집은 물건대로 삶을 살게 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혹은 초등학교 때 써낸 장래희망을 이룩한 사람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살면서 점점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재능도 드러나게 되어있는 법이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개인이 가진 능력을 사회의 힘으로 극단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엄청난 인력의 낭비다. 극중에서 란초가 좌절하는 파르한을 설득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만약에 마이클 잭슨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복싱을 배웠다면 어떻게 될까? 무하마드 알 리가 복싱을 배우지 않고 노래를 배웠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나게 끔찍한 일 아니야?”
어쩌면 마이클 잭슨이 무하마드 알리를 능가하는 복서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무하마드 알 리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재능을 살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헌데, 그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2. 아름다운 동화로 끝나지 않는, 진정한 꿈 찾기.
영화에서 말하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은 사실 진부하다 못해 다 기울어져 가는 폐가의 먼지같이 텁텁한 이야기일 뿐이다. 누구나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세 얼간이는 이 비수를 절묘하게 잘 피해갔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려한다. 단지 그럴 상황이 안 될 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미화시키지 않고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것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열쇠가 된다.
란초라는 인물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대부분은 란초와 같이 천재적이지도 않고 이상주의자이거나 확고한 신념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를 대변한 모습은 란초의 계시를 받는 두 얼간이, 라주와 파르한의 이야기가 더욱 적합할 것이다.
두 인물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라주는 극단의 가난 속에서, 오직 가계를 일으켜야 된다는 일념하나로 최고의 공대에 들어와 취업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파르한은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지만, 부모와 일가친척이 그가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기대를 온 몸으로 받고 자랐다. 오직 타인과 상황에 의해 그들의 삶이 지배되었다. 아마 이들처럼 우리를 옥죄는 것은 가난, 사회적 기대와 같은 것이 지배적일 것이다. 주춧돌도 없는데 기둥을 올릴 수 없는 노릇이고, 기둥을 올릴 수 있다 한들, 설계도면과 다르게 마음대로 쉽게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을 이용해서, 전통적 제도에 반기를 드는 혁명가 란초가 이 제도에 편승한 이들을 물들이려 하자 총장은 란초와 그들의 ‘근본적 다름’을 무기로 이간질시킨다. 이 뒤흔들기는 과연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라주와 파르한이 거기서 무너져 내렸다고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 너무나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버릴 것들이 의식하는 이상으로 커다랗고,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조차 안 되기 때문이다. 모두는 그 좋은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 뿐이다. 란초가 라주와 파르한과 한 내기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두 얼간이가 약속한 벌칙을 쉽게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신념까지 저버리도록 무참히 주저앉게 만드는 것일까? 별로 와 닿지도 않는 재미없는 교과서를 억지로 읽으며 취업을 향해 달리는 수많은 청춘들은 왜 달갑지도 않은 일을 자청하고 있는가? 영화는 여기에 대한 해답도 내놓았다.
3. 모든 것은 가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뉴스 아닌 뉴스가 하나 새로 생겼다. 수능이 가까워 질 때마다 투신하는 아이들. 내년에도 반드시 수능 때 누군가 죽거나 자살기도를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 식상할 정도로 느껴진다. 전교 1등인 아이가 전교 10등이 되었다고 자살하는 비슷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들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다음은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총장 : “달에 최초로 착륙한 우주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
학생들 : “닐 암스트롱입니다.”
총장 : “좋아 두 번째로 착륙한 사람은 누구지?” 학생들 : “.......”
총장 : “대답할 필요 없어. 두 번째로 착륙한 사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세상은 첫 번째만을 기억한다.”
우리도 이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쉽게 생각해서 우리의 금메달리스트를 떠올리면 쉽게 몇몇 사람이 떠오르겠지만, 은메달리스트를 떠올리라 한다면 잘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동메달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지닌 시선이다. 최고만을 갈망하고, 특별한 것만을 기억한다. 이는 편견의 문제로 이어진다.
또 다른 문제를 놓고 보자.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거액연봉을 받으며 뛰는 축구선수와 등단해서 유명한 시를 쓴 사람을 나란히 놓고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는가를 평가할 때 많은 사람들은 축구선수를 지목할 것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의 삶을 살고, 물질가치가 우선시 되는 이 사회에서는 축구선수의 삶이 더 뛰어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개중에는 시인의 삶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신적 가치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삶과 시인의 삶, 어느 것이 우월하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모두가 가치 있고 훌륭한 일이다, 라는 것이 진정 옳은 시각이다.
무엇을 하든 간에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과 사람들이 필요하고, 모든 것은 제각각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기계를 사랑하고 공학을 좋아하는 란초는 예술과 인문학을 조롱하는 교수를 향해 이런 말을 던진다.
“예술과 인문학도 모두 가치 있는 학문인데요?”
비단 예술과 인문학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가치가 있다. 우리가 매일 버리는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 가야하고, 아침저녁으로 먹은 밥을 위해 누군가는 벼를 키워야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 있다. 란초는 파르한에게 사진작가가 되어 꿈을 이루라면서도, 자신은 기계를 좋아하기 때문에 ICE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수학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다. 아무래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자신의 일에 몰두할 환경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가급적이면 풍요로운 쪽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이 와전되면서 풍요만이 강조되다 보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이 생략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는 그래서 풍요만을 갈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본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풍요를 필요로 했는데, 풍요를 이루려다보니 원하는 것이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풍요를 보장하는 직업이나 일은 한정적이고, 모두가 그것을 원하다보니 그것을 변별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등수가 매겨지고, 점점 몰려드는 인파에 더욱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사람의 열정과 능력이 한 곳에만 치중되니 그것은 자연히 발전하게 되고, 다른 것은 쇠퇴하게 된다. 사람들이 뒤늦게 다른 것을 찾아보려 해도 이미 좋고 나쁨이 정해져있는 세상이 되었다. 쇠락한 것은 가치절하 되었고, 융성한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가치가 올라갔다.
수능 때 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그런 식으로 정해진 세상의 가치가 그들이 배운 모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특히 한국은 한국전쟁과 가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풍요에 대한 굶주림이 극에 달했고, 일의 가치를 분류하면서 그 우선순위가 최고로 올라가게 되었다. 먹고사는 일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면 버려도 좋을 것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우리의 교육은 그런 식으로 맞춰져 왔고, 한번 굳어진 쇳물처럼 뒤엎기도 힘든 지경에 놓여 버렸다.
4.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가?
세 얼간이는 자신의 꿈을 신념을 가지고 지켜라는 내용도 강렬하지만 모든 일이 가치가 있다는 것 또한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심지어 암기 위주 입시교육의 폐해(?)로 나온 차투르도 그리 실패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그 마저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교육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고, 그 이전에 모든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연극배우도 판사나 의사와 같이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이들이 연극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혹은 그 길을 두려워 걷지 못했던 이들이 용기내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교육은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두고 있는 가치의 무게를 모든 일로 분산시킨다면, 모든 일이 진보할 것이다. 해당하는 일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알아서 기량을 마음껏 발산할 것이다. 평생 쓰지 않을 학문을 배우느라 능력을 소진하는 나라가 바로 이곳 아니었던가.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이면서 그 행복지수는 최저를 달리는 우리나라가 꼭 봐야할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 란초의 개인적인 성공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와 잘못된 교육의 폐해에 허우적대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을 깔끔하게 지적했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원인을 들추어 낸 점이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영화에서 딱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어 평점 하나를 깎아먹는다.
비록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알고 보니 재능이 아닌 경우에는 그 손실을 뒷감당할 그 어떤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흠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능을 확인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비록 영화 속에서 파르한의 사진을 칭찬하는 란초의 모습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체험을 해보고, 그것이 정말 와 닿을 때 모든 역량을 쏟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우리가 모든 가치를 순수한 가치로 인정한다는 가정 하에서 벌어질 일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을 조금도 손상시키지는 못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영화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소신을 지킬 이들을 응원할 높은 포용력을 지닐 준비가 되어있는가. 자살공화국 한국의 현주소에서 몇 번이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알 이즈 웰(all is well)"
우리도 주문을 외울 필요가 있다.
원본 링크 : http://blog.naver.com/pistol4747 Costa의 Widevision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