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역사의 산물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렇게라도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너무 오랜 시간 논란이었던 문제들이라 우리는 이제 너무 무감각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감각했던 모든 시간동안 피해자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수요집회를 통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해오셨고, 이제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매해 더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등록 된 234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중에 이제는 64분 밖에 살아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우리들이 이에 함께 책임의식을 느끼고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 분들이 다 돌아가신다면 이제 일본에 대해서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증거할 사람이 정말로 없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정말로 단 한 가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바른 지식을 알고 역사적인 소명을 갖는 것입니다.
먼저 위안부라는 용어문제입니다.
위안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입니다!
위안부라는 말 자체에도 피해자 분들에 대한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어
작은 따옴표를 붙이기로 한 것이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정신대 나 종군 위안부 등은 모두 올바른 표현이 아니구요
일본군 '위안부'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많은 분들이 위안부가 언제 징용되었는지 조차 모르십니다.
위안부는 일본이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8월까지 식민지 국가의 여성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여성 집단입니다.
주로 취업이나 공부를 시켜준다고 사기를 쳐서 끌고 가거나,
협박을 통해 또는 유괴나 인신 매매등을 통해 강제로 연행하였습니다.
(일본 우익 단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춘부라고 표현하거나 자발적인 행위라고 합니다.
강제 연행이라는 것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주로 트럭을 태워서 연행 했습니다.
트럭에 이동되는 피해 여성들의 당시 모습입니다.
이러한 만행에 대한 일본군의 반응은 어떨까요 ?
처음에는 정부와 군의 개입을 절대 부인 하다가,
나중에는 군의 개입은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부분적으로 강제 연행을 인정하다가
이제는 법적책임을 회피하는 해결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증거가 속속들이 밝혀지자 계속해서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1991년 12월07일
일 정부, 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정부 관계 기관 관여 자료가 없어 대처 곤란하다”고 언급
1992년 01월13일
일본정부, 일본군의 관여사실 최초로 공식 인정하는 담화발표
1992년 07월06일
일본 정부는 위안부문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일 정부의 직접 관여를 공식 인정하였으나 강제연행사실은 부인하였습니다.)
일본은 법적 책임을 무슨 근거로 회피하고 있는 걸까요?
일본은 자국에게 도덕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국제법을 통해서 주장을 피력하는데요,
그들은 1949년 제네바 협약 및 각종 국제 법들이 2차 대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소급해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907년의 헤이그 제 4 협약에서는 민간인을 노예화와 강제 노동으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을 이미 담고 잇었습니다.
또한 배상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일본 정부가 해당 국제 협약에 따라 법적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일본은 개인의 법적 배상청구권 문제는 해결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국제법학자들에 의해서 이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먼저, 샌프란 시스코 조약 등 많은 조약들이 서명되었을 때 위안소 관련 일본정부의 개입은 감추어 졌고, 이는 위 조약에 의거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구권이라는 용어는 불법 행위에 의한 청구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해결했다고 하는 협약인 한일협약은 국가사이의 경제조약이고, 인권문제는 분명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일 협약이은 재산 청구권만을 소멸시키는 것이지 사적 청구권을 소멸 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 오고 있습니다.
1992년 01월08일 제1차 수요시위 가 일어났습니다. 이 이후로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가 있었고 얼마 전 1000회 수요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11월 13일 1100회를 맞았습니다.
1100번의 집회동안, 20년의 세월동안 할머니들은 항상 그렇게 외치고 있었는데, 저 자신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수요 집회는 7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뤄지고 있습니다.
매 수요 집회마다 이제 몸이 아프셔서 나오지 못하시는 할머니들도 많이 계십니다.
정말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서 그 분들의 한을 풀고 역사적인 치욕을 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요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특히 젊은 세대들이 함께 할 때 기쁘다고 하십니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위로가 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함께 압시다.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정말로 해결과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얼마나 만행을 저질렀는지,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일본 군이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연행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늘 군의 개입은 없고 민간에서 발생한 일이라 주장했던 일본의 근거가 무산시키는 증거입니다.
또한 얼마 전에 일본군의 위생병으로 근무했던 한 일본인이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mbc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이 내용을 통해서 분명히 위안부를 일본‘군’에서 관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주장은 점점 무너지고 있고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본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수요집회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담은 할머니들께서 모두 별세하신다면 이제 증인으로 나설 분이 아무도 없고 그때가서 일본은 뭐라고 할까요?....
정말로 우리가 일어났으면 합니다.‘국민들이 깨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바로 알고
수요집회에도 함께 참여했으면 합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위안부나 정대협을 치면 바로 위안부 역사 박물관과 정대협 홈페이지로 이동해서 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식팔찌나 할머니들의 유작으로 만들어진 유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데 쓰는 ‘희움’이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여러분 참여합시다 정말 참여합시다.
그리고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 대해 일본에서 반박하는 근거 중에 하나는 ‘너희도 베트남에 똑같은 짓을 하고 사과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라는 것이고 이것도 실은 사실입니다. 우리도 전쟁 속에서 가해자 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한번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희는 경희대학교 시민교육 교과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역사의 산물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렇게라도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너무 오랜 시간 논란이었던 문제들이라 우리는 이제 너무 무감각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감각했던 모든 시간동안 피해자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수요집회를 통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해오셨고, 이제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매해 더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등록 된 234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중에 이제는 64분 밖에 살아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우리들이 이에 함께 책임의식을 느끼고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 분들이 다 돌아가신다면 이제 일본에 대해서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증거할 사람이 정말로 없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정말로 단 한 가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바른 지식을 알고 역사적인 소명을 갖는 것입니다.
먼저 위안부라는 용어문제입니다.
위안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입니다!
위안부라는 말 자체에도 피해자 분들에 대한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어
작은 따옴표를 붙이기로 한 것이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정신대 나 종군 위안부 등은 모두 올바른 표현이 아니구요
일본군 '위안부'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많은 분들이 위안부가 언제 징용되었는지 조차 모르십니다.
위안부는 일본이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8월까지 식민지 국가의 여성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여성 집단입니다.
주로 취업이나 공부를 시켜준다고 사기를 쳐서 끌고 가거나,
협박을 통해 또는 유괴나 인신 매매등을 통해 강제로 연행하였습니다.
(일본 우익 단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춘부라고 표현하거나 자발적인 행위라고 합니다.
강제 연행이라는 것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주로 트럭을 태워서 연행 했습니다.
트럭에 이동되는 피해 여성들의 당시 모습입니다.
이러한 만행에 대한 일본군의 반응은 어떨까요 ?
처음에는 정부와 군의 개입을 절대 부인 하다가,
나중에는 군의 개입은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부분적으로 강제 연행을 인정하다가
이제는 법적책임을 회피하는 해결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증거가 속속들이 밝혀지자 계속해서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1991년 12월07일
일 정부, 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정부 관계 기관 관여 자료가 없어 대처 곤란하다”고 언급
1992년 01월13일
일본정부, 일본군의 관여사실 최초로 공식 인정하는 담화발표
1992년 07월06일
일본 정부는 위안부문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일 정부의 직접 관여를 공식 인정하였으나 강제연행사실은 부인하였습니다.)
일본은 법적 책임을 무슨 근거로 회피하고 있는 걸까요?
일본은 자국에게 도덕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국제법을 통해서 주장을 피력하는데요,
그들은 1949년 제네바 협약 및 각종 국제 법들이 2차 대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소급해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907년의 헤이그 제 4 협약에서는 민간인을 노예화와 강제 노동으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을 이미 담고 잇었습니다.
또한 배상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일본 정부가 해당 국제 협약에 따라 법적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일본은 개인의 법적 배상청구권 문제는 해결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국제법학자들에 의해서 이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먼저, 샌프란 시스코 조약 등 많은 조약들이 서명되었을 때 위안소 관련 일본정부의 개입은 감추어 졌고, 이는 위 조약에 의거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구권이라는 용어는 불법 행위에 의한 청구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해결했다고 하는 협약인 한일협약은 국가사이의 경제조약이고, 인권문제는 분명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일 협약이은 재산 청구권만을 소멸시키는 것이지 사적 청구권을 소멸 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 오고 있습니다.
1992년 01월08일 제1차 수요시위 가 일어났습니다. 이 이후로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가 있었고 얼마 전 1000회 수요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11월 13일 1100회를 맞았습니다.
1100번의 집회동안, 20년의 세월동안 할머니들은 항상 그렇게 외치고 있었는데, 저 자신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수요 집회는 7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뤄지고 있습니다.
매 수요 집회마다 이제 몸이 아프셔서 나오지 못하시는 할머니들도 많이 계십니다.
정말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서 그 분들의 한을 풀고 역사적인 치욕을 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요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특히 젊은 세대들이 함께 할 때 기쁘다고 하십니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위로가 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함께 압시다.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정말로 해결과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얼마나 만행을 저질렀는지,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일본 군이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연행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늘 군의 개입은 없고 민간에서 발생한 일이라 주장했던 일본의 근거가 무산시키는 증거입니다.
또한 얼마 전에 일본군의 위생병으로 근무했던 한 일본인이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mbc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이 내용을 통해서 분명히 위안부를 일본‘군’에서 관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주장은 점점 무너지고 있고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본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수요집회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담은 할머니들께서 모두 별세하신다면 이제 증인으로 나설 분이 아무도 없고 그때가서 일본은 뭐라고 할까요?....
정말로 우리가 일어났으면 합니다.‘국민들이 깨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바로 알고
수요집회에도 함께 참여했으면 합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위안부나 정대협을 치면 바로 위안부 역사 박물관과 정대협 홈페이지로 이동해서 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식팔찌나 할머니들의 유작으로 만들어진 유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데 쓰는 ‘희움’이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여러분 참여합시다 정말 참여합시다.
그리고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 대해 일본에서 반박하는 근거 중에 하나는 ‘너희도 베트남에 똑같은 짓을 하고 사과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라는 것이고 이것도 실은 사실입니다. 우리도 전쟁 속에서 가해자 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정할건 인정하고 사과을 받을 건 받을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이 됩시다.
지금까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