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일지) * 할머니의 따뜻한 정 *

irish15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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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집이건 별이건 혹은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내가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건 인간의 겉모습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쌩 떽쥐뻬리 [어린왕자]

 

 

 

 

 

 

 

 

 

그 할머니와의 작은 인연의 시작은 신문 때문이었다.

지난 여름 어느 이른 아침. 신문배달에 열중하던 내 앞으로 할머니께서는 보행기를 밀며 다가오셔선 신문 한 부만 줄 수 없느냐며 푸근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네주신 분이셨다.

그 이후로 배달 중에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다 이런저런 얘기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생전에 나를 많이 아껴주셨던 외할머니를 닮은 모습에 그 할머니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얼마 전 시장길. 지난 3일간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늘어난 신규독자들로 인해 배달시간이 늦어진 탓이다. 그날은 조금 이른 시간에 시장길을 지날 수 있었고 늘 같은 자리에 보행기를 세워두고 우두커니 앉아계시는 할머니가 멀리서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할머니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눈이 조금 어두우신 할머니께서는 가까이에서야 나를 알아보시고는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며칠째 통 안보여서 궁금했지..”

“일이 좀 많아져서 늦어졌어요.”

“추운데 고생이 많네. 옛날에 우리 옆집에도 신문 배달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내가 밥을 해줬거든. 다들 새벽일 끝나면 또 일하러 가고 그랬지. 아저씨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할머니를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럼 매일 나와야겠네.”

“점점 추워지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감기 걸려요. 따뜻하게 댁에 계세요.”

 

할머니께서는 푸근하게 웃으시고는 주춤주춤 몸을 일으켜 입고 계신 외투 주머니에서 뭔가를 조심스레 꺼내셨다. 그리곤 나에게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식기 전에 얼른 마셔!”

그것은 따뜻한 것이 담긴 플라스틱 물통이었다. 식지 말라고 은박지가 감싸져 있었고 다시 투명한 비닐에 덧씌워져 있었다.

“이게 뭐예요?”

“응.. 오가탕이야. 생강, 벌꿀, 대추, 감초하고.. 5가지 약재가 들어갔어.”

“이 좋은 걸 할머니께서 드시지 왜 저를 주세요?”

“신문을 매일 주니까 고마워서.. 추우니까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지. 어서 마셔! 그리고..”

순간 코끝이 찡했다...

 

할머니와 막 헤어졌을 때 마침 근처를 지나던 신문메신저인 P형과 마주쳤다. 나는 P형에게 다가가 할머니를 가리키며 “P형. 저 할머니야. 내가 전에 얘기했던 음료수를 주신 고마운 할머니.”

“아..”

그런데 웬일인지 P형의 얼굴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까 그 할머니, 매일 이 시간 즈음이면 저 자리에 늘 앉아 계시는데 그 앞을 내가 지나갈때면 항상 나를 뚫어져라 계속 쳐다보시잖아. 그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더라고..”

근처에서 나와 함께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P형은 그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매일 시장길 모퉁이에 앉아계신 그 할머니 앞을 늘 나보다 먼저 지나가는 P형. 할머니께서는 P형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혹시나 내가 아닐까 하고 지긋이 쳐다보셨던 것이다. 눈이 좋지 않으시니 가까이 지나쳐 갈 때가지 시선을 집중하셨을테고 P형 입장에서는 괜한 오해가 생길만도 하였으리라. 할머니께서는 매일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문득 아까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뭉클했다.

“그리고.. 이걸 3일 동안이나 들고 다녔어..”

 

‘나와 마주치지 못한 지난 3일 동안이나...’

 

 

 

 

 

* 할머니께서 주신 오가탕은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에 있다.

그 이유는 오가탕을 싫어하거나 아까워해서가 아닌,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픈 바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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