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뉘른베르크"

허주민2013.11.24
조회39

2013. 10. 11. 금

 

체코를 떠나 다시 독일로 향하다~ 목적지는 뉘른베르크다.

 

 

 

 

원기옥이 생각나더군..ㅋ

 

 

 

 

 

가던중 독일 경찰이 버스 조사를 하곤..ㅋ

 

 

 

한국 기업인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던 그들은 삼성 최고라는 한국 사람의 인사에 미소를 머금고 버스에서 내렸다..ㅋ

 

 

독일의 둘째날 밤을 지내게될 숙소~*

 

 

 

 

음~ 이음식은 입에 맞더군..ㅎㅎ

 

 

 

맥주하면 독일~ 맛나더군..ㅎ

 

 

 

 

 

맥주 값은 추가로~ㅋ

 

 

 

식사한 곳~ 역시나 간판이..ㅋ

 

 

 

 

 

독일 소방소

 

 

소방차

 

 

 

 

 

 

여기도 로또가 있군..ㅋ

 

 

 

뉘른베르크(Nurnberg trials)는 독일 남동부에 있는 바이에른주에 속해 있는 도시이다.
뉘른베르크시는 나치의 거점이었고 전범재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뉘른베르크시는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나치전당대회가 열린 장소이다.
1935년 9월에는 뉘른베르크법이 제정되어 인종차별과 유대인 학살의 법적근거가 되었다.

뉘른베르크법의 3개법령 중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이 1999년 6월에 미국의 헌팅턴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고위 나치 장교의 친필서명이 있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과 독일인간 결혼은 물론, 어떠한 성적 접촉도 금지한다. 제3국에서 치러진 결혼일지라도 모두 무효이며, 이를 어긴 자는 강제노역에 처한다. 유대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한다. 유대인은 독일 국기를 게양할 수 없으며, 독일인 하인을 둘 수 없다」

뉘른베르크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등 4연합국이 주관하였고 전쟁을 일으키고 대학살을 자행한 독일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1943년 10월에 연합국 전쟁범죄위원회가 런던에 설치되어, 전쟁범죄인의 처벌에 관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1945년 10월11일 독일 뉘른베르크시의 '정의의 전당'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403차 공판(公判)을 거쳐 이듬해인 1946년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 2일간에 걸쳐서 판결이 언도되었다.

자살 또는 병사한 2명을 제외한 22명에 대해, 괴링 이하 12명에게 교수형, 헤스 이하 3명에게 종신형, 다른 4명에게 유기형을 부과하였고 3명은 무죄였다.

뉘른베르크시는 비록 대학살이 자행된 곳이었지만 종전이후 전범재판이 열려 인종과 상관없이,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실때문에 도시로는 최초로 2001년 4월21일 유네스코의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늑대 한마리 나올 분위기라 한번 담아봄~ㅎ

 

 

 

음산한가?!ㅋ

 

 

숙소 내 1층 Bar~*

 

 

 

 

자기전 한잔?!ㅋ 살이 안찔래야 안찔수가..;

 

 

체코 맥주인 버드와이저 부드바~*

 

 

컵라면은 있는데 젓가락이 없다.. 그래서 컵위에 놓은 저걸로.. 분질러 젓가락 대용으로..ㅎㅎ

군대에서도 이런경험이 없었는데..ㅋ 그래도 라면맛은 정말 최고였다..^^

 

 

 

 

이게왠일~ 해외나가서 유명한 영화를 보긴 처음~ 것도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영화 1위로 기억에 남아있는

타이타닉을 TV에서 방송해주다~ㅋ

 

 

이제 자야지..ㅋ 다음날은 바로 로텐부르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