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친정아버지가 2008년 12월 24일 성남의 Y 플러스 병원에서 위에 악성종양으로 진단을 받고, 2009년 1월 2일 여성병원으로 유명한 분당의 C병원을 아빠가 직접 걸어가서 입원을 하시고,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한 검사를 4일 간 받았습니다. 검사 도중에도 아빠와 엄마는 피가 나도 금방 멈추고 염증 같은 게 전혀 생기지 않는 체질이고, 상처가 나도 다른 사람 보다 빨리 회복 된다고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
검사 하시는 병원 관계자 분이 수술을 해도 된다는 말씀을 하셔서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고, 위암 2기 초기였으며, 입원하신 날로부터 길면 2주 있다가 퇴원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2009년 1월 6일 오후 아빠는 위암 수술을 하고, 회복 기간인 7일 날 엄마나 저희가 아빠에게 말을 시켜봐도 말을 거의 하지 못하고, 웅얼웅얼 해서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은 회복기간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뇌병변으로 진행 되는 현상으로 생각이 됩니다.
2009년 1월 8일 오전 7시 무통주사를 빼고 8시30분 정도에 수술을 집도하신 담당 외과 의사 선생님이 회진 돌면서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러 누가 진통제 놓았냐고 그러셨습니다. (엄마는 이상했는지 저한테 다급히 전화를 하셨고, 저는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는 직장을 조퇴하고 병원으로 왔습니다.)
제 예상대로 회진 이후 저희 아빠가 호흡을 하는데 이상이 생겨 엄마가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들은 아빠를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는 곳 옆 처치실 같은 곳으로 이동을 시켰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분당 정자동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C병원으로 갔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처치실에서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은 우왕자왕하고 있었고, 그 사이 저희 아빠의 눈동자는 흰자만 보이고, 의식이 없으셨으며 사경을 헤매고 계셨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아빠는 혼자 힘으로 숨도 못 쉬어서 큰 산소통을 침대에 대고, 산소통의 산소를 의지해 숨을 간신히 쉬고 계셨습니다.
아빠를 수술하신 외과도.. 원인이 뭔지를 모르는 듯 다른 과 호출도 하고 2~3명의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오시고, 정신 없어 보였습니다.
본인 힘으로 숨을 쉬지 못 하니까 심장내과 과장님께서 색전증이 온 것 같다고 하시면서 CT를 찍자고 하셨고, CT를 찍고 나니깐 폐색전증에 뇌경색까지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폐색전증을 뚫으려면 피를 묽게 하는 약치료를 하면 되는데 피를 묽게 할 경우 위암 수술한 부위의 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폐에 있는 피딱지를 꺼내는 시술을 해야 되며, 이 또한 위험한 시술이라고 보호자의 동의를 구했고 폐에 피딱지를 뚫는다고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위암수술만 하면 건강해 질 줄 알았던 저희 가족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시술하신 선생님께서는 폐에서 피딱지를 꺼내서 보여주시고는 처음보다는 호전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독한 상태였는데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8층 준 중환자실에 옮겨졌습니다.
준 중환자실로 옮기고 난 뒤 몇 시간 후 심장에 피가 고인다고 해서 그 고인 피를 빼야 된다고 했는데 수술실로 옮기기에는 위독한 상황이라 준 중환자실에서 커튼만 치고 응급시술에 들어갔습니다. 심장내과 선생님께서 우선 피는 뽑아 냈는데 지켜보자고 하셨고, 호전되지 않아서 오늘 밤은 넘기기 힘드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레지던트들이 거의 1시간에 한번씩 준 중환자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아빠의 상태를 확인했고, 저의는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다행히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지만, 다음날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지고는 20일을 넘게 누워만 계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2009년 1월6일에 위암수술을 하고 나서 이틀만인 8일 아침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진 겁니다. 위암수술하고 회복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폐경색과 뇌경색이 오고, 생사를 오가는 시술을 두 번이나 하는 와중에 뇌경색은 전혀 치료를 할 수 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빠는 간신히 산소호흡기의 힘을 빌어 숨만 쉬고 있을 뿐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으로 중환자실에서 20일 이상을 계속 누워 있으셨고, 가족들이 하루에 2회 면회 하는 게 다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정신만 있고,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거의 중환자실에 몇 달을 계셨습니다.고등학교 3학년인 남동생은 10개월을 혼자 학교 다니면서 생활하고 저희도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기에 아빠 옆에는 엄마만 계셨고, 저희 집은 그 때부터 그야 말로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 했습니다.
병원 측에선 우리가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고 수술동의서에 써있는 수술 시 발생 될 수 있는 합병증 중 색전증이 온 것이라며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어디다가 하소연을 해야 하나요? 내용증명도 보내보고, 소송도 걸어볼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저희 같은 저소득층 시민이 큰 대학병원을 상대로 과연 이길 수 있을 까요? 설상 이긴다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의 비용은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 했습니다.
모 병원 근무하시는 외과 의사선생님 말씀은 “그렇게 심한 고지혈증 환자는 출혈이 심하여도 처방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나 보네요”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저희 신랑 친구들 중 외과 계에 근무를 하는 친구들도 의료사고 임에도 대학병원들은 수술 동의서를 받는 이유가 만약을 대비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거라고 하네요. 그래서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모두 써 놓고 본인들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고 하네요.
아빠랑 엄마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을 때 같은 분당 C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약간의 의료사고라고 말씀 하였답니다. 지금에 와서는 수술동의서에 동의한 저와 신랑은 죄인이 된 듯합니다. 차라리 수술을 하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이런 사연을 소비자보호원에 보냈더니 수술 하신 외과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시고 따님과 함께 방문을 하라고 하더군요. 저와 신랑이 같이 갔더니 위암수술을 한 선생님께서 수술 전에 시행한 피검사 등에는 모두 정상 수치였다고 하면서 검사 결과지 같은 걸 보여주시면서 어떤걸 원하셔서 이런 글을 소비자 보호원에 보냈냐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지만, 아빠가 현재 치료를 바고 계시고 치료를 받으시면서 혹시 불이익을 받으실 까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나온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됩니다.
사실 그걸 보여주는데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거야 그런 큰 대학병원의 시스템상전산실 같은 곳에서 충분히 고칠 수도 있는 일이니깐요. 안 고쳤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아빠가 저렇게 되셨는데 .. 저희 입장에서 마냥 병원 얘기를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긴 자기들이 잘 못해 놓고 잘 못 했다고 말하는 병원과 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사고의 경험이 없는 무지한 환자 입자에선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말짱히 두발로 걸어가서 수술하고 2주 후면 퇴원하신다는 아빠가 대소변도 못 가리는 전신마비에서 걸어 다니시는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지금은 5년째 뇌경색으로 인해 오른쪽 손은 마비되었고, 오른쪽 다리는 오래 걷지도 못하십니다. 항상 주머니에 사탕과 물을 넣어가지고 다니십니다.
수술 후 갑자기 당이 떨어지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시기 때문에 사탕을 소지 하시고 다녀야 합니다. 집안의 가장이셨던 아빠는 일을 전혀 못 하시고, 집안에 소득이 없기 때문에 입원 재활치료는커녕 침 맞으러 다니실 비용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전동휠체어를 타고 밤 10시 ~ 새벽 4시까지 박스를 주으시고는 하루에 1천원정도 버시고, 그렇게 5일을 꼬박 박스를 줍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침 맞으러 다니시는데.. 그마저도 하루라도 박스를 못 주으시면 일주일에 한번 침 맞는 것 조차 경제적으로 힘듭니다.
집안의 세금이나 전기료, 도시가스비용은 자식들이 조금씩 나눠서 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침 맞으러 다니는 비용을 본인 스스로 버시면서 조금 이나마 생활에 보탬을 하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보험회사에서 나온 진단금으로 병원비도 내고, 분당의 C병원, J병원의 재활병동에서 재활을 받았는데 점점 치료가 길어지고, 동네 재활병원에서 조차 재활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며, 전동휠체어를 타고 박스 주워서 하루 하루 3천원정도 번 돈으로 간신히 침만 맞고 다니십니다. 걷기도 불편하신 아빠가 택시 탈 돈이 없으셔서 버스에 지하철 타고 다니시고, 걸으시다가 힘드시면 쉬고, 또 괜찮아지시면 다시 걸으시고.. 침 맞으러 다녀오시면 반나절이 그냥 지나가고, 힘드셔서 식사도 못하시고 그냥 주무십니다.
이제 날씨도 추워지는데 박스 주으시다가 다치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제 눈도 오고 하면 더 못 나가실 텐데 아빠는 매일 자책하십니다. 자기가 괜히 살아서 여러 사람 고생 시키신다고…
그 당시에는 제발 살아만 계셔라 라고 생각 했는데…. 그렇게 자책하시는 아빠를 보면 가슴이 미여 집니다. 자식들이 있으면 뭐합니까.. 자식들이 수억을 버는 것도 아니고 매번 입원해서 나오는 병원비며 생활비까지 자식들이 다 댈 수 있는 사정도 아니고, 아빠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집안의 세금이며 생활비를 충당하느랴 지금 자식인 저희들도 은행에서도 대출을 최대로 받고, 약관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생활을 하고 있고, 이제는 그 한도조차도 모두 초과 했습니다. 아니 생활이 뭡니까? 이자 내느랴 매일 마이너스 생활입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모하나.. 다같이 죽는 게 낫지..
집안형편은 말도 못할 처지에 놓여있고, 아빠는 재활치료도 못하여 오른쪽 손과 발이 점점 더 굳어가는 상태입니다. 병원의 실수와 무책임한 대응이 지금 저희 집을 포함한 동생네 집 그리고 부모님 집안까지 순식간에 몰락시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나 멀쩡히 이것은 분명 의료사고인데 병원 측에서는 수술확인서에 저희가 사인을 했다는 이유로 전혀 잘못이 없다고 하는군요. 대형병원들의 횡포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막상 저희 가족이 당하고 나니 세상을 살 의욕도 없고, 당황스럽고 무섭더군요.. 저희 같이 약한 사람들은 어디에 호소를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위암 수술후 장애인 되신 우리 아빠
안녕하세요. 저희의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 말할 곳이 없어 이곳에 올립니다.
저희 친정아버지가 2008년 12월 24일 성남의 Y 플러스 병원에서 위에 악성종양으로 진단을 받고, 2009년 1월 2일 여성병원으로 유명한 분당의 C병원을 아빠가 직접 걸어가서 입원을 하시고,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한 검사를 4일 간 받았습니다. 검사 도중에도 아빠와 엄마는 피가 나도 금방 멈추고 염증 같은 게 전혀 생기지 않는 체질이고, 상처가 나도 다른 사람 보다 빨리 회복 된다고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
검사 하시는 병원 관계자 분이 수술을 해도 된다는 말씀을 하셔서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고, 위암 2기 초기였으며, 입원하신 날로부터 길면 2주 있다가 퇴원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2009년 1월 6일 오후 아빠는 위암 수술을 하고, 회복 기간인 7일 날 엄마나 저희가 아빠에게 말을 시켜봐도 말을 거의 하지 못하고, 웅얼웅얼 해서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은 회복기간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뇌병변으로 진행 되는 현상으로 생각이 됩니다.
2009년 1월 8일 오전 7시 무통주사를 빼고 8시30분 정도에 수술을 집도하신 담당 외과 의사 선생님이 회진 돌면서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러 누가 진통제 놓았냐고 그러셨습니다. (엄마는 이상했는지 저한테 다급히 전화를 하셨고, 저는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는 직장을 조퇴하고 병원으로 왔습니다.)
제 예상대로 회진 이후 저희 아빠가 호흡을 하는데 이상이 생겨 엄마가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들은 아빠를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는 곳 옆 처치실 같은 곳으로 이동을 시켰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분당 정자동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C병원으로 갔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처치실에서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은 우왕자왕하고 있었고, 그 사이 저희 아빠의 눈동자는 흰자만 보이고, 의식이 없으셨으며 사경을 헤매고 계셨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아빠는 혼자 힘으로 숨도 못 쉬어서 큰 산소통을 침대에 대고, 산소통의 산소를 의지해 숨을 간신히 쉬고 계셨습니다.
아빠를 수술하신 외과도.. 원인이 뭔지를 모르는 듯 다른 과 호출도 하고 2~3명의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오시고, 정신 없어 보였습니다.
본인 힘으로 숨을 쉬지 못 하니까 심장내과 과장님께서 색전증이 온 것 같다고 하시면서 CT를 찍자고 하셨고, CT를 찍고 나니깐 폐색전증에 뇌경색까지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폐색전증을 뚫으려면 피를 묽게 하는 약치료를 하면 되는데 피를 묽게 할 경우 위암 수술한 부위의 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폐에 있는 피딱지를 꺼내는 시술을 해야 되며, 이 또한 위험한 시술이라고 보호자의 동의를 구했고 폐에 피딱지를 뚫는다고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위암수술만 하면 건강해 질 줄 알았던 저희 가족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시술하신 선생님께서는 폐에서 피딱지를 꺼내서 보여주시고는 처음보다는 호전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독한 상태였는데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8층 준 중환자실에 옮겨졌습니다.
준 중환자실로 옮기고 난 뒤 몇 시간 후 심장에 피가 고인다고 해서 그 고인 피를 빼야 된다고 했는데 수술실로 옮기기에는 위독한 상황이라 준 중환자실에서 커튼만 치고 응급시술에 들어갔습니다. 심장내과 선생님께서 우선 피는 뽑아 냈는데 지켜보자고 하셨고, 호전되지 않아서 오늘 밤은 넘기기 힘드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레지던트들이 거의 1시간에 한번씩 준 중환자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아빠의 상태를 확인했고, 저의는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다행히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지만, 다음날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지고는 20일을 넘게 누워만 계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2009년 1월6일에 위암수술을 하고 나서 이틀만인 8일 아침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진 겁니다. 위암수술하고 회복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폐경색과 뇌경색이 오고, 생사를 오가는 시술을 두 번이나 하는 와중에 뇌경색은 전혀 치료를 할 수 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빠는 간신히 산소호흡기의 힘을 빌어 숨만 쉬고 있을 뿐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으로 중환자실에서 20일 이상을 계속 누워 있으셨고, 가족들이 하루에 2회 면회 하는 게 다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정신만 있고,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거의 중환자실에 몇 달을 계셨습니다.고등학교 3학년인 남동생은 10개월을 혼자 학교 다니면서 생활하고 저희도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기에 아빠 옆에는 엄마만 계셨고, 저희 집은 그 때부터 그야 말로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 했습니다.
병원 측에선 우리가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고 수술동의서에 써있는 수술 시 발생 될 수 있는 합병증 중 색전증이 온 것이라며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어디다가 하소연을 해야 하나요? 내용증명도 보내보고, 소송도 걸어볼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저희 같은 저소득층 시민이 큰 대학병원을 상대로 과연 이길 수 있을 까요? 설상 이긴다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의 비용은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 했습니다.
모 병원 근무하시는 외과 의사선생님 말씀은 “그렇게 심한 고지혈증 환자는 출혈이 심하여도 처방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나 보네요”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저희 신랑 친구들 중 외과 계에 근무를 하는 친구들도 의료사고 임에도 대학병원들은 수술 동의서를 받는 이유가 만약을 대비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거라고 하네요. 그래서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모두 써 놓고 본인들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고 하네요.
아빠랑 엄마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을 때 같은 분당 C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약간의 의료사고라고 말씀 하였답니다. 지금에 와서는 수술동의서에 동의한 저와 신랑은 죄인이 된 듯합니다. 차라리 수술을 하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이런 사연을 소비자보호원에 보냈더니 수술 하신 외과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시고 따님과 함께 방문을 하라고 하더군요. 저와 신랑이 같이 갔더니 위암수술을 한 선생님께서 수술 전에 시행한 피검사 등에는 모두 정상 수치였다고 하면서 검사 결과지 같은 걸 보여주시면서 어떤걸 원하셔서 이런 글을 소비자 보호원에 보냈냐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지만, 아빠가 현재 치료를 바고 계시고 치료를 받으시면서 혹시 불이익을 받으실 까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나온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됩니다.
사실 그걸 보여주는데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거야 그런 큰 대학병원의 시스템상전산실 같은 곳에서 충분히 고칠 수도 있는 일이니깐요. 안 고쳤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아빠가 저렇게 되셨는데 .. 저희 입장에서 마냥 병원 얘기를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긴 자기들이 잘 못해 놓고 잘 못 했다고 말하는 병원과 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사고의 경험이 없는 무지한 환자 입자에선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말짱히 두발로 걸어가서 수술하고 2주 후면 퇴원하신다는 아빠가 대소변도 못 가리는 전신마비에서 걸어 다니시는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지금은 5년째 뇌경색으로 인해 오른쪽 손은 마비되었고, 오른쪽 다리는 오래 걷지도 못하십니다. 항상 주머니에 사탕과 물을 넣어가지고 다니십니다.
수술 후 갑자기 당이 떨어지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시기 때문에 사탕을 소지 하시고 다녀야 합니다. 집안의 가장이셨던 아빠는 일을 전혀 못 하시고, 집안에 소득이 없기 때문에 입원 재활치료는커녕 침 맞으러 다니실 비용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전동휠체어를 타고 밤 10시 ~ 새벽 4시까지 박스를 주으시고는 하루에 1천원정도 버시고, 그렇게 5일을 꼬박 박스를 줍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침 맞으러 다니시는데.. 그마저도 하루라도 박스를 못 주으시면 일주일에 한번 침 맞는 것 조차 경제적으로 힘듭니다.
집안의 세금이나 전기료, 도시가스비용은 자식들이 조금씩 나눠서 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침 맞으러 다니는 비용을 본인 스스로 버시면서 조금 이나마 생활에 보탬을 하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보험회사에서 나온 진단금으로 병원비도 내고, 분당의 C병원, J병원의 재활병동에서 재활을 받았는데 점점 치료가 길어지고, 동네 재활병원에서 조차 재활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며, 전동휠체어를 타고 박스 주워서 하루 하루 3천원정도 번 돈으로 간신히 침만 맞고 다니십니다. 걷기도 불편하신 아빠가 택시 탈 돈이 없으셔서 버스에 지하철 타고 다니시고, 걸으시다가 힘드시면 쉬고, 또 괜찮아지시면 다시 걸으시고.. 침 맞으러 다녀오시면 반나절이 그냥 지나가고, 힘드셔서 식사도 못하시고 그냥 주무십니다.
이제 날씨도 추워지는데 박스 주으시다가 다치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제 눈도 오고 하면 더 못 나가실 텐데 아빠는 매일 자책하십니다. 자기가 괜히 살아서 여러 사람 고생 시키신다고…
그 당시에는 제발 살아만 계셔라 라고 생각 했는데…. 그렇게 자책하시는 아빠를 보면 가슴이 미여 집니다. 자식들이 있으면 뭐합니까.. 자식들이 수억을 버는 것도 아니고 매번 입원해서 나오는 병원비며 생활비까지 자식들이 다 댈 수 있는 사정도 아니고, 아빠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집안의 세금이며 생활비를 충당하느랴 지금 자식인 저희들도 은행에서도 대출을 최대로 받고, 약관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생활을 하고 있고, 이제는 그 한도조차도 모두 초과 했습니다. 아니 생활이 뭡니까? 이자 내느랴 매일 마이너스 생활입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모하나.. 다같이 죽는 게 낫지..
집안형편은 말도 못할 처지에 놓여있고, 아빠는 재활치료도 못하여 오른쪽 손과 발이 점점 더 굳어가는 상태입니다. 병원의 실수와 무책임한 대응이 지금 저희 집을 포함한 동생네 집 그리고 부모님 집안까지 순식간에 몰락시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나 멀쩡히 이것은 분명 의료사고인데 병원 측에서는 수술확인서에 저희가 사인을 했다는 이유로 전혀 잘못이 없다고 하는군요. 대형병원들의 횡포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막상 저희 가족이 당하고 나니 세상을 살 의욕도 없고, 당황스럽고 무섭더군요.. 저희 같이 약한 사람들은 어디에 호소를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