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고재봉 이야기

작두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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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301병기 대대장 이 모(某) 중령(36세)의 가족 5명이 인제군 남면 어논리(於論里)에서 희대의 살인마 고재봉(高在奉)의 도끼에 무참히 참살당했다. 
인간의 탈을 쓴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생각을 꿈에도 가질 수 없으련만 고재봉은 그 일을 유유히 저지른 것이다. 
뜻밖의 참변을 처음 목격한 이 중령의 운전병은 평상시처럼 지프차를 몰고 이 중령의 집 문앞에서 요란한 경적을 울렸다. 그전 같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꼬마들이 달려나오면서 맞아주던 것과는 달리 집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불길한 예감까지 선뜻 든 운전병은 대문을 들어섰다. 허술한 시골집. 이 집이 바로 많은 부하를 호령하는 이 중령의 집이었던 것이다. 그 주위에 적당히 산재해 있는 민가가 7, 8호 정도 흩어져 사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이렇게 허술한 시골집이지만 이 중령과 그의 부인(32세), 2남(6세)과 장녀(3세), 그리고 가정부(16세) 등 다섯 식구의 유일한 보금자리로 이웃 민가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고 살았다. 
이렇게 불행을 모르고 살아왔던 이 중령의 집에 신의 장난은 지나치게 잔인했던 것이다.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한 운전병은 대문을 들어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음에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중령님.”
“...”
“애들아.”
역시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던 운전병은 방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악!”
일가족이 둔기로 무참히 살해된 시체가 양쪽 방에 쓰러져 있지 않은가. 운전병은 이것이 꿈인가 싶었다. 도저히 눈앞에 벌어진 일들이 언젠가 만화책에서나 아니면 전쟁 속에 전우의 이야기 같은 몽롱한 환각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었다. 몽롱한 꿈이거나 머나먼 전설도 아니었다. 눈앞에 전개된 그대로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 비보를 접한 부대는 물론 밤늦게 연락을 받은 서울의 이 중령의 어머니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졸도까지 할 만큼 충격이 컸다.
뒤늦게 학교에서 소식을 듣게 된 이 중령의 장남은 큰아버지 댁에서 학교를 다닌 까닭에 이 비참한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속속 지방 신문을 통하여 보도되자 온 국민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하며 사실이 아닌 거짓이기를 바랄 정도였다.

급보에 접한 현지의 제10헌병대와 강원도 경찰청은 육군본부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 수사에 착수했다. 이 처참한 살인사건을 단순한 살인강도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전개했다. 그러나 원한에 의한 살인인지 또는 살인 강도에 의한 소행인지의 여부를 단정짓지는 못했다. 우선 범행에 사용한 도끼의 지문 채취와 사건 발생 전후의 동정을 중심으로 면밀하고 다각적인 수사를 전개했다. 
이 중령과 그의 부인은 큰방에서 나란히 엎어진 채, 애들과 가정부는 옆방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어 있었다. 부인은 도끼에 세 번, 가정부는 두 번, 나머지는 한 번씩 사정없이 머리를 찍혀 즉사했는데, 범인은 세간을 전부 부셨고 철제 트렁크 하나를 부셔 놓았다.
이날 낮 11시 어논리 현장에서는 군경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제1차 현장검증에서

1) 범인은 옆문으로 들어와 전화선을 끊고
2) 윗방의 이 중령과 그의 부인을 차례로 도끼로 찍어 참살한 다음
3) 아랫방으로 건너가 애들과 가정부를 죽이고
4) 흉기는 도끼만을 썼으며
5) 목걸이와 다이아 반지 등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길이 30cm가량의 도끼는 윗방 캐비넷에서

발견됐다.

원한이 겹친 살인 강도 사건이라는 수사의 선이 그어졌다. 전국의 군경수사진에 비상이 걸렸다. 사건 발생 3일 만인 22일에는 고재봉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중령 집에서 구두를 훔치고 복역한 사실이 있는 탈영병 고재봉은 사건 전날 현장 근처를 배회한 사실이 있었고, 이 중령 집에서 없어진 다이아 반지가 고재봉의 손을 거쳐 홍천읍의 금은방에 팔린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범인을 고재봉으로 단정한 수사본부는 그의 체포를 위해 어마어마한 추격전을 벌였다. 현상금 5만원에 연인원 수천 명의 수사요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수사기관은 고재봉을 찾지 못했다. 고재봉은 수사요원이 아닌 민간인의 눈에 띄어 잡히고 말았다. 자전거를 훔쳐 타고 제2의 범행을 하기 위해 서울로 왔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개공사를 한 청계 5가 가두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상한 빵모자를 눌러 쓴 고재봉을 발견한 것은 한 땅콩장수였다. 그는 고재봉을 잡은 뒤 현상금과 팔자에 없는 비행기를 타고 관광여행까지 즐길 수 있었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이 용감한 시민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실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강원도 인제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득중 중령의 집에 침입한 고재봉은
이중령과 부인, 자녀들과 가정부. 총 6명을 들고 있던 도끼로 처참하게 살해한다.
- 그 직후 범행 24일만에 서울에서 상인의 신고로 붙잡히게 되는데 조사결과
그는 원래 이중령이 관사로 오기 전에 거주하고 있던 박모 중령을 죽이려고 했던거라고
진술 하게 된다.
- 박중령이 근무하던 시절 관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고재봉은 집안에서 어떤 물건을
가지고 나가려다 가정부에게 발각되고 이로 인해 징역형을 살게 된다.
그후 감옥내에서 박중령을 죽이겠다고 마음 먹고 출소 후 찾아가서 관사내의
사람들을 전부 죽이게 되는데 그때 머물던건 1달전에 새로 온 이중령의
일가였다고 한다.



출처 : http://blog.daum.net/ljj3888/2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