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5. 아름다운 패배가 키운 ‘차세대 지도자’ ⑷
참의부20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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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약속대로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총선에 서울을 떠나 부산(북구 강서 을)에서 출마했다.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는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개혁진보 성향의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당명을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은 부산에서 여전히 ‘전라도 당’으로 매도되고 노무현은 ‘김대중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가운데 노무현은 “친정을 걱정하는 딸의 마음으로 돌아왔다”며 부산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 전에 실시된 10여 차례의 여론조사에는 ‘당선 안정권’일 정도로 우세했지만 막판에 기세를 떨친 지역주의 망령에 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노무현은 이 무렵 정계 입문 15년째였지만 원내 경력은 5년 8개월에 불과했다. 그만큼 많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낙선의 쓰라림을 누구보다 잘 안다. 노무현은 낙선이 확실시 된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띄웠다. “이 아픔 잊는 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날이 밝자 낙선 인사를 다니며 “이제부터 시작, 노무현은 그래도 부산을 사랑”한다고 했다.
이것은 결코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또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껴안는 따뜻한 심성을 내보였다. 그는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그 어떤 고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정치현실에서 노무현은 늘 쫓기는 입장이었다. 그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지만 92년 총선에서도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정치 전략적으로 모두 이길 수 있는, 이겨 볼 수도 있는 싸움이었지만 매번 지역주의의 미친 바람은 노무현의 낙선을 요구했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의 과감하고 두둑한 배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 정혜신,〈심리학자가 본 노무현, 바보 vs 배짱 좋은 남자〉,《노무현:상식 혹은 희망》, 행복한책읽기, 2003년, 92쪽~93쪽.
맹자거는 “하늘이 인물을 키우면서 우선 늑골을 괴롭힌다”고 했다. 노무현에게 닥친 늑골의 괴롭힘은 가혹했다. ‘두둑한 배짱’이 없었다면 오래 전에 이미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은” 백범의 의지와 집념으로 자신을 세우고,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링컨의 연설에서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한 패배해 온 역사란 말인가? 정의가 패배한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은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소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가르지도 않았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제 폐지와 연방의 통합, 둘 모두를 이루었다. 링컨의 연설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 - 노무현,〈운명이다〉, 돌배개, 2010년, 160쪽~161쪽.
노무현은 “아무에게도 악의를 갖지 말고, 누구에게나 자비로 대하고, 신께서 우리에게 옮음을 보도록 하시듯이, 정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작업을 끝마치도록 합시다.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전투를 치러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미망인과 고아들을 돌보며 우리들 사이에서, 그리고 모든 국민들과 더불어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성취하고 간직하기 위한 모든 일을 말입니다”라는 링컨의 취임 연설을 통해 재기의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이 당선자보다도 더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장렬한’ 낙선을 지켜본 민중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한국 정치의 희망을 ‘낙선 종결자’ 노무현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 ‘노사모’가 결성되었다. 시대의 양심이 저 밑으로부터 거대한 용암이 되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무현은 한국 정치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였다. 그만큼 낙선을 거듭하고도 유명세와 지지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정치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지는 싸움에 나가서 진 때문이 아니라 이길 수도 있었고 이길 자격이 충분한데도 그 몹쓸 ‘위험인자’를 피하지 않고 맞서다가 패배한 배짱 있는 사내에게 낙선은 오히려 훈장이었던 셈이다. 민중들이 그 ‘훈장’을 들고 노무현을 찾아 나선 것이다.
● 시대의 위선을 조롱하는 바보정신
미국의 심리학자 A.H.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생존, 안전, 귀속감과 사랑, 존중, 자아실현 5단계로 나누면서, 완벽한 인격이란 자아실현을 이룬 인격이라고 정의했다. 매슬로는 ‘자아실현자’의 특징으로 15가지를 들었는데 “정확하고 충분하게 현실을 지각한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대자연에 대해 넓은 관용을 나타낸다, 자신을 자연속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임무ㆍ사업ㆍ사명에 헌신하며 그것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세상에 초연한 품성과 독자적인 처신을 필요로 한다, 환경과 문화에 자주적으로 독립하는 경향이 있으며 생명에 의해 움직이고 많은 경우 자신의 내면세계에 의존한다, 영원히 감퇴되지 않는 감상력을 지녔고, 경외(敬畏)ㆍ지취(志趣)와 유쾌한 심정으로 생활 속의 사건들을 체험한다, 주기적으로 신비와 극한을 체험한다. 또한 지극히 시적이고 심미적인 안목으로 사물을 관찰하기 때문에 경험을 초월한 신비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온 인류에 대해 연민과 동정ㆍ그리고 진실한 사랑을 나타낸다, 몇 안 되는 사람과 깊은 개인적 우정을 나누며 자아실현을 이룩한 사람을 찾아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 완벽하고 추호의 악의도 없는 유머감각이 있다, 창조성이 있다, 현존하는 사회문화에 적응하기보다 저항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만 빼고 대개 노무현의 심리적 특성과 그대로 들어맞는다. 노무현 연구에는 특히 이 같은 ‘자아실현’의 심리적 특성이 중요하다. 노무현이 정계가 아닌 법조계나 노동계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했더라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운명’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승리와 득의의 세월보다는 패배와 실의의 더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군주론》에서 군주에게 ‘위대한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가 되기를 권유하고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는 기만과 모략 등 온갖 권모술수가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다. 노무현은 마키아벨리즘과는 동떨어진 성실과 정직 그리고 도덕성으로 현실 정치의 흙탕물을 ‘바보’처럼 넘고자 했다.
우리 나라의 현대사에는 노무현 말고 ‘바보’가 둘 더 있다. 함석헌(咸錫憲)과 김수환(金壽煥)이다.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던 함석헌은 스스로를 ‘알버트로스(albatross)’라 불렀다. 신천옹(信天翁)이라고 하는 이 새는 어느 새보다도 높이 날지만 지상에서는 물고기 한 마리도 잡을 줄 모르는 ‘바보새’다. 함석헌은 바보새(신천옹)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화상〈바보 김수환〉을 그리는 등 바보를 자칭했다. 그래서 바보는 김수환의 애칭이 되었다.
서양의 바보 역사는 에라스무스가 막을 연다. 그는『바보예찬(우신예찬)』에서 “세상의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말이 많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바보의 여신인 나야말로 신들과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데 내가 청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누구의 눈에서나 명랑함이 반짝인다”고 썼다. 에라스무스는 영주와 국왕은 물론 교황까지 시원하게 까대면서 민중의 억압과 설움을 대변했다. 권력은 그의 책을 금서로 묶어 탄압했다.
하비콕스의「바보제(祭)」는 중세유럽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 여러 지역에서는 ‘바보제’가 열렸다. 우리 민족의 가면극이나 탈춤놀이와 비슷했다. 이날은 근엄한 사제(司祭)들도 바보스런 가면을 쓰고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사제복을 입고 나와 국왕이나 주교와 같은 높은 사람들을 조롱했다. 축제 기간에는 누구를 야유하고 조롱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에 대해 하비콕스는 “대단한 풍자의 능력을 상실한 민중이고 그 무기력한 눈으로 자기들의 사회적 소임을 방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노무현은 ‘바보’ 정치인이 되었다. 그런데 똑똑한 민초들이 ‘노사모’를 꾸리고 그에게 ‘바보’라는 작위를 선사한 것이다. 그 자신도 ‘바보 노무현’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에게 후원회 말고 팬클럽이 생기기는 노무현이 처음이다. 가히 ‘바보 노무현’ 신드롬이다. 그는 “정치인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세상에서 나는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 이래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 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5. 아름다운 패배가 키운 ‘차세대 지도자’ ⑷
노무현은 약속대로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총선에 서울을 떠나 부산(북구 강서 을)에서 출마했다.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는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개혁진보 성향의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당명을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은 부산에서 여전히 ‘전라도 당’으로 매도되고 노무현은 ‘김대중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가운데 노무현은 “친정을 걱정하는 딸의 마음으로 돌아왔다”며 부산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 전에 실시된 10여 차례의 여론조사에는 ‘당선 안정권’일 정도로 우세했지만 막판에 기세를 떨친 지역주의 망령에 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노무현은 이 무렵 정계 입문 15년째였지만 원내 경력은 5년 8개월에 불과했다. 그만큼 많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낙선의 쓰라림을 누구보다 잘 안다. 노무현은 낙선이 확실시 된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띄웠다. “이 아픔 잊는 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날이 밝자 낙선 인사를 다니며 “이제부터 시작, 노무현은 그래도 부산을 사랑”한다고 했다.
이것은 결코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또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껴안는 따뜻한 심성을 내보였다. 그는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그 어떤 고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정치현실에서 노무현은 늘 쫓기는 입장이었다. 그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지만 92년 총선에서도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정치 전략적으로 모두 이길 수 있는, 이겨 볼 수도 있는 싸움이었지만 매번 지역주의의 미친 바람은 노무현의 낙선을 요구했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의 과감하고 두둑한 배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 정혜신,〈심리학자가 본 노무현, 바보 vs 배짱 좋은 남자〉,《노무현:상식 혹은 희망》, 행복한책읽기, 2003년, 92쪽~93쪽.
맹자거는 “하늘이 인물을 키우면서 우선 늑골을 괴롭힌다”고 했다. 노무현에게 닥친 늑골의 괴롭힘은 가혹했다. ‘두둑한 배짱’이 없었다면 오래 전에 이미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은” 백범의 의지와 집념으로 자신을 세우고,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링컨의 연설에서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한 패배해 온 역사란 말인가? 정의가 패배한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은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소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가르지도 않았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제 폐지와 연방의 통합, 둘 모두를 이루었다. 링컨의 연설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 - 노무현,〈운명이다〉, 돌배개, 2010년, 160쪽~161쪽.
노무현은 “아무에게도 악의를 갖지 말고, 누구에게나 자비로 대하고, 신께서 우리에게 옮음을 보도록 하시듯이, 정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작업을 끝마치도록 합시다.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전투를 치러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미망인과 고아들을 돌보며 우리들 사이에서, 그리고 모든 국민들과 더불어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성취하고 간직하기 위한 모든 일을 말입니다”라는 링컨의 취임 연설을 통해 재기의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이 당선자보다도 더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장렬한’ 낙선을 지켜본 민중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한국 정치의 희망을 ‘낙선 종결자’ 노무현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 ‘노사모’가 결성되었다. 시대의 양심이 저 밑으로부터 거대한 용암이 되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무현은 한국 정치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였다. 그만큼 낙선을 거듭하고도 유명세와 지지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정치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지는 싸움에 나가서 진 때문이 아니라 이길 수도 있었고 이길 자격이 충분한데도 그 몹쓸 ‘위험인자’를 피하지 않고 맞서다가 패배한 배짱 있는 사내에게 낙선은 오히려 훈장이었던 셈이다. 민중들이 그 ‘훈장’을 들고 노무현을 찾아 나선 것이다.
● 시대의 위선을 조롱하는 바보정신
미국의 심리학자 A.H.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생존, 안전, 귀속감과 사랑, 존중, 자아실현 5단계로 나누면서, 완벽한 인격이란 자아실현을 이룬 인격이라고 정의했다. 매슬로는 ‘자아실현자’의 특징으로 15가지를 들었는데 “정확하고 충분하게 현실을 지각한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대자연에 대해 넓은 관용을 나타낸다, 자신을 자연속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임무ㆍ사업ㆍ사명에 헌신하며 그것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세상에 초연한 품성과 독자적인 처신을 필요로 한다, 환경과 문화에 자주적으로 독립하는 경향이 있으며 생명에 의해 움직이고 많은 경우 자신의 내면세계에 의존한다, 영원히 감퇴되지 않는 감상력을 지녔고, 경외(敬畏)ㆍ지취(志趣)와 유쾌한 심정으로 생활 속의 사건들을 체험한다, 주기적으로 신비와 극한을 체험한다. 또한 지극히 시적이고 심미적인 안목으로 사물을 관찰하기 때문에 경험을 초월한 신비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온 인류에 대해 연민과 동정ㆍ그리고 진실한 사랑을 나타낸다, 몇 안 되는 사람과 깊은 개인적 우정을 나누며 자아실현을 이룩한 사람을 찾아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 완벽하고 추호의 악의도 없는 유머감각이 있다, 창조성이 있다, 현존하는 사회문화에 적응하기보다 저항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만 빼고 대개 노무현의 심리적 특성과 그대로 들어맞는다. 노무현 연구에는 특히 이 같은 ‘자아실현’의 심리적 특성이 중요하다. 노무현이 정계가 아닌 법조계나 노동계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했더라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운명’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승리와 득의의 세월보다는 패배와 실의의 더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군주론》에서 군주에게 ‘위대한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가 되기를 권유하고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는 기만과 모략 등 온갖 권모술수가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다. 노무현은 마키아벨리즘과는 동떨어진 성실과 정직 그리고 도덕성으로 현실 정치의 흙탕물을 ‘바보’처럼 넘고자 했다.
우리 나라의 현대사에는 노무현 말고 ‘바보’가 둘 더 있다. 함석헌(咸錫憲)과 김수환(金壽煥)이다.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던 함석헌은 스스로를 ‘알버트로스(albatross)’라 불렀다. 신천옹(信天翁)이라고 하는 이 새는 어느 새보다도 높이 날지만 지상에서는 물고기 한 마리도 잡을 줄 모르는 ‘바보새’다. 함석헌은 바보새(신천옹)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화상〈바보 김수환〉을 그리는 등 바보를 자칭했다. 그래서 바보는 김수환의 애칭이 되었다.
서양의 바보 역사는 에라스무스가 막을 연다. 그는『바보예찬(우신예찬)』에서 “세상의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말이 많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바보의 여신인 나야말로 신들과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데 내가 청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누구의 눈에서나 명랑함이 반짝인다”고 썼다. 에라스무스는 영주와 국왕은 물론 교황까지 시원하게 까대면서 민중의 억압과 설움을 대변했다. 권력은 그의 책을 금서로 묶어 탄압했다.
하비콕스의「바보제(祭)」는 중세유럽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 여러 지역에서는 ‘바보제’가 열렸다. 우리 민족의 가면극이나 탈춤놀이와 비슷했다. 이날은 근엄한 사제(司祭)들도 바보스런 가면을 쓰고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사제복을 입고 나와 국왕이나 주교와 같은 높은 사람들을 조롱했다. 축제 기간에는 누구를 야유하고 조롱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에 대해 하비콕스는 “대단한 풍자의 능력을 상실한 민중이고 그 무기력한 눈으로 자기들의 사회적 소임을 방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노무현은 ‘바보’ 정치인이 되었다. 그런데 똑똑한 민초들이 ‘노사모’를 꾸리고 그에게 ‘바보’라는 작위를 선사한 것이다. 그 자신도 ‘바보 노무현’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에게 후원회 말고 팬클럽이 생기기는 노무현이 처음이다. 가히 ‘바보 노무현’ 신드롬이다. 그는 “정치인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세상에서 나는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 이래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 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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