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속 통화정치로는 아무리 지혜로운 통치자라도 한국이,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헤아리기 어렵다. 대선 승리 때의 초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일 년 내내 들었던 안보, 성장, 종북 척결이 이 시대의 화두였던가, 유권자의 기대였던가, 아님 호르몬 저하 증에 빠진 한국을 구제할 시대적 처방이었던가? 아니다. 최근 벌어진 북한의 공포정치와 돌발 사태에… 신중히 대비하는 건 기본이지만, 안보·반북에 맹렬히 집착해 할 일이 다 막히면 경직된 수구보수와 뭐가 다른가. ‘잃어버린 지난 일 년’은 보수정권엔 ‘통한(痛恨)!’이었고, 한국의 전진동력을 정체시킨 늪이었다.”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모레로 당선 1년을 맞는 박 대통령이 그런 시대의 요청과 그런 국민의 여망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그래서 던지는 것이다. 현 정부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수월하지도 않고 순탄치도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 눈에 박근혜 정부는 미시적 접근에 몰두해있는 것 같다. 저쪽에서 치면 이쪽에서도 치고, 저쪽이 집적대면 이쪽도 발끈하고, 저쪽이 약 올리면 이쪽도 열 올리는 식의 대증(對症) 정치가 고작인 것으로 보인다. '박창신 신부'를 상대로 '국론 분열'을 거론하고 '장하나·양승조'를 상대로 '길거리 시위'로 맞서는 따위의 일대일 '맞상대 정치' 갖고는 결코 시대적 책임을 운위할 수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이 칼럼들을 보면 보수언론도 위기의식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불통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며 장황하게 변명을 한 것도,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SNS 댓글까지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 발언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려대 주현우군의 “안녕들하십니까”대자보를 계기로 민심의 분노와 질타가 갑작스럽게 봇물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매우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다는 심경의 토로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수언론들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소통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라고 판단, 자신들이라도 나서야 되겠다는 충정(?)의 발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과 보수언론의 칼럼에 공통적으로 빠져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과 ‘사과’입니다. 이들 모두 “안녕들하십니까”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이 같은 민심의 메아리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 논란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 개입 논란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민심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에, 돌연 ‘장성택 실각’소식을 전했고, 그 후로 2주가 넘도록 우리 국민들은 조선중앙TV와 거의 구별이 안 되는 종편의 북한 언저리 뉴스를 시청해야 했고, 노동신문과 다를 바 없는 보수 일간지를 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과연 이러고 있을 때인가? 일본은 군국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아시아에 대한 팽창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대로 우리는 서로 욕하며 싸우고 있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거지요. 그 상황에서 “안녕들하십니까?”가 나왔습니다.
‘자기 성찰’과 ‘사과’가 빠진 해명을 요즘 젊은이들은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냉소적 시각을 갖습니다. 현재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감이 있고, 언론은 언론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감이 있지요. 국민 및 독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변명하기에 앞서 먼전 해야 할 것이 바로 자기성찰과 사과입니다. 그것을 못하는 집단은 국민의 ‘국’자도 말할 자격이 없으며, 독자의 ‘독’자도 언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집단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 차별성이 없어지지요. 자기성찰과 사과가 안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남의 탓이고 자신만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거지요.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종북세력과 대선불복세력 탓으로 돌리고 있지요.
그래서 꼭 한 가지를 묻고 싶어집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대통령입니까? 국민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대다수 국민에게는 매우 쉬운 건데, 그들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곧 국가고, 국가가 곧 국민이 아니냐는 희한한 논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짐이 곧 국가다’고 하는 절대왕정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보수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언론사 사주입니까? 아니면 독자입니까? 이것 또한 매우 쉬운 질문인데 대다수 기자들에게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대적 역할과 소명을 망각하다 보니 “권력의 사유화”라는 이야기가 도처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거지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유념해야 할 것은 그 권력의 크기와 영향력이 아닌, 그 권력이 어디로 부터 왔고, 누구를 위해 행사되어야 하느냐의 그 근본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있다면? 고등학교 사회탐구 교과서 공부를 다시 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시고서야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고, 언론으로서의 합리적 비판과 감시를 하시겠습니까? 최소한 국민 이상의 눈높이와 식견을 가지실 것을 다시 한 번 권합니다. 국민은 더 이상 못 배우고 어리석은 50년 전의 국민이 아니랍니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보수언론
청와대 홍보수석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구중궁궐 속 통화정치로는 아무리 지혜로운 통치자라도 한국이,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헤아리기 어렵다. 대선 승리 때의 초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일 년 내내 들었던 안보, 성장, 종북 척결이 이 시대의 화두였던가, 유권자의 기대였던가, 아님 호르몬 저하 증에 빠진 한국을 구제할 시대적 처방이었던가? 아니다. 최근 벌어진 북한의 공포정치와 돌발 사태에… 신중히 대비하는 건 기본이지만, 안보·반북에 맹렬히 집착해 할 일이 다 막히면 경직된 수구보수와 뭐가 다른가. ‘잃어버린 지난 일 년’은 보수정권엔 ‘통한(痛恨)!’이었고, 한국의 전진동력을 정체시킨 늪이었다.”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모레로 당선 1년을 맞는 박 대통령이 그런 시대의 요청과 그런 국민의 여망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그래서 던지는 것이다. 현 정부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수월하지도 않고 순탄치도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 눈에 박근혜 정부는 미시적 접근에 몰두해있는 것 같다. 저쪽에서 치면 이쪽에서도 치고, 저쪽이 집적대면 이쪽도 발끈하고, 저쪽이 약 올리면 이쪽도 열 올리는 식의 대증(對症) 정치가 고작인 것으로 보인다. '박창신 신부'를 상대로 '국론 분열'을 거론하고 '장하나·양승조'를 상대로 '길거리 시위'로 맞서는 따위의 일대일 '맞상대 정치' 갖고는 결코 시대적 책임을 운위할 수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이 칼럼들을 보면 보수언론도 위기의식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불통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며 장황하게 변명을 한 것도,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SNS 댓글까지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 발언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려대 주현우군의 “안녕들하십니까”대자보를 계기로 민심의 분노와 질타가 갑작스럽게 봇물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매우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다는 심경의 토로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수언론들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소통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라고 판단, 자신들이라도 나서야 되겠다는 충정(?)의 발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과 보수언론의 칼럼에 공통적으로 빠져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과 ‘사과’입니다. 이들 모두 “안녕들하십니까”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이 같은 민심의 메아리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 논란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 개입 논란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민심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에, 돌연 ‘장성택 실각’소식을 전했고, 그 후로 2주가 넘도록 우리 국민들은 조선중앙TV와 거의 구별이 안 되는 종편의 북한 언저리 뉴스를 시청해야 했고, 노동신문과 다를 바 없는 보수 일간지를 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과연 이러고 있을 때인가? 일본은 군국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아시아에 대한 팽창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대로 우리는 서로 욕하며 싸우고 있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거지요. 그 상황에서 “안녕들하십니까?”가 나왔습니다.
‘자기 성찰’과 ‘사과’가 빠진 해명을 요즘 젊은이들은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냉소적 시각을 갖습니다. 현재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감이 있고, 언론은 언론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감이 있지요. 국민 및 독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변명하기에 앞서 먼전 해야 할 것이 바로 자기성찰과 사과입니다. 그것을 못하는 집단은 국민의 ‘국’자도 말할 자격이 없으며, 독자의 ‘독’자도 언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집단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 차별성이 없어지지요. 자기성찰과 사과가 안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남의 탓이고 자신만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거지요.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종북세력과 대선불복세력 탓으로 돌리고 있지요.
그래서 꼭 한 가지를 묻고 싶어집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대통령입니까? 국민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대다수 국민에게는 매우 쉬운 건데, 그들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곧 국가고, 국가가 곧 국민이 아니냐는 희한한 논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짐이 곧 국가다’고 하는 절대왕정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보수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언론사 사주입니까? 아니면 독자입니까? 이것 또한 매우 쉬운 질문인데 대다수 기자들에게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대적 역할과 소명을 망각하다 보니 “권력의 사유화”라는 이야기가 도처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거지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유념해야 할 것은 그 권력의 크기와 영향력이 아닌, 그 권력이 어디로 부터 왔고, 누구를 위해 행사되어야 하느냐의 그 근본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있다면? 고등학교 사회탐구 교과서 공부를 다시 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시고서야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고, 언론으로서의 합리적 비판과 감시를 하시겠습니까? 최소한 국민 이상의 눈높이와 식견을 가지실 것을 다시 한 번 권합니다. 국민은 더 이상 못 배우고 어리석은 50년 전의 국민이 아니랍니다.
☞ 이진우 창조경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