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땐 그랬지20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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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저의 실화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시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에게 그리고 네이트판을 보시는 유저분들에게 이글을 바칩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어렸을때 잘 못먹으신 탓에 키가 154cm정도 이셨고, 직업은 이발사셨습니다.

성격은 아주 착하셨고 (바보같을 정도로) 마당발에 성격도 쾌활하시고 긍적적이시고 자식들을 무척 사랑하시던 아버지 이셨습니다.

술과 담배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자주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시면 저와 저의 동생의 발가락을 깨무시는 장난과 수염으로 볼을 비비는 장난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아버지의 장난이 무척 싫었지만 지금은 무척 그립습니다.. 그

 해맑은 미소로 웃으시며 자식들에게 장난을 치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개그맨 김병만씨와 매우 닮았습니다. 지금도 김병만씨를 보면 아버지가 떠올라서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1953년생 이시고 6.25 전쟁이 끝나던 해에 태어나셔서 온갖 고생을 하시고 사셨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시고, 고아원에서도 고아원 원장의 딸과 문제가 생기셔서 17살쯤? 에 쫓겨 나시고 길거리에서 고모와 함께 밥을 얻어다니며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이발 기술을 배우셔서 이발소를 하나 차리셨습니다. 이발소를 하시다가 지금의 저희 어머니를 만나셔서 나이 40 에 늦게 결혼을 하셨고 늦둥이로 저와 저의동생을 낳으셨습니다.  늦둥이기에 더욱 더 남들보다 자식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돈이 많이 없으신데도 제가 초등학생때 맨날 과자를 사달라고 하면 항상 돈1000원을 쥐어주셨습니다.

 

저희 집안은 형편이 그리 좋지는 못했지만 가족 4명이서 살때는 가족분위기도 화목했고 행복했습니다. 아버지는 차가 없으셨고 오토바이가 있으셨습니다. 저와 저희동생을 많이 뒤에 태우고 좋은곳도 많이 드라이브도 가고 큰 나무도 많이가고 계곡도 많이가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제가 중학교 1학년때 부터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발소로 버는 수익도 점점 줄어들뿐더러 경기도 안좋아서 아버지는 여름 땡볕에서 무리하게 노가다 비슷하게 힘든 일을 매일 하시다가 20년간 넘게 펴온 담배와 술의 영향으로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쓰러지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게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때란걸.

 

아버지는 머리와 목 뒤가 아프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3일동안이나 누워계셨습니다. 워낙 병원가시는걸 싫어하셨고 저희가족도 그냥 단순몸살로 생각하고, 또 어릴때라 개념이없어서 아버지를 서둘러 병원에 대려가지 못했습니다. 그 3일이 아버지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한 저희 가족은 큰 병원에 아버지를 대려갔고 ...뇌졸중에 걸리셨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곧 수술을 하셨습니다.

 

저희 가족모두는 당연히 수술을 하시면 괜찮아지시고 치료가 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실거라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렇게 식물인간이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눈의 초점도없고 생각도 말도 못하시고 몸도 뻣뻣하게 굳어서 전혀 움직이지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셨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저희가족이 아버지를 처음 본 그 순간 ..패닉 그 자체였습니다. 또 20년간 넘게 피셨던 담배로긴에 폐가 많이 손상되서 심각한 폐렴도 같이와서 숨도 제대로 못쉬시고 목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해서 거기로 죽같은걸 드시고, 배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연결되있는 호스로 숨을 쉬셨습니다. 머리는 수술탓에 바람빠지고 찌그러진 축구공처럼 머리가 푹 들어가셨고 살은 아주 아프리카 기아처럼 뼈밖에 없으셨습니다.

 

저는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면 도무지 실감이 안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흉악하게 변해버린 아버지를 보고 저는 ..그냥 머리가 하얬습니다. 아무 생각이 안들더군요.

 

1년 반 동안 그렇게 멍하게 지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맨날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 옆에서 간병을 하셨고 집에는 저와 저희동생 둘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때 저희 어머니 성격도 많이 변하시고 ㅠ정신적으로도 가족 모두가 상처받았습니다.

그 일로 당연히 가정형편이 더 어려워졌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날 아버지가 친구의 보증,,같은 것 때문에 ..집에 빨간 차압 압류딱지가 온 곳곳에 붙어있는 광경을 보고 또 충격을 ,,먹었습니다.

 

제가 중학생때 그 광경을 보고는 삶의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죽고싶단 생각도 많이했고 공부도 그 당시에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성적도 많이 떨어졌고 중학생때 기초적인 공부를 하지않아 그 이후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렇게 제가 중학교 2학년때 병실에서 그렇게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를때도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멍하더군요 실감이 안났습니다. 활발했던 저의 성격은 그 일을 계기로 아주 소극적이게 됐고 말이 없어졌습니다. 학교에서 뭘 하고 지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저는 그냥 학교에서 멍하니 무슨생각을 하는지 몰라보였다는군요,,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렸을때 그렇게 우리들을 좋아하고 사랑해주시고 잘생기신,,,착하신,,,바보같이 착하셨던 우리 아빠가,, 영정사진속에서 웃고계셨습니다. 지금도 영정사진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렸을때라 제대로된 효도 한 번 못해드리고,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는 저는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 제일 후회되는게 아버지가 아팠을때 빨리 병원에 안대려간것과,,,

제가 초등학생6학년때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비오는날 제가 우산을 안챙겨서 학교로 가서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수업중에 저희교실에 와서 우산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저는 그게 엄청 부끄러웠고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우산을 받으면서 "빨리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웃으시며 "그래 수업 잘 받고 나중에 학교마치고 보자 , 아빠 먼저 간다" 라고 말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운동장을 가르시던 아빠,,,, 그날 저는 하교하고 이발소에 있는 아빠한테 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괜찮으니까 앞으로 비와도 우산 가져오지마세요"...

저는 또래 아이들보다 저희 아빠가 다른아빠들보다 더 늙으신게,, 제가 늦둥이라 그게 부끄러웠습니다. 참 철없던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 때 저의 아빠의 표정을 저는 기억합니다. 착잡하고 씁쓸한 미소로 "그래 알겠다.." 라고 말하셨던 아빠.. 지금은 그 생각만해도 미안함에 눈물이 납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버지와 저와 저의동생은 라면을 참 좋아하였습니다. 초등학생 두명인 자녀와 아빠가 라면을 끓여먹을때는 항상 라면은 2개정도 끓였는데,, 저와 저희동생을 먼저 퍼주시고 나면 라면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아버지는 "나는 괜찮으니까 많이먹어라, 나는 아까전에 뭐 먹어서 배부르니깐 많이먹어라"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라 그 말을 믿고 항상 먹었었죠,, 항상 제가 배불러서 다 못먹고 남은 라면을 드셨습니다 아빠는..

 

 

 

 

저는 아빠한테 제대로된 효도도 한번 못해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안되시길 바랍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뼈저리게 깨닳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말

'살아있을 때 잘해드려라'  이말 정말 맞습니다..

 요즘도 장사도 잘 안돼고 오래된 이발소들을 지나칠때면 흰색가운을 입으시고 항상 앞에서 담배를 피시던 저희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들도 지금 안보이는 곳에서 온갖 고생을 하시며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사회에서 노력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즘은 아빠와 친한사람은 많이친하고 안친한사람은 말도 거의안하고 그렇더군요, 여러분도 혹시 여러분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깨나 다리, 허리 등을 주물러달라고 하실때가 있을 것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해드리고 막 그러셨죠?.. 지금 이 글을 보고 바로 엄마,아빠에게로 달려가서 어깨를 한 번 주물러 드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도 효도입니다. 저는 그 사소한것 하나 한 번 못해본것이 너무나 후회되고 아픕니다.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는 모든 아버지 어머니 화이팅!!

여러분 지금 당장 아버지 어머니에게로 달려가서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세요, 나중에 후회 안하지 마시고 딱. 한번만이라도 민망하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해보십시요,, 부탁입니다. 

지금 집에 안계시면 오늘 퇴근해서 들어오시는 부모님한테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어떨까요? 어깨 주물러드리면서 ,,정말 한 번만이라도 이걸 하신다면 나중에 정말, 후회안하실겁니다.

 

물론 지금은 안계시지만 당신이 어렸을 때 저를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지금 별 탈없이 건강한 마음과 성격으로 나쁜습관도 없이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는 아버지 당신처럼 제 자식도 그렇게 사랑으로 키워서 꼭 하늘에서 뿌듯하게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