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고 싶은 게 전혀 없는 남편. 조언 부탁드려요.

외롭다2013.12.28
조회1,116

톡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접한지 십년도 넘어가네요. 글쓰지 말까 하다가 거실에서 남편이 농구보는 소리가 들려 욱하는 마음에 씁니다. 저도 제가 예민하고 감성적이어서 이게 오히려 제 잘못인지 알고 싶어요.


제목 그대로 저희 남편은 저와 하고싶은 것, 먹고싶은 것, 가고싶은 곳이 없는 남자입니다. 연애 5년 반에 결혼 4년차구요. 이제는 부부가 아닌 무슨 군대 동기나 베프 같습니다.


늘 이 문제로 다투기 때문에 (거의 저 혼자 화내고 저만 성질 더러운 여자되고 끝남) 이 외에는 거의 문제가 없는, 둘이 너무나도 친하고 즐거운 부부라고 생각하는데요.


뭐 좀 먹고픈거 해주고 싶어 뭐 먹고 싶냐 물어도 아무거나. 물론 아무거나 해 줘도 잘 먹어요. 맛있다거나 그런 표현은 열번에 한 번 정도 제가 물으면 대답하는 정도이고요.


저와 가고싶은 곳도 없습니다. 제가 가자고 하면 갑니다. 제게 뭔갈 갑자기 사주거나 사주고 싶어하는 적도 없습니다. 역시나 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무조건 사주지요.


반찬투정하는 남편은 두셨거나, 일일이 사사건건 간섭하며 지적하는 남편을 두신 분께는 제 고민과 외로움이 사치로 들리실 수도 있겠으나 저는 문득 밀려오는 외로움과 저의 무존재감 때문에 참 많이 슬픕니다. 제가 뭐 거창한 이벤트나 서프라이즈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어디에서 이거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네 생각나더라. 가볼래?" 라던지, "오늘 저녁엔 우리 영화나 다운 받아볼까?" 라던지, 하다못해 "나 오늘은 자기랑 호떡믹스 만들어서 먹고 싶어!" 라고만 해줘도 저는 신나서 싱글벙글 할텐데요. 남편은 먼저 그러는게 없습니다.


제가 남편에 비해 까다롭고, 나이 서른에 아직까지 안되는 영어로 공부하느라 예민하기도 하여 혹여 남편이 그러한 제안을 했을 때 내 맘에 안들어 싫다고 자주 그랬었나, 그래서 주눅 들어 뭘 하자고 못하나 싶어 지난 9년을 되돌아봐도 남편이 막 신이 나거나 설레여하며 "자기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하며 얘기를 꺼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부부관계도 결혼 후 임신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며 한달에 한두번 정도 하는 게 전부였고요. 신혼여행 때도 저를 냅둔 사람입니다. 성욕이 없대요. 그 때 그런 비참함이 느껴지는지 몰랐어요. 연애할 땐 어디에서든 돌변하더니. 지금은 안하고도 몇달 거뜬할 정도고 제가 하자고 하면 열번 정도 거절하다가 하곤 합니다. 제가 뭐 또 화려한 테크닉을 원하나요? 그냥 날 아직 여자로 보고, 내게 설레여하는 모습 그걸로 충분한데. 그냥 언제 한번 갑자기 덥쳐주면 되는건데. 내가 너무 공부한다고 꾸미지도 못하고 자기관리도 못하고 그러니 매력이 없어 그런가보다 하며 내 탓이다..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남편이 무기력한 사람도 아닙니다. 농구 매니아라 일주일에 한두번씩 사람들 만나 세시간 정도 농구하고 오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갑니다. 재미있어 하고요. 성격도 활발하고.. 제가 좀 내향적인 편입니다.


남편에겐 저는 그냥 이제 너무너무 편해서 굳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같습니다. 저는 아직두 소녀같이 그냥 혼자.. 의미두며 사는 사람 같고요. 영화에 나온 장소에 직접 여행을 가게 되어, "집에 가면 그 영화 다운 받아서 보자!" 라고 얘기할 때의 제 마음은 함께 있었던 장소, 나눈 얘기, 같이 본 것들 회상하며 우리 둘의 존재감을 느끼는 건데 남편은 그런걸 왜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보자고 하면 볼 사람인건 알아요. 그냥 그런거에 감사하고 서운해하면 안되는건가요, 제가?


제가 바라는게 그렇게 큰 건가요.. 하자면 해주는데 뭐가 불만이냐, 욕심도 많다 그런 소리 들어야지 맞는 건가요?


그냥 저 남자가 저랑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사랑해서라고 하는데 저랑 공유하고 싶은 것이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너무 없으니 외롭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 낳기가 싫고 무서워져요. 남편이 아이는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 남의 집 애도 잘 봐주고요. 애랑은 그렇게 지내면서 나랑은 하고픈거 하나도 없을 남편 바라보고 있을 생각하니 아이 갖기 싫어요.


저도 자주 이런건 아니에요. 각자의 삶이 있고 저도 공부가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데.. 아마 지금 잠시 방학이라 제가 또 혼자 외롭나봐요. 그런데 저도 이제 먼저 뭐 하자, 뭐 먹자, 어디 가자 하기가 너무 지쳐서요. 여자로서의 매력도 못 주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