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류역에서 신석기시대의 첫 무덤유적 발굴

대동강201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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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일성종합대학과 사회과학원의 연구집단이 평양시 강동군 란산리에 있는 주현동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수많은 유물들을 새로 발굴하였다.

2010년 5월부터 2013년 8월까지의 기간에 전면적으로 발굴한 유물들은 강동군 란산리에 있는 주현마을 주변산의 자연동굴 퇴적층에서 나온것이다. 이 동굴의 길이는 18m, 너비는 4m, 높이는 7. 3m이며 퇴적층의 두께는 5. 8m이다. 퇴적층은 퇴적물의 조성상특징에 의하여 서로 다른 5개의 층으로 구분되는데 유물은 제3층에서만 발굴되였다.

유물들은 사람뼈 9개체분에 260점, 질그릇쪼각 7개체분에 22점이며 기타 유물들로서는 달아매는 치레거리 1점, 조개칼 2점, 불에 탄 뼈 4점, 짐승뼈 5종에 81점이다.

 

-조선옛류형사람뼈 - 

- 질그릇쪼각 - 

- 치레거리 - 

- 조개칼 - 

발굴된 사람뼈들은 신석기시대의 조선옛류형사람의 뼈이다.

지금까지 대동강류역에서 구석기시대 전기와 중기, 후기의 인류화석 등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조선옛류형사람뼈들이 발굴고증된것이 적지 않지만 주현동유적에서와 같이 한 장소에서 많은 개체의 사람뼈들이 발견된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유적에서 나온 질그릇들은 강동지방에 널리 분포되여있는 운모편암의 풍화점토를 바탕흙으로 하여 만들었거나 일부는 바탕흙에 활석을 넣어 만들었다. 이 질그릇의 무늬새김수법은 신석기시대 중기의 늦은 시기에 나타나는 새김수법과 같은것으로써 주현동유적의 년대가 신석기시대 중기말에 해당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주현동유적은 우리 나라 대동강류역에서 나온 신석기시대의 첫 무덤유적이다.

새로 발굴한 주현동유적을 당시 사람들이 생활하던 곳으로 보는가 아니면 무덤으로 보는가 하는것은 이 유적의 성격을 밝히는데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주현동유적에서 나온 9개체의 사람뼈들가운데서 2개체는 머리뼈와 몸통뼈를 비롯하여 인류의 해부학적구조에 부합되는 거의 모든 뼈들이 다 보존되여있었다. 지금까지 신석기시대 동굴유적들에서 사람뼈들이 알려졌지만 이 유적에서와 같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나온것은 없다고 한다. 이것은 여기에 사람뼈들이 우연적으로 묻힌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정히 매장한것이라는것, 다시말하여 무덤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수백점의 사람뼈들이 일정한 구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왔을뿐아니라 일정한 방향과 간격으로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보아도 주현동유적이 무덤유적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한편 질그릇을 비롯한 유물들이 사람뼈가 나온 구역에서만 나오고 마제석기와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로동도구와 식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유물들이 나오지 않았다는것은 이 유적이 당시 사람들이 생활하던 곳이 아니라 무덤이라는것을 확증해주고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신석기시대의 무덤이 발굴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현동유적이 발굴됨으로써 평양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문화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갈수 있는 또 하나의 물질적자료가 마련되였다.

이번에 주현동유적에서 발굴된 조선옛류형사람뼈들가운데는 머리뼈와 함께 몸통뼈들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개체들이 있는것으로 하여 조선사람의 형성발전과정이 이루어지던 당시 조선옛류형사람의 인류학적면모를 과학적으로 해명할수 있게 되였다. 주현동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무덤이 발굴된것은 당시 조선옛류형사람들의 전통적인 무덤형식과 장법, 매장풍습 등을 보다 과학리론적으로 해명할수 있는 전제로 된다.

주현동유적은 우리 나라의 고대문화, 대동강문화의 연원을 밝히는데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미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는 궁산유적, 지탑리유적, 남경유적, 표대유적, 남양유적을 비롯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고대시기의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였다.

주현동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조선옛류형사람들이 창조한 신석기시대문화가 청동기시대를 거쳐 단군조선의 문화로 줄기차게 이어져왔다는것이 다시한번 명백히 확증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