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뭔가 뒤죽박죽 같은 제 인생의 정리 및 앞으로의 다짐을 되새기기 위해 적어봅니다..
스토리가 개성이 뚜렷해서 날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ㅇㅇ구나! 하고 알 수 도 있어요..
뭐 날 아는 사람들이 네이트판을 할지는 몰겠는데(거의 안하겠죠?ㅋㅋ) 혹시나 본다면 뭐 연락해ㅋㅋ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너무 진지하게 쓰다보니 재미는 없을 거에요.. 뭐 세상에 이렇게 살고 있는 놈도 있구나~ 생각하시고 읽어주세요..
전 어릴 적 부터 뭐 평범하면서도 약간 특출나게 살았죠..
유치원 때부터 두뇌가 남달라(?죄송..) 초등학생 수준 계산 세자리 수 계산 ㅋㅋ 을 배웠죠. 기억력이 안 좋아서 옛날 일들은 거의 생각 안 나는데 세자리수를 계산하려고 애쓰던 모습은 생각나네요ㅋ
그리고 동네에서도 골목대장처럼 애들 이끌면서 총싸움하고 각 종 놀이들 하고 그랬죠..
초딩 1,2학년 때 기억은 상장 많이 받았다(지금 가지고 있음), 2학년 때 담임한테 로우킥 맞았다, 그 때도 골목대장처럼 싸돌아 댕겼다. 이 정도 뿐이네요.
그러다 3학년 때 2002 월드컵 보고 축구에 완전 빠졌죠. 이는 중2때 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축구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죠. 특히 이운재 에 빠져서 3학년 때 부터 쭉 골키퍼 하면서 학교에서 뭐 약간의 입지 정도는 있었어요..(뭔가 계속해서 자뻑같은데 죄송해요. 곧 암울해져요 ㅋ..)
1,2,3학년 때 공부실력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데 4학년 때 부터는 학급임원도 거의 계속하고 성적도 반에서 항상 1등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축구도 매일 하고 잘하고..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재밌게 놀았죠. 매일매일이 좋았던 것 같아요. 5학년 때는 컨닝을 가미해서 9과목 올백의 쾌거(?)를 이루고 ㅋㅋ 6학년 첫 시험 때도 컨닝을 가미해 올백을 받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매일매일이 좋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전국권에서 놀고 축구도 매일 하고 초딩 고학년 때 처럼 좋았던 것 같네요.
그러다 제 인생에 변환점이 찾아옵니다..
날짜도 기억나네요. 2007년 7월11일 여느때처럼 점심시간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군요. 인생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심장박동.. 당연히 놀랐죠. 실신이나 그런 건 없었는데 바로 조퇴해서 동네 병원으로 갔죠. 다음 날 학교를 갔다오니 어머니가 큰 병원 가야된다더군요. 13일, 아버지랑 중소병원 가 보니 비대성 심근증이라더 군요. 선천성이라던데 정말 희한하게도 중2가 되서야 발견이 되었다더군요. 그 날 이후로 의사는 축구는 당연히 하지 말고 약을 매일 먹어야한다더군요. 물론 엄청난 충격이었고 일생에 병원도 거의 안 가던 내가 이런 병을 얻다니 그 당시만 해도 죽는병인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게 이상하게도 얼마 안가 적응하더군요. 그러면서 심장병 발견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갔죠. 축구도 하고(페이스 조절하면서 해야지. 라고 했지만 사실 상 심장이라는게 갑자기 변화하는 거라 목숨을 걸고 했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미친짓이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 때 까지도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밌게 놀았어요.
근데 사실 이 정도 성적이었다면 일반 부모님 같다면 특목고나 자사고 처럼 공부 좀 한다는 애들 모이는 곳에 집어넣으려고 했었을거에요. 근데 제 부모님은 두 분 다 중졸학력이시고 이런 교육 쪽에 거의 관심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초딩 때는 엄마 친구들 학원 보내면 저도 보내고 그랬고 중학교 입학 이후로는 따로 학원 보내지도 않으셨어요. 이게 저의 스스로학습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여튼 그 정도로 부모님은 교육에 별 관심이 없으셨죠. 거기다가 저 스스로도 특목고 가서 공부하는 기계가 되긴 싫다는 생각으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물론 공부는 자기의 노력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노동이지만, 분위기도 중요하긴 합니다.
분위기가 정말 꽝이었어요.. 왠만한 선생님들 들어 와 봤자 계속 떠들고 수업시간 내내 떠들고 그러면서 저도 점점 나태해진 것 같네요. 1학년 때만 해도 전과목(예체능까지)포함이기는 하지만 전교1등 했었는데 가면서 점수가 떨어지더군요. 고3 때는 내신이 2, 3등급 정도 나왔네요.. 거기다가 모의고사 성적은 형편없었어요.. 평균 3~5등급 왔다갔다 했어요. 성적은 그랬고
또 고딩인생에 뺄 수 없는 것이 야구에요.
고등학교 입학 하기 전 겨울방학 때 동네에 친구들, 동생들 모여서 야구팀을 만들었죠. 생각해보니 야구는 축구보다 훨씬 덜 뛰니까 심장에 덜 무리가 갈거라고 생각했죠.
여튼 그 이후로 고딩 내내 주말에 거의 빠짐없이 팀원들과 야구했네요. 그러면서 여러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직접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그 때도 초딩 때 못지 않게 재밌었네요. 야구를 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 힘으로 공부하고 그랬네요.
고3때 학급반장하다가 막판에 잘리기도 하고, 야자 째다가 들키기도 하고, 야구하면서 재밌던 일도 있고
여러가지 사건으로 고딩이 지나고 고3 수능 쳤죠. 모의고사 점수는 워낙 안 좋아 정시는 애초에 포기했었고 수시쪽으로 성균관,중앙,건국,아주,부산,경북,울산대 모두 전자전기공학으로 올인 했죠. 애초에 대학이름 보다는 내가 하고 싶던 전자전기공학으로 했죠.
그래서 최저등급만 맞추면 됬는데 2등급 2개가 나왔죠. 수학은 완전 버리고 나머지 과목만 공부했어요. 그래서 2등급 2개 나왔어요. 그런데 이게 먼 훗날 제 가슴에 비수를 박습니다...
수능을 치고 여타 모든 분들처럼 할 게 없더군요ㅋㅋ 바로 면허따로 갔고 헬스도 끊고 하는데 그러던 와중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심장이식 기부자가 나왔다고.. 사실 고1때 부터 아산병원 다녔는데 거기서 수술보다는 이식이 났다더군요. 수술은 워낙 부작용이 세다고.. 그래서 이식 신청을 해 놨었는데 이게 수능 치고, 한 달 후 12월 10일날 연락이 왔어요. 바로 버스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바로 다음 날 수술장에 들어갔어요. 숨 두 번 크게 쉬고나서 마취가 됬어요. 낮 12시에 들어갔는데 일어나보니 밤12시 더군요. 무균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는데 정말 답답해 미치더군요. 8시 되야 뺄 수 있다는데 8시간.. 정말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가슴은 꿰메져있고 호스 2개가 가슴에 꽃혀있고 움질일 수는 없고 그렇게 월화수목 4일을 무균실에 누워있었습니다. 무균실이라 면회가 불가능해 밖에 서있는 부모님 보고 손 흔들고 그랬어요..
4일을 누워있다가 일어나니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그렇게 1인실로 옮겨갔어요.
거기서 대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후보49위 였던 중앙대.. 기대도 안 했는데 추가합격 문자가 왔어요. 여기서 고민을 합니다. 3등급 2개만 나와도 최저등급 충족하는데 하필 2등급이 2개 나오는 바람에 울산대가 4년 장학생으로 붙게 됐어요..
서울에 와서 돈 많이 쓰면서 대학 다니냐? 집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냐?..
결국 후자를 택했습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학벌주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가오(?),기업에서 보는 대학서열 이런 것들 잘 몰랐어요.. 또 아버지 회사에서 학비가 나오는데 저는 장학생 이기 때문에 4년 학비 3000만원을 고스란히 제가 받을 수 있었어요. 애초에 벤쳐기업처럼 전자나 소프트웨어 사업을 생각했기 때문에 3000만원을 사업자금으로 쓰려는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결국 울산대를 택했습니다.
그러고 한 달동안의 입원 끝에 퇴원을 했죠. 입원하면서도 식사나 생활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 달동안을 1인실에 갇혀 지냈는데 매일 달력보며 언제 한 달 지나가나 그러면서 살았어요.
6개월 정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의사 말에 집에 와서도 외출을 잘 안 했죠. 수능이 끝났기 때문에 친구들은 술마시고 놀러다니고 그랬죠. 저는 가끔 연락밖에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졸업식 날 반 아이들 저녁밥 다 같이 먹을 때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사진찍고 그랬네요.. 그 때도 몸 상태때문에 고기는 못 먹고 밥도 깨작깨작 먹고..
대학교는 다니지도 못 하고 바로 휴학을 냈어요. 1학년 1학기만 휴학하고 2학기 복학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년을 통으로 휴학했어요. 12년도 때인데 그 때는 몸도 힘들고 외출도 안 되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연락도 뜸하고 아주 가끔씩 만났어요.
원래 친구들이 없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정말 친한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닌 것 같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고딩 때만 해도 반의 거의 모든 애들과 얘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지냈는데 요즘 연락하는 애들은 정말 불알 친구나 고딩 때 야구 같이 했던 친구들 정도네요.. 애들도 대학 들어가서 이것저것하는라 바빴을테고 저도 여러 이유로 연락을 도통 못 했어요.
12년이 끝나가고 슬슬 대학갈 준비를 하면서 여러가지 검색을 했어요.. 그러면서 울산대에 온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중앙대를 갔어야 했다는 후회감이 몰려오더군요.. 그게 꿈에 까지 나오고 미치겠더라고요..
13년 복학하고 1주일 정도 학교 다녔는데 그 후회감때문에 도저히 학교에 정이 안 붙더라고요.. 결국 재수를 결심했죠.. 학교네임도 그렇고, 매일 집에서 있으면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정말 답답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고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되자는 심정으로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이 되자는 생각으로 과도 경영이나 정치쪽으로 갈려고 했어요. 아버지와 대화 끝에 독학재수를 하기로 했어요.. 독학재수...... 정말 힘들더군요...
모두가 처음에는 잘 할 겁니다. 수느은 이걸 누가 제일 꾸준히 하느냐의 싸움인데.. 전 결국 잘 안 됬어요.. 갈 수록 잠자는 시간은 많아지고 늦잠자는 날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공부량이 많이 줄어들고 점점 해탈의 경지에 가는 거 같고... 논술도 잘 안 됬고 수능도 안 됬습니다...
13년도 거의 잠수를 탔기 때문에 몇 있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못 했고 지금 현재 연락하는 친구들은 몇 명 뿐입니다. 친구들 거의 다가 군대에 가있기 때문에 거의 잘 만나지도 못하죠..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혀 언급 안 했는데 어머니가 뇌가 불편하십니다..
원래 좀 안 좋긴 했지만 제 심장이식수술하고 한 달 동안 병간호를 하시고 그 이후에 사장이랑 오해까지 생기면서 일을 그만 두셨어요. 지금까지 2년정도를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데 그러면서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병원에서는 초기치매라는 판정을 받았고요. 지금 심정은 차라리 팔이나 다리가 한 쪽이 없거나 청각장애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지체장애나 청각장애를 무시하는 건 아니고요. 그 만큼 뇌가 불편한 것이 참 힘듭니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고 인지력, 공간지각력 등 거의 모든 부분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혼자서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으십니다. 이게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관련 복지혜택도 없고, 장애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도 힘듭니다..
작년과 올해는 제가 거의 집에 있었기 때문에 밥 차려서 밥 먹고 어디 구경하러 다니고 그게 됬지만 이제 내년 부터 제가 학교를 다니면 어머니 혼자 어떻게 할까.. 그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지금까지 정말 두서없게 긴 글 썼네요.. 문장이 말이 안되게 연결되는 것도 많은데 그냥 막 쓰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학교는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헛바람 들지 않고 제대로 배워볼 생각입니다. 전자전기를 배울 생각이고요. 2학년 때 부터 경영학을 복수전공 할 겁니다. 물론 힘들 것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사업 해보고 싶습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멋진 기업 만들고 부와 명예를 쌓아 정치도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힘들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2년을 생각하고, 정말 고생하신 아버지, 어머니, 나를 생각해 도전해볼겁니다.
또 곧 제대하는 친구들도 있고 타지에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을텐데 차차 연락해서 다시 예전 재밌었던 행복했던 때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직까지 뭔가 마음의 준비도 안 된 것 같고 지난 2년 허송세월 처럼 보낸 시간에 창피하긴 하지만 다시 내 추억의 친구들을 만날겁니다.
가장 큰 고민인 어머니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 마땅히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해 방문간호를 받을지 그런데 사실 상 안 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봉사단체에 가서 설거지나 청소같은 일을 도울지.. 아직 잘 생각이 안 나네요...
이는 복학 때 까지 남은 기간동안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아 정말 글 못 썼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요없이 막쓰다보니 이 지경 됐네요 ㅜ 읽는데 이상했을 거에요 죄송합니다.
심장이식 받아 새 인생 제대로 살았어야 할 지난2년.. 정말 이식 준 동생(공여자가 저보다 2살 어리다고 기록에 나와있더군요.) 에게 굉장히 미안할 정도로 대충살고 아무 생각없이 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새벽인데 매일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고 생활패턴도 나빠졌고, 제대로 하는 일도 없는데 한 번에 고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복학 전까지 제대로 고치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하루하루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정리, 앞으로의 계획
사실 이런 거 쓰는 거 오글거리는데
그래도 뭔가 뒤죽박죽 같은 제 인생의 정리 및 앞으로의 다짐을 되새기기 위해 적어봅니다..
스토리가 개성이 뚜렷해서 날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ㅇㅇ구나! 하고 알 수 도 있어요..
뭐 날 아는 사람들이 네이트판을 할지는 몰겠는데(거의 안하겠죠?ㅋㅋ) 혹시나 본다면 뭐 연락해ㅋㅋ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너무 진지하게 쓰다보니 재미는 없을 거에요.. 뭐 세상에 이렇게 살고 있는 놈도 있구나~ 생각하시고 읽어주세요..
전 어릴 적 부터 뭐 평범하면서도 약간 특출나게 살았죠..
유치원 때부터 두뇌가 남달라(?죄송..) 초등학생 수준 계산 세자리 수 계산 ㅋㅋ 을 배웠죠. 기억력이 안 좋아서 옛날 일들은 거의 생각 안 나는데 세자리수를 계산하려고 애쓰던 모습은 생각나네요ㅋ
그리고 동네에서도 골목대장처럼 애들 이끌면서 총싸움하고 각 종 놀이들 하고 그랬죠..
초딩 1,2학년 때 기억은 상장 많이 받았다(지금 가지고 있음), 2학년 때 담임한테 로우킥 맞았다, 그 때도 골목대장처럼 싸돌아 댕겼다. 이 정도 뿐이네요.
그러다 3학년 때 2002 월드컵 보고 축구에 완전 빠졌죠. 이는 중2때 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축구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죠. 특히 이운재 에 빠져서 3학년 때 부터 쭉 골키퍼 하면서 학교에서 뭐 약간의 입지 정도는 있었어요..(뭔가 계속해서 자뻑같은데 죄송해요. 곧 암울해져요 ㅋ..)
1,2,3학년 때 공부실력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데 4학년 때 부터는 학급임원도 거의 계속하고 성적도 반에서 항상 1등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축구도 매일 하고 잘하고..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재밌게 놀았죠. 매일매일이 좋았던 것 같아요. 5학년 때는 컨닝을 가미해서 9과목 올백의 쾌거(?)를 이루고 ㅋㅋ 6학년 첫 시험 때도 컨닝을 가미해 올백을 받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매일매일이 좋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전국권에서 놀고 축구도 매일 하고 초딩 고학년 때 처럼 좋았던 것 같네요.
그러다 제 인생에 변환점이 찾아옵니다..
날짜도 기억나네요. 2007년 7월11일 여느때처럼 점심시간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군요. 인생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심장박동.. 당연히 놀랐죠. 실신이나 그런 건 없었는데 바로 조퇴해서 동네 병원으로 갔죠. 다음 날 학교를 갔다오니 어머니가 큰 병원 가야된다더군요. 13일, 아버지랑 중소병원 가 보니 비대성 심근증이라더 군요. 선천성이라던데 정말 희한하게도 중2가 되서야 발견이 되었다더군요. 그 날 이후로 의사는 축구는 당연히 하지 말고 약을 매일 먹어야한다더군요. 물론 엄청난 충격이었고 일생에 병원도 거의 안 가던 내가 이런 병을 얻다니 그 당시만 해도 죽는병인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게 이상하게도 얼마 안가 적응하더군요. 그러면서 심장병 발견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갔죠. 축구도 하고(페이스 조절하면서 해야지. 라고 했지만 사실 상 심장이라는게 갑자기 변화하는 거라 목숨을 걸고 했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미친짓이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 때 까지도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밌게 놀았어요.
근데 사실 이 정도 성적이었다면 일반 부모님 같다면 특목고나 자사고 처럼 공부 좀 한다는 애들 모이는 곳에 집어넣으려고 했었을거에요. 근데 제 부모님은 두 분 다 중졸학력이시고 이런 교육 쪽에 거의 관심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초딩 때는 엄마 친구들 학원 보내면 저도 보내고 그랬고 중학교 입학 이후로는 따로 학원 보내지도 않으셨어요. 이게 저의 스스로학습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여튼 그 정도로 부모님은 교육에 별 관심이 없으셨죠. 거기다가 저 스스로도 특목고 가서 공부하는 기계가 되긴 싫다는 생각으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물론 공부는 자기의 노력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노동이지만, 분위기도 중요하긴 합니다.
분위기가 정말 꽝이었어요.. 왠만한 선생님들 들어 와 봤자 계속 떠들고 수업시간 내내 떠들고 그러면서 저도 점점 나태해진 것 같네요. 1학년 때만 해도 전과목(예체능까지)포함이기는 하지만 전교1등 했었는데 가면서 점수가 떨어지더군요. 고3 때는 내신이 2, 3등급 정도 나왔네요.. 거기다가 모의고사 성적은 형편없었어요.. 평균 3~5등급 왔다갔다 했어요. 성적은 그랬고
또 고딩인생에 뺄 수 없는 것이 야구에요.
고등학교 입학 하기 전 겨울방학 때 동네에 친구들, 동생들 모여서 야구팀을 만들었죠. 생각해보니 야구는 축구보다 훨씬 덜 뛰니까 심장에 덜 무리가 갈거라고 생각했죠.
여튼 그 이후로 고딩 내내 주말에 거의 빠짐없이 팀원들과 야구했네요. 그러면서 여러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직접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그 때도 초딩 때 못지 않게 재밌었네요. 야구를 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 힘으로 공부하고 그랬네요.
고3때 학급반장하다가 막판에 잘리기도 하고, 야자 째다가 들키기도 하고, 야구하면서 재밌던 일도 있고
여러가지 사건으로 고딩이 지나고 고3 수능 쳤죠. 모의고사 점수는 워낙 안 좋아 정시는 애초에 포기했었고 수시쪽으로 성균관,중앙,건국,아주,부산,경북,울산대 모두 전자전기공학으로 올인 했죠. 애초에 대학이름 보다는 내가 하고 싶던 전자전기공학으로 했죠.
그래서 최저등급만 맞추면 됬는데 2등급 2개가 나왔죠. 수학은 완전 버리고 나머지 과목만 공부했어요. 그래서 2등급 2개 나왔어요. 그런데 이게 먼 훗날 제 가슴에 비수를 박습니다...
수능을 치고 여타 모든 분들처럼 할 게 없더군요ㅋㅋ 바로 면허따로 갔고 헬스도 끊고 하는데 그러던 와중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심장이식 기부자가 나왔다고.. 사실 고1때 부터 아산병원 다녔는데 거기서 수술보다는 이식이 났다더군요. 수술은 워낙 부작용이 세다고.. 그래서 이식 신청을 해 놨었는데 이게 수능 치고, 한 달 후 12월 10일날 연락이 왔어요. 바로 버스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바로 다음 날 수술장에 들어갔어요. 숨 두 번 크게 쉬고나서 마취가 됬어요. 낮 12시에 들어갔는데 일어나보니 밤12시 더군요. 무균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는데 정말 답답해 미치더군요. 8시 되야 뺄 수 있다는데 8시간.. 정말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가슴은 꿰메져있고 호스 2개가 가슴에 꽃혀있고 움질일 수는 없고 그렇게 월화수목 4일을 무균실에 누워있었습니다. 무균실이라 면회가 불가능해 밖에 서있는 부모님 보고 손 흔들고 그랬어요..
4일을 누워있다가 일어나니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그렇게 1인실로 옮겨갔어요.
거기서 대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후보49위 였던 중앙대.. 기대도 안 했는데 추가합격 문자가 왔어요. 여기서 고민을 합니다. 3등급 2개만 나와도 최저등급 충족하는데 하필 2등급이 2개 나오는 바람에 울산대가 4년 장학생으로 붙게 됐어요..
서울에 와서 돈 많이 쓰면서 대학 다니냐? 집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냐?..
결국 후자를 택했습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학벌주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가오(?),기업에서 보는 대학서열 이런 것들 잘 몰랐어요.. 또 아버지 회사에서 학비가 나오는데 저는 장학생 이기 때문에 4년 학비 3000만원을 고스란히 제가 받을 수 있었어요. 애초에 벤쳐기업처럼 전자나 소프트웨어 사업을 생각했기 때문에 3000만원을 사업자금으로 쓰려는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결국 울산대를 택했습니다.
그러고 한 달동안의 입원 끝에 퇴원을 했죠. 입원하면서도 식사나 생활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 달동안을 1인실에 갇혀 지냈는데 매일 달력보며 언제 한 달 지나가나 그러면서 살았어요.
6개월 정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의사 말에 집에 와서도 외출을 잘 안 했죠. 수능이 끝났기 때문에 친구들은 술마시고 놀러다니고 그랬죠. 저는 가끔 연락밖에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졸업식 날 반 아이들 저녁밥 다 같이 먹을 때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사진찍고 그랬네요.. 그 때도 몸 상태때문에 고기는 못 먹고 밥도 깨작깨작 먹고..
대학교는 다니지도 못 하고 바로 휴학을 냈어요. 1학년 1학기만 휴학하고 2학기 복학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년을 통으로 휴학했어요. 12년도 때인데 그 때는 몸도 힘들고 외출도 안 되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연락도 뜸하고 아주 가끔씩 만났어요.
원래 친구들이 없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정말 친한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닌 것 같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고딩 때만 해도 반의 거의 모든 애들과 얘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지냈는데 요즘 연락하는 애들은 정말 불알 친구나 고딩 때 야구 같이 했던 친구들 정도네요.. 애들도 대학 들어가서 이것저것하는라 바빴을테고 저도 여러 이유로 연락을 도통 못 했어요.
12년이 끝나가고 슬슬 대학갈 준비를 하면서 여러가지 검색을 했어요.. 그러면서 울산대에 온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중앙대를 갔어야 했다는 후회감이 몰려오더군요.. 그게 꿈에 까지 나오고 미치겠더라고요..
13년 복학하고 1주일 정도 학교 다녔는데 그 후회감때문에 도저히 학교에 정이 안 붙더라고요.. 결국 재수를 결심했죠.. 학교네임도 그렇고, 매일 집에서 있으면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정말 답답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고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되자는 심정으로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이 되자는 생각으로 과도 경영이나 정치쪽으로 갈려고 했어요. 아버지와 대화 끝에 독학재수를 하기로 했어요.. 독학재수...... 정말 힘들더군요...
모두가 처음에는 잘 할 겁니다. 수느은 이걸 누가 제일 꾸준히 하느냐의 싸움인데.. 전 결국 잘 안 됬어요.. 갈 수록 잠자는 시간은 많아지고 늦잠자는 날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공부량이 많이 줄어들고 점점 해탈의 경지에 가는 거 같고... 논술도 잘 안 됬고 수능도 안 됬습니다...
13년도 거의 잠수를 탔기 때문에 몇 있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못 했고 지금 현재 연락하는 친구들은 몇 명 뿐입니다. 친구들 거의 다가 군대에 가있기 때문에 거의 잘 만나지도 못하죠..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혀 언급 안 했는데 어머니가 뇌가 불편하십니다..
원래 좀 안 좋긴 했지만 제 심장이식수술하고 한 달 동안 병간호를 하시고 그 이후에 사장이랑 오해까지 생기면서 일을 그만 두셨어요. 지금까지 2년정도를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데 그러면서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병원에서는 초기치매라는 판정을 받았고요. 지금 심정은 차라리 팔이나 다리가 한 쪽이 없거나 청각장애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지체장애나 청각장애를 무시하는 건 아니고요. 그 만큼 뇌가 불편한 것이 참 힘듭니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고 인지력, 공간지각력 등 거의 모든 부분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혼자서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으십니다. 이게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관련 복지혜택도 없고, 장애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도 힘듭니다..
작년과 올해는 제가 거의 집에 있었기 때문에 밥 차려서 밥 먹고 어디 구경하러 다니고 그게 됬지만 이제 내년 부터 제가 학교를 다니면 어머니 혼자 어떻게 할까.. 그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지금까지 정말 두서없게 긴 글 썼네요.. 문장이 말이 안되게 연결되는 것도 많은데 그냥 막 쓰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학교는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헛바람 들지 않고 제대로 배워볼 생각입니다. 전자전기를 배울 생각이고요. 2학년 때 부터 경영학을 복수전공 할 겁니다. 물론 힘들 것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사업 해보고 싶습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멋진 기업 만들고 부와 명예를 쌓아 정치도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힘들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2년을 생각하고, 정말 고생하신 아버지, 어머니, 나를 생각해 도전해볼겁니다.
또 곧 제대하는 친구들도 있고 타지에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을텐데 차차 연락해서 다시 예전 재밌었던 행복했던 때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직까지 뭔가 마음의 준비도 안 된 것 같고 지난 2년 허송세월 처럼 보낸 시간에 창피하긴 하지만 다시 내 추억의 친구들을 만날겁니다.
가장 큰 고민인 어머니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 마땅히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해 방문간호를 받을지 그런데 사실 상 안 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봉사단체에 가서 설거지나 청소같은 일을 도울지.. 아직 잘 생각이 안 나네요...
이는 복학 때 까지 남은 기간동안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아 정말 글 못 썼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요없이 막쓰다보니 이 지경 됐네요 ㅜ 읽는데 이상했을 거에요 죄송합니다.
심장이식 받아 새 인생 제대로 살았어야 할 지난2년.. 정말 이식 준 동생(공여자가 저보다 2살 어리다고 기록에 나와있더군요.) 에게 굉장히 미안할 정도로 대충살고 아무 생각없이 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새벽인데 매일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고 생활패턴도 나빠졌고, 제대로 하는 일도 없는데 한 번에 고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복학 전까지 제대로 고치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하루하루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전부 읽어주셨다면 너무너무매우매우정말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