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6. 대선으로 가는 길, 감동과 반전의 드라마 ⑴
참의부201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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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의 새로운 위기 ‘이인제 카드’
노무현의 대선 출마 선언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돌출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김대중 행정부 중반기인 2001년 초에 정계 일각에서는 정·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이 제기되었다. 월간『신동아』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84퍼센트,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 53퍼센트가 이 개헌안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동아』여론조사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여야 의원들의〈정·부통령제 개헌 시 유력한 부통령 후보는?〉이라는 항목이다. 공동 여당에서 노무현은 정동영·이인제 등을 크게 제치고 부통령 후보 1순위에 오를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이보다 앞서 1999년 7월 1일자『한겨레21』의 여론조사에서는 노무현이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보다 더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특히 호감도에서 두드러진 지지를 받았다. 노무현의 호감도는 43.2퍼센트, 자질은 38.4퍼센트였다. 이회창은 자질에서는 노무현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호감도에서는 낮게 나왔다. 노무현이 이회창보다 자질에서 떨어진다고 응답한 것은 노무현에 대한 접근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인 코드의 한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일요신문》에서 같은 해 11월 조사한 정치부 기자 1백명이 뽑은 자질 순위에서는 노무현이 1위를 차지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노무현을 가까이에서 보는 이들이다. 결국 자질뿐 아니라 이회창은 처음부터 인간적인 면모 즉 문화적인 코드에서 노무현에게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노무현이 현실성에 의거하여 대선 출마를 선언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득표율로 연결되는 수치가 아닌데다가 그는 당내 조직, 자금력, 지역기반 같은 게 전무하다시피 한 처지라서 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대선에 나서게 된 이유는 절실했다. 멀리는 조선 개국 이래 수백 년간 수구기득세력이 농단해온 국가경영을 바로잡겠다는 오래 전부터의 꿈 때문이었다. 가까이는 김대중 정권이 비전과 정책을 바르게 설정하고서도 족벌신문과 수구세력의 발목잡기로 인한 민주화권력 단절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백범이 이루고자 했던 나라, 링컨이 꿈꾸었던 국가를 이뤄보고자 하는 포부였다. 현상적으로는 ‘이인제 카드’ 때문이기도 했다.
˝2002년도의 위기는 다름 아닌 이인제 씨의 존재였다. 이회창 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2001년, 2002년에 노사모가 폭발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느낀 위기감은 이회창 씨의 존재보다는 이인제 씨가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나 싶다. 이인제 씨는 3당 합당에 따라가 도지사도 하고 경선 불복도 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민주당에 와서 선거대책위원장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하니까, 전통적인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 즉 소신을 이익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오던 젊은 사람들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위험을 감수했던 사람들이 보면서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겠는가? 그 위기감 위에서 내가 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반드시 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때는 저보다 참모들이 더 열성적이었다. 저는 때때로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던 때도 많았는데 그들은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 노무현,『성공과 좌절』, 학고재, 2009년, 159쪽~160쪽.
● ‘왜 노무현인가’
주변인 노무현은 중심부를 향해 힘찬 도약을 시작했다.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그에게는 ‘중심축’이 없었고 ‘테두리’만 있었다. 테두리는 노사모를 비롯하여 불특정한 전국의 민초들이었다. 민주당의 ‘중심축’인 동교동계는 이인제 후보를 밀고 있었다.
천지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딛고 일어설 받침대가 없었다. 대선 후보 경선은 결코 만만한 도전이 아니었다. 본선에만 간다면 청년 학생들, 노동자, 농어민, 도시서민의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지만, 우선 당내 경선이 고립무원의 첩첩산중이었다. 당내 유력 계보 출신과 군사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을 이끈 쟁쟁한 투사, 개인적으로 유명세를 가진 인사들이 속속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경선 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당이 처음으로 도입한 대통령 후보 국민참여 경선에는 노무현을 비롯하여 김중권·정동영·김근태·이인제·한화갑(상임고문)·유종근(전북지사)이 각각 후보로 나섰다. 국민참여 경선은 당원과 일반국민을 같은 비율로 섞어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2백만명 중에서 무작위로 2만명을 추출해 선거인단을 구성한 것이다.
노무현이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뛰어들자 맨 먼저 천정배 의원이 지지를 선언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재야 시절부터 노무현의 활동을 지켜봐 왔던 터였다. 천정배의 지지 선언은, 뒷날 노무현이 “내 선거 캠프에도 국회의원이 생겼다”고 했을 만큼 노무현 캠프에 큰 힘이 되고 용기를 주었다. 천정배는 노무현 지지를 선언하면서〈왜 노무현인가〉를 자문자답하는 가운데 “노무현은 현 시기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정치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특히 우리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에 답해야만 하는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 고문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후보자로서의 자질과 이 시기의 과제 해결을 위한 적임자로서의 이야기는 짧게 쓰기에는 그 진실한 내용들이 너무도 많다.”고 했다.
천정배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개혁이라 전제하고, 개혁의 실천자로 노무현을 꼽았다. “개혁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먼저 자신의 뼈와 살을 기꺼이 도려내는 자기희생일 것이다. 사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개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군사독재자도 로마의 네로도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는 개혁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이 소리만 요란했다가 결국 용두사미가 되고 마는 것은 왜인가? 자기희생의 각오가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치인 노무현 고문은 이 시대에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앞날이 보장된 편안한 탄탄대로도 대의가 아니면 주저없이 거부하는 사람, 힘겨운 가시밭길이라도 그것이 누군가는 가야할 길이라는 판단이 들면 기꺼이 걷는 정치인, 그 순간마다 어찌 인간으로서의 깊은 고뇌가 없었을까마는, 그의 결론은 언제나 이 시대의 정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을 먼저 실천하는 일이었다.”
천정배가 지역도 다르고 정계 입신 배경도 다른(목포 출신인 천정배는 김대중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고문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적극 추천한 이유에는 노무현의 ‘솔직함’도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여러 후보자들의 화려한 말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력한 한 사람인 노무현 고문, 그는 다른 후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솔직함이다. 불신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버린 이 정치권에서 그가 보여주는 솔직함은 하나의 청량제와 같다. 그는 모든 것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잘못은 솔직히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온갖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이라는 큰 벽을 정면으로 돌파해왔다고 평가하면서 “동서화합을 위한 그의 헌신과 희생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날, 그날은 우리 나라의 정치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하나의 큰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렵게 성취해온 성과를 기반으로 한 번 더 도약하느냐 아니면 또 다시 특권의식에 젖은 기득권세력에게 정권을 내주고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노무현 고문이 우리의 희망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은 이 과제를 짊어지고 갈 더 없이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지의 변을 마무리했다.
● ‘지사적 풍모’를 지닌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직후인 2002년 2월 15일, 당시 잘나가던 시사평론가 유시민은 3시간 30분 동안 ‘인간 노무현’을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후 노무현의 열성 지지자가 된 유시민은 인터뷰 소감에서 노무현을 “참 씩씩한 사람”이라고 했다. “노무현은 참 씩씩한 사람이다. 경선캠프에 현역의원이 한 명도 없고, 여론조사 지지에서 이인제 고문에게 제법 뒤떨어져 있는 데도 자기가 틀림없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런데 ‘걱정없는 소년’처럼 보이던 노무현도 학력 문제가 나오자 안색이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약간 나직해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내노라하는 신문사와 방송사 고위직에 잘 아는 친구나 한 다리 건너 알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국민지지 하나만 믿고 후보 경선을 치른다고 생각해 보라. 누군들 속이 타지 않겠는가.”
다른 어떤 인터뷰보다도 유시민과의 이 인터뷰는 ‘인간’ 노무현 그리고 그의 사상과 신념, 대선에 나서게 된 이유, 정치철학을 알게 하는 소중한 자료로 꼽힌다.
〃유시민 ㅡ 영감 있는 리더라면서 캠프에 현역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는 건 또 뭡니까. 노무현 ㅡ 이것만은 미리 분명하게 얘기해두고 싶은데, 적어도 우리 당에서 노무현이 거짓말쟁이다. 사기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괜찮은데……’하면서 그 다음에 토를 달죠. 이건 제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토를 다는 내용을 보면, 모자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도 많은데,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제 줄서기 좀 그만 하자. 나는 뭘 주고 싶어도 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유시민 ㅡ 원래 계보를 만들려면 돈도 좀 주고, 나쁜 짓 하다 걸리면 빼내주고, 그 두 가지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무현 ㅡ 바로 그겁니다. 계보와 동지와 다른 겁니다. 동지는 아무 것도 물질적으로 주고받고 하지 않으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동지라고 하면서 뭔가 주고받으면 그건 계보거든요. 계보는 이해관계로 결속한 것이죠.
유시민 ㅡ 혹시 노 고문께서 국회의원들이나 지구당 위원장들의 협력을 얻는데, 또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전염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신 것 아닙니까? 노무현 ㅡ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은 원래 줄 안 섭니다. 그 다음에 주관이 뚜렷하든 않든간에, 상황을 보고 대세에 편승하는 사람은 많은데 스스로 그 흐름을 만들려는 사람은 적죠. 그게 오늘날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입니다.
유시민 ㅡ 미국을 방문한 경험이 없는 유일한 경선주자라는 지적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노무현 ㅡ 갈 일이 없었어요. 갈 일이라고는 여행 가는 거, 교포사회 후원회 만들러 가는 거, 그 다음에 미국의 관리들 만나서 사진찍으러 가는 거, 그것 말고는 갈 일이 없는데, 세가지 다 그렇게 탐탁치가 않더라구요.
노무현의 이 발언, “미국 관리들 만나 사진 찍으러 가는 거”를 둘러싸고 상대 진영과 족벌신문, 사대주의 지식인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 비난을 퍼부었다. ( ㅡ 필자)
유시민 ㅡ 영어를 잘 못하시지요. 노무현 ㅡ 통 못하지요.
유시민 ㅡ 영어를 잘 못하시는 것이 대통령으로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ㅡ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유시민 ㅡ 조선일보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ㅡ 첫째, 너무 세다. 그들은 법 위에 있습디다. 지금도 법 위에 있고. 그래서 우리 사회 규범의 규제는 거의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유시민 ㅡ 그럼 두 번째는 뭡니까? 노무현 ㅡ 우리 한국 국민들에게 너무 수치스럽다. 수치감을 줍니다. 해방된 지 언젠데 친일언론이, 독재 아부한 언론이 계속해서 일등을 해야 되냐. 좀 국민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 아니냐.
유시민 ㅡ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노무현 ㅡ 세 번째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겁을 낸다. 이건 첫 번째하고 같은 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겁을 냅니다.
유시민 ㅡ 경마장이나 경륜장 가 보신 적은 있습니까? 노무현 ㅡ 경마장은 제가 부산에서 변호사 할 때 서울에 놀러와서 한 번 가봤습니다. 마권도 샀는데 어떻게 사서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샀다가 내 말이 어느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끝나 버렸어요(웃음).
유시민 ㅡ 고스톱의 어떤 면이 가장 묘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노무현 ㅡ 어떻든 다양하고 사람들이 다 좋아하더라구요. 나는 사실 고스톱을 잘 못하는데, 화투를 손에 쥐어본 지가 까마득합니다. 그런데 남들이 즐기는 건 찬성합니다.〃- 유시민, ‘인간 노무현 흔들리지 않는 게임의 법칙’,〈노무현:상식 혹은 희망〉, 행복한책읽기, 2002년, 22쪽~83쪽 발췌.
인터뷰를 마친 유시민은 노무현에게서 “지사적 풍모를 느꼈다”고 했다. “노무현은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가진 인물이다. 정치인에게 이런 말은 욕이 될 수도 있고 칭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에 가서야 사회에 눈을 떴고, 마흔이 넘어서 정치에 입문한 늑깍이라서 그런가 남들이 다 가망이 없다고 하는 일을 그게 옳다는 이유로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일종의 절망감에 젖어 사태를 관망하는 판국에 자기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큰 소리 치는 것, 자기가 믿는바를 논리적으로 다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노무현은 분명 확신을 가진 정치인이며 그 확신을 남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노무현은 무척 순진한 사람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정치 시작한 걸 일생 최악의 선택으로 꼽는 걸 보라. 제일 잘한 선택에 대한 답변도 그렇다. 모르겠다니? “제 아내한테 청혼한 겁니다.” 참모들이 이런 대답을 건의했을 게 뻔한데도 도대체 요지부동이다. 이런 사람은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표를 구걸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에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을까? 판단은 각자에게 달렸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6. 대선으로 가는 길, 감동과 반전의 드라마 ⑴
●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의 새로운 위기 ‘이인제 카드’
노무현의 대선 출마 선언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돌출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김대중 행정부 중반기인 2001년 초에 정계 일각에서는 정·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이 제기되었다. 월간『신동아』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84퍼센트,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 53퍼센트가 이 개헌안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동아』여론조사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여야 의원들의〈정·부통령제 개헌 시 유력한 부통령 후보는?〉이라는 항목이다. 공동 여당에서 노무현은 정동영·이인제 등을 크게 제치고 부통령 후보 1순위에 오를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이보다 앞서 1999년 7월 1일자『한겨레21』의 여론조사에서는 노무현이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보다 더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특히 호감도에서 두드러진 지지를 받았다. 노무현의 호감도는 43.2퍼센트, 자질은 38.4퍼센트였다. 이회창은 자질에서는 노무현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호감도에서는 낮게 나왔다. 노무현이 이회창보다 자질에서 떨어진다고 응답한 것은 노무현에 대한 접근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인 코드의 한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일요신문》에서 같은 해 11월 조사한 정치부 기자 1백명이 뽑은 자질 순위에서는 노무현이 1위를 차지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노무현을 가까이에서 보는 이들이다. 결국 자질뿐 아니라 이회창은 처음부터 인간적인 면모 즉 문화적인 코드에서 노무현에게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노무현이 현실성에 의거하여 대선 출마를 선언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득표율로 연결되는 수치가 아닌데다가 그는 당내 조직, 자금력, 지역기반 같은 게 전무하다시피 한 처지라서 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대선에 나서게 된 이유는 절실했다. 멀리는 조선 개국 이래 수백 년간 수구기득세력이 농단해온 국가경영을 바로잡겠다는 오래 전부터의 꿈 때문이었다. 가까이는 김대중 정권이 비전과 정책을 바르게 설정하고서도 족벌신문과 수구세력의 발목잡기로 인한 민주화권력 단절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백범이 이루고자 했던 나라, 링컨이 꿈꾸었던 국가를 이뤄보고자 하는 포부였다. 현상적으로는 ‘이인제 카드’ 때문이기도 했다.
˝2002년도의 위기는 다름 아닌 이인제 씨의 존재였다. 이회창 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2001년, 2002년에 노사모가 폭발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느낀 위기감은 이회창 씨의 존재보다는 이인제 씨가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나 싶다. 이인제 씨는 3당 합당에 따라가 도지사도 하고 경선 불복도 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민주당에 와서 선거대책위원장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하니까, 전통적인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 즉 소신을 이익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오던 젊은 사람들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위험을 감수했던 사람들이 보면서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겠는가? 그 위기감 위에서 내가 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반드시 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때는 저보다 참모들이 더 열성적이었다. 저는 때때로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던 때도 많았는데 그들은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 노무현,『성공과 좌절』, 학고재, 2009년, 159쪽~160쪽.
● ‘왜 노무현인가’
주변인 노무현은 중심부를 향해 힘찬 도약을 시작했다.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그에게는 ‘중심축’이 없었고 ‘테두리’만 있었다. 테두리는 노사모를 비롯하여 불특정한 전국의 민초들이었다. 민주당의 ‘중심축’인 동교동계는 이인제 후보를 밀고 있었다.
천지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딛고 일어설 받침대가 없었다. 대선 후보 경선은 결코 만만한 도전이 아니었다. 본선에만 간다면 청년 학생들, 노동자, 농어민, 도시서민의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지만, 우선 당내 경선이 고립무원의 첩첩산중이었다. 당내 유력 계보 출신과 군사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을 이끈 쟁쟁한 투사, 개인적으로 유명세를 가진 인사들이 속속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경선 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당이 처음으로 도입한 대통령 후보 국민참여 경선에는 노무현을 비롯하여 김중권·정동영·김근태·이인제·한화갑(상임고문)·유종근(전북지사)이 각각 후보로 나섰다. 국민참여 경선은 당원과 일반국민을 같은 비율로 섞어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2백만명 중에서 무작위로 2만명을 추출해 선거인단을 구성한 것이다.
노무현이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뛰어들자 맨 먼저 천정배 의원이 지지를 선언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재야 시절부터 노무현의 활동을 지켜봐 왔던 터였다. 천정배의 지지 선언은, 뒷날 노무현이 “내 선거 캠프에도 국회의원이 생겼다”고 했을 만큼 노무현 캠프에 큰 힘이 되고 용기를 주었다. 천정배는 노무현 지지를 선언하면서〈왜 노무현인가〉를 자문자답하는 가운데 “노무현은 현 시기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정치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특히 우리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에 답해야만 하는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 고문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후보자로서의 자질과 이 시기의 과제 해결을 위한 적임자로서의 이야기는 짧게 쓰기에는 그 진실한 내용들이 너무도 많다.”고 했다.
천정배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개혁이라 전제하고, 개혁의 실천자로 노무현을 꼽았다. “개혁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먼저 자신의 뼈와 살을 기꺼이 도려내는 자기희생일 것이다. 사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개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군사독재자도 로마의 네로도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는 개혁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이 소리만 요란했다가 결국 용두사미가 되고 마는 것은 왜인가? 자기희생의 각오가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치인 노무현 고문은 이 시대에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앞날이 보장된 편안한 탄탄대로도 대의가 아니면 주저없이 거부하는 사람, 힘겨운 가시밭길이라도 그것이 누군가는 가야할 길이라는 판단이 들면 기꺼이 걷는 정치인, 그 순간마다 어찌 인간으로서의 깊은 고뇌가 없었을까마는, 그의 결론은 언제나 이 시대의 정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을 먼저 실천하는 일이었다.”
천정배가 지역도 다르고 정계 입신 배경도 다른(목포 출신인 천정배는 김대중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고문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적극 추천한 이유에는 노무현의 ‘솔직함’도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여러 후보자들의 화려한 말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력한 한 사람인 노무현 고문, 그는 다른 후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솔직함이다. 불신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버린 이 정치권에서 그가 보여주는 솔직함은 하나의 청량제와 같다. 그는 모든 것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잘못은 솔직히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온갖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이라는 큰 벽을 정면으로 돌파해왔다고 평가하면서 “동서화합을 위한 그의 헌신과 희생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날, 그날은 우리 나라의 정치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하나의 큰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렵게 성취해온 성과를 기반으로 한 번 더 도약하느냐 아니면 또 다시 특권의식에 젖은 기득권세력에게 정권을 내주고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노무현 고문이 우리의 희망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은 이 과제를 짊어지고 갈 더 없이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지의 변을 마무리했다.
● ‘지사적 풍모’를 지닌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직후인 2002년 2월 15일, 당시 잘나가던 시사평론가 유시민은 3시간 30분 동안 ‘인간 노무현’을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후 노무현의 열성 지지자가 된 유시민은 인터뷰 소감에서 노무현을 “참 씩씩한 사람”이라고 했다. “노무현은 참 씩씩한 사람이다. 경선캠프에 현역의원이 한 명도 없고, 여론조사 지지에서 이인제 고문에게 제법 뒤떨어져 있는 데도 자기가 틀림없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런데 ‘걱정없는 소년’처럼 보이던 노무현도 학력 문제가 나오자 안색이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약간 나직해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내노라하는 신문사와 방송사 고위직에 잘 아는 친구나 한 다리 건너 알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국민지지 하나만 믿고 후보 경선을 치른다고 생각해 보라. 누군들 속이 타지 않겠는가.”
다른 어떤 인터뷰보다도 유시민과의 이 인터뷰는 ‘인간’ 노무현 그리고 그의 사상과 신념, 대선에 나서게 된 이유, 정치철학을 알게 하는 소중한 자료로 꼽힌다.
〃유시민 ㅡ 영감 있는 리더라면서 캠프에 현역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는 건 또 뭡니까.
노무현 ㅡ 이것만은 미리 분명하게 얘기해두고 싶은데, 적어도 우리 당에서 노무현이 거짓말쟁이다. 사기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괜찮은데……’하면서 그 다음에 토를 달죠. 이건 제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토를 다는 내용을 보면, 모자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도 많은데,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제 줄서기 좀 그만 하자. 나는 뭘 주고 싶어도 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유시민 ㅡ 원래 계보를 만들려면 돈도 좀 주고, 나쁜 짓 하다 걸리면 빼내주고, 그 두 가지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무현 ㅡ 바로 그겁니다. 계보와 동지와 다른 겁니다. 동지는 아무 것도 물질적으로 주고받고 하지 않으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동지라고 하면서 뭔가 주고받으면 그건 계보거든요. 계보는 이해관계로 결속한 것이죠.
유시민 ㅡ 혹시 노 고문께서 국회의원들이나 지구당 위원장들의 협력을 얻는데, 또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전염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신 것 아닙니까?
노무현 ㅡ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은 원래 줄 안 섭니다. 그 다음에 주관이 뚜렷하든 않든간에, 상황을 보고 대세에 편승하는 사람은 많은데 스스로 그 흐름을 만들려는 사람은 적죠. 그게 오늘날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입니다.
유시민 ㅡ 미국을 방문한 경험이 없는 유일한 경선주자라는 지적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노무현 ㅡ 갈 일이 없었어요. 갈 일이라고는 여행 가는 거, 교포사회 후원회 만들러 가는 거, 그 다음에 미국의 관리들 만나서 사진찍으러 가는 거, 그것 말고는 갈 일이 없는데, 세가지 다 그렇게 탐탁치가 않더라구요.
노무현의 이 발언, “미국 관리들 만나 사진 찍으러 가는 거”를 둘러싸고 상대 진영과 족벌신문, 사대주의 지식인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 비난을 퍼부었다. ( ㅡ 필자)
유시민 ㅡ 영어를 잘 못하시지요.
노무현 ㅡ 통 못하지요.
유시민 ㅡ 영어를 잘 못하시는 것이 대통령으로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ㅡ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유시민 ㅡ 조선일보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ㅡ 첫째, 너무 세다. 그들은 법 위에 있습디다. 지금도 법 위에 있고. 그래서 우리 사회 규범의 규제는 거의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유시민 ㅡ 그럼 두 번째는 뭡니까?
노무현 ㅡ 우리 한국 국민들에게 너무 수치스럽다. 수치감을 줍니다. 해방된 지 언젠데 친일언론이, 독재 아부한 언론이 계속해서 일등을 해야 되냐. 좀 국민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 아니냐.
유시민 ㅡ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노무현 ㅡ 세 번째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겁을 낸다. 이건 첫 번째하고 같은 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겁을 냅니다.
유시민 ㅡ 경마장이나 경륜장 가 보신 적은 있습니까?
노무현 ㅡ 경마장은 제가 부산에서 변호사 할 때 서울에 놀러와서 한 번 가봤습니다. 마권도 샀는데 어떻게 사서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샀다가 내 말이 어느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끝나 버렸어요(웃음).
유시민 ㅡ 고스톱의 어떤 면이 가장 묘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노무현 ㅡ 어떻든 다양하고 사람들이 다 좋아하더라구요. 나는 사실 고스톱을 잘 못하는데, 화투를 손에 쥐어본 지가 까마득합니다. 그런데 남들이 즐기는 건 찬성합니다.〃- 유시민, ‘인간 노무현 흔들리지 않는 게임의 법칙’,〈노무현:상식 혹은 희망〉, 행복한책읽기, 2002년, 22쪽~83쪽 발췌.
인터뷰를 마친 유시민은 노무현에게서 “지사적 풍모를 느꼈다”고 했다. “노무현은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가진 인물이다. 정치인에게 이런 말은 욕이 될 수도 있고 칭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에 가서야 사회에 눈을 떴고, 마흔이 넘어서 정치에 입문한 늑깍이라서 그런가 남들이 다 가망이 없다고 하는 일을 그게 옳다는 이유로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일종의 절망감에 젖어 사태를 관망하는 판국에 자기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큰 소리 치는 것, 자기가 믿는바를 논리적으로 다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노무현은 분명 확신을 가진 정치인이며 그 확신을 남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노무현은 무척 순진한 사람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정치 시작한 걸 일생 최악의 선택으로 꼽는 걸 보라. 제일 잘한 선택에 대한 답변도 그렇다. 모르겠다니? “제 아내한테 청혼한 겁니다.” 참모들이 이런 대답을 건의했을 게 뻔한데도 도대체 요지부동이다. 이런 사람은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표를 구걸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에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을까? 판단은 각자에게 달렸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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