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과 정리, 그 끝은

쿤데라201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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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올해로 26살이 된 그저 흔한 여자입니다
길고 길었던 연을 오늘은 끊어내야할 것같아서 굳이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강신주 박사님이 그러더군요. 글을 쓸 수 있다면 다 정리된 거라구요. 그리고, 이성복 시인의 이야기된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올라 이렇게 끄적이려 마음을 먹었습니다. 친구들도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 판에나 써보려구요. 조언이든 악플이든 모진 말이든 오늘만큼은 누가 곁에 있다는 기분 좀 얻고싶네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6년전으로 돌아가야 할것 같습니다.
2009년 1월 2일, 스물한 살의 저는 아이를 지웠습니다.
이 아이는 제가 평생 저주할 사람의 아이구요.
좀 더 돌아가 스무살의 천진했던 저는
, 스물한살이 될 한달여전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같은 과의 아주 가까웠던 동기로부터요.
아직도 손이 떨리는걸 보면 미어지는 걸 보면 .,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나봅니다.

그당시 제 남자친구의 가장 절친이었고 저와도 가까웠던 그새끼는 힘든 일이 있다며 술을 함께 해주길 청했고 전 기꺼이 함께 해주었죠.. 그리고 그날 소리지르며 제발을 외치는 저를 제압하고 그렇게 강제로 당했습니다. 이유는 전 날 자신의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쁜 일을 당할 뻔해서 였더군요.
전 그날 그렇게 당했습니다.
초조하게 생리일을 기다리고 테스트기의 두줄을 보고
수술을 몰래 받기까지. 전 단한번도 울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 절 놓아버렸어요.
술도 미친듯 마셔보고 잠시나마 담배에 손도 댔었고, 그저 어찌 시간이 가는지 모른채 잊으려 발악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말못했고. 저도 잊으면.. 그렇게 없던 일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리가 없지요..
매년 12월이면 잠을 못자고 아름다운 새해는 지옥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요 더 좋은 동기들과 더 좋은 선배들 후배들을 만나고 장학금도 타고 잊고자 잘살아보고자 애쓰고애썼습니다.
스물다섯, 저는 이상한 소리가 돌고 있는걸 여름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애를 지웠고, 그렇고 그런 여자라고.
소문의 근원은 그새끼더군요. 자기랑 즐기고 걘 그런 애라고.
걘 이미 휴학하고 폰을 바꾸고 잠적한 뒤였고 소문만이 퍼지고 퍼진 상태였어요, 까맣게 모르고 천진하게 사람을 대하던 제가.. 사람들은 얼마나 웃겼을까요.
제 상처는 그저 술자리 안줏거리더군요..

그리고. 이제야 그 사람 얘기를 할수 있겠군요..
나보다 꽤나 나이가 많은 그는,
같은 과 선배이고 유머러스하면서 진중한 멋있는 사람입니다.
3년을 알고 지냈지만 작년 이맘때가 되어서 급격히 가까워졌고, 둘이서 술한잔 기울이는걸 즐기는 사이가 되었어요.

어느 때처럼 한 잔 하던 작년 어느 봄날, 갑작스레 그가
네게선 어둠이 자꾸 보인다 하더랬죠
안아픈척 밝은 척 지내온 내 가면이 처음 무너져내렸습니다,
모른 척 웃어넘긴 제게 하루는 어떤 팟캐스트 강의를, 하루는 어떤 책을 소개시켜주더군요. 그것들은 정말로.. 저를 무너져내리게 했습니다. 모래땅위에 아등바등 지어온 모래성은 금세 무너지더군요. 팟캐스트 강의를 듣고 새벽내내 울던 밤,
저는 그 사람에게 제 아픔을 털어놓았습니다.
한 마디 해주더군요. 네 잘못 아니다. 정말 고생했다.
그리고 함께 화내주었습니다.
흔들렸어요.
그도 어릴 때 부모에게 버려진 아픈 사람이더군요.
그의 아픔과 제 아픔이 만나 그렇게 조금은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우린 한달에 한두번 꼭 만나 술 한 잔 커피 한 잔을 했고.
전 아주 자연스레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뿐이었어요, 그는 아니었던거죠.
고백도 하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끝은 참 안좋을거라며 아픈 사람들끼리는 만나면 더 아플 뿐이고, 넌 더 따뜻한 사람을 만나길 바라고 감정 깊어지지 않게 하잔 말로 선이 그어졌습니다. 알겠다- 그러마 하고 끝냈지만..
이미 무너진 제 세계를 잡고 있으려면 전 잠깐일지라도 그가 필요했어요. 갑작스레 찾아오는 외로움과 견딜수 없게 찾아오는 아픔과 죄의식으로부터 멀쩡하기 위해서는요.
그는 언제나처럼 가끔 만나 술을 기울여주고 전화를 해주고 영활 봐주고 손을 잡아주며 함께 있어주었어요.
그리고 우린 잤습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고 서로 그러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뿐이었어요.
지금처럼 가끔 보자- 그말이 어찌나 시리던지요,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전 깊어지는 감정과 내가 지켜야할 선에서 아슬아슬히 줄타기를 하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 사람 잘못은 아닙니다. 제가 그가 필요했고, 살기 위해 붙잡고 있었고, 그 사람은 그저 곁에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제 이기심으로 그렇게 붙들고 있었어요.
바보같은건 알지만 삶의 외로움과 상처의 치유와 사랑과 그사람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 그렇게 반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 번 더 우리의 끝과 관계에 대해 제가 먼저 물었고
그는 6개월 전과 같은 답을 주었네요.
이젠 놓으려구요.
자긴 제가 감당할 사람이 아니라더군요.
참 바보같은 사람이라 미워지지도 않습니다.
자신도 남도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르고 자신의 동그라미 세계에 갇혀 감정도 못드러내는 서툰 사람.
함께 이겨내고 함께 사랑해보고 싶었고 끝이 없는 관계가 어디있으랴, 함께 그 끝이 뭐더라도 저는 견뎌보고 싶었는데.
그 사람에게 전 그저 여전히 어리고 자신의 삶 감당하기도 벅차보이는 여린 사람이더군요.
이제 정말 놓을거에요,
절 위해서두요.

정말 제 삶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상처를 치유하고, 다른 사람을 보듬을 준비를 하고서야, 언젠가라도 널 사랑했었다 말할 자격이 생길 것 같네요.
사랑인지 아직도 확신이 없지만..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보내줄겁니다. 진정한 서로의 부재만이 관계의 확인을 도울테니까요.

좀더 어른이 되려합니다.
이제 정말 바로 서야지요..
저만의 땅에서요.

그런데 벌써부터 가슴이 미어지네요..
잘 버텨낼 수 있을까요..
이미 제 생활패턴 취미 가치관이 그와도 너무 닮아있는데..
두렵습니다.. 한번도 진정 가져본적 없는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다시 오늘 아침으로 간다면 저는 오늘 그와 끝을 내지 않았을거같아요..먼 미래엔 오늘의 결정을 웃으며 추억하겠죠.

5년을 알았고, 2년을 홀로 좋아했고, 1년을 함께 했고,
6개월을 곁에 있었는데..
잘 이겨내 볼게요..

모바일로 작성해 줄도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이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