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둥이+1 씐나는 도보여행] 2-2. 경주편

뱅알뱅알이201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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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금요일 하루가 밝았습니다.

전날 20km가 넘는 길을 걷는 강행군의 여파로

컨디션은 영 꽝입니다.

군대에서도 안 생기던 물집이 다 잡히고 발목도 살짝 부어

여행 둘째 날은 많이 걷는 건 무리겠다 싶었어요.

 

시내 중심으로 둘러 보고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부산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느즈막히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어나 씻고 짐을 꾸려 경주역으로 향하는데 띵동하고

문자가 하나 옵니다.

 

뭐, 또 대출받으라니, 옆집 헐벗은 누나의 야릇한 동영상인데 보실래예?하는 스팸이겠거니 했는데

"보문파출소 카드습득신고 연락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딱!!!

전날 잃어버린 지갑을 누가 주워 파출소에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경주역 광장 한 복판에서 말이죠!!!!

역시 천년 고도, 경주는 양반들의 도시였습니다.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파출소에 전화해 습득자 연락처를 받아 감사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 이리도 고마운 분들이 계시다니.....ㅠ(지갑은 월요일 출근해보니 사무실에 이미 와있었어요 와우!!)

 

이때부터 제 둘째날 여행계획은 급수정됩니다.

우선 근처 시장에서 칼국수 후루룩 마시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숨 좀 돌리고...

시내 살짝 둘러보고 가려던 계획은 어제 입구까지 갔다가 못본 분황사를 찾는 것으로

급 수정합니다.

 

 

 

분황사를 첫 행선지로 꼽은 이유는 두가지 때문입니다.

가기로 했는데 못 갔으니 다시 가자와

어제 분황사에서 만난 안내센터 직원분들께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왠지 이분들이 도와준 덕분에 오늘 지갑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경주역에서 분황사까지는 3~4km를 걸어야 합니다.

 

헌데, 아침까지만 해도 피곤하고 지치던 비루한 몸뚱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졌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고요...

허참... 이건 간밤에 해골수를 마신 원효대사의 해탈도 아니고...

지갑 하나 찾았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요??

어쨌든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던 덕에 또 신나게 걷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하나 느낀 게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가장 확연히 다른 것!!!

기분이 좋을 땐 주변의 새 소리, 바람 소리, 상쾌한 공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소리와 감각들은 실은 늘 제 옆에 있던 것들인데 다만 인식을 못할 뿐이었지요.

분황사를 가는 내내 저는 주변의 잡다한 소리,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지요..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새삼 느끼면서 말이죠..

하지만 또 헬렐레 정신이 팔리며 분황사 가는 길을 살짝 잃고 맙니다.

정신차리고 갔으면 1시간이면 갈 길을 30분을 더 허비하고 말았어요.

 

또 분황사 입구 맞은편에 있던 조그마한 구멍가게는 하필 이날 문을 열지 않았더라구요.

음료수라도 사갈까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끝까지 꼬이네요 분황사에선...

20여분 넘게 주변 골목길을 다 뒤져서 찾은 또다른 구멍가게.

음료수 세트를 사는데 분명 가격은 1만2천원이라고 써있는데 1만3천원을 달라고 하는

우리 가게 아주머니... 아주머니, 이 총각을 빙다리 핫바지로 보는 것이요?

하지만 순박한 착한 청년 순순히 내어 드리고 박스에 켜켜이 쌓인 먼지 털어내고

룰루랄라 분황사로 다시 향합니다.

어제 계시던 직원분들이 그대로 계시네요. 그저 두 번 봤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반갑고 기뻐 환하게 웃으며, 저 지갑 찾았어요. 여러분 덕분이에요 하면서

음료수를 드리고 절로 향했습니다.

 

 

 

 

 

 

 

 

 

 

분황사는 작고 아담한 고찰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법 큰 규모의 모전석탑이 자리해 있습니다.

현재는 3층 규모로만 남아있지만, 지붕 등 형태를 추정해봤을 때 9층 규모는 될 것이라고 하네요.

어렸을 땐 이게 뭐라고 국보씩이나 돼? 하면서 봤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고, 그 의미를 하나씩 알게 되니 눈 앞의 역사에 자연스레 경건해집니다.

탑 사방에는 미닫이 형태의 문이 나있고 귀퉁이마다 돌사자상이 늠름히 탑을 지키고 있네요.

 

마음 같아선 근처에 있는 황룡사지까지 가보고 싶지만

중간에 길을 잃으며 시간을 많이 허비한 터라 분황사 앞 만발한 유채꽃만 담고 나옵니다.

 

 

 

 

이런 기분 좋은 날씨에 셀카가 빠질 수 없겠지요?

30세 총각의 혐짤이 나오니, 재빠른 스크롤로 내리시길 ㅠ

네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ㅠ 집어 던지시려던 마우스 가만히 내려 주세요....

화내 보셔봐야 애꿎은 마우스만 망가지고 키보드만 부서질 뿐이어유 ㅠ.ㅠ

 

 

 

다음 행선지는 월성입니다. 주변에 첨성대와 계림, 대릉원, 석빙고, 최씨고택 등 볼거리가 몰려 있어

콤팩트한 여행을 원하는 분들이 많이들 찾는 곳입니다.

제가 찾은 날은 어린이날을 앞둔 터라 근방의 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두 소풍을 나왔더군요.

석빙고쯤 다다랐을 무렵, 제 눈을 사로 잡은 이 커플...

참으로 귀엽더군요. 이제 5살이나 됐으려나요?

손을 꼭 붙잡고 언덕을 올라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꼬마 커플이 궁금해

따라가봤더니, 요런.... 친구녀석이 쉬야하는 걸 지켜보고 있더군요...

하... 이 꼬마들도 이렇게 알콩달콩 연애하는데.. 갑자기 속이 확 쓰려옵니다.

 

 

 

 

귀여운 커플을 뒤로 하고 다음 향한 곳은 계림, 계림 되시겠습니다.

김알지 신화가 서린 곳으로 신라의 옛이름이기도 하다네요.

한가지 아쉬운 건, 계림의 어느 나무에 김알지가 담긴 금궤가 있었는지

알려주는 문구가 없었다는 것...

신화의 신비가 서린 곳답게 어딘가 신비로움이 가득한 계림,

기기묘묘한 나무,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들로 가득했습니다.

계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지요.

 

 

 

 

 

 

계림에서 나와 왼 편으로 가면 경주향교와 교촌마을 최씨고택, 월정교를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반대편쪽으로 가 대릉원이나 첨성대로 가도 되구요. 저는 마지막으로 살살 걸어 보려고 향교와 교촌마을쪽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 사진을 본 지인들 십중팔구는 특정 치킨 브랜드를 말했습니다.

치킨 브랜드 파워, 살아 있네!!

 

 

 

조금 지나 나타난 월정교.

어찌 보면 옛 사람들의 지혜, 운치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다리를 만드는 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또 한 편으론, 경주의 주요 유적들이 대부분 현대에 복원된 것들이라

그 의미가 반감되는 느낌이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천년이라는 그 시간이 지났는데

그걸 감안하지 않고 옛 모습 그래도 지켜지길 바란 생각이 부끄럽기도 하구요.

그저 옛 그대로 잘 복원해 잘 보존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짧지만 강렬한

경주 1박2일 여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