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둥이+1 씐나는 도보여행] 번외편-포항 여행

뱅알뱅알이2014.01.26
조회2,643

총 3편의 도보여행기를 올렸고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랐습니다.

아끼는 회사 후배 녀석이 올려보라고 할 때만 해도

뭐 댓글 하나나 달릴까 싶엇지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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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도보여행이라는 걸 시작한 계기는 2012년이었습니다.

제법 오래 만났던 녀석과 헤어지고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첫 도보여행은 그 녀석의 고향을 골랐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제 행동들은 정말...

헤어진 이후 찌질한 남성의 행동 매뉴얼 a to z 그 자체였지만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 온전한 제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게된 것 같아요.

이걸 올릴까 말까 제법 고심을 했습니다만, 어쨌든 제게 도보여행의 참맛을 일깨워준 첫 번째 여행이니 올리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어서 요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려 봅니다.

당시의 감정은 최대한 살리되 거슬리는 부분만 조금씩 쳐내고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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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첫 도보여행지 포항여행 떠나볼까요?

 2012년 5월 어느 날, 제법 오래 만난 녀석과 헤어졌습니다.

그후 최악의 무력감을 느끼던 찰나 제겐 4일간의 휴가가 다가옵니다.

시간 참 절묘하죠?

 

어딜 갈까, 무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떠오른 행선지, 바로 포항이었습니다.

포항, 초등학교 6학년때 경주 수학여행 갔다가 마지막날 원자력발전소와 함께 들린 포항제철 공장이 제 삶의 유일한 포항 방문이었던 그곳...

그곳은 바로 그 녀석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 아이가 살았던 포항은 어떤 곳일까? 가보자 !! 아니 근데 왜!!

가서 뭘 하려고.....

춘천에선 무려 6시간이 걸리는 그곳,

수학여행 이후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곳으로 가자는

무엇인가의 이끌림을 받고 토요일, 가방에 옷가지 대충 구겨 놓고 포항행 버스를 탑니다.

사전 아무런 계획도 없는 포항 여행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계획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포항하면 사실 떠오르는 것은 포항제철, 아 이제 포스코죠. 그리고 해병대,

호미곶, 포항공항 이것 뿐인데 큰일 입니다.

 

 
다행히 아주 긴 버스 운행시간 덕분에

전 대강의 야행 계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자기성찰의 도보여행으로 가자!!!

 

그래요 사실, 포항을 얕봤어요. 춘천만해도 어지간한 곳은 다 걸어서 다닐 수 있던 터라

(사실 춘천도 도농복합도시라 규모로 보면 엄청 큰 도시입니다.)

포항 까짓 것 두 발로 다 다녀 보리라 큰 마음 먹었습니다.

첫 코스는 그 아이가 고교 시절을 다녔던 포항의 모 여고입니다.

 

오후 6시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어라 도시 규모치곤 터미널이 조금 낡습니다.

터미널 안에는 관광안내지도 한 장 없네요. 야박스레,,,

그래도 밖은 참 선선하고 날씨가 산뜻합니다.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소 다릅니다.

웬지 공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포항은..

지도 한 장 없고 손에는 배터리가 간당간당하게 남은 아이폰 뿐입니다.

조금 쫄리기 시작하지만 첫발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초등학교 3학년때였나 4학년때였나

수원에 잠시 살 때 집에서 조금 먼 거리에서 친구들과 놀다

친구들은 치사하게 먼저 가고 전 혼자 길을 잃은 적이 있었어요.

생전 처음 간 그 곳에서 홀로 집을 찾아 3시간인가 4시간을

걷다가 겨우 겨우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죠.

무섭기도 했지만, 그 때의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모르는 길이라도 무작정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요.

터미널 근처 지도를 대충 훑어 보니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싶어

당당히 어깨 힘 딱 주고 걷기 시작합니다.

 

조금 걸었을까 어리고 머리 긴 여자들이 우루루 몰려있습니다.

참내 춘천 촌놈에 반해서 벌써 이렇게 모여있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구요.

뭔가 싶어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27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포항에선 연등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더군요.

포항의 절이란 절은 모두 죽도 초교에 모여

밤에 있을 연등축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익살스럽기도 한 연등 차량들을 둘러 보다 날이 어둑해지는 느낌을 받고 아차싶습니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해가 지기 전엔 도착해야 합니다.

아쉽지만 발을 돌려 한창 포항의 북쪽으로 향합니다.

잠시 뒤 마주친 이 곳,,,

빈털털이 총각, 대박을 꿈꾸는 제 눈을 확 잡아끈 그곳.. 로또 명당입니다.

 

 

 

1등 무려 4번, 2등 16번 정도는 뭐 그냥 일상이다 정도의 시크한 이미지를 풍기는 간판... 웬지 여기서 로또를 사면 대박이 날 것 같습니다.

또 사는 지역이 아닌 데서 돼야 소문도 안 나는 법이잖아요.

거금 1만원을 투자했습니다. 가게 안엔 로또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네요.

가게 사장님은 시크한 듯 한 손으론 돈을 받고 한 손으론 기계에서 대박 수표가 될 수도, 그저 쓰레기가 될 수 있는 로또 용지를 뽑아줍니다.

다음 주 평일 서울 서대문 경찰서 맞은 편 농협 본점을 방문할 부푼 꿈을 안고 다시 목적지로 향합니다.

1시간 30분 넘게 걷고 또 걷고 드디어 학교 표지판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는지 날이 벌써 어둑하네요..

 

  

학교는 매우 조용한 느낌입니다. 사실 꽤 외진 곳에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학생들 한명도 없네요. 여고 안에 다큰 남자가 들어간다는 게 묘하기도 하고

혹시 오해받지 않을까 우려도 되지만 조심스레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학교는 아주 아담하면서 포근한 느낌이 슬슬 풍깁니다.

어라 운동장에 축구 골대가 없네...

여고는 다 그런가요 .. 체육 시간에 그럼 뭐하고 놀지요?? ^^;;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운동장 한 켠에 소박한 벤치들이 있습니다. 어딜 가나 볼 수 있을 법한 담쟁이 덩굴에 둘러 싸인 벤치 말이죠.

 

살포시 앉아 봅니다. 이곳에서 그 아이도 10여년 전, 친구들과 앉아 수다도 떨고 환하게 웃었겠죠? 첫사랑 얘기라던가, 마음에 드는

선생님 얘기라던가, 친구 험담이라던가 말이죠. 후훗...

 

 

오해 마세요, 저 표정 굉장히 기쁜 표정입니다.

제가 사진 찍는 걸 아주 꺼리는 편이고 잘 웃지를 못해서 그렇지

아주 기분 좋은 표정입니다.

 

날은 금새 어둑해져 아이폰으론 사진을 더 찍기는 어려워집니다.

웬지 이번 여행 동안의 감정, 동선, 경험들을 제대로 기록해야 될 것 같아 인근의 문구점으로 향합니다.

이름은 풍성서점, 여고생의 감성을 듬뿍 고려하신

사장님의 문구류 배치로 30 목전의 남자인 제가

마땅히 살 아이템이 없습니다.

거무튀튀한 펜 하나와 작은 수첩을 구하고 사장님께 넌지시 말을 걸어 봅니다.

백발이 성성한 주인 아저씨는 간드러지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제가 의아했는지 한참을 보시더니 큰 길 따라가면

바로 바다여 하고 말이 없습니다.

웬지 이 사장님, 소싯적 학생들 제법 혼 좀 내셨던 사장님일 것 같단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모습조차 재미있고

오랜 세월이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을 보며 슬그머니 웃음이 피어나옵니다.

 

사장님 말 마따나 5분 만에 큰 도로를 건너니 큰 항구가 나옵니다. 포항항인지 북포항항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제가 생각했던 넓은 해변은 아니고 매일 어선들이 들낙거리고 해경 경비함이 정박해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항구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항구를 따라 산책로가 주욱 이어져 있다는 건데요.

 

 

 옆에는 다 어선들이고 바로 바다입니다. 그냥 빠지면 바로 바다인 항구입니다. 어... 갑자기 조금은 무서워집니다.

제가 사는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 어딜 가나 하천과 물이 있지만 좀 다른 풍경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항구 한 켠엔 삼봉호,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배가 정박해 있네요. 언뜻 봐선 꽤 낡은 외관인데 아직도 운행할까 싶으면서

독도 여행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산책로 어귀엔 낚시객도 있고 가볍게 술판을 편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어휴 어르신 여기서 취하시고 발 헛디디면 어쩌시려구요 어휴

 

시간은 어느 덧 오후 8시를 향해가고 배는 고프고 슬 내일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찾아야 합니다.

간단히 허기를 달랠까 하고 죽도시장을 향했지만 온통 회와 대게 요리네요. 값은 뭐 크게 문제가 안 되지만

아흑 배는 고프지만 이런 외로움 속에 쓸쓸히 허기를 달래진 않으리....

다시 발걸음을 돌려 시내 중심부로 향합니다.

 

여긴 중심부 거리 이름이 오거리, 육거리네요.. 정감이 갑니다. 센트럴 시티, 강남, 중앙로 이런 것 보다

뭔가 옛스러운 어감이 반갑습니다. 제가 사는 춘천도 팔호광장이라는 로터리가 있는데 예전엔 5호, 6호, 7호 광장

이렇게 불렸던 이유때문이라고 하네요. 뭔가 비슷하죠??

 

구룡포, 또는 호미곶에서 일출을 보려고 마음을 먹은 저는 시내 중심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지친 발걸음을 터벅 터벅

걷고 있었죠. 그때 근처에서 꽹가리 소리, 차 빵빵 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까 로또 산 가게 정도가 되겠네요.

뭔가 빼꼼히 봤더니 아까 처음에 봤던 연등 행렬입니다. 처음에 봤을 땐 귀엽네 하고 말았던 그 차량들이 밤이 되고

불빛이 들어오니 뭔가 엄청 화려한 느낌이 듭니다.

 

 

이 아이는 무려 정기적으로 입안에서 불꽃이 나오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산물입니다. 그 타이밍을 잡으려고 따라 다녔지만

이런 제길슨... 간당간당하던 제 아이폰이 수명을 다 하고 마네요.

연등축제 행렬이 엄청났고 중간에 귀여운 동자승 행렬, 위덕대학 항공관광학과 누나들의 행렬까지 볼거리가 참 많았습니다.

과연 포항은 아리따운 처자들이 많군요. 엉??

 

대충 시내에 도착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구룡포, 호미곶을 가는 버스를 찾습니다. 좌석버스 200번이 가네요.

버스비는 1,500원, 뒷 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아마 이 버스 그 녀석이 학창시절 몇번 타봤을 거라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여기 버스는 시내버스인데도 중국, 일본어 안내가 나오네요.

역시 그로벌 도시인가요 이곳은..

사실 제가 사는 동네와 서울, 부산 이외의 지역에서 시내버스를 탄 건 처음입니다. 그런 낯선 기분도 좋습니다.

 

한참을 버스는 달렸고 저는 슬슬 딜레마에 빠집니다. 구룡포와 호미곶은 꽤 멀고 일출을 보려면 둘 중 한 곳을 골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애초에 무계획 여행이니까요.

어디가 됐든 잠잘 곳을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웬지 둘다 그렇고 그런 모텔들만 가득할 것 같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혼자 모텔에서 자본 적도 없고 이런 곳에서 혼자 외로이 모텔에서 자려니 갑자기 울컥해집니다.

그럴 순 없죠. 하면서도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없던 찰나, 버스 창 너머로 저 앞에 오아시스 같은 광고판이 보입니다.

이름도 "호미곶 온천랜드" 찜질도 된답니다. 급히 하차 버튼을 누르고 내립니다. 이곳이여,. 싼 값에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

피로도 풀 수 있겠다 싶은 마음, 뛰어난 순발력, 빠른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제게 흡족해 해봅니다.

 

그런데 뭔가 묘합니다. 썰렁합니다. 간판 빼곤 불도 안 비칩니다. 주변은 엄청 휑하네요. 주변엔 인가도 어떤 흔적도 없습니다.

그냥 도로 한 가운데 덩그라니 있습니다. 뭔가 뒷골 싸늘해지고 무서워지지만 어쩔 수 있나요. 들어갑니다. 그냥

역시 사람은 얼마 없고 조용합니다. 시설도 꽤 낡았고요. 그래도 물은 괜찮네요. 오늘 쌓인 피로를 풀고 아무도 없는 2층 수면실에

누워 아이폰을 살립니다.

GPS 어플을 켜보니 전원이 꺼지기 전까지 10키로 남짓을 걸었더군요. 시간은 새벽 1시 30분,,,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내일 아니 아침 일출을 보려면 5시 40분까진 어디로든 가야 합니다.
웬지 호미곶이 더 땡깁니다. 인터넷으로 여기에서 거리를 검색해 봅니다. 멀진 않겠지?

허이구... 왠걸 버스 타고도 20분 넘게 걸.....걸리네요.... 첫차는 그 시간에 어...없는데,,, 어라....

에라 모르겠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하지하고 잠에 듭니다.

 

이별 후 가장 달라진 점은 잠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 일어나고 싶을 때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 눈을 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온천을 나섭니다.

새벽, 아랫지방이라곤 하지만 엄청 춥습니다. 역시 바람막이를 챙겨온 이 센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텅빈 도로, 먼 호미곶 어떻게 가야 하나요........ 자 제 포항도보여행 1탄은 여기서 접고요

2탄에서 이어집니다..

댓글 2

ㅇㅇ오래 전

왕~ 포항 반갑네요 ㅎㅎ 저 포항 살아요 ㅎ

포항사람오래 전

터미널 밖에 보면.. 안내소 있는데 거기에 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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