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보는 중국역사 7 - 나비와 미인계

연다홍201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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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나비와 미인계] 편입니다.

 

 

 

 

드라마안에서 황후와 릉용의 계략으로 첫 아이를 유산한 견환은

 

슬픔에 겨워 황제마저 거부하게 되고 점점 황제의 총애를 잃어갑니다.

 

우연히 견환과 부딪힌 제비와 부찰귀인은 때는 이때다 싶어

 

시비를 걸고 견환의 따귀를 때려 모욕을 주죠.

 

 

 

이 사건은 건환으로 하여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황제의 총애가 황궁에서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이 바로 생존을 결정한다는 것을요....

 

 

 

 

 

그로인해 자신의 미모로 황제의 총애를 다시 되찾아오려고 계획을 짜게 되고

 

과군왕이 잡아다 준 나비로 서로 처음 만난 의매원에서 미인계로 황제를 다시 유혹합니다.

 

황제는 견환의 품에서 나는 향과 날아오르는 꽃나비들을 보며 완전 넋이 나가지요 ㅋㅋㅋ

 

 

이 드라마에서 옹정제는 나비와 관련된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드라마 초반 수녀간택 시 안릉용이 수녀간택에서 떨어질 뻔 했는데

 

견환이 안릉용의 머리에 꽂아준 해당화에 나비가 날아와 앉은 것을 보고

 

황제의 눈에 띄어 뽑히게 된 것이죠.

 

 

 

 

 

 

 

 

역사상 나비를 좋아하는 황제는 한두명이 아닌데요

 

당현종 이융기도 나비를 좋아하는 황제로 뮤명하죠.

 

그의 후궁은 4만명도 넘었는데 시침 시 어떤 후궁을 결정할지도 고민이었습니다.

 

 

 

 

나비를 좋아하는 그는 방법 하나를 생각해냈습니다.

 

각 후궁의 처소 앞에 꽃을 심도록 하고 밤에 나비를 풀어 나비를 따라 걷다가

나비가 어느 처소의 꽃에 앉으면 그 후궁과 시침했습니다.

 

 

근데 궁이 하도 크다보니 나비가 황제의 처소에서 멀리 떨어진 후궁들한테까지 못가지요;;

 

많은 후궁들이 항의를하자

 

당현종은 아예 후궁들을 쭉~ 세워 머리에 꽃을 꽂게 하여

 

나비가 누구의 머리에 앉는지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에서도 왕실여인의 상징으로 나비문양 떨잠을 사용했는데요

 

그에 관해서는 나중에 드라마로보는 조선역사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ㅋㅋ

 

 

옹정황제가 단지 나비만으로 견환에게 반한것은 아니지만 견환의 미인계가 통했다는 겁니다.

 

미인계는 손자병법 36계 중 제31계로 이 드라마에서는 미인계 뿐만 아니라 고육계, 반간계 등

정말 많은 계략들이 나옵니다.

 

미인계하면 제일 대표적인 예가 서시의 미인계가 아닐까요?

 

서시는 초선, 양귀비, 왕소군과 함께 중국 4대미인으로 불리지요.

 

초선의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한 미인계도 역사에서는 아주 우명하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미녀입니다.

 

월나라 미녀대회에 뽑힌 그녀가 궁에 들어갈 때

 

많은 사람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길이 막힐 정도였다고 하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춘추전국시대는 BC770년 ~ BC403년 사이 여러나라로 분할되어있던 시기입니다.

 

 

 

당시 오나라와 월나라는 철천지 원수지간이었으며

 

오나라 왕 합려가 먼저 월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나라 왕 구천에게 패하여 죽습니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원수를 갚으려고 섶을 깔고 그 위에서 자며 원한을 되새겼습니다.

 

소문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를 우습게 보며 참모인 범려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나라에 선제공격을 했고 그 결과 대패하여 월나라의 수도가 포위되고 맙니다.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하여 신하로 섬기겠다고 했지만 실은 훗날을 기약하려고 일단은 몸을 낮춘겁니다.

 

부차의 참모 오자서는 후환을 남기지 말고 죽이라고 하지만 재상 백비는 범려의 뇌물을 먹은지라

 

지금 구천을 죽이면 월나라군이 사생결단으로 덤빌테니 일단 항복을 받아들이라고 간언하지요

 

결국 부차는 구천을 살려주기로 하고 오나라에 와서 속죄를 하라 명합니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3년동안 부차의 노복으로 일하는 등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었고

 

구천의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월나라는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목숨만 겨우 건져 귀국하게 됩니다.

 

그는 돌아오자 잠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느냐!”

 

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곤했죠.

 

이후 오나라 부차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북벌에만 신경을 쏟는 사이

 

구천은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를 생포하여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와신상담 (臥薪嘗膽) 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ㅎㅎ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간 후 군사를 정비하고 훈련을 시키지만 오나라가 워낙 강대하니 무력으로는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서시라는 미녀를 데려와 가무와 몸가짐 들을 가르치고 재상 범려를 사신으로 보내

 

서시를 부차에게 바칩니다.

 

서시를 본 부차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그녀를 위한 궁을 짓고 연못을 파는 등

 

총애가 점점 깊어서 국사를 등한시 하게 되고 북벌만을 중시하는 틈을 타 구천은 월나라의 국력을 키울 시간을 법니다.

 

위에 얘기 한 대로 결국 오나라는 월나라에 패망하고 부차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미녀 서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요,

 

오나라가 멸망한 후 강에 빠져 죽었다는 설과

 

그를 요부로 키운 범려와 다른 나라로 가서 상인이 되어 부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드라마 후궁견환전 19회 중반 쯤 잠깐 서시와 범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까 회임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감금된 심미장을 몰래 만나고 자기 처소로 돌아가려던 견환은

 

우연히 과군왕의 배를 타게 되지요.

 

과군왕이

 

'마치 서시와 함께 태호를 누비는 기분입니다'

 

라고 하자 견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서시와 비교하지 마세요. 범려는 자기의 연인 서시를 오나라 왕에게 바쳤지요.

얼마나 매정한가요. 하지만 서시는 그런 범려를 탓하지 않고 다시 돌아왔지요.'

 

 

사실 서시에 대해서는 하도 많은 설이 있어서 어느것이 사실인지는 역사만이 알겠죠ㅋㅋ

 

서시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견환은 이 배 안에서 과군왕이 떨어뜨린 주머니를 발견하지요

 

주머니 안에 견환이 의매원에 걸어두고 온 종이인형이 들어있었고

 

그것을 본 견환이 과군왕의 마음을 알아버린 순간입니다!!!

 

 

한 여자를 둔 형제의 사랑

 

이런 위험한 궁중삼각관계는 과연 가능할까요?

 

다음편에 알아보도록 합니다 ㅋㅋ

 

 

 

 

 

 

출처 - 네이버블로거 삶의공간님 http://blog.naver.com/greatnick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