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질투, 배신, 음모가 판을 치고 독과 사향으로 사람을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한 궁에도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견환과 과군왕의 위험한 사랑 이지요. 늘 궁금했던것은 과군왕이 언제부터 왜 견환을 사랑하게 됐을까입니다. 온의공주의 돌잔치때 견환은 유주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다가 강에 발을 담그고 찰박거리는데 뒤에서 과군왕이 나타나지요. 그때 견환의 미모에 반했을까요? 아님 하얀 견환의 발을 보고 맘이 설레었을까요? 혹시 의매원에서 견환이 소원을 빌때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던 견환의 종이초상을 보고 맘에 담아뒀는데 실제로 보니 더 아름다워서??? 아니면 경홍무를 추는 모습에 반했을까요?ㅎㅎㅎ 이 둘의 인연은 본의아니게 황제가 엮어준 상황이 됩니다. 옹정제와 견환이 처음 만났을 때 옹정제는 신분을 감추고 자신을 과군왕이라고 소개하지요. 매너있고 박식한 그의 모습에 견환은 옹정제를 '과군왕'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설렜습니다. 그것이 모든 운명의 시작이었던거죠. 황제의 여자를 사랑하는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궁중에도 삼각관계는 존재했습니다. 저번편에서 나비를 좋아했다고 한 당현종 이융기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인 양귀비를 두고 삼각관계에 빠졌습니다. 중국드라마 [대당부용원]을 보게되면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랑놀음이 아주 잘 나오는데요ㅎ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이며 어릴때부터 출중한 외모에 가무에도 능했습니다. 17세에 당현종의 18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눈에 띄어 수왕비에 책봉 되었습니다. 수왕의 생모인 무혜비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어 수왕 이모(李瑁)와 그의 비인 양옥환은 별탈없이 5년동안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양옥환이 22살 되던 해 무혜비가 죽습니다. 당현종은 늘 외로워하며 우울해하던 중 자신의 며느리인 양옥환을 보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집니다. 당현종의 끊임없는 구애 끝애 양옥환도 마음이 동해 남편인 수왕 이모(李瑁)를 버리고 시아버지인 당현종의 여자가 됩니다. 당현종 61세, 양옥환 27세 되던 해 귀비에 봉해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귀비]가 되죠. 당시 당나라는 세계 역사를 한꺼번에 봐도 손꼽히는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정치도 안정되고 백성의 삶도 여유가 있다보니 예술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하게 되지요. 이백같은 시인들도 많고 아무런 근심없이 술을 마시며 시를 지을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태평한 국세는 당나라 역대 황제들이 정치를 잘한이유도 있었거니와 당현종도 젊었을때는 굉장히 유능한 황제였기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당현종은 어떻게 보면 로맨틱가이고 어떻게 보면 바람둥이였습니다ㅋㅋㅋㅋ 섬세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에 대한 관심도 많고, 시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고... 이런 황제와 어릴때부터 가무에 능했던 양귀비의 예술적인 코드가 맞아떨어져 불 같은 사랑을 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양귀비를 맞아들인 당현종이 양귀비와 노느라 정치에 소홀하면서 태평성세를 구가하던 당나라의 국운기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망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다시 드라마 후궁견환전으로 돌아와서 후궁견환전의 위험한 사랑은 견환과 과군왕 뿐만이 아닌 태후와 융과다도 있지요. 이들은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고 태후가 수녀간택으로 후궁이 된 후에 궁안에서도 몰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어린 옹정제가 봤지요. 하지만 태후는 아들을 위해 첫사랑 융과다를 독주로 죽입니다. 그녀의 말 처럼 융과다의 첫사랑이기 이전에 청나라의 태후이고 황제의 생모이니까요. 사실 그 장면은 허구이며 융과다는 옹정황제에 의해 감금당했다가 감옥에서 죽습니다ㅎ 하지만 역사에서는 사랑을 위해 아들인 황제의 권력을 위협한 태후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조희(趙姬) 춘추전국시대에 여불위라는 상인이 있었는데 조나라에서 볼모로 잡혀있는 진나라 왕자 자초(子楚)를 알게 됩니다. 장사수완이 뛰어나고 이해관계가 빠른 여불위는 자초라는 왕자가 지금은 남의 나라에 볼모로 잡혀살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자초라는 사람을 통해 출세 할 수 있음을 직감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희였던(혹은 첩) 조희를 자초에게 주고 계략을 짜내 자초가 진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도움을 줍니다. 훗날 드디어 왕이 된 자초는 여불위의 공로를 인정해 그를 승상으로 봉합니다. 하지만 자초는 즉위한지 3년만에 죽고 아들 영정이 즉위하며 나중에 6국을 통일해 진시황제로 불리우죠. 하지만 영정(진시황제)의 생모 조희는 태후가 되어도 그녀의 외로움을 달랠길이 없었습니다. 하여 옛애인 여불위를 찾아가 그들은 몰래 사랑을 하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여불위는 이렇게 태후와 사통한 사실이 발각되면 자신이 어렵게 올라온 지위기 흔들릴 수 있음을 두려워합니다. 고민끝에 그는 노애(嫪毐)라고 하는 잘생기고 건장한 남자를 소개시켜주자 조희는 여불위의 예상대로 그와 사랑에 빠져 아들 두명까지 몰래 낳습니다. 태후가 외간남자와 사통하여 애까지, 그것도 두명이나 낳다니... 진왕 영정의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노애는 영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노애지란(嫪毐之亂)이라고 하며 여불위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시황제 영정은 여불위의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조희가 여불위의 첩으로 있을 때 임신한 조희를 자초에게 주었다고 나와있는데 역사학자들은 의문점이 많은 기록이라고 하네요.ㅎㅎ 견환과 과군왕의 사랑은 견환이 궁에 있을때는 꿈도 못꾸고 꽁꽁 숨겨두고 있다가 견환이 감로사로 출가했을 때 꽃을 피우죠. 견환의 첫사랑은 황제이며 그 사랑만을 믿고 궁에서 버텨왔는데 자신이 총애를 받은 이유가 단순히 순원황후를 닮았다는 이유였음을 알아버리고 충격을 받습니다. 더이상 궁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견환은 출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황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딸 롱월을 출산한지 3일만에 감로사로 떠납니다. 한때는 황궁에서 제일 총애를 받던 후궁이었는데 출가를 하다니 ..... 이련 일이 가능할까요? 아니면 역사에 정통한 견환이 누구를 따라했던 것일까요? 이 의문점은 다음편에서 풀어보도록 하죠ㅋㅋ 출처 - 네이버 블로거 삶의공간님 http://blog.naver.com/greatnick33 321
드라마로 보는 중국역사 8 - 위험한 관계
시기, 질투, 배신, 음모가 판을 치고 독과 사향으로 사람을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한 궁에도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견환과 과군왕의 위험한 사랑 이지요.
늘 궁금했던것은 과군왕이 언제부터 왜 견환을 사랑하게 됐을까입니다.
온의공주의 돌잔치때 견환은 유주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다가 강에 발을 담그고 찰박거리는데
뒤에서 과군왕이 나타나지요.
그때 견환의 미모에 반했을까요?
아님 하얀 견환의 발을 보고 맘이 설레었을까요?
혹시 의매원에서 견환이 소원을 빌때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던 견환의 종이초상을 보고
맘에 담아뒀는데 실제로 보니 더 아름다워서???
아니면 경홍무를 추는 모습에 반했을까요?ㅎㅎㅎ
이 둘의 인연은 본의아니게 황제가 엮어준 상황이 됩니다.
옹정제와 견환이 처음 만났을 때 옹정제는 신분을 감추고 자신을 과군왕이라고 소개하지요.
매너있고 박식한 그의 모습에 견환은 옹정제를 '과군왕'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설렜습니다.
그것이 모든 운명의 시작이었던거죠.
황제의 여자를 사랑하는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궁중에도 삼각관계는 존재했습니다.
저번편에서 나비를 좋아했다고 한 당현종 이융기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인 양귀비를 두고 삼각관계에 빠졌습니다.
중국드라마 [대당부용원]을 보게되면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랑놀음이 아주 잘 나오는데요ㅎ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이며 어릴때부터 출중한 외모에 가무에도 능했습니다.
17세에 당현종의 18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눈에 띄어 수왕비에 책봉 되었습니다.
수왕의 생모인 무혜비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어
수왕 이모(李瑁)와 그의 비인 양옥환은 별탈없이 5년동안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양옥환이 22살 되던 해 무혜비가 죽습니다.
당현종은 늘 외로워하며 우울해하던 중
자신의 며느리인 양옥환을 보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집니다.
당현종의 끊임없는 구애 끝애 양옥환도 마음이 동해
남편인 수왕 이모(李瑁)를 버리고 시아버지인 당현종의 여자가 됩니다.
당현종 61세, 양옥환 27세 되던 해
귀비에 봉해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귀비]가 되죠.
당시 당나라는 세계 역사를 한꺼번에 봐도 손꼽히는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정치도 안정되고 백성의 삶도 여유가 있다보니 예술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하게 되지요.
이백같은 시인들도 많고 아무런 근심없이 술을 마시며 시를 지을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태평한 국세는 당나라 역대 황제들이 정치를 잘한이유도 있었거니와
당현종도 젊었을때는 굉장히 유능한 황제였기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당현종은 어떻게 보면 로맨틱가이고 어떻게 보면 바람둥이였습니다ㅋㅋㅋㅋ
섬세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에 대한 관심도 많고, 시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고...
이런 황제와 어릴때부터 가무에 능했던 양귀비의 예술적인 코드가 맞아떨어져
불 같은 사랑을 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양귀비를 맞아들인 당현종이 양귀비와 노느라 정치에 소홀하면서
태평성세를 구가하던 당나라의 국운기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망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다시 드라마 후궁견환전으로 돌아와서
후궁견환전의 위험한 사랑은 견환과 과군왕 뿐만이 아닌 태후와 융과다도 있지요.
이들은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고 태후가 수녀간택으로 후궁이 된 후에
궁안에서도 몰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어린 옹정제가 봤지요.
하지만 태후는 아들을 위해 첫사랑 융과다를 독주로 죽입니다.
그녀의 말 처럼 융과다의 첫사랑이기 이전에
청나라의 태후이고 황제의 생모이니까요.
사실 그 장면은 허구이며 융과다는 옹정황제에 의해 감금당했다가 감옥에서 죽습니다ㅎ
하지만 역사에서는 사랑을 위해 아들인 황제의 권력을 위협한 태후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조희(趙姬)
춘추전국시대에 여불위라는 상인이 있었는데
조나라에서 볼모로 잡혀있는 진나라 왕자 자초(子楚)를 알게 됩니다.
장사수완이 뛰어나고 이해관계가 빠른 여불위는
자초라는 왕자가 지금은 남의 나라에 볼모로 잡혀살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자초라는 사람을 통해 출세 할 수 있음을 직감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희였던(혹은 첩) 조희를 자초에게 주고 계략을 짜내
자초가 진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도움을 줍니다.
훗날 드디어 왕이 된 자초는 여불위의 공로를 인정해 그를 승상으로 봉합니다.
하지만 자초는 즉위한지 3년만에 죽고
아들 영정이 즉위하며 나중에 6국을 통일해 진시황제로 불리우죠.
하지만 영정(진시황제)의 생모 조희는 태후가 되어도 그녀의 외로움을 달랠길이 없었습니다.
하여 옛애인 여불위를 찾아가 그들은 몰래 사랑을 하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여불위는 이렇게 태후와 사통한 사실이 발각되면
자신이 어렵게 올라온 지위기 흔들릴 수 있음을 두려워합니다.
고민끝에 그는 노애(嫪毐)라고 하는 잘생기고 건장한 남자를 소개시켜주자
조희는 여불위의 예상대로 그와 사랑에 빠져 아들 두명까지 몰래 낳습니다.
태후가 외간남자와 사통하여 애까지, 그것도 두명이나 낳다니...
진왕 영정의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노애는 영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노애지란(嫪毐之亂)이라고 하며
여불위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시황제 영정은 여불위의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조희가 여불위의 첩으로 있을 때 임신한 조희를 자초에게 주었다고 나와있는데
역사학자들은 의문점이 많은 기록이라고 하네요.ㅎㅎ
견환과 과군왕의 사랑은 견환이 궁에 있을때는 꿈도 못꾸고 꽁꽁 숨겨두고 있다가
견환이 감로사로 출가했을 때 꽃을 피우죠.
견환의 첫사랑은 황제이며 그 사랑만을 믿고 궁에서 버텨왔는데
자신이 총애를 받은 이유가 단순히 순원황후를 닮았다는 이유였음을 알아버리고 충격을 받습니다.
더이상 궁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견환은 출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황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딸 롱월을 출산한지 3일만에 감로사로 떠납니다.
한때는 황궁에서 제일 총애를 받던 후궁이었는데 출가를 하다니 .....
이련 일이 가능할까요?
아니면 역사에 정통한 견환이 누구를 따라했던 것일까요?
이 의문점은 다음편에서 풀어보도록 하죠ㅋㅋ
출처 - 네이버 블로거 삶의공간님 http://blog.naver.com/greatnick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