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20대 중반의 여학생입니다.도시가 작기때문에 학교에서는 무료로 학생에 한해 학생증을 제시하면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버스를 애용하지요. 밤새 날을 세워 할일을 하고, 오늘도 다음날 학교를 가기위해버스를 놓칠새라 달려서 탔어요.몸이 피곤했던지, 아니면 딴엔 돈을 아낀다고 일품요리를 매일먹고 다녀 영양이 부실했던지.(미국에 산다고 해서 다 부자는 아니에요. 부모님들은 다 힘들게 사시는데 제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부어라 마셔러 흥청망청 막 살순 없으니까요.) 호흡이 서서히 가빠져오더니.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서눈앞에 정전됐것처럼 앞이 자꾸 보이지 않기 시작했어요.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뻘뻘나더니.제대로 서지도 못하겠고. 말그대로 기절하기 직전 상황. 영화에서 눈뒤집히면서 기절하는게아 이런 기분이었어. 도저히 내가 나를 맘대로 할수 없는 상황. 그런데 아침아홉시 등교시간이라 버스안은 만차에 자리는 꽉차있고내가 어르신도 아닌데 비켜달라기는 뭐하고 미칠거 같은데 한 애가 그러더군요."너 얼굴이 되게 안좋은 것 같아. 여기 앉아."라고. 식은땀이 줄줄나고 토할거 같고 온몸의 피가 다 말라서 세상이 핑글핑글 도는 기분. 이때부터 모르는 승객들이 저를 살려준 작은 기적.하나둘씩 버스에서 너 밥은 먹었니, 라고 물어보고여기저기서 물을 준다던지 쵸코바를 준다던지 그러더군요.저혈당 쇼크가 와서 그럴지도 모른다며. 그러더니 버스기사가 너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거 같다.911(구조대)를 부르자. 라고 버스를 정차시켰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출근길에 버스가 정차하면 눈치 엄청 주잖아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나.응급환자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는. 제 앞에 앉아있던 애들 둘은학교에 가야하는데도 불구하고.버스를 정차시켜서 제 무거운 책가방과 짐을 자기 어깨에 매고다른 아이는 자원해서 기절직전인 저를 들쳐 업고병원에 데려가 주었어요. 엄청 오랜시간 등교길을 지체하였는데도.어느 하나 저를 나무라거나 눈살을 찌푸리지않고모두들 한마디씩 괜찮냐, 어디 안아프냐.옷 좀 벗을래. 하고 땀좀봐. 하고 닦아주기도 하고.자기 마실물을 제게 선뜻 건내주며 제가 괜찮은지 계속 확인해주고. 다 모르는 애들이었는데. 내 친구들도 아닌데내 친구들처럼. 눈감지 말라고, 눈감으면 넌 죽는다고 자꾸 제 이름도 불러주고. 병원에 갔다와서 집에 돌아오는길부러웠어요. 이 아이들의 시민의식이.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타면어느하나 짜증나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고오히려 다들 나서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안전하게 앉을때 까지 도와주려고 하고 내가 한국의 버스 안에서 출근길 바쁜 버스안에서응급환자가 됐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아마 눈치를 엄청 받거나 말안해도 짜증나하는 사람들로넘처나겠지. 버스 기사아저씨는 갓길에 차를 세우기는 커녕나보고 말은 하고 멀쩡한거 같으니 내려달라고 할지도 모르고. 한국이 많이 각박해졌다고 들었어요.아직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때면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신기하게 바라본다거나아니면 시간이 지체되었다며 면박을 주거나부모들이 공공장소에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저녁식사를 즐기려고 하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구요. 학교에는 왜소증인 아이도 자폐증인 아이도 종종많이 다녀요.하지만 절때로 일부러라도 쳐다보지 않는것이 예의라고 배웠는데.아픈사람을 만나면 도와야 하고. 학생이었을때 열심히 공부해졸업생으로 성공해서 학교에 기부를 많이해 아이들 장학금을 돕고.그런거.라고 배웠는데 한국은 바뀌었나요. 한국에 나와 산지 9년이 다되가요.물론 많은 것이 바뀌었을테고더욱더 훌륭해졌을테지만. 십년이 또 지나고 한국에 갔을때한국도 사회적 약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쏟아지는 시선을 피해 동등하게 살수 있고 또 서로 도우면서.그렇게 변해 있을까요.목발을 짚고 사년 내내 불굴의 의지로 학교를 다니던 선배가졸업하던날.전교생과 총장님이 기립해서 그학생이 졸업장을 받을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매년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군인아저씨들이 학교 기념행사마다 불려나와거수경례와 박수로 칭찬을 받고, 또 그래서 나라를 구하고 지켰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고 나이가 몇이 되었든 저희 미국 아버지처럼고졸에 사십평생 방문판매원을 하다가 선생님의 꿈을 꾸고만학도가 되어 오십에 교편을 잡아도 그게 그리 뉴스거리가 되지 않고여자로 태어나 가정을 꾸리고 훌륭한 커리어우먼이 되어서도임신했기때문에, 몸이 굼떠서 권고사직이나 눈치를 받는 그런게 아니라직장동료가 임신을 하면 오피스에 아기용품이 산더미 같이 쌓이고(베이비샤워 물품. 대리님, 뭐 이렇게 직급이 딱히 없으니 다 친구같은 개념이라. 친구가 너무 행복해 하는걸 보고 저도 부러워서.)다시 재취업을 하더라도 그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나이나 성별이나 대학교 졸업장이 꿈꾸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고가정이 지켜지며생명이 가장 무엇보다 소중하고 그런 날이 올까요. 미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기부문화라던가.불평등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이라던가내 먼저 앞서가는 사람에게 문을 잡고 열어주는 매너같은 작은것까지. 참 부럽네요.
응급환자를 대하는 한국과 다른 미국 버스 승객들의 태도.
밤새 날을 세워 할일을 하고, 오늘도 다음날 학교를 가기위해버스를 놓칠새라 달려서 탔어요.몸이 피곤했던지, 아니면 딴엔 돈을 아낀다고 일품요리를 매일먹고 다녀 영양이 부실했던지.(미국에 산다고 해서 다 부자는 아니에요. 부모님들은 다 힘들게 사시는데 제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부어라 마셔러 흥청망청 막 살순 없으니까요.)
호흡이 서서히 가빠져오더니.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서눈앞에 정전됐것처럼 앞이 자꾸 보이지 않기 시작했어요.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뻘뻘나더니.제대로 서지도 못하겠고. 말그대로 기절하기 직전 상황. 영화에서 눈뒤집히면서 기절하는게아 이런 기분이었어. 도저히 내가 나를 맘대로 할수 없는 상황.
그런데 아침아홉시 등교시간이라 버스안은 만차에 자리는 꽉차있고내가 어르신도 아닌데 비켜달라기는 뭐하고 미칠거 같은데 한 애가 그러더군요."너 얼굴이 되게 안좋은 것 같아. 여기 앉아."라고.
식은땀이 줄줄나고 토할거 같고 온몸의 피가 다 말라서 세상이 핑글핑글 도는 기분.
이때부터 모르는 승객들이 저를 살려준 작은 기적.하나둘씩 버스에서 너 밥은 먹었니, 라고 물어보고여기저기서 물을 준다던지 쵸코바를 준다던지 그러더군요.저혈당 쇼크가 와서 그럴지도 모른다며.
그러더니 버스기사가 너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거 같다.911(구조대)를 부르자. 라고 버스를 정차시켰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출근길에 버스가 정차하면 눈치 엄청 주잖아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나.응급환자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는.
제 앞에 앉아있던 애들 둘은학교에 가야하는데도 불구하고.버스를 정차시켜서 제 무거운 책가방과 짐을 자기 어깨에 매고다른 아이는 자원해서 기절직전인 저를 들쳐 업고병원에 데려가 주었어요.
엄청 오랜시간 등교길을 지체하였는데도.어느 하나 저를 나무라거나 눈살을 찌푸리지않고모두들 한마디씩 괜찮냐, 어디 안아프냐.옷 좀 벗을래. 하고 땀좀봐. 하고 닦아주기도 하고.자기 마실물을 제게 선뜻 건내주며 제가 괜찮은지 계속 확인해주고.
다 모르는 애들이었는데. 내 친구들도 아닌데내 친구들처럼. 눈감지 말라고, 눈감으면 넌 죽는다고 자꾸 제 이름도 불러주고.
병원에 갔다와서 집에 돌아오는길부러웠어요. 이 아이들의 시민의식이.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타면어느하나 짜증나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고오히려 다들 나서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안전하게 앉을때 까지 도와주려고 하고
내가 한국의 버스 안에서 출근길 바쁜 버스안에서응급환자가 됐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아마 눈치를 엄청 받거나 말안해도 짜증나하는 사람들로넘처나겠지. 버스 기사아저씨는 갓길에 차를 세우기는 커녕나보고 말은 하고 멀쩡한거 같으니 내려달라고 할지도 모르고.
한국이 많이 각박해졌다고 들었어요.아직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때면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신기하게 바라본다거나아니면 시간이 지체되었다며 면박을 주거나부모들이 공공장소에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저녁식사를 즐기려고 하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구요.
학교에는 왜소증인 아이도 자폐증인 아이도 종종많이 다녀요.하지만 절때로 일부러라도 쳐다보지 않는것이 예의라고 배웠는데.아픈사람을 만나면 도와야 하고. 학생이었을때 열심히 공부해졸업생으로 성공해서 학교에 기부를 많이해 아이들 장학금을 돕고.그런거.라고 배웠는데 한국은 바뀌었나요.
한국에 나와 산지 9년이 다되가요.물론 많은 것이 바뀌었을테고더욱더 훌륭해졌을테지만.
십년이 또 지나고 한국에 갔을때한국도 사회적 약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쏟아지는 시선을 피해 동등하게 살수 있고 또 서로 도우면서.그렇게 변해 있을까요.목발을 짚고 사년 내내 불굴의 의지로 학교를 다니던 선배가졸업하던날.전교생과 총장님이 기립해서 그학생이 졸업장을 받을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매년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군인아저씨들이 학교 기념행사마다 불려나와거수경례와 박수로 칭찬을 받고, 또 그래서 나라를 구하고 지켰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고
나이가 몇이 되었든 저희 미국 아버지처럼고졸에 사십평생 방문판매원을 하다가 선생님의 꿈을 꾸고만학도가 되어 오십에 교편을 잡아도 그게 그리 뉴스거리가 되지 않고여자로 태어나 가정을 꾸리고 훌륭한 커리어우먼이 되어서도임신했기때문에, 몸이 굼떠서 권고사직이나 눈치를 받는 그런게 아니라직장동료가 임신을 하면 오피스에 아기용품이 산더미 같이 쌓이고(베이비샤워 물품. 대리님, 뭐 이렇게 직급이 딱히 없으니 다 친구같은 개념이라. 친구가 너무 행복해 하는걸 보고 저도 부러워서.)다시 재취업을 하더라도 그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나이나 성별이나 대학교 졸업장이 꿈꾸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고가정이 지켜지며생명이 가장 무엇보다 소중하고
그런 날이 올까요.
미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기부문화라던가.불평등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이라던가내 먼저 앞서가는 사람에게 문을 잡고 열어주는 매너같은 작은것까지.
참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