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불쌍하고 억울한 우리 아빠이야기.

개떡오냐2014.02.19
조회1,168
안녕하세요.
 
경남 창원에 사는 대학생입니다.
 
한번도 판에 이런 글을 써보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가끔 이 일이 떠오를 때 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파서 쓰게 되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데....그 누구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답답했어요.
 
누구든 한번만 읽어주신다면,그리고 얼마나 저희 아빠가 힘들고 억울하셨을지 알아만 주신다면...
 
저는 그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저희 아빠는 원래 L 전자에서 일하시던 분이십니다.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가 들어갈 즈음 IMF가 시작되었고 그 여파로 몇년간 힘들게 지내시다가 어떤 분의 제안으로 L전자에 납품을 하는  J 중소기업의 경영자로 일하게 되셨어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L전자가 중국 천진에 공장을 만들면서 저희 아빠가 일하시던 회사도 자연스럽게 중국에 공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12년 넘게 저희 아빠는 일년에 세번, 많으면 네번, 그것도 입국일 출국일합쳐서 일주일씩만 한국에 잠깐 오셨었구요. 그것도 휴식이라고 오셔서 한국에 있는 원래 회사에와의 일로 바쁘다가만 돌아가시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빠는 대기업에 일하시던 때는 일이 바빠서, IMF 때는 먹고 살 길 찾느라 바빠서, 중국으로 가신 뒤에는 기러기아빠라서 저와 제 동생이 자라는 모습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셨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다 크고나니 아빠는 저희에게 힘든 너희들의 사춘기 시절 옆에 못있어줘서, 아빠로써 든든하게 옆에서 지켜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래도 잘 자라줘서 기특하고 고맙다고......그 놈의 돈이 뭔지......그러시더라구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동생이 대학을 졸업해서 둘 다 제 앞가림 하게되면 그 때 아빠는 미련없이 한국을 올꺼다. 와서 너네 엄마랑 둘이서 정말 행복하게 살꺼다. 조금 욕심부리자면 작은 배 하나 사서 낚시를 맘껏하며 그렇게 살고싶다.........항상 이렇게 말씀하시던 아빠이셨구요.
 
근데 저희아빠의 은퇴는 생각하지도 못한 시기에 갑자기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빠는 그동안 중국에서 일명 '바지사장'으로 J 중소기업을 경영하시면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공장도 많이 키우고 납품받는 대기업 쪽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다른 지역에도 공장을 만들어 J중소기업 사장의 아들이 새로 만든 공장을 운영하게까지 도왔습니다.
 
제작년 어느날, 아빠가 한국으로 잠시 휴식차 들어오셨다가 중국으로 다시 출국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보니 아빠가 없는 사이에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J 중소기업의 M사장이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방적으로 서류를 만들어 아빠를 해고시켰던 것입니다. 또한 M사장은 아빠가 하시던 개인적인 사업이 J중소기업과도 연관이 있었는데 아빠의 최측근이었던 중국인 직원과 함께 서류를 조작해서 그 사업에 관련된 돈을 갈라 챙기고 그 중국인 직원은 튀었구요.(개인적인 사업은 저희아빠가 중국으로 가신 후 J기업이 자리를 잡은 후 개인적으로 하시던 일인데 기계납품과 관련하여 J기업과 관련이 있던 일입니다.)
아, 알고보니아빠가 친하게 지내시던 그 지역의 공산당 간부도 함께 뒤통수를 치는데 동참을 했더라구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그 지역에 저희 아빠에 대한 이상하고 더러운 소문까지 냈습니다.
자신들이 한 일을 정당화 하려구요.
(아빠가 항상 농담처럼 중국은 돈만 있으면 모든지 다되는 나라라고 하셨는데..정말이더라구요. 없는 일도 돈찌르고 이야기 돌리니 다 진짜가 되고.... 그 지역 한인상공회 관계자분이 저희 아빠 고등학교 선배분이셨는데 그 분께서 그 소문을 듣고 저희 아빠께 직접 연락이 오셔서 알게되었습니다.)
 
저희아빠요....풍채좋고 긍정적이고 호탕하시던 분이 한달사이에 5kg가 넘게 살이 빠지시고 음식도 제대로 못드시면서 주저앉으셨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저희 남매가 모두 대학생이 되어 엄마도 함께 중국에 계실 때라서 아빠가 엄마에게 의지라도 하실 수 있었다는거예요. 나중에 엄마가 한국오셔서 저한테 울면서 말씀해주시는데 아빠 몰골이 사람이 아니고 아빠랑 살면서 아빠의 그런 무기력한 모습은 본 적이 없으시다면서 통곡을 하셨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저는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이어서 몇개월 뒤에 한국에 들어와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빠가 저희 엄마가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셔서 현지에서 한국인 변호사분으로 모시고 일을 해결해보자고 나서셨습니다. 아빠 선배분이신 상공회 관계자분도 많이 도와주셨구요. 다행인건 그 지역에서 아빠를 믿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이상한 소문은 정리가 어느정도 가능했었습니다.
 
변호사님과 함께 저희 엄마가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서류를 모으고 하셔서 저희 쪽에서는 법쪽으로 소송을 하려고 했습니다. 소송을 하면 저희에게 매우 유리한 정도로 되었어요. 그런데 저희 아빠가 반대를 하셨습니다. 소송을 해서 이기면 J중소기업은 문을 닫을 정도로 일종의 복수가 되고 금전적으로도 저희가 이익이지만 아빠는 다시 그 곳에서 일을 하실 때 야박하고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 되신다구요. 그래서 M사장과 일종의 이행각서 같은 걸 쓰셨습니다. J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량을 일정부분 저희 아빠의 사업장으로 양도하며 저희 아빠에게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뭐 그런 내용으로요. 근데 M사장은 지키지않았고 저희 아빠는 결국 지금 중국에서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며칠 뒤 완전 귀국을 하십니다.
 
솔직히 저희 아빠가 이젠 편하게 한국으로 오시게 되셔서 기쁘긴합니다.그런데 그 일이 있은 이후에 너무나도 작아보이고 움츠려계신 저희 아빠의 어깨를 어떻게 해야 펴드릴 수 있을까요?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고 화가 납니다. 그런 아빠가 너희 자라는 걸 못 지켜봐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미칠 것 같습니다.
 
몇 번이고 정말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창원 팔용동에 있는 한국 사무실에 가서 난리를 피우고 욕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처음에 아빠 일 알고나서는 사무실에가서 정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진짜 사장은 아니지만 바지사장으로 앉아서 저희아빠가 모든 접대며 계약이며 다 하러다니시면서 밤낮으로 돈을 버셨고, 저희아빠가 L전자 재직시절의 인맥 등으로 사업도 잘 이끌어서 M사장은 아무것도 안해도 가만히 앉아서 편히 살 수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도 변변한 기술도 없는데 공장 확장하면서 사장으로 취직도 시켜주었구요. 정말 사람을 이렇게 부리고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걸까요......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얼마전 중국의 사업을 정리하시던 아빠께서 기운을 조금 차리시고 한국에서 몇군데 면접을 보셨습니다. 하지만 50대인데다가 경력이 주담스러워서 중소기업에서는 저희 아빠를 부담스러워 하더군요. 저희 아빠가 예전처럼 큰 돈을 버시는 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아빠가 자존감을 잃지 않을 정도요, 어떻게 표현할 지 모르겠지만.....낙심하고 움츠러든 아빠가 아직 자신은 쓸만한 사람이구나를 느끼면서 열심히 하실 수 있는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었으면 하는게 제 소원입니다.
 
쓰다보니깐 글이 좀 두서없어졌습니다. 갑자기 그동안의 일들이 많이 생각나서...
 
요즘 어릴때는 한없이 커보이고 튼튼한 두팔로 저희가족을 지켜주며 가족을 위해 혼자 중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아빠가 너무 억울한 일로 모든걸 잃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식으로써 너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화가 납니다.
 
앞으론 제가 저희 아빠 행복하게 해드릴겁니다.
더이상 저희아빠가 작아지지 않으시게 할꺼예요.
 
그리고 저희아빠에게 나쁜 짓을 한 창원 팔용동에 사무실이 있는 J중소기업의 M사장.
제가 끝까지 지켜볼껍니다.
다른 금전적인 건 몰라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에게 당신이 한 짓들, 잊지않을겁니다.
꼭 성공해서 보란듯이 우리 부모님 당신보다 몇십만배는 더 행복하게 만들어드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