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범인은 어째서 나를 납치했느냐. 하는 거야. 그 이유를 찾아낸다면 자연스럽게 정체도 알아낼 수 있겠지.’
나는 평범한 고교생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아버지가 도자기 장인이고, RS추리동호회에 S클래스 등급인 회원이라는 것 정도다. 그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내가 납치될 이유가 되진 못했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지?’
다시 이 밀폐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고작 5평 남짓할 정도로 작은 방이다. 그런 방에 창문 하나 없으니 만약 내가 폐소공포증을 가졌다면 당장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가슴 답답한 곳이었다.
‘내가 여기에 갇힐 정도로 나쁜 짓이라도 한 건가?’
평소에도 추리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그다지 학생들 간의 대화도 없었다. 일종의 아웃사이더.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왕따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그런 애매한 위치가 내 자리였다. 그 정도로 타인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내가 이런 납치를 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순간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떠올랐다.
‘연쇄……. 납치 사건?’
순간 가슴이 요동쳤다. 그 네이버에서 본 기사들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나에게 쏟아지는 듯 했다.
‘애초에 나는 납치될 이유가 전혀 없었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렇게 깨무는데도 불구하고 마취제 때문인지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만들어 버린 거야.’
어리석게도 추리라는 단어와 명예에 눈이 멀어 범인을 너무 우습게 봤던 거다. 고작 나 같은 고교생이 무슨 수로 그를 잡겠다고 난리를 쳤던 걸까. 아직 현실감각 부족한 꼬맹이가 대체 무슨 수로.
‘젠장. 젠장.’
지금 이렇게 갇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모두 내 탓이다. 범인이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에 가서 당신이 아들을 납치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코난처럼 무적 신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교생 주제에 너무 겁이 없었다. 피해자의 아버지와 얘기하고 있던 중에 정신을 잃은 걸로 봐서 가족들 모두 합심하고 피해자를 납치한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잡혀간 것이 아니니 납치라는 단어도 이상하다. 감금이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 나도 이렇게 갇혀있으니 말이다.
‘이미 늦은 후회는 소용없어. 그런 건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자. 여기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야만 했다.
‘그리고 보니…….’
애초에 나는 그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죽이고 않고 감금을 했다. 그럼 필요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혹시 피해자를 감금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무슨 목적일까.’
감금을 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은 무엇일까?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질 않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고 다른 거래관계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럼 일단 여길 빠져나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제일 좋겠군.”
어느 새 약 냄새가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조금 아픈 것 빼고는 그럭저럭 평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일단 이 카세트테이프를 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는데.’
방은 보시다시피 5평 남짓한 공간이고, 카세트플레이어를 숨길만 한 곳도 전혀 없다. 혹시 테이블 밑바닥에 붙여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허리를 숙여 확인해봤지만 역시 없었다.
‘그럼 대체 어디야? 있는 거라고는 철문하고, 테이블, 침대뿐인데……. 어? 침대?’
침대에 생각이 미치자말자 바로 방금 전까지 앉아있었던 침대 이불을 들추어냈다. 그러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고약한 곰팡이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윽!” 왼손으로 코를 막으며 침대를 살폈다. 밝은 황금빛 불빛이 침대를 내리쬈다. 곰팡이가 마치 세계지도처럼 거대하게 침대 시트를 덮고 있었다. 이불을 구석에 던져버리고 그 시트를 들어 올려보았다. 조금 무겁기는 했지만 이를 악물고 힘을 쓰니 어떻게든 시트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생이었다. 침대 시트에서 시작해서 침대 밑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저 벽면처럼 시멘트 바닥이 펼쳐져있을 뿐이었다.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별 수 없이 다시 시트와 침대 뼈대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저것이 없으면 앉을 자리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찬 바닥에 주저앉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그렇고 말이다. 결국 두 번 고생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환풍기조차 없는 좁은 방에서 조금 설쳤던 탓에 방 안은 금세 내가 뱉은 뜨거운 이산화탄소로 가득 찼다.
‘기분이 영 찝찝하네.’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산화탄소 때문에 방은 처음보다 습도가 훨씬 많아진 상태였다.
‘아, 찝찝해.’
그렇게 생각하며 입고 있던 코트를 벗으려는 순간.
‘어?’
평소 자주 입고 다니는 코트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급히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손끝에 닿는 낯선 감촉에 얼어붙고 말았다.
“서, 설마…….”
코트 주머니에 있는 그것을 천천히 꺼내들었다. 느껴지는 촉감은 차가운 플라스틱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 눈앞에 가져왔을 때 어리석었던 자신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자기 옷을 확인할 생각을 못 했던 거야! 이 병신아!’
어리석었던 자신을 질책하고 싶었지만 일단 손에 들고 있는 워크맨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한 발자국 전진했다는 사실에 입에서 웃음이 절로 났다. 워크맨에 달려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옛날 기종답게 상당한 노이즈가 고막을 난자했다. 그렇게 고통을 참고나자 이내 낯선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 인간은 포식자야. 그것도 다른 생물보다 훨씬 앞서가는 포식자 중에 최고 포식자지. 날카로운 발톱, 상대를 부셔버릴 수 있는 이빨 따위 인간에게는 필요 없지.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최고의 무기인 지성이 있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장난스러운 말투이지만 그러면서 말 하나하나를 다 알아들을 수 있게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그 지성을 가진 존재들을 시험해보고 싶어졌어. 인간은 얼마만큼이나 더 위대해질 수 있는가. -
‘병신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내뱉고 있었다.
- 자, 그럼 네가 떨어진 이 방을 나갈 힌트를 줄게. -
방금 전까지 그를 욕하던 내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잘 들어, 이 워크맨은 일회용이기 때문에 다시 듣기 따위는 안 되니까. -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만약 녀석이 전화 같은 걸로 말하는 상황이었다면 욕이라도 해댔을 거다.
- 진실은 언제나 밝은 곳에 있다고는 할 수 없지. -
그와 동시에 처음 들었던 노이즈가 고막을 때렸다. 처음 노이즈보다 몇 배는 강한 노이즈에 반사적으로 이어폰을 뽑았다. 이어폰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폰에서 강한 노이즈 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게 되었다. 녀석의 말대로 이 카세트플레이어는 일회용이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금 플레이어의 재생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아예 노이즈자체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하게 고장이 났다.
‘뭐, 제대로 들었으니까 상관없겠지?’
녀석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진실은 언제나……. 밝은 곳에 없다고 했던가?’
바로 방금 들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흐릿해졌다. 두 눈을 감고 정확한 힌트를 기억해내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진실은 언제나 밝은 곳에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라고 했었지?’
내가 아무리 추리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암호문만큼은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암호문이라는 건 만드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성격이 표현되기 때문에 프로파일링처럼 전문가가 아니라면 해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필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암호라니…….’
하지만 그래도 영어 수십 개를 주고 풀어 라고 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래도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 천천히 생각만 한다면 못 풀 정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보니 코트에 다른 건 없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에서 시작하게 속주머니까지 뒤져보았지만 역시 워크맨이 전부였다.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뭐, 천천히 암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되겠지.’
그렇게 마음먹고 방금 전에 취했던 집중하는 자세를 취하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챘다.
“하악……. 허악…….”
어느 샌가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 내가 왜……. 하악…….”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그 두려움 때문인지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생겼고, 주변이 어떻게 변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 무슨 열기가 이렇게…….’
처음 냉기로 가득했던 방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얼핏 사우나를 연상케 할 만큼.
‘자, 잠깐만.’
순간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보니까 여기 환풍기도 전혀 없잖아? 철문은 개미 한 마리 못 지나갈 정도고…….’
섬뜩한 상상이 점차 구체화되어가자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럼 산소는 어디로 들어오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역시 환풍기 따위는 없었다. 방금 침대 밑을 살펴봤을 때에도 그런 건 없었다.
‘지, 지금 위험한 거 아니야?’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5평 남짓한 방에 천장과의 거리는 고작 3m 가량. 즉, 여기 있는 공기를 모두 들이쉬고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알 리가 없잖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급했다. 주변에 떠다니는 후끈거리는 열기로 인해 더욱 그랬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조급한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의 수명은 점차 줄어들어만 갔다.
‘진정해, 진정해……. 아직 죽는 거 아니야. 시간이 남아 있잖아? 이런 식으로 허비해버릴 거야? 아직 암호문도 못 풀었잖아! 병신아!!’
억지로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했지만 한 번 터진 불안감은 그런 심호흡 따위로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욕설을 마구 내뱉어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보다 더 숨이 가빠진 것 같았다. 이제 곧 산소가 바닥날 것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그 말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방금 들었던 암호는 점점 기억 속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침착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소설 속 주인공들뿐일 것이다.
(장편소설) 밀실마피아게임 - 2
출처) 웃대- 듀라라님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범인은 어째서 나를 납치했느냐. 하는 거야. 그 이유를 찾아낸다면 자연스럽게 정체도 알아낼 수 있겠지.’
나는 평범한 고교생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아버지가 도자기 장인이고, RS추리동호회에 S클래스 등급인 회원이라는 것 정도다. 그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내가 납치될 이유가 되진 못했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지?’
다시 이 밀폐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고작 5평 남짓할 정도로 작은 방이다. 그런 방에 창문 하나 없으니 만약 내가 폐소공포증을 가졌다면 당장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가슴 답답한 곳이었다.
‘내가 여기에 갇힐 정도로 나쁜 짓이라도 한 건가?’
평소에도 추리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그다지 학생들 간의 대화도 없었다. 일종의 아웃사이더.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왕따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그런 애매한 위치가 내 자리였다.
그 정도로 타인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내가 이런 납치를 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순간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떠올랐다.
‘연쇄……. 납치 사건?’
순간 가슴이 요동쳤다. 그 네이버에서 본 기사들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나에게 쏟아지는 듯 했다.
‘애초에 나는 납치될 이유가 전혀 없었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렇게 깨무는데도 불구하고 마취제 때문인지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만들어 버린 거야.’
어리석게도 추리라는 단어와 명예에 눈이 멀어 범인을 너무 우습게 봤던 거다. 고작 나 같은 고교생이 무슨 수로 그를 잡겠다고 난리를 쳤던 걸까. 아직 현실감각 부족한 꼬맹이가 대체 무슨 수로.
‘젠장. 젠장.’
지금 이렇게 갇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모두 내 탓이다. 범인이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에 가서 당신이 아들을 납치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코난처럼 무적 신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교생 주제에 너무 겁이 없었다.
피해자의 아버지와 얘기하고 있던 중에 정신을 잃은 걸로 봐서 가족들 모두 합심하고 피해자를 납치한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잡혀간 것이 아니니 납치라는 단어도 이상하다. 감금이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 나도 이렇게 갇혀있으니 말이다.
‘이미 늦은 후회는 소용없어. 그런 건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자. 여기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야만 했다.
‘그리고 보니…….’
애초에 나는 그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죽이고 않고 감금을 했다. 그럼 필요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혹시 피해자를 감금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무슨 목적일까.’
감금을 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은 무엇일까?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질 않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고 다른 거래관계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럼 일단 여길 빠져나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제일 좋겠군.”
어느 새 약 냄새가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조금 아픈 것 빼고는 그럭저럭 평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일단 이 카세트테이프를 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는데.’
방은 보시다시피 5평 남짓한 공간이고, 카세트플레이어를 숨길만 한 곳도 전혀 없다. 혹시 테이블 밑바닥에 붙여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허리를 숙여 확인해봤지만 역시 없었다.
‘그럼 대체 어디야? 있는 거라고는 철문하고, 테이블, 침대뿐인데……. 어? 침대?’
침대에 생각이 미치자말자 바로 방금 전까지 앉아있었던 침대 이불을 들추어냈다. 그러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고약한 곰팡이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윽!”
왼손으로 코를 막으며 침대를 살폈다. 밝은 황금빛 불빛이 침대를 내리쬈다. 곰팡이가 마치 세계지도처럼 거대하게 침대 시트를 덮고 있었다. 이불을 구석에 던져버리고 그 시트를 들어 올려보았다. 조금 무겁기는 했지만 이를 악물고 힘을 쓰니 어떻게든 시트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생이었다. 침대 시트에서 시작해서 침대 밑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저 벽면처럼 시멘트 바닥이 펼쳐져있을 뿐이었다.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별 수 없이 다시 시트와 침대 뼈대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저것이 없으면 앉을 자리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찬 바닥에 주저앉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그렇고 말이다. 결국 두 번 고생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환풍기조차 없는 좁은 방에서 조금 설쳤던 탓에 방 안은 금세 내가 뱉은 뜨거운 이산화탄소로 가득 찼다.
‘기분이 영 찝찝하네.’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산화탄소 때문에 방은 처음보다 습도가 훨씬 많아진 상태였다.
‘아, 찝찝해.’
그렇게 생각하며 입고 있던 코트를 벗으려는 순간.
‘어?’
평소 자주 입고 다니는 코트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급히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손끝에 닿는 낯선 감촉에 얼어붙고 말았다.
“서, 설마…….”
코트 주머니에 있는 그것을 천천히 꺼내들었다. 느껴지는 촉감은 차가운 플라스틱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 눈앞에 가져왔을 때 어리석었던 자신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자기 옷을 확인할 생각을 못 했던 거야! 이 병신아!’
어리석었던 자신을 질책하고 싶었지만 일단 손에 들고 있는 워크맨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한 발자국 전진했다는 사실에 입에서 웃음이 절로 났다.
워크맨에 달려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옛날 기종답게 상당한 노이즈가 고막을 난자했다. 그렇게 고통을 참고나자 이내 낯선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 인간은 포식자야. 그것도 다른 생물보다 훨씬 앞서가는 포식자 중에 최고 포식자지. 날카로운 발톱, 상대를 부셔버릴 수 있는 이빨 따위 인간에게는 필요 없지.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최고의 무기인 지성이 있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장난스러운 말투이지만 그러면서 말 하나하나를 다 알아들을 수 있게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그 지성을 가진 존재들을 시험해보고 싶어졌어. 인간은 얼마만큼이나 더 위대해질 수 있는가. -
‘병신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내뱉고 있었다.
- 자, 그럼 네가 떨어진 이 방을 나갈 힌트를 줄게. -
방금 전까지 그를 욕하던 내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잘 들어, 이 워크맨은 일회용이기 때문에 다시 듣기 따위는 안 되니까. -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만약 녀석이 전화 같은 걸로 말하는 상황이었다면 욕이라도 해댔을 거다.
- 진실은 언제나 밝은 곳에 있다고는 할 수 없지. -
그와 동시에 처음 들었던 노이즈가 고막을 때렸다. 처음 노이즈보다 몇 배는 강한 노이즈에 반사적으로 이어폰을 뽑았다. 이어폰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폰에서 강한 노이즈 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게 되었다. 녀석의 말대로 이 카세트플레이어는 일회용이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금 플레이어의 재생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아예 노이즈자체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하게 고장이 났다.
‘뭐, 제대로 들었으니까 상관없겠지?’
녀석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진실은 언제나……. 밝은 곳에 없다고 했던가?’
바로 방금 들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흐릿해졌다. 두 눈을 감고 정확한 힌트를 기억해내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진실은 언제나 밝은 곳에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라고 했었지?’
내가 아무리 추리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암호문만큼은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암호문이라는 건 만드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성격이 표현되기 때문에 프로파일링처럼 전문가가 아니라면 해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필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암호라니…….’
하지만 그래도 영어 수십 개를 주고 풀어 라고 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래도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 천천히 생각만 한다면 못 풀 정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보니 코트에 다른 건 없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에서 시작하게 속주머니까지 뒤져보았지만 역시 워크맨이 전부였다.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뭐, 천천히 암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되겠지.’
그렇게 마음먹고 방금 전에 취했던 집중하는 자세를 취하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챘다.
“하악……. 허악…….”
어느 샌가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 내가 왜……. 하악…….”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그 두려움 때문인지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생겼고, 주변이 어떻게 변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 무슨 열기가 이렇게…….’
처음 냉기로 가득했던 방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얼핏 사우나를 연상케 할 만큼.
‘자, 잠깐만.’
순간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보니까 여기 환풍기도 전혀 없잖아? 철문은 개미 한 마리 못 지나갈 정도고…….’
섬뜩한 상상이 점차 구체화되어가자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럼 산소는 어디로 들어오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역시 환풍기 따위는 없었다. 방금 침대 밑을 살펴봤을 때에도 그런 건 없었다.
‘지, 지금 위험한 거 아니야?’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5평 남짓한 방에 천장과의 거리는 고작 3m 가량. 즉, 여기 있는 공기를 모두 들이쉬고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알 리가 없잖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급했다. 주변에 떠다니는 후끈거리는 열기로 인해 더욱 그랬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조급한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의 수명은 점차 줄어들어만 갔다.
‘진정해, 진정해……. 아직 죽는 거 아니야. 시간이 남아 있잖아? 이런 식으로 허비해버릴 거야? 아직 암호문도 못 풀었잖아! 병신아!!’
억지로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했지만 한 번 터진 불안감은 그런 심호흡 따위로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욕설을 마구 내뱉어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보다 더 숨이 가빠진 것 같았다. 이제 곧 산소가 바닥날 것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그 말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방금 들었던 암호는 점점 기억 속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침착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소설 속 주인공들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