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12

무념무상2014.02.27
조회799

출처:웃대, 피더스님

 

 


“저번에 들었어. 부모님… 그게…, 안 계신다고.”


그녀가 먼저 운을 띄웠고, 나 역시 천천히 대답했다. 언제 들었던 걸까, 분명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을 시절이였던 것 같은데. 생각이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그 생각의 끝부분을 확인했다.


떠올랐다. 그 날이였다. 처음으로 김지희의 집에 갔던 그 날. 김지희는 빌라에 살고있었다. 3층, 301호. 안은 그다지 넓진 않지만, 내 집 보다는 조금 큰 편이다. 방이 몇 개인지, 정확히 몇 평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네, 맞아요. 안 계셔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어두웠지만 눈물이 흐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확신하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타깝다는 어투로 말했다.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지희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막고있던 침을 꿀꺽 삼키더니, 옅은 미소를 내게 보내왔다. 확실히, 밝기만한 웃음은 아니였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이 타이밍에 꺼내는 이유가 뭘까, 어렴풋이 예상이 가기 시작했다. 경찰에 대한 불신과, 돌아가신 부모님. 머릿속에 그녀가 꺼낼 다음 말이 어느정도 생각되는 듯 했다.


“왜, 안 계시는지는 말씀 안드렸었죠, 꽤 오래된 얘기예요. 십 년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십 삼년이네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니까.”


나는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을 뿐이였다.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예상했기 때문일까, 나는 주머니 속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렇지만 나는 담배연기를 내뿜을 때에는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뭐, 이런다고 그녀가 담배연기를 맡지 않게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살해당하셨어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폐 속으로 향하던 담배연기를 그대로 역류시켰다. 매케한 담배 연기가 머리통에 가득 채워진 기분이 들었고, 곧장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간신히 억누른 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놀랄 필요는 없었다. 이 타이밍에 이 얘기를 꺼낸 걸 보아하니, 이런 얘기일 거라는 생각은 어느정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빨랐다. 훨씬 더 길어질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을 뒤짚은 채, 이야기가 시작된지 불과 몇 분만에 그녀는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살해?”


“네.”


나는 반도 태우지 않는 담배개비를 상 위에 올려져있던 재떨이에 비벼 끈 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층 더 어두워진 표정,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저도 다 잠들어 있었는데. 제가 먼저 발견했어요. 화장실에 가려다가… 안 방에 서있는 그 사람을.”


별안간 그녀가 몸을 벌벌 떨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려서일까. 그녀는 내게 마실 것을 요구했고, 나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녀가 마실 만한 음료를 찾았다. 사실상 찾을 필요도 없었다. 우리 집에 있는건 탄산음료가 전부니까.


콜라는 아니였다. 콜라를 대신해 구매했던 사이다를 한 컵 가득 따라,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고. 그녀는 탄산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목이 따가울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이다 한 컵을 한번에 마신 그녀는 컵을 내려놓곤 표정을 찡그렸다. 목이 따갑기 때문이였다.


“전 소리쳤어요.”


마치 중대한 발표를 하듯,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내뱉었다.


“소리쳤죠, 크게.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병신같아요. 후회되는 거죠. 제가 소리를 질러서 부모님이 잠에서 깨어났으니까. 그래서, 강도가 부모님을 죽인거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죄책감일까. 물론, 이 사건에 대해서 그녀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부모님을 죽인게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건 정말 큰 착각이다. 애시당초 그렇게 따지고 든다면 무단주거침입을 강행한 강도의 죄다. 그녀의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인간으로썬 당연한 일이다. 어찌됐던 부모님이 죽을 가능성을 높혀버린건 자신이니까.


“칼에 찔렸어요, 제 눈 앞에서. 이게 다 예요.”


나는 말없이 담배 한 개를 더 꺼내 불을 붙혔다. 괜시리 속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 그때 그녀가 겪었던 상황이 일 인칭으로 펼쳐지는 느낌이였다. 소리를 지르는 자신, 눈 앞에서 괴한의 칼에 죽임 당하는 부모의 모습.


‘신발’


속으로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김지희와 알고 지내면서, 그녀에게 이런 과거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까지도 그 꿈을 꿔요, 근데 이상하게 부모님이 강도의 칼에 찔리는 그 부분만 흐릿해요. 왤까요…?”


‘잊고 싶어서 그런거 아닐까’ 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 했지만, 그녀는 내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부터 내 대답을 들으려고 건넨 질문이 아니였다는 듯이.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일거예요, 강도가 들어와서 부모님을 찌른다니.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 나이가 보기엔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꺼예요, 아마….”


대답대신, 나는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근데, 그 상황에서도 전 살았아요. 왠 줄 알아요?”


그녀가 질문문을 던졌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일 뿐이였다. 이번 역시 내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숨었거든요, 무서워서, 화장실 안에 있는 세탁기 속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계속 벌벌 떨고있었죠.”


세탁기 속 이라니, 보통은 장롱 같은데 숨지 않나? 그녀가 말해주는 사건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읽어오던 소설과는 달라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세탁기 속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였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을까.


“강도는 잠시동안 절 찾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렸어요. 싸이렌 소리가 들렸거든요. 부모님을 찌를 때, 엄마가 비명을 지르셨어요. 그래서 아마, 옆 집이나 동네 사람들이 신고했던 것 같아요.”


“다행……이네.”


‘다행’ 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곤, 나는 내가 지금 올바른 단어를 내뱉는건지 일순간 생각했다. 다행인걸까,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절대 다행일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안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띄워 내게 보냈다. 아주 슬픈 미소, 그 표정을 보며 나는 담배를 또 다시 빨아들일 뿐이였다.


이야기는 아마 이렇게 끝난 것 같았다. 강도가 들어왔고, 그녀의 부모님이 칼에 찔렸다. 그리고 그녀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가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범인은….”


말을 흐렸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챈 듯,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못 잡았어요.”


‘역시’


나는 표정을 찡그리며 담배를 거칠게 재떨이에 비볐다. 예상하고 있던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경찰이 오고, 수사를 했는데도 못 잡았죠. 경찰은 놓쳐버린 거예요. 제 부모님을 죽인 그 범인을.”


그렇게 말한 그녀의 주먹에는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녀가 경찰을 싫어하는 이유로써는.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이 연관됐으니까 말이다.


나와 그녀는 한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녀는 빈 컵을 입에 가져다대어, 끝 부분에 조금 남아있던 사이다 방울을 마셔댔고, 나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향해 시선을 옮긴 채였다.


시간은 아홉 시 반. 그녀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우리 집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여덟 시 반이니까, 나와 그녀는 벌써 한 시간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게 된다. 그 정도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피곤했다. 그렇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어떡할래?”


내가 침묵을 깨며 묻자, 그녀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서려있던 어두운 기운을 조금 진정시키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도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집에 바래다줄까.”


그러자 그녀는 말 대신, 고개를 저음으로써 대답해왔다.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사이다 한 병을 꺼내 컵도 쓰지 않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몇 방울이 목덜미로 떨어졌지만, 옷 소매로 쓸어내리는 걸로 간단히 처리했다.


자리에 돌아오자, 그녀는 휴대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에게 보내냐고 묻자, 그녀는 ‘삼촌’ 이라고 대답해왔다. 그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친척들의 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했다.


지금 그녀가 살고있는 집이 그녀가 아닌, 삼촌의 집이라는 건 알고있었다. 전에 그녀의 집을 방문할 때, 그러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삼촌은 택시기사 일을 하고 있었기에,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항상 늦는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 날 나 역시 그녀의 삼촌을 볼 수는 없었다.


“피곤하네요.”


휴대폰 조작을 마친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방에 위치한 침대를 가르키며 말했다.


“피곤하면 먼저 자. 뭐,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그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지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몸을 눞혔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곧바로 잠에 들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타인에게 들려준 상태였다. 쉽사리 잠에 들 수 있을리가.


김지희를 내 방 안 침대에 눞힌 뒤, 나는 거실에 나와 다시 담배를 꺼냈다.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창 밖으로 시선을 응시했다. 창문은 두 겹으로 되어있었는데 안 쪽에 있는 건 불투명 유리였다. 불투명 유리창을 옆으로 밀자, 투명한 유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밖에서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이 내리진 않았다. 창문을 타닥타닥하고 두드리는 물방울의 수도 적었다. 나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아침에 내리던 비 일까, 내가 살인마의 전화를 받고 편의점을 향해 뛰쳐나갔을 때에는 이미 그친 뒤였다. 그 비가, 지금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걸까. 그러자 낮의 일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김지희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어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였다. 살인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던 날, 그리고 그 기회를 놓쳐버린 날.


젠장, 아까전에 칼에 찔리던 말던 그냥 그 여자를 붙잡았어야 했을까. 살인 게임에 휘말려있는 상태면서, 칼에 찔리는 걸 무서워하다니. 어쩌면 그 여자는 다시 내 눈 앞에 안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럴 리는 없을까. 오늘이기에 나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날 알고있다. 더 이상 거짓말을 통하지 않는다. 내가 쓴 책에 등장하는 살인 방법을 사용한 것, 그리고 김지희를 노린 것, 내가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하자 재빨리 도망친 것.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나를 알고있어.”


혼잣말을 읊조렸다. 애시당초 나를 알고 나에게 접근한 이상, 이대로 연락을 끊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살인마가 더 이상 내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좋아할 일이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 여자를 붙잡고, 물어봐야했다. 나를 이 살인게임에 참가시킨 이유를, 그리고 그 여자의 정체를.


그 순간이였다. 컴컴한 거실에 베토벤의 운명이 울려퍼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거실 바닥에 떨어뜨렸다. 서둘러 담배개비를 집어들고 재떨이에 비빈 뒤, 휴대폰의 화면을 살폈다.


「미친년」


제 말 할때 딱 등장하시는 군. 나는 몇 차례 심호흡을 내쉰 뒤, 천천히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먼저 말을 꺼내진 말자. 일단 이 여자의 반응을 지켜보자.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연결되었다.


“……”


“……”


짧은 침묵.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조용히 내 방 문을 닫았다. 살인마와의 통화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김지희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몰랐다. 뭐라고 말해도, 일단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상대다. 김지희는 더 이상 이 사건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녕, 아저씨.”


내가 방 문을 닫는 그 순간, 침묵을 깨고 익숙한 문장이 내 귓속으로 날라들었다. 나는 다시금 침을 삼켰다. 담배를 펴서 그런걸까, 침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아니, 아저씨가 아니던데요. 오빠라고 불러줘야하나.”


“닥쳐, 너한테 오빠 소리 듣고싶지도 않아.”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키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수 없는 긴장감. 지금까지 그 어떤 통화보다 더욱 긴장되었다. 방 안을 가득 뒤덮은 추위에 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나는 불투명 유리를 다시 닫은 뒤, 대화에 집중했다.


“달리기가 빠르던데, 연습한건가? 오늘처럼 나한테 붙잡힐 뻔한 상황을 대비해서.”


“그런 대비는 안했어요, 아니, 애시당초 나 잡으려고 쫒아오지도 않았으면서. 왜 안 쫒아왔어요? 무서워서 그랬나? 나한테 찔릴까봐, 그렇죠?”


“말 안했던거 같은데, 나 이래뵈도 무술 유단자야. 너 따위가 칼 들고있다고 설쳐봤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술은 개뿔, 어짜피 남자나 여자나 칼에 찔리면 뒤지는건 똑같거든요?”


분명 내가 낮에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문장인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표정을 찡그렸다.


“야, 너 말투가 조금 거칠어진거 같다? 네 말대로 요조숙녀가 할 말은 아닌거 같은데 그거.”


역시, 이 여자도 낮에 있었던 그 사건을 아직 마음에 두고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떨렸던게 분명하다. 나한테 정체가 들킬까봐, 나한테 붙잡힐까봐.


“아저씨는 조금 자신감 넘치는 것 같은 말투네요. 혹시 아저씨, 아저씨가 이겼다고 생각하는거예요? 오늘 그것 때문에? 칼에 찔릴까봐 쫒아오지도 못했으면서?”


“입 닥쳐, 그보다 넌 왜 아직도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거지?”


“왜요, 역시 오빠라고 불러줘요?”


“성기까, 더 구라칠 생각은 하지도 마. 너 나 알고있었잖아. 어? 이름도 알고있을거 아니야. 내가 어디 사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다 알고있었을거 아니냐고.”


목소리가 조금 떨려왔다. 왜 떠는거야.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건 더 이상 도박이 아니였다. 사실이 아닐 가능성 따위는 없었다. 틀림없이, 이 여자는 나를 알고있다. 이건 확신을 넘어선 진실이였다.


“…….”


수화기 너머에선 침묵이 흘러나왔다. 고민? 고민하고 있는건가. 이대로 내 대답에 응할지, 혹은 아직도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지며 나를 속일지. 신발, 더 이상 뭘 속이려고.


“그래, 신발 넌 날 알고있어. 하, 난 네가 진짜 탐정이라도 되는 줄 알았거든? 말도 안되잖아, 나랑 조금 말한거 가지고, 내가 너랑 같은 동네에 살고있다고 의심하는 사실을 알아차리거나, 내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거나, 응? 조카 말이 안되잖아.”


침을 한번 삼킨 뒤,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신발 지금 생각해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더라. 그렇겠지, 넌 날 알고있었으니까. 니가 알고있었던 사실을 지금 알았다는 듯이 연기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 이 미친년아.”


상대는 여전히 침묵했다. 짜증났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상대는 아직까지 도망칠 방법을 모색하는 중인걸까, 여전히 나를 속인채로 이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


“이런 신발! 말 좀 해보라고!”


내가 소리쳤다, 하지면 어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다시 한번 욕설 섞인 고함을 내뱉으려던 그 순간이였다.


“시끄러워요, 이태호 아저씨.”


이번엔 내가 침묵했다. 역시. 그 한 단어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내 의심과 의문이 확실이라는 현실로 바뀌였다. 이 여자는 나를 알고있다. 그리고 일부러 나에게 접촉했다.


“이러면 됐어요? 그래요, 나 아저씨 알고있었어요.”


“하, 그래 신발, 이렇게 나오셔야지.”


“처음에 아저씨한테 전화 건 것도 우연 아니예요, 일부러 전화 건 거지. 근데 말야, 아저씨가 시체 발견한건 진짜 우연이예요. 웃기죠? 어떻게 그걸 발견할 생각을 다 했대? 그거 딱 본 순간 깨달았죠. 아 이건 운명이구나. 내가 아저씨한테 전화건 건 진짜 운명이였구나 하고.”


“닥쳐.”


마치 나를 도발하는 듯한 어투였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지금까지 품고있던 고민이 한번에 싹 가시는 듯 했다. 아직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였지만, 가장 큰 의문이 해결됐다는 사실에 나는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된 듯이 흥분했다.


“아저씨,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아봤자 별로 달라질 건 없잖아요. 아저씨가 하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 뿐이지.”


“달라질 수도 있지, 내가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널 찾아낼 수도 있고. 범인이 살고있는 동네를 알고있는데,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아저씨, 경찰에 신고한다구요? 그럼 왜 지금까지는 신고하지 않았던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신고하고도 남았을텐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거 아닐까? 경찰이 못 미덥다던지, 경찰에 안좋은 기억이 있다던지, 전과가 있다던지, 혹은 아저씨도 이 저랑 하는 이 통화를 즐기고 있다던지.”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면, 내가 김지희에게 했던 말을 옮겨붙인 것 처럼 똑같았다. 그 사실이 괜시리 불쾌해서, 나는 표정을 찡그렸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이유는 없어. 지금까지는 그냥 지켜봤던 것 뿐이지. 이 전화를 끝내고 내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수도 있는 일 아니겠어?”


조금은 도발하는 식의 어투로 말했다.


“아저씨, 조심하는게 좋을껄요. 경찰들은 아저씨를 의심하고 있지 않아요? 그 시체가 살해당한 방법이 아저씨가 썼던 소설이랑 똑같아서요.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시체의 첫번째 발견자. 이건 뭐 완벽하네요. 그에 반해 아저씨가 신고하려는 것엔 증거가 없잖아요. 제 전화번호를 알려준다해도, 이게 제 진짜 번호일거라는 보장이 있나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어왔다. 나는 말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있을 뿐이였다. 어디까지나 맞는 말이였다. 경찰은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섣불리 나섰다면, 내가 죄를 뒤집어 쓸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아저씨가 지금까지 저랑 한 대화 내용을 녹음이라도 해 놓지 않은 이상. 그런데 아저씨, 설마 녹음 하셨어요? 제가 보기엔 안한것 같은데요.”


녹음, 그 단어가 뇌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치 못했다. 휴대폰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젠장할, 왜? 왜 나는 이런 중요한 것 들을 모두 잊어버리는 걸까.


“왜,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젠장할, 이 단어는 앞으로 금지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너무 빈틈이 많은 문장이였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녹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알리는 듯한 어투. 심지어 내 목소리마저 떨렸다.


“휴대폰 녹음 할 때는,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뜨려서 화면을 조작해야되거든요? 그럼 자연스럽게 아저씨 목소리도 멀어졌어야죠. 근데 지금까지 아저씨랑 통화하면서 아저씨 목소리가 멀게 들린 적이 없거든요. 뭐,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예요. 아저씨가 녹음을 이미 시작해놓고 통화를 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근데, 전 아저씨가 녹음을 안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내가 알기론 아저씨가 그렇게 냉철한 성격이 아니거든요.”


“하, 내 성격까지 알고있으신가?”


확실히, 나는 그리 냉철하지 못했다. 당황하거나 흥분하면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이번 녹음 건도 그랬고, 백견 건도 그랬다.


“아저씨, 만약 녹음 안하셨으면 지금부터도 안하시는 게 좋을거예요. 아니, 녹음이 아니라 신고 말이예요. 안하시는게 좋아요. 나는 아저씨 집도 알고있고, 그 편의점 언니가 살고있는 집도 알고있거든요. 만약 이 동네에 경찰이 들어오는 것 같다, 싶으면 바로 불 질러버릴거예요.”


“편의점 언니?”


“아, 나 그 언니 이름도 알고있어요. 김지희, 맞죠? 지금 아저씨 집에 같이있는 그 언니 말이예요.”


같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고? 그렇다면 이 여자는 아까 도망친 그 뒤에도 편의점 근처에서 계속 우리를 지켜봤다는 이야긴가? 젠장할, 등골이 오싹해졌다.


“잡힐땐 잡히더라도 확실히 죽여놓고 갈 거예요. 이런 말 까지 하면 좀 위험하긴 한데, 아저씨는 몰라도 그 언니는 확실히 죽일 수 있어요. 어젯밤에 아저씨랑 그 언니 따라가면서 본건데, 그 언니 저랑 가까운데 살고있더라구요.”


“미친….”


욕설이 미세하게 새어나갔다.


“그럼, 이제부터 본론이예요. 아저씨.”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본론?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걸까. 애시당초, 이 여자는 대채 뭘 하고 싶은거지? 미친년처럼, 말 그대로 살인을 하고 싶은걸까. 나는 상대방의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게임의 방식을 바꾸죠.”


“뭐?”


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게임의 방식이라니? 게임이라면 이 살인을 뜻하는 걸까. 그렇다면 방식이란?


“지금까지 했던 게임의 방식을 바꾸자는 말이예요. 제가 무작위로 살인을 하면서 아저씨에게 그 소리를 들려준다는 막연한 게임 말구요. 뭐, 생각해보니 게임을 재대로 했던건 그 첫날 밤 밖에 없었네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타이밍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젠장할, 침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거람. 담배를 다시 끊어야할까.


“술래잡기를 하죠.”


“술래잡기?”


이번에도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녀는 게임의 방식을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제 제가 같은 동네에 살고, 아저씨를 알고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근데 아직 제가 누군지는 모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저를 찾으세요. 제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누군지.”


다시한번 침을 삼켰다. 목이 말라갔다.


“그리고 저는, 그 언니, 김지희를 죽일거예요.”


“미친 신발,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야?”


김지희를? 왜? 김지희는 단지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이고, 나와 안면이 있는 여자.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대채 왜 이렇게 김지희에 집착하는걸까.


“아저씨는 저를 찾고, 저는 김지희를 죽일거예요. 누가 먼저 게임을 끝낼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저를 찾으면 아저씨의 승리예요. 전 그대로 경찰에 잡혀버리겠죠. 만약 제가 이기면 김지희는 죽어요. 그럼 그땐 또 다른 게임으로 아저씨와 통화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아저씨가 김지희를 지키는 건 상관없어요.”


머리가 혼잡했다. 이 여자는 대채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물론, 김지희의 집에 불을 지르진 않을거예요. 칼, 아까 보셨죠? 그 칼로만 죽일게요. 그럼 문제 없겠죠? 아저씨가 김지희를 지키는데에. 그리고 말이예요.”


그녀는 말 끝을 흐렸다. 내 이마에서 이미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저씨는 거부권이 없어요, 만약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전 곧바로 김지희를 죽일거예요. 그리고 시체에 다시 장난을 쳐 놓을거예요. 저번처럼, 아저씨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 살해방법으로.”


“무슨 말도 안되는…!”


“아저씨, 지금 아저씨 의심받고 있어요. 인터넷 봤어요? 저번에 그 사건 이미 기사로 나와있어요. ‘백견에 등장하는 살인방법’ 이라고. 근데, 이번에 아저씨가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가 다시 그 방법 그대로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저씨, 잘못하면 진짜 누명써요. 제 죄를 말이예요.”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키득댔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짜증이 솟구쳤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리고 내가 김지희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있던 김지희는 이 사건과 관계없었다. 그녀를 휘말리게 해선 안됀다.


“술래잡기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긍정의 대답이라고 생각한걸까. 그녀가 다시 말해왔다.


“가위바위보 술래잡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아저씨는 저를 붙잡고, 저는 김지희를 죽이죠, 그리고 김지희는 아저씨를 의지하고. 가위바위보랑은 조금 다르려나?”


그녀의 어투에서 웃음이 묻어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