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 이전 조선의 대 여진 및 대 일본에 대한 정보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구치관, 한명회 등은 대 여진 분야의 전문가 들이었고 정보를 얻는 곳도 많았으며 신숙주는 일본에 통신사로 가면서 농업, 군사, 상업등 각 분야별로 사람을 시키거나 자신이 직접 찿아보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나 연산군 시기를 전후하여 많은 숙청으로 인해 정보수집이 불가능해졌고 불분명한 정보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그 결과 일본의 전국시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임진왜란을 여진족의 급부상을 알면서도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 병자호란을 맞게된다.
어느 역사서에 실린 한 위인의 선견지명
갑자사화 이전 조선의 대 여진 및 대 일본에 대한 정보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구치관, 한명회 등은 대 여진 분야의 전문가 들이었고 정보를 얻는 곳도 많았으며 신숙주는 일본에 통신사로 가면서 농업, 군사, 상업등 각 분야별로 사람을 시키거나 자신이 직접 찿아보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나 연산군 시기를 전후하여 많은 숙청으로 인해 정보수집이 불가능해졌고 불분명한 정보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그 결과 일본의 전국시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임진왜란을 여진족의 급부상을 알면서도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 병자호란을 맞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