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불법은 ‘전갈의 독침’

참의부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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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을 못 치지만 강을 건너야 하는 전갈이 개구리를 불렀다. “날 업고 강을 건너줘, 부탁할게.” 개구리가 답했다. “전갈아, 네 독은 너무 강하고 넌 누구나 독침으로 찌르잖아. 어떻게 널 등에 업고 강을 건널 수 있겠니?” 전갈이 말했다. “널 독침으로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텐데 어떻게 널 독침으로 찌를 수 있겠니?”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중간쯤 왔을 때 전갈은 개구리 옆구리를 독침으로 찔렀다. 개구리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전갈을 돌아봤다. “개구리야 미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난 전갈이잖아.” 전갈과 개구리는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인도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전파된 우화의 내용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본질적 속성’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세계 주요국 정상의 통신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국가안보국(NSA), 20세기 중반 말을 안 듣는 외국 지도자들을 암살한 중앙정보국(CIA), 1994년까지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던 영국의 MI6…. 오직 ‘국익’을 위해 살인과 납치, 고문, 폭파는 물론 도청과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각국 첩보기관의 모습이다. 법과 절차를 다 지키고 활동내역이나 예산 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했다가는 적국 첩보기관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첩보세계의 현실이다.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신분을 유지하는 요원의 정체가 드러나거나 불법 행위가 적발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구조해내거나 자살을 택하거나 신분을 감춘 채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다른 나라와 달리 이런 첩보기관이 법과 절차를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범죄 수사’를 담당한다. 그리고 ‘국내 정보’라는 명목으로 정치와 사회에 개입한다. 신분과 기관을 공개하며 정부 보안 관리와 사이버 안전 관리, 국제 대테러 협상 책임자로 군림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할 리가 있느냐”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안보 중추기관을 약화시키면 안된다”며 전갈을 등에 업은 개구리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1987년 정치깡패 ‘용팔이’를 동원해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폭력으로 봉쇄한 사건과 홍콩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한 불쌍한 여인 ‘수지 김’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당시 여당 의원들은 똑같은 소리를 읊어대며 경찰의 수사 자체를 봉쇄했다. 결국 정권이 바뀐 뒤 장세동 안기부장의 정치공작이었음이 밝혀진 뒤에야 이들은 대국민사과를 하고 ‘안기부’의 이름을 ‘국정원’으로 변경했다. 김영삼의 민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조차 “널 찌르면 나도 빠져 죽을텐데 설마 그러겠니”라는 전갈, 국정원의 말을 믿었다. 국내 정보와 범죄수사권을 그대로 손에 쥐어주고 정부기관들과 지자체, 언론과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등 국가와 사회 전반을 통제하고 주무르게 해준 것이다.

결국 21세기 대한민국은 국정원이 자행한 불법 정치개입과 대선개입, 종북몰이와 지역감정 조장, 북방한계선(NLL) 회의록 파문, 채동욱 검찰총장 음해공작, 탈북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사건 증거조작 등 무수한 독침을 옆구리에 얻어맞고 가라앉는 중이다. 국정원이 저지른 명백한 불법과 탈법의 증거 앞에서도 검찰은 주춤거리고 대통령은 침묵하고 총리와 법무장관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국정원을 위한 잔다르크 노릇을 하고 있다. 개구리가 된 대한민국이 살 길은 하나다. 전갈인 첩보기관 국정원의 독침을 북한과 잠재적 적국을 향해서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범죄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이며 개혁입법이다.

☞ 표창원 전 경찰대학교 교수《경향신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