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사라진 박근혜식 불통정치

참의부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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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난 1년간, 한국정치에서 민주주의는 실종되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국민여론을 대변하는 제 정당들의 토론에 의한 국정운영으로 이뤄진다.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이지만 입법기관인 국회와 국회를 구성하는 정당들과 긴밀한 소통과 논의로 민의가 반영되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의 기본은 토론이며 이 토론의 기준은 “상식”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집권한 지난 1년간 한국정치에서 “상식”은 실종되었으며 토론도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지난 1년은 “부정선거”와 “불통정치”가 지속적으로 회자되었다.

 

1. 덮을 수 없는 대선부정

 

너무나 명백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행위가 자행되었으며 그 대선개입 범죄를 무마하려는 집권여당의 추태가 한국정치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렸다. 나라의 가장 중대사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에 국가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했으며 여당 후보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났다.

 

2012년 12월 11일,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심리정보국 직원이 문재인 후보와 야당을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달며 여론조작에 개입했다고 폭로하였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후보는 12월 16일의 <대선후보 제3차 TV토론회>에서 국정원 직원이 48시간 동안 오피스텔 문을 잠그고 경찰에 반항한 일을 두고 “민주당 당직자들이 죄 없는 가녀린 여직원을 감금한 인권 유린 사태”라며 엉뚱하게도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나아가 경찰은 16일밤 중간수사 발표에서 “국정원 직원이 단 악성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사실관계를 왜곡했다. 이러한 여론공작과 여러 부정선거 의혹 끝에 결국 12월 19일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웃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행위는 일파만파 드러났다. 2013년 3월 18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인트라넷에 게시된 '원장님 지시·강조말씀'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내부문건에는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부터 재보궐 선거, 2012년 총선, 대선에 이르기까지 선거국면에서 국정원이 대북 심리전을 명목으로 여론 조작 활동을 벌이는 것에 대한 지시 사항이 쓰여 있었다.

 

2013년 4월 19일, 국정원 사태를 처음 수사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경향신문과 만나 “서울지방경찰청뿐 아니라 경찰청으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다”고 밝혀 경찰청이 국정원 댓글 수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방해했음을 폭로했다.

 

결국 2013년 5월 24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대선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축소수사, 수사결과 은폐, 조작을 지시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동시에 서울경찰청은 수사 축소 및 은폐를 조사하기 위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앞서 증거인멸을 시도하였다.

 

10월 21일, 윤석열 검찰 수사팀장은 “수사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며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11월 1일, 국정원은  대선여론에 개입했던 트위터 계정 402개 가운데 99.3%인 399개를 삭제하였음이 드러났다. 11월 4일에는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작업에 동원된 ‘알바’에게 3000여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지급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1월 20일,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총선과 대선 때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 상에서 120만여 개의 선거개입 글을 작성하거나 퍼 나른 사실을 밝혀졌다.

 

야권과 시민진영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현 정부가 책임있게 조사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범죄사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났지만 검찰은 범죄자들을 보호하기에 급급하였으며 집권세력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국정원 정치개입 혐의를 끊임없이 축소하고 왜곡했다. 국정원은 짐승도 낯을 붉힐 유치한 댓글공작을 두고 대북심리전이라 억지를 부렸다. 오히려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대선 불복이냐며 몰아세우며 불온한 정치공세로 폄하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국정치가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2. 1970년대 유신으로 돌아간 박근혜 정권

 

박근혜 정권은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를 방불케하는 불통정치로 지난 1년을 일관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정국현안에 대해 야권과 조율은커녕 강경일변도의 국정으로 일관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전제인 토론의 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박근혜 정권은 국가정보원장에 군부출신의 남재준을 임명하며 “막가파 국정원”을 예고했다. 역시나 남재준 국정원장은 정보기관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현안에 거리낌없이 뛰어들어 군부와 정보기관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던 유신정치를 재현하는데 앞장섰다.

 

국가정보원은 국정원 대선불법개입에 대한 국정조사가 한창인 6월 24일, 부정선거 논란을 물타기하고자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대화록을 공개하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8월 5일,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NLL 포기”라고 자의적으로 규정하며 정국의 전면에 나섰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정국의 전면에 나서 정치개입을 하던 행위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없었다. 남재준의 월권행위는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장이 하던 행동으로 유신재림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징표이다.

 

박근혜 정권은 또한 법무부장관에 공안통인 황교안을 임명하였고, 8월에는 유신헌법 작성에 관여하였으며 김영삼 정권시기 선거부정의 대명사인 “초원복집사건”의 핵심인물이었던 김기춘을 대통령실장에 임명하였다. 이들은 민주당을 126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한 야당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대안정책제시행위를 “종북좌파”로 매도하며 한국사회에 사실상 “새누리당의 정책”만을 남겨 두었다.

 

8월 8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장외투쟁이란 이름으로 의원이 정치활동을 밖에서 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며 야권의 장외투쟁을 시비하였다. 나아가 황우여는 “이에 대한 대책도 입법을 하더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야당의원들의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긴급조치식 발상을 내뱉었다. 새누리당 대표가 초법적이고 반민주적 발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3. 진보당을 해산하려는 박근혜 정권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정치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했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이후 최초로 사상초유의 “내란음모사건”을 적용하는데서 절정에 달했다.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진보당의 경기지역 전현직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국가보안법상의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로 12곳을 압수수색하였으며 이 가운데 3인에 대한 긴급체포영장을 집행하였다.

 

한국역사의 모든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그러했듯, 이 사건도 국정원의 금품매수 의혹이 일던 프락치의 이석기 의원 강연녹취록을 제외하면 어떠한 증거도 없는 터무니없는 조작사건이었다. 프락치의 녹취록마저도 2014년 1월 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한 녹취록 중 이석기 피고인이 강연한 부분에서만 무려 414군데, 841개 단어, 2712개 글자가 의도적으로 잘못 기재됐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못한 “RO"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하며 검찰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건 관련자들에게 징역 12년 등 중형을 선고하였다. 국회의원이 강연 한번 했다가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 법무부는 터무니없는 “내란음모 사건을 빌미로 진보당 해산심판청구를 제기하였다. 2013년 11월 5일, 국무회의에서는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일사천리로 심의·의결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진보당이 강령에서 “노동자와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나라”라고 규정한 점을 국민주권주의에 위반된다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진보당이 내건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에서 사용한 용어라고 주장하였다.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규정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이 주인된 나라”를 범죄시 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범죄시해야 하는 “상식”밖의 짜맞추기 작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박근혜 정권이 한국정치에 그나마 풀뿌리처럼 형성되던 민주주의 형식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약속 뒤집기 공약 파기

 

한국정치판을 제멋대로 뒤집어놓은 박근혜 정권은 대통령 후보시절에 공약으로 내결었던 국민과의 약속까지 차례로 뒤집으며 공약을 파기하였다.

 

1월 28일,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기초연금 등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파기,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 국민통합 공약 파기 등 대선 핵심공약 70여개가 파기, 후퇴된 것으로 확인된데 이어 최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의 파기 국면과 함께 시도별 지역 주요 공약도 상당 부분 파기 후퇴 지연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했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공언은 또다시 허언이 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일례로 지난 18대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기초연금은 모든 국민들에게 65세 모든 국민들에게 다 드릴 수가 있고 이번에 제가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꼭 이것은 실행할려고 합니다.”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는 당선 후 복지부가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한정하고 지급액도 소득과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내용으로 변질되었다.

 

12월 16일 문재인 후보와의 TV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의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공약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간병비, 상급병실료 등을 언급하면서 이것까지 포함해서 건강보험에 적용할 것이냐고 물었고, 박근혜 후보는 그것까지 모두 포함한다고 분명히 대답했다. 그러나 당선 뒤 박근혜 정권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를 보험에서 제외해 결과적으로  4대 중증질환 환자의 본인 부담분 중 20%만 경감하는 계획으로 유야무야시키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은 대선 시절에 공약으로 ‘소득계층과 상관없이 0-5세 아가 어린이집을 이용할 때에는 보육료 전액을,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연령별로 양육수당 지급’을 내용으로 하는 소위 ‘ 무상보육’ 공약 발표했지만 2013년. 9월 .26일 기획재정부는 무상보육 국고보조율을 10%p 인상하는 수준으로 무마하고 말았다.

 

5. 높은 지지율의 근원

 

박근혜 정권의 정치는 국민은 안중에 없는 막가파식 유신독재정치이며 그 결과 한국정치의 민주주의와 대국민 신뢰는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여론조사 상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50%를 넘고 있으며 2월 24일, KBS 여론조사는 박근혜 지지율이 63.1%에 이르기도 하였다. 

 

정치파탄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지지율이 60%에 이르는 근본원인은 이미 친박으로 획일화된 언론 때문이다. MBC, KBS, YTN 등 언론사들의 편파보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여기에 TV조선, 채널A, jtbc, MBN 등 종합편성채널 보도가 국민들에게 왜곡된 내용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최근 언론의 왜곡보도 행태는 한때 종편으로 지탄받았던 jtbc의 손석희 뉴스가 오히려 최근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 지경임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언론의 왜곡보도로 인해 국민들은 현 한국정치의 위기를 집권여당의 문제가 아니라 야권의 문제이거나 한국정치권 모두의 문제로 왜곡되어 인식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사실왜곡이 가능한 것은 지리멸렬하고 무능한 야당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치의 대척점에 서야 할 민주당은 대선부정논란에서 “대선부정은 있었지만 결과는 인정한다”는 비상식의 태도로 일관하였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선 여론개입은 규탄하면서도 정작 국정원이 국면전환용으로 제시하는 “NLL 녹취록공개”나 “진보당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순된 입장을 취해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민주당은 진보당이 부당한 “종북”논란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함께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망친 나머지 이제 자신들도 “종북”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진보진영 역시 신속하고 발빠른 대응을 할 대신 진보당과 정의당이 분열하였으며 정의당은 “진보”의 간판을 내리는 상황에 빠져 국민들의 대안으로 우뚝 서기엔 여러 한계들을 보였다. 

 

박근혜 정치는 유신독재정치의 재탕이다. 언론통제와 야권의 반대급부로 얻은 어부지리 지지율을 두고 정상적인 지지율이라 칭할 수 없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의 지지율이 어떠하였나.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정치가 자행되면 될수록 한국정치는 더 이상 기존의 정치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 김성훈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