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끼를 해쳐보다

이끼201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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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북위  38゜선이라는 평범한 지리술어가 겨레의 가슴에 뼈아프게 박혀지던 그때로부터 어언 70년이 가까워오고있다. 3천만의 슬픔이 7천만의 고통으로 화한 기나긴 세월에 때로 화해의 봄기운도 있었건만 아직 분렬의 동토대는 녹지 않았다. 지금도 7년만의 훈풍이 부는가싶던 북남관계에 대결의 랭기가 더욱 서리고있어 민족의 희망이 좌절과 실망으로 바뀌고있다.

이 시점에서 온 겨레는 북남관계의 근본적개선을 위한 옳은 자세와 립장이 어떤것이겠는가 하는 문제를 함께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력사를 일러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창문이라 했다. 인류문명사와 년륜을 같이하고있는 유구한 우리 민족의 력사에 수난과 곡절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였던가. 돌이켜보면 그것은 민족내부문제에 외세를 끌어들인 때부터였다.

반만년민족사를 통털어 가장 원통한 비극의 하나는 고구려의 멸망이다. 드넓은 령토와 상무기풍으로 강대국의 위세를 떨치던 고구려가 계속 존재했더라면 력사는 달라졌을것이다. 후세의 민족사발전에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부정적후과를 끼친 고구려의 종말은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산생된것이였다. 사가들은 신라의 외세의존정책이 없었다면 후날 삼국통일위업이 민족의 리익에 맞게 실현될 가능성은 충분했다고 보고있다. 벌써 천수백년전에 민족사의 갈피에 외세의 간섭을 허용치 말라는 뼈저린 교훈이 새겨졌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아득한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민족내부에는 외세의존, 대국숭배와 같은 망국, 망족, 망인의 근원이 여전히 남아있다. 얼마든지 민족끼리 풀수 있는 문제, 반드시 민족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모두 《국제공조》로 풀려 하는 경향이 있다. 지어 민족문제, 북남관계문제의 국제화를 공공연히 제창하고 동족을 모해하려는 외세의 나팔수가 되여 비방중상을 그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행위들의 종착점이 과연 어디겠는가 하는것을 력사의 거울에 비추어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결국 민족중시냐, 외세중시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일부 사람들이 거들군 하는 《배타적민족주의》나 현실과 동떨어진 《민족지상주의》를 설교하는것이 아니다. 민족에 대한 관점, 외세에 대한 태도문제를 제기하는것이다. 자기 민족보다 더 믿음직하고 더 중시해야 할 외세가 있을수 있겠는가 하는것이다.

얼마전 남조선의 정치외교전문가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미국과의 《동맹》을 우선해야 할 리유를 설파한적이 있다. 그들은 력사에서 배웠다면서 미국이 조선반도에 대해 령토적야심이 가장 적은 국가이기때문에 안심하고 도움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력사의 해묵은 이끼를 다시금 함께 헤쳐보자.

우리 나라에 대한 미국의 침략사는 물론 백수십년밖에 안된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선량함》을 보여주는 증거로는 될수 없다. 미국의 력사자체가 240년도 채 못되며 그나마 19세기 중엽에야 아시아침략에 나선것은 북아메리카에서의 령토팽창과 남북전쟁을 통한 령토완정이 그때에야 마무리되였기때문이다. 미국의 대조선침략의 첫 시작인 《셔먼》호사건이 남북전쟁직후에 일어났다는 력사적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콜럼부스의 아메리카대륙발견이 1 000년전에 이루어졌더라면 조선과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침략은 일본과 유럽을 릉가했을것이다.

력사는 남조선당국이 《혈맹》으로 여기고있는 미국의 진가를 이미 검증한바 있다.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에 놓였던 100여년전 조선봉건정부는 《호상원조》를 제1조로 명기한 《조미조약》에 기대를 걸고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시기, 《을사5조약》체결이후 등 세번이나 청탁대표를 보냈지만 단 한번도 미국의 원조를 받지 못하였다. 앞에서는 조선민족에 대한 《동정》을 금치 못하는 《천사》이지만 돌아앉으면 일본을 적극 떠밀어주는 교활하고 악독한 승냥이가 미국이였다. 지어 극비밀리에 아시아침략에서의 미일협력과 상호 식민지인정을 확약하는 《타프트-가쯔라협정》까지 체결하며 조선정부를 철저히 우롱하고 배신하였던 나라가 다름아닌 미국이다.

이런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지난 6. 25전쟁때에는 미국이 많은 병력을 파견하며 《감동적인 원조》를 했다고말이다. 그에 대한 객관적인 해명이 있다. 지난해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이 제작한 다부작 기록영화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력사》 제4부 《랭전의 구도》의 한대목이다.

《당시 중국에서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고 윁남, 필리핀 등에서 좌익세력이 득세하자 트루맨은 단호한 자세를 보여주는 장소로써 조선반도를 선택하였다.》

결국 세계사회주의진영과 민족해방운동력량을 압살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대전의 발화점으로 선택된 곳이 조선반도였던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이 그 누구에게 《단호한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적절한 장소로 또다시 조선반도를 선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러한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져야 할 리유가 또 있는가? 어떤 론거들이 더 있다 해도 사료적반증앞에 쉽게 무너지고 론리적으로 모순되는 허약한 주장으로밖에 되지 않을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미국은 다른 나라를 위해 발벗고나서줄 선량한 나라가 아니다. 그 《선량한 나라》때문에 전패국도 아닌 우리 나라가 둘로 갈라졌고 오늘까지도 세계유일의 분렬민족으로 고통과 불행, 수치를 강요당하고있는 현실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다.

과거를 론함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화해의 훈풍과 대결의 삭풍이 엇갈리는 이 시각 력사의 이끼를 새삼 번져보는 리유는 민족의 미래가 걸린 북남관계개선을 위해 어떤 자세와 립장이 필요한가를 함께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결론은 민족공조에 대한 견해와 립장을 바로가져야 한다는것이다.

민족공조란 다른것이 아니다. 북과 남, 온 겨레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리익을 위한 투쟁에서 서로 힘을 합치고 행동보조를 취해나간다는것이다. 다시말하여 옳은 동족의식, 확고한 민족자주의식을 가지고 그 어떤 외세가 아닌 민족성원들끼리 힘과 지혜를 합치고 행동을 같이해나간다는것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국제관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민족공조보다 외세공조를 더 우선해야 할 근거로는 되지 않는다. 국제관계란 본질에 있어서 자신을 위해 남과 맺는 관계이며 따라서 자기 나라의 리익보다 우리 민족의 리익을 더 중시할 나라는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위해 진정의 눈물을 흘릴수 있고 사심없는 행동을 할수 있는것은 당연하게도 자기 민족밖에 없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여덟글자에 민족의 생존방식을 깨우쳐주는 심오한 진리가 집약되여있다고 하는것이다.

세월과 더불어 국제공조의 대상은 달라질수 있어도 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는 변하지 않는다. 비록 일시적인 오해와 불신은 있을지언정 력사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유기체적인 존재인것으로 하여 민족은 우선적이고 영원한 동반자로 될수밖에 없는것이다.

동족대결과 민족분렬의 비극을 더이상 수수방관할수 없는 이 시각까지도 자주와 단합이라는 민족생존의 리치를 깨닫지 못하고 외세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북남관계의 전진을 기대할수 없다.

오늘날 북과 남이 조국통일과 민족운명개척의 생명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나아가야 할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기치, 그것은 오직 하나 우리 민족끼리뿐이다.

우리 민족끼리야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뜻과 력량을 하나로 합쳐 민족의 힘을 백배해주고 북남관계문제, 나라의 통일문제를 민족의 리익에 맞게 자주적으로 풀어나갈수 있게 하는 유일한 정로이다.

이것이 바로 지나온 분렬사에 새겨진 세기의 교훈이며 사대로 얼룩져온 민족수난사의 총화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