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재판은 13세기 초에 시작해 무려 18세기말까지(다른종교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파푸아뉴기니같은 곳에선 지금까지도)행해졌으며그중 전성기는 16~17세기 였습니다.마녀 용의자는 주로 엄청나게 부유한 과부들이었으며,특히 가족은 없으면서 돈은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잡혀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또한 자위행위를 하다가 발각될경우 '마귀와 꼐임을 한다' 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마녀로 잡아갔습니다.그리고 이들의 혐의를 가리는 동안 소요된 모든 비용은 마녀가 지불했으며,고문 도구 대여료, 마녀를 고문하는 고문 기술자 급여, 판사 인건비등의 비용은 모두 마녀가 지불했습니다.거기다 관갑과 교황에게 내는 마녀세까지도 마녀용의자가 지불한뒤,화형뒤 처해지는 전재산 몰수형으로 모든 재산마저 다 빼았겼습니다.아프리카의 부두교쪽에선 악마를 숭배한단 명목 하에 마녀를 잡아갔으며 이들은"마녀들은 악마와 꼐임을 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이를 실행하기 위해 빗자루를 매개체로서 활용한다."고 했습니다.이시기에 마녀사냥이라해서 위의 부유한 과부들만 잡아간것이 아니었습니다.독일 뷔르쯔부르크 시 문서실에 1627년부터 1629년까지 10살 미만의 어린이 17명을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였단 기록이 있으며,슈투트가르트의 시 문서에도 17세기의 마녀제판에서 192명이 혐의를 받았는데 대부분은 7살에서 10살,가장 어린 애는 5살 이었다고 합니다.이들은 고아이거나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또는 엄마가 마녀로 몰려 죽은 아이들이었습니다.거기다 신들린것 처럼 미쳐 날뛰는 아이들(쉽게말해 정신질환(자폐증 같은것)이 있는 아이들)을 마녀로 몰아가 죽이기도 했습니다.그것도 모자라 재산이 부유한 아내없는 독거노인을마법사로 몰아가며 죽이기도 했습니다.이당시 마녀를 판별했던 방법은 4가지로하나는 눈물 시험이라 불렸습니다.'마녀들은 사악하기때문에 눈물이 없다.' 는 조건을 전제로해서마녀용의자가 눈물을 흘리면 마녀가 없는것이었고,흘리지 못하면 마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억울해서 펑펑 운다면 모를까생사가 걸린 문제에서 눈물을 억지로 짜내지 못해 죽음을 당한 여성들이 많았습니다.두번째는 바늘시험으로 '타락한 악마들은 지울수 없는 표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마녀 또한 마찬가지' 란 논리를 전제로 해서재판관들이 마녀용의자의 모든 털을 다 밀어버린뒤 관찰되는사마귀, 융기, 부스럼, 기미, 주근깨, 점등을 마녀의 점이라 부르고그자리를 누르거나 바늘로 찔러 감각을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지를 관찰했습니다.당시엔 단체꼐임에 의해 마녀는 피를 다 써버리기때문에마녀는 피를 흘릴수가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세번째는 불시험으로무혐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달구어진 쇠로 지지는것을 견딜수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만일 승낙하면 마녀가 되었는데그 이유는 마녀는 악마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갈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네번째는 가장 유명한 물시험으로다들 아시다시피 물에 빠드려서빠져죽으면 일반인, 안죽으면 마녀였습니다.이렇게 마녀를 잡을경우 마녀를 잡은 곳에선 항상 축제가 열렸는데이 축제는 마녀, 마법사로 지목된 사람들의 재산들을 모아 진행되었습니다.이렇게 마녀사냥을 통해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이후 교황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며 마녀사냥의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고,마침내 이 악습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유럽에선 세계1차대전 이전, 미국에선 1970년대 후반)(하지만 위에 서술했다시피 몇몇곳에선 아직도 있긴 합니다.)이후 2003년 3월 5일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 범죄' 란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과거 하느님의 뜻이란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십자가 전쟁과 마녀재판등)을 최초로 공식 인정하고,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죄했습니다.더 많은 미스테리한 자료를 감상하시려면<--클릭! 1083
중세시대 마녀재판
마녀재판은 13세기 초에 시작해 무려 18세기말까지(다른종교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파푸아뉴기니같은 곳에선 지금까지도)행해졌으며
그중 전성기는 16~17세기 였습니다.
마녀 용의자는 주로 엄청나게 부유한 과부들이었으며,
특히 가족은 없으면서 돈은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잡혀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한 자위행위를 하다가 발각될경우 '마귀와 꼐임을 한다' 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마녀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혐의를 가리는 동안 소요된 모든 비용은 마녀가 지불했으며,
고문 도구 대여료, 마녀를 고문하는 고문 기술자 급여, 판사 인건비등의 비용은 모두 마녀가 지불했습니다.
거기다 관갑과 교황에게 내는 마녀세까지도 마녀용의자가 지불한뒤,
화형뒤 처해지는 전재산 몰수형으로 모든 재산마저 다 빼았겼습니다.
아프리카의 부두교쪽에선 악마를 숭배한단 명목 하에 마녀를 잡아갔으며 이들은
"마녀들은 악마와 꼐임을 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이를 실행하기 위해 빗자루를 매개체로서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이시기에 마녀사냥이라해서 위의 부유한 과부들만 잡아간것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뷔르쯔부르크 시 문서실에 1627년부터 1629년까지 10살 미만의 어린이 17명을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였단 기록이 있으며,
슈투트가르트의 시 문서에도 17세기의 마녀제판에서 192명이 혐의를 받았는데 대부분은 7살에서 10살,
가장 어린 애는 5살 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고아이거나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또는 엄마가 마녀로 몰려 죽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거기다 신들린것 처럼 미쳐 날뛰는 아이들
(쉽게말해 정신질환(자폐증 같은것)이 있는 아이들)
을 마녀로 몰아가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재산이 부유한 아내없는 독거노인을
마법사로 몰아가며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당시 마녀를 판별했던 방법은 4가지로
하나는 눈물 시험이라 불렸습니다.
'마녀들은 사악하기때문에 눈물이 없다.' 는 조건을 전제로해서
마녀용의자가 눈물을 흘리면 마녀가 없는것이었고,
흘리지 못하면 마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억울해서 펑펑 운다면 모를까
생사가 걸린 문제에서 눈물을 억지로 짜내지 못해 죽음을 당한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두번째는 바늘시험으로
'타락한 악마들은 지울수 없는 표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마녀 또한 마찬가지' 란 논리를 전제로 해서
재판관들이 마녀용의자의 모든 털을 다 밀어버린뒤 관찰되는
사마귀, 융기, 부스럼, 기미, 주근깨, 점등을 마녀의 점이라 부르고
그자리를 누르거나 바늘로 찔러 감각을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지를 관찰했습니다.
당시엔 단체꼐임에 의해 마녀는 피를 다 써버리기때문에
마녀는 피를 흘릴수가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불시험으로
무혐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달구어진 쇠로 지지는것을 견딜수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만일 승낙하면 마녀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녀는 악마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갈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네번째는 가장 유명한 물시험으로
다들 아시다시피 물에 빠드려서
빠져죽으면 일반인, 안죽으면 마녀였습니다.
이렇게 마녀를 잡을경우 마녀를 잡은 곳에선 항상 축제가 열렸는데
이 축제는 마녀, 마법사로 지목된 사람들의 재산들을 모아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마녀사냥을 통해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이후 교황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며 마녀사냥의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마침내 이 악습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선 세계1차대전 이전, 미국에선 1970년대 후반)
(하지만 위에 서술했다시피 몇몇곳에선 아직도 있긴 합니다.)
이후 2003년 3월 5일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 범죄' 란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하느님의 뜻이란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십자가 전쟁과 마녀재판등)을 최초로 공식 인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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