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결혼생활이 끝나갑니다.

팬더곰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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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방문했는데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군요.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참 답답하네요. 여기에라도 털어놓으면 좀 나아질까요?

22살에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26살에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함께 살아보니 역시나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정하게 애정표현을 잘 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늘 세심하게 신경써주던 사람입니다.

함께 살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결혼하고 만11년만에 아이가 생겨 더 행복해졌지요.

36주만에 딸을 낳았고 태어날 당시 1.5kg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키하고 몸무게는 정상아들하고 별 차이 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아기한테 좋은 아빠였고 나한테도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맞춘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됐지요.

인터넷도박 중독.. 얼마 전이 아니라 몇 년 전이라는 게 맞겠군요.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안되고 집에도 몇 달동안 오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집에는 그 사람을 찾는 전화가 하루에 한두번씩 걸려 오고 사람들이 한번씩 찾아오기도 하더군요.

그 사람 빚을 엄청나게 지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몇 달 후 그 사람이 돌아왔고 그 사람의 태도를 보고서는 이번 한번은 그냥 덮고 넘어가자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전문대학에 입학해 공부했습니다.

대출금 갚으며 사느라 좀 힘들긴 했지만 그 사람은 변함없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전하고 똑같이 항상 나를 먼저 배려해주고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써주고 또 한가지 전에는 하지 않던 것, 제가 시댁식구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중간 역할을 잘 해주더군요.

대학 2학년 초에 아기가 생겼고 11월에 아기낳고 다음해 2월에 졸업했습니다. 우리아기가 좀 자라면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고 2년 정도는 아이 키우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도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근데... 남편한테 법원에서 우편물이 왔더군요. 개인회생 대출금이 몇 달 밀렸다는 것입니다.

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썼는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고.. 저는 PC방에 갔다는 것을 직감했지요. 남편에게 다그쳐 물었더니 아주 죽을 것처럼 매달리더군요. 정말 잘못했다, 다시는 안그러겠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봐줘라...

아빠를 보면서 생글생글 웃는 우리아기 보고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했습니다.

며칠동안 얘기하고 거의 싸우다시피해서 그 사람의 인터넷뱅킹 공인인증서하고 신용카드, 은행현금카드 모두 제가 관리하게 됐습니다. 그 사람의 손에 돈을 쥐어주지 않으면 될 거라 생각했지요.

근데... 제가 또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작년 말쯤 직장을 퇴직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냥 일하는 게 너무 힘들고 숨막힌다고만 하더군요. 그래도 20년동안 하던 일인데.. 21살때부터 다니던 직장을,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하는 그 좋은 직장을 대체 왜 그만둔다는 것인지, 돈 때문에 힘든 거라면 맞벌이하겠다고 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 살림하고 아이키우느라 저도 정말 기진맥진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까지 그러니 어찌해야 되는 건지..

힘들면 1달 정도 휴직하는 건 어떻겠냐고, 그래도 직장 계속 다녀야 우리 살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만둬야 될 것 같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또 PC방에 갔었던 거죠.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아서 그걸 다 PC게임하는 데 썼다고 하더군요.

정말...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아기 아빠없이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아빠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아기랑 같이 친정으로 왔고 지금도 친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직장 계속 다니면서 아기 양육비 주겠다던 그 사람은 끝내 퇴직했고 제 이름으로 돼 있는 그 사람이 만든 빚을 갚을 수 있을 만큼 제 통장에 넣어주고 또 사라졌습니다.

아직 법적으로 부부인데 다행히 아직까지 그 사람 때문에 저한테 전화오거나 찾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근데.. 39살에 직장을 찾으려니 참 어렵군요. 우리아기랑 살아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보험설계사 콜센터상담사 마트캐셔 이런 것밖에 없는 건가요? 일반회사에 들어가려니 나이제한에 걸리네요.

제 친구 얘기로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는 건 집이 있어도 집값이 어느 정도 이하면 될 거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집이 없어야 된다고 하니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동사무소에 물어보면 알겠죠.

집은 처음부터 제 명의로 돼 있고 그 사람은 자기가 입던 옷하고 제 사진, 아기 사진 챙겨서 저한테 아무것도 달라고 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처음에 가출했던 것처럼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전혀 연락은 되지 않고 협의이혼서류 주고 떠났지요.

우리아기 보고 싶지도 않은지 저랑 아기랑 친정에 온 후 한번 찾아오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그냥 떠났네요.

시댁식구들은 그 사람이 떠난 것도 모르고 제가 먼저 알았지요.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 무심한지..

지금이라도 잘 한 건가요? 처음 알았을 때 그만뒀어야 하는 건가요?

우리 아기가 혹이라는 말씀은 제발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부모님하고 저는 그나마도 우리 아기 때문에 살고 있으니까요.

시간 더 안끌고 결심한 건.. 잘못한 거 아니죠?

그 사람이 나중에 돌아오더라도 저는 받아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끔 만나는 친구라면 모를까 그 이상은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우리 아기가 아빠를 찾았을 때 괜히 찾았다, 찾지 말 걸.. 이게 아니라 찾기를 잘했다고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힘내야지.. 운전면허도 취득했고 사회복지사랑 보육교사 자격증 있으니 취업이 쉽지는 않아도 될 거라 기대하고 계속 도전해 보고 안되면 또 콜센터 다시 다니던가 하고.. ㅋㅋ

난 엄마니까.. 잘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