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보다 어떤 것은 그 어떤 것의 다른 어떤 것에 비해 월등한 육체 보전의 영향력을 받는다. 무게는 가진 것의 쏠림이고 육체는 이를 덜어냄으로써 중력을 덜어낸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가고 깃털이 날아가는 것이 이러하다. 빅뱅의 중심에 중력이 있어서 우주는 둥글게 퍼져간다. 무거운 것은 높이 갈수록 떨어질 때의 파괴력이 크고 떨어지는 시간은 육체가 어느 정도 무게감이 있는 즉, 저항이 적은 것과 저항이 큰 것일수록 중력은 적용받는다 저항이 없다면 중력은 그대로 적용되고 저항이 있다면 중력은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다른 물질이 있기에 중력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중력은 끌어당김이 아니라 연결이다. 중력에 묶여있는 것이고 묶였다는 것은 잡힌 것이다. 그러니 잡혀있는 것이 운동을 하면 그 묶인 내에서 그 움직임은 둥글게 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르게 잡힌 운동력은 모아주고 원소와 원소 그리고 분자가 될 수 있게 잡아준다. 무중력에서는 운동권의 밖에 있기에 빅뱅의 중력은 적용되지 않는다. 즉, 움직임의 밖에 나가면 중력이 없다는 것이다. 빅뱅의 중력 내에서는 별의 입자가 되는 물질만이 그 내에서 중심의 힘에 의해 외부로 튕겨져 나가지만 이미 퍼져나간 후에는 은하계의 영향을 받아 은하계 중심의 중력이 무중력이 되게 한다. 우리는 지구 밖으로 나가면 태양으로 떨어져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은하계의 중력을 태양의 중력이 막아주는 것이다. 중력장은 다른 중력장의 또 다른 어떤 것이고 바로 그 어떤 것이 어떤 것의 어떤 것보다 어떤 것을 위한 공간과 관계가 된다. 즉, 빅뱅의 중력이 은하계를 잡고 있고 은하계는 태양계를 잡고 있고 태양계는 각 행성을 잡고 있는 것이다. 빅뱅 때의 중력이 모든 우주를 잡고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모두 계획되어있다. 선악과도 그 산물이고 하느님의 손길로 만들어진 우리도 그 중 하나이다. 시험받는다고 하면 출제자가 관여치 않는 내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출제자의 중력이 수험생의 중력에 영향을 미치지만 수험생은 그 중력장을 헤아릴 길이 없다. 수험생이 공부하는 과목 또한 수험생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 수험생의 영향을 받지만 그 과목은 물질 또는 추상적이기에 아무 의미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알려주려는 선생님과 부모님과 친구들이 그 중력의 영향을 받지만 이 또한 수험생의 중력을 헤아릴 길이 없다. 중력은 마음이다. 이끌림이 중력의 시작이고 그렇게 알게 되고 받아들여져서 묶임이 되면 그 인연은 평생 마음에 안착되어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잊을 수 없는 물질이 되고 잊을 수 없는 그 세상이 된다.
마음은 우주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면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을 풀어놓아야 한다. 하늘나라는 우주도 하늘과 땅도 아닌 이곳과는 다른 원리의 세상이기에 선악과의 세상이고 이승인 천지창조의 공간에서 가진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맺은 인연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그 인연이 과거 이승의 인연이 아닌 새로운 밀착관계가 되어 새 세상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갈 때는 마음(영혼과 추억; 추억 속에 인연이 있지만 육체적 세상을 의식한 인연이 아닌 관계적으로 친밀하기만한 인연)만 가지고 간다. 그래서 죽은 이들은 말이 없는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다시 오려면 하느님의 허락을 받아 그 인연을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올 수 있다. 하늘나라에서는 영적으로 떠돌지 않는다. 그래서 오고자 하면 오는 것이 아니고 맘대로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만나는 것은 영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영적으로 영향을 받고 산다. 그래서 이 세상 동물처럼 살고만 가자면 죄짓고 살아도 되는 것이고 영적으로 살고 가자면 누구에게나 바른 마음으로 떳떳해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실수할 수는 있다. 실수는 실수이나 죄는 죄이다. 실수는 사고이나 죄는 사건이다. 사건 속에 사고가 포함된다 볼 수 있지만 고의적 사고가 아닌 이상 실수는 사고가 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바른 것을 찾고자 써야한다. 나쁜 쪽으로 가면 그것을 걸러내고 추려내고 수정하고 물리치는 선택을 해야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된다. 삶은 죽는 순간까지 꾸준한 시험이다. '영적으로 하늘나라에 가는가'와 '육적으로 이 지구의 중력장에 남아 버려지느냐'가 시험의 목적이자 이유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십니다. 우리는 시험의 해답도 다 아는 상태에서 시험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데도 더 크고 더 분명하고 더 정확한 것을 원한다면 아예 시험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고 천지창조의 표상인 선악과를 먹어서 이 선악과의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정답이고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이 구원되어 하늘나라에 가는 유일한 길이며 마음에서 위선적인 선택이 없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진실된 태도(시험 자세)입니다. 자살하면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자살하면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자살할 때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수없이 죽지마라 다그치십니다. 마음에서 울리는 마음(양심)의 울림이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이십니다. 억울하면 더더욱 살아서 해결해야 할 것이고 타살 당했다면 영적으로라도 풀길이 있을 것입니다. 불교(크리스트교 외의 모든 종교)로 가거나 하늘나라에서 억울함을 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하느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만이 하늘나라에 가는 유일한 길이니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야훼는 불귀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절대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가르쳐주신 것이십니다.
2014년 4월 3일의 계시
어떤 것보다 어떤 것은 그 어떤 것의 다른 어떤 것에 비해 월등한 육체 보전의 영향력을 받는다. 무게는 가진 것의 쏠림이고 육체는 이를 덜어냄으로써 중력을 덜어낸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가고 깃털이 날아가는 것이 이러하다. 빅뱅의 중심에 중력이 있어서 우주는 둥글게 퍼져간다. 무거운 것은 높이 갈수록 떨어질 때의 파괴력이 크고 떨어지는 시간은 육체가 어느 정도 무게감이 있는 즉, 저항이 적은 것과 저항이 큰 것일수록 중력은 적용받는다 저항이 없다면 중력은 그대로 적용되고 저항이 있다면 중력은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다른 물질이 있기에 중력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중력은 끌어당김이 아니라 연결이다. 중력에 묶여있는 것이고 묶였다는 것은 잡힌 것이다. 그러니 잡혀있는 것이 운동을 하면 그 묶인 내에서 그 움직임은 둥글게 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르게 잡힌 운동력은 모아주고 원소와 원소 그리고 분자가 될 수 있게 잡아준다. 무중력에서는 운동권의 밖에 있기에 빅뱅의 중력은 적용되지 않는다. 즉, 움직임의 밖에 나가면 중력이 없다는 것이다. 빅뱅의 중력 내에서는 별의 입자가 되는 물질만이 그 내에서 중심의 힘에 의해 외부로 튕겨져 나가지만 이미 퍼져나간 후에는 은하계의 영향을 받아 은하계 중심의 중력이 무중력이 되게 한다. 우리는 지구 밖으로 나가면 태양으로 떨어져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은하계의 중력을 태양의 중력이 막아주는 것이다. 중력장은 다른 중력장의 또 다른 어떤 것이고 바로 그 어떤 것이 어떤 것의 어떤 것보다 어떤 것을 위한 공간과 관계가 된다. 즉, 빅뱅의 중력이 은하계를 잡고 있고 은하계는 태양계를 잡고 있고 태양계는 각 행성을 잡고 있는 것이다. 빅뱅 때의 중력이 모든 우주를 잡고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모두 계획되어있다. 선악과도 그 산물이고 하느님의 손길로 만들어진 우리도 그 중 하나이다. 시험받는다고 하면 출제자가 관여치 않는 내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출제자의 중력이 수험생의 중력에 영향을 미치지만 수험생은 그 중력장을 헤아릴 길이 없다. 수험생이 공부하는 과목 또한 수험생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 수험생의 영향을 받지만 그 과목은 물질 또는 추상적이기에 아무 의미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알려주려는 선생님과 부모님과 친구들이 그 중력의 영향을 받지만 이 또한 수험생의 중력을 헤아릴 길이 없다. 중력은 마음이다. 이끌림이 중력의 시작이고 그렇게 알게 되고 받아들여져서 묶임이 되면 그 인연은 평생 마음에 안착되어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잊을 수 없는 물질이 되고 잊을 수 없는 그 세상이 된다.
마음은 우주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면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을 풀어놓아야 한다. 하늘나라는 우주도 하늘과 땅도 아닌 이곳과는 다른 원리의 세상이기에 선악과의 세상이고 이승인 천지창조의 공간에서 가진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맺은 인연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그 인연이 과거 이승의 인연이 아닌 새로운 밀착관계가 되어 새 세상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갈 때는 마음(영혼과 추억; 추억 속에 인연이 있지만 육체적 세상을 의식한 인연이 아닌 관계적으로 친밀하기만한 인연)만 가지고 간다. 그래서 죽은 이들은 말이 없는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다시 오려면 하느님의 허락을 받아 그 인연을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올 수 있다. 하늘나라에서는 영적으로 떠돌지 않는다. 그래서 오고자 하면 오는 것이 아니고 맘대로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만나는 것은 영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영적으로 영향을 받고 산다. 그래서 이 세상 동물처럼 살고만 가자면 죄짓고 살아도 되는 것이고 영적으로 살고 가자면 누구에게나 바른 마음으로 떳떳해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실수할 수는 있다. 실수는 실수이나 죄는 죄이다. 실수는 사고이나 죄는 사건이다. 사건 속에 사고가 포함된다 볼 수 있지만 고의적 사고가 아닌 이상 실수는 사고가 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바른 것을 찾고자 써야한다. 나쁜 쪽으로 가면 그것을 걸러내고 추려내고 수정하고 물리치는 선택을 해야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된다. 삶은 죽는 순간까지 꾸준한 시험이다. '영적으로 하늘나라에 가는가'와 '육적으로 이 지구의 중력장에 남아 버려지느냐'가 시험의 목적이자 이유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십니다. 우리는 시험의 해답도 다 아는 상태에서 시험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데도 더 크고 더 분명하고 더 정확한 것을 원한다면 아예 시험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고 천지창조의 표상인 선악과를 먹어서 이 선악과의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정답이고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이 구원되어 하늘나라에 가는 유일한 길이며 마음에서 위선적인 선택이 없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진실된 태도(시험 자세)입니다. 자살하면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자살하면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자살할 때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수없이 죽지마라 다그치십니다. 마음에서 울리는 마음(양심)의 울림이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이십니다. 억울하면 더더욱 살아서 해결해야 할 것이고 타살 당했다면 영적으로라도 풀길이 있을 것입니다. 불교(크리스트교 외의 모든 종교)로 가거나 하늘나라에서 억울함을 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하느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만이 하늘나라에 가는 유일한 길이니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야훼는 불귀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절대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가르쳐주신 것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