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위안부 관련 일본 만화

클라라2014.04.08
조회72,069

 종군 위안부 관련 일본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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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가 된 미즈키는 징병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몸은 건강했지만, 근안으로 인해서 을종합격을 받았다. 
하지만 전쟁이 격화되면서 점점 징병범위가 넓어져 가는 가운데, 자신이 징병대상이 될 가능성은 높아져만 갔다.
「출정하면 틀림없이 죽는다」라고 생각한 미즈키는 철학서를 탐독하고, 불교서적과 성서 등 종교문헌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책은 요한 페터 에커만의『괴테와의 대화』로, 이 책은 전쟁터에도 가져간다.

21살, 야간중학교 3학년이었던 미즈키에게 소집영장이 도착했고, 그는 본적지인 돗토리(鳥取)의 연대에 배속되었다. 
재학중이던 야간중학교는 자동적으로 퇴교처분이 되었다. 

군대생활에서도 그의 마이페이스는 여전했고, 그 대담한 태도로 인해서 욕탕에서 고참병이 그를 장교로 착각하고 등을 밀어준 
적도 있었다. 초년병 교육을 마치고, 그는 나팔병이 되고자 했으나, 잘 불지 못해서 스스로 배치전속신청서를 낸다.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3번째 시도에 상사(曹長, 조장)으로부터「북쪽이 좋은가, 남쪽이 좋은가」라고 질문을 받는다. 
당연히 국내배치라고 생각한 그는, 추운 것은 싫으니「남쪽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남쪽이면 큐슈 같은 국내의 남쪽 연대에 배속되리라 생각했지만, 군에서 남방 라바울로 가라는 소리를 듣고 아연질색한다.

낙천가인 미즈키라도, 남방전선의 참상은 잘 알고 있었다. 이동명령 직후 2박 3일의 외박이 주어지자, 
부모님이 있는 고향에 들르지만, 그와 부모님 모두 아무말 하지 않고, 앉아있기만 했다고 한다. 

미즈키를 파라오 기지에서 라바울로 운송한 배는, 러일전쟁에서 활약한 노후선 시나노마루(信濃丸). 

적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피하며, 미즈키가 소속된 부대는 어떻게든 라바울에 도착했지만, 라바울로 파견된 후속부대들은 
모두 도중에 침몰되었기 때문에 결국 미즈키가 소속된 부대가 라바울에 도착한 최후의 부대가 되었다. 라바울에 도착했을 때, 
상륙한 기적으로 인해 넋을 놓은 그는 「여기는 어디죠?」라고 상관에게 물었고, 그는 상관으로부터 강렬한 싸대기를 맞는다. 
당시 군내에서 철권제재는 일상다반사였고, 시게루는 하도 많이 맞아서「싸대기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브리튼 섬에서의 전쟁체험은 이후 미즈키 작품에 큰 영향을 준다. 장비, 작전 모두 일본군 보다 뛰어난 연합군을 앞에 두고, 
미즈키가 소속된 임시보병 제229연대 지대장인 成瀬懿民 소령은 옥쇄(玉砕)명령을 내리지만, 미즈키가 소속된 제2중대장 
코다마 세이조(児玉清三) 중위의 임기응변으로 제2중대는 유격전(게릴라전)을 펼쳐,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지령본부에서 내린 총원옥쇄명령에 반한 생존자가 있다고 해서, 고타마 중위는 그 책임을 지고 자결하게 된다. 
또 섬의 주민들로부터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미즈키는 바이엔에 배속되고, 결사대로서 야간보초를 서다가, 
적군의 비행기 기관총 세례를 받기도 한다. 도망친 곳에서 원주민 게릴라에게 발견되어, 황급히 바다로 뛰어들어서 도망친다. 
미즈키는 단검과 훈도시 하나 차림으로 정글에서 수일간 헤매 도망다니면서, 패잔병 사냥을 피해 기적적으로 생환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부대에 돌아가자, 동료들은 기뻐 반겨주었지만, 상관은 나라에서 지급한 무기를 버린 일을 비난하면서
「어째서 죽지 않았나」라고 힐문한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미즈키 시게루는 허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귀환한 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 그에게 말라리아가 발병. 그렇게 요양하는 중에 적기의 폭격으로 왼팔에 중상을 입게 된다.
군의관에 의해 마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왼팔절단수술을 받는 등, 그는 다시금 반사반생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수술 뒤 그는 부상병부대에 보내진다. 그리고 그 섬의 원주민과의 교류가 시작. 그 곳 주민들은 상당히 친절해서 미즈키에게 
과일 등을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1945년, 전쟁터에서 패전의 소식을 듣게 된 시게루. 주위 상관들은 쓰러 무너져 울며 패배를 분해했지만, 
미즈키는「살아남은 기쁨」을 가슴에 품었다고 한다. 연합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본국송환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현지제대후 그곳에서 살 생각도 했지만, 가족은 만나는 편이 좋다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 귀국을 결심한다. 
1946년, 24세의 미즈키 시게루는 구축함 유키카제로 일본에 귀국한다.

한쪽 팔을 잃은 것에 대해서 미즈키는「나는 한쪽 팔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3배의 일을 해왔다. 만약 양쪽팔이 모두 있었다면 
다른 사람의 6배로 일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한쪽 팔을 잃은 것을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한쪽 팔을 잃더라도 살아있는 것에 가치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출처 : 종군 위안부 관련 일본 만화 - 공포/미스테리[공포베스트]
http://gongbe.com/343868



이 미즈키 시게루 라는 분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종군 위안부 관련 일본 만화


종군 위안부 관련 일본 만화



대표적으로 이런 작품들을 집필한 분으로서, 상업성에선 떨어지지만 테즈카 오사무와 쌍벽을 이뤘던 거장.


이 분 때문에라도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만화가들이 벽을 못넘겠다는 평을 하기도 하는 분


아직 살아계심






댓글 24

오래 전

Best부산에 위안부 박물관 있다는 사실 부산분들 알고 계셨나요? 사비로 운영되는 곳인데 손님이 너무 없어 곧 닫힐 위기라고 하더군요. 광안리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부산인인데 뉴스 보고 이제 알아가지고 전해드려요. 우리 기억 하고, 잊지 맙시다.

168女오래 전

Best사람들아 창피한줄 알아라 연예인 열애설 성형설에는 댓글 몇백개 달려있는데 정작 이런 중요한 글엔 댓글이 어떻게 4개 딸랑 있냐? 진짜 너무한다

냥냥오래 전

잊지 말아야할 역사....

오래 전

추천이라도 열심히 눌러줍시다!

곰돌이오래 전

우리집안 작은할아버님 두분 야스쿠니에 강제합사되어있지요.. 한분은 야마토호 승무원이었고 미드웨이에서 전사, 다른 한분은 유황도에서 전사하셨죠. 강제로 끌려가셨어요. 한분은 농사짓다 대낮에 끌려가셨고 한분은 하교길에 강제연행되셨거든요..

아놔오래 전

안그래도 이번 연극제에 이비슷한 내용가지고 연극한다길래 보러감.

솔직한세상오래 전

http://pann.nate.com/talk/322072399 --------------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 "박정희 때 못했으니 그 딸이라도 해결해줬으면" http://www.vop.co.kr/A00000688264.html ------------- /

오래 전

잘 읽었습니다 언제봐도.. 참 할말이 없는

한국사람오래 전

'위안부'라는 단어도 잘못되었습니다. 무엇을 위안해준다고 위안부인가요? '전쟁 성노예 피해자' 라고 하여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단어의 힘이라는게 막강하다고 생각해요. 위안부란 단어.. 어감이 긍정적인 느낌이지 않나요? 실제로 저는 초등학생때 처음으로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위안공연 하는 사람들인줄 알았어요. 노래불러주고 하는 그런 사람들. 여튼 진짜 일좀 잘 해결되기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안부'라는 단어 자체도 틀렸습니다.

주니오래 전

아베총리가 일본위안부가 강제였다는 증거는 없다고 지껄일때 생각했지 저나라사람들은 100년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로 개썅노답. 독일좀 본받아라 지난 역사에 자기 조상들의 과오를 눈물로 참회하고 용서비는 모습좀 배워 제발 원숭이같은 말만 해대지말고

여러분오래 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국학을 바로세우고 알아야합니다 제발 국학에대해 관심을가져주세요 역사와국학을 제대로알아야합니다

ㅇㅇ오래 전

일본은좋아할래야좋아할수가없다,,,,좋아하는마음자체가생기질않는다 독도도그렇고위안부도..생각하면생각할수록마음깊은곳으로부터열이나는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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